2021년 10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주목할 만한 싱글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트와이스, 루나, 조유리, 라잇썸, 아이유, 씨엔블루, 세븐틴, NCT 127, 드림노트의 싱글을 다룬다.
트와이스 ‘The Feels’
예미: 트와이스의 첫 영어 싱글. 'Dynamite'의 미국 발매 성공 사례를 의식한 듯 베이스 기타를 내세운 디스코 트랙 위에 영미권 댄스 팝을 연상케 하는 멜로디를 올렸는데, 각 멤버의 음색이 고루 돋보이도록 보컬 멜로디를 수시로 변주하여 촘촘하게 배치하여 듣는 재미를 더했다. 나연과 지효를 중심축으로 두고 미나를 통해 분위기를 환기하는 기존 트와이스의 멤버 활용법을 기반으로, 랩과 챈트로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채영과 음역대에 맞는 파트를 부여받은 모모의 활약이 인상적이다. 프롬 파티 콘셉트로 활기참을 선보인다는 점에서는 초창기의 트와이스로 살짝 돌아간 듯하지만, 여유로운 애티튜드를 보여줄 때면 데뷔 6년을 넘긴 베테랑 걸그룹의 능숙함이 돋보인다. 현 시류를 명민하게 포착하고 트와이스의 특기를 살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충실한 퀄리티의 이벤트성 곡.
루나 ‘Madonna’
심댱: 루나는 SNS를 통해서 "가수라는 직업에 지쳤을 때" 'Madonna'를 만나게 되었다 밝혔다. 언제나 활기찬 모습인 줄로만 알았던 그가 지치기도 한다는 것도, 이런 속내를 담담하게 드러낸 것도 눈에 밟혔지만, 그럼에도 그가 선보인 싱글은 마돈나의 80~90년대의 향취를 강렬하게 발산해낸다. 귓가를 스치는 영롱한 신스, 안정감 있는 4/4 박자, "I wanna be like Madonna"를 노래할 때 비음으로 처리되는 끝 음, 'Vogue'를 연상케 하는 가사("잡지를 태워내 어떤 각도든 veteran")를 비롯해 곳곳에서 오마주의 대상이 누군지 선명히 떠오르게 한다. 레트로한 메인 멜로디와 날카롭게 충돌하는 멜로디 랩과 "Be you, Be Jinjja"라며 자신만의 메시지를 드러낸 포스트-코러스는 마돈나를 보며 자란 소녀가 그의 메시지를 융합적으로, '케이팝'스럽게 해석한 것만 같아 흥미를 이끈다. 아직 슬럼프를 극복 중에 있다는 그를 깨워준 마돈나처럼, 무수한 응원과 기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돈나를 향한 경외감을 담은 위로 향하는 시선과 손길처럼, 누군가도 루나를, 그리고 당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조유리 ‘GLASSY’
심댱: 조유리의 시작을 알리기에 너무나 적당한 선택지, 'GLASSY'는 조각 케이크 마냥 산뜻하다. 다만 '유리다움'을 보여주겠다는 기획 의도가 강하게 느껴져, 아이싱 같은 야심이 케이크(곡)를 뒤덮는 모양새처럼 보인다. 'GLASSY'는 다름 아닌 '조유리의 GLASSY'일 때에야 완성되어 보일 정도로 곡을 노래하는 주체에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화로 무대를 여는 안무나 동화 같은 가사는 아이즈원의 화사한 꽃밭을 연상시키게 하는 한편, 리넨처럼 가슬가슬하면서도 벨벳처럼 보드라운 조유리의 보컬을 자연스레 연출하여 (돌풍처럼 한순간 모든 걸 쏟아내는 출신 그룹의 노래보다는)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그를 탐색하게 한다.
'GLASSY' 속 "너"는 단순 청자를 넘어 'GLASSY'라는 곡으로도 읽을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너랑 나랑 Someday 시작해 My baby"라는 가사는 언뜻 들었을 때 '썸'을 넘어 로맨스에 접어드는 순간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어지는 가사("나의 두 발이 이끌 My journey")까지 듣는다면, 솔로 아티스트의 포부와 더불어 'GLASSY'라는 곡으로 나의 데뷔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온몸이 짜릿"한 순간이 그려질 것이다. "모든 빛을 쏟아내는 Eyes" 앞에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그에게 'GLASSY'는 완벽한 타이밍에 만난 이상형이자 "상상 그 끝 너머"까지 닿게 하는 유리 구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그가 사이즈에 딱 맞는 곡을 신고 걸어가는 경쾌한 발소리를 곡 곳곳에서 들었을 수 있다. 부드럽게 음을 오르내리는 허밍처럼 여유로움을 가지고 그가 펼칠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 풀랭스 앨범의 인트로처럼 너무도 깔끔한 마감이 아쉽게 여겨질 수 있어도 그가 선보일 상상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테니 말이다.
