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지가 집계한 2024년 정식 데뷔 아이돌은 보이그룹 19팀, 걸그룹 19팀 총 38팀이었다. 이 중 전/현역 필진 11인과 객원 심사위원 6인(늘, 도니언, 만나, 잔물결, 티미랩, 파이)의 투표를 통해 선정한 올해의 신인 10팀을 소개한다. 순위는 별도로 산정하지 않았으며, 순서는 데뷔 순으로 정렬했다. 이들은 물론 리스트에 없는 이름들 역시 2025년에 멋진 활동을 기대한다.
투어스
조은재: 세븐틴이 신인시절 보여줬던 규모감과 압도감은 없지만, 캐치한 후렴과 포인트 안무는 케이팝의 원초적 매력에 상당히 부합한다. 곡의 전개가 다소 투박하고 구간 사이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 개연성에 있어서는 비주얼 퍼포먼스에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지만, 박시한 스쿨룩에 정박으로 떨어지는 안무가 어딘가 삐그덕거리는 곡의 특성과도 잘 어울려 일관된 무드를 형성한다. 이러한 일체감이야말로 댄스 퍼포먼스를 주요 아이덴티티로 갖는 케이팝이 반드시 견지해야 할 미덕이겠다. 아직 증명해내고 설득할 것이 많아보이지만, 첫 만남 그 다음은 계획대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두고 볼 일이다.
NCT 위시
스큅: NCT 드림이 희망(hope)을 이야기하던 것과 달리, NCT 위시는 소망(wish)을 노래한다. 희망과 달리 소망은 필연적으로 가정법이다. 달콤한 나날에 대한 공상은 사실 쌉싸름한 현실을 토대로 한다. 언뜻 마냥 해맑아보이는 NCT 위시의 음악은 이러한 소망의 멜랑콜리를 품고 있다. “앞으로’만’ 가”라는(‘WISH’), ”이대로’만’ 가자“(‘Steady’)는 바짝 힘이 들어간 다짐은 왠지 위태롭게 들리고, “변하지 마”, “더 이상 날 혼자 두지 마”(‘Steady’)와 같은 부정형의 염원에는 묘한 불안감이 도사려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은 도리어 코끼리를 떠올리게 하듯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끊임없이 소망한다. 3분 뒤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아랑곳 않고