에린: 'GLASSY'는 조유리 특유의 무게감 있는 보컬이 두드러지는 곡이다. 아련한 스트링 사운드로 시작하는 곡은 경쾌함을 표현하는 신스 사운드로 가득 차 있으나, 경쾌함보다도 조유리의 묵직한 보컬이 먼저 귀에 들어온다. 그 이유는 후렴구에 있는데, 프리-코러스까지 끌어올려진 속도감이 후렴구의 "라 라 라"에서 단절되고 허스키한 보컬이 앞세워지기 때문이다. 곡의 속도감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특성으로 인해 퍼포먼스는 부드러운 선이 강조된 동작들로 채워져 있고, 손과 팔을 이용하여 후렴구에서 포인트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곡의 맑고 투명한 이미지와 허스키한 보컬이 주는 묵직한 무게감의 차이로 인해 조유리의 보컬을 기억에 남도록 만든다.
라잇썸 ‘VIVACE’
에린: 'VIVACE'는 여지없이 아이즈원의 'Fiesta'를 떠올리게 한다. 웅장하게 시작하며 신시사이저들을 사용해 후렴구에서 최대한 화려한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하는 방식은 'Fiesta'와 아주 유사하다. 이는 걸그룹의 멤버 인원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 속 멤버 총인원 수가 8명인 비교적 다인원인 그룹으로서 응집력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라잇썸만의 사운드와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 역시 필요하기에 다른 그룹을 떠올리게 하는 것을 적절한 선택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점이 남는다. 오히려 함께 수록된 곡들에서 라잇썸의 특색을 찾을 수 있다. 둔탁한 비트가 주를 이루면서도 후렴구의 경쾌함이 돋보이는 'You, jam'이나 브라스와 전자 사운드를 적절하게 사용해 통통 튀는 장난스러운 이미지를 표현해낸 'Popcorn'은 데뷔곡 'Vanilla'와의 연결성이 높아 보인다. 'VIVACE'로 다인원 그룹으로서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측면이 필요하기는 하나, 이후 활동에서 라잇썸만의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통해 그룹의 정체성을 굳히기를 기대해 본다.
아이유 ‘strawberry moon’
에린: 아이유가 스스로 프로듀싱을 시작한 이후의 사랑 노래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가 이미 지나간 인연이 남기는 아련한 그리움('이런 엔딩', '자장가')의 정서라면, 나머지 하나는 사랑을 시작할 때의 설렘('이지금', '잼잼', 'Blueming')의 정서이다. 하지만 'strawberry moon'은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충만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나 "삶이 어떻게 완벽해"라는 가사는 작사가 아이유의 삶에 대한 시각 변화를 내재하여 충만한 사랑의 정서를 극대화한다. '스물셋'의 불안과 '에잇'의 무기력함을 거쳐 '라일락'으로 과거를 아름답게 해석하여 갈무리한 태도에서는 'strawberry moon'에서의 사랑으로 가득한 삶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이 묻어난다. 자신의 시각을 여러 곡에 담아낸 20대를 지나 스물의 마지막 페이지를 어느 걱정도 없는 행복한 이야기가 담긴 'strawberry moon'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여유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씨엔블루 ‘싹둑’
예미: 씨엔블루의 데뷔 초를 함께한 작곡가 김도훈이 정용화와 함께 만든 '싹둑'은 이들을 정상 가도에 올렸던 캐치(cathcy)함을 생생히 보여준다. '직감'이나 'I’m Sorry' 등에서 입증된, 친숙한 정서를 자극하는 단조 멜로디에 입에 잘 붙는 리듬을 입히는 두 송라이터의 능력은 데뷔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이별을 댄서블하게 노래하는 것마저 한국 대중이 씨엔블루를 처음 마주한 순간을 연상케 하는데, 발음과 호흡을 섬세히 다루어 흥을 돋우는 정용화의 능수능란한 가창이 재미를 더한다. 'Can't Stop' 이후 7년 만에 데뷔 초를 연상케 하는 한국 타이틀곡을 가져온 것에서, '숨듣명' 트렌드를 통해 2세대 아이돌이 긍정적으로 재조명된 영향이 엿보이기도 한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돌 밴드이자 꾸준히 발전하는 뮤지션으로서, 현재의 역량으로 과거를 다루는 흥미로운 방법을 보여주는 곡.
세븐틴 ‘Rock with you’
스큅: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 '같이 가요' 등 로킹한 질주감으로 청춘을 그려내 사랑받았던 소위 '투니버스 감성' 수록곡의 기조를 비로소 타이틀곡으로까지 끌어올린 듯하다. 'Rock with you’의 설득력은 퍼포먼스와 결합할 때 한껏 배가되는데, 분주한 가운데서도 다급함이 느껴지지 않는 경쾌한 퍼포먼스는 개운한 감각을 일깨우고, 라이브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막바지의 힘찬 단체 기합은 청춘의 들끓는 혈기를 극적으로 표현해낸다. 과연 "중단 없이 계속 연주하라"는 의미를 담은, 멤버 전원 재계약 이후 처음으로 발매되는 앨범 "Attacca"의 얼굴로서 최적의 곡이다.
에린: 세븐틴의 'Rock with you'는 하이브 특유의 사운드의 경향성을 보이면서도 세븐틴이라는 그룹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하이브는 'Drunk-Dazed'나 '0x1=LOVESONG'을 통해 소속 보이그룹들의 타이틀 곡에 록 사운드를 접목하는 방향성을 보이는데, 대부분의 곡은 어두운 정서를 관통하는 편에 속했다. 하지만 세븐틴의 'Rock with you'는 록 사운드를 댄스 퍼포먼스에 접목할 수 있는 하이브의 경험을 적절히 사용하면서도, 록 사운드를 경쾌한 응원가로 해석함으로써 세븐틴의 시원하고 경쾌한 폭발력을 강조한다. 특히 후렴구의 “Rock with you”와 “Baby Home run” 부분은 오프라인 공연에서 떼창이 이루어지는 장면이 쉽게 연상되도록 만들어져 멤버들 간의 유대감뿐만 아니라 퍼포머와 관객 간의 유대감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전원 재계약이 성사된 이후 발표된 곡이란 것을 고려한다면, 다시금 세븐틴이라는 그룹이 표현해낼 수 있는 청춘 응원가의 경계가 확장된 점이 고무적이다.
NCT 127 ‘Favorite (Vampire)’
스큅: 켄지와 다크차일드가 함께 작업한 'Favorite'은 팝적으로나 케이팝적으로나 고전미를 물씬 풍기는 흥미로운 트랙이다. 팝적으로는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Say My Name', 휘트니 휴스턴의 'It’s Not Right But It’s Okay', 메리 J. 블라이즈의 'I Can Love You' 등 다크차일드가 작업한 90~00년대 R&B 히트 싱글들이 스쳐 지나가고, 케이팝적으로는 'Perfect Man', '너의 결혼식', '열병' 등 동시기 SM의 대표 아이돌이었던 신화의 호소력 짙은 트랙들이 떠오른다. '네오'함을 부르짖던 NCT 127이 회귀적인 트랙을 내놓았다는 데에 기이함을 느끼면서도, NCT 127을 위시한 NCT의 지난 행보가 SMP를 단순 갱신하는 것이 아닌 SMP의 유산을 끌어안는 집대성의 과정에 오히려 가까웠음을 상기하게 되기도 한다. (EP "We Are Superhuman"을 떠올려보라.) 다만, 갈수록 SM의, 그리고 NCT의 깔때기 기능만이 확대되는 듯한 NCT 127의 입지에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
드림노트 ‘GHOST’
스큅: 멤버 재편 끝에 해낸 무려 1년 9개월 만의 컴백이다. 강렬한 호러 콘셉트가 할로윈 시즌에 맞춘 이벤트성 결과물인지 그룹의 리부트에 따른 변화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려우나, 올곧게 뻗치는 맑은 생기가 특징이었던 과거와는 표정이 180도 달라졌다. 그러나 한 옥타브를 겅중 뛰는 후렴구 탑라인의 상쾌한 고양감은 의외로 이전작 'DREAM NOTE', '하쿠나 마타타', '바라다'의 그 "맑은 생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크지 않은 기획사지만 꾸준히 신선한 양질의 결과물을 내놓고 있어 지속적인 활동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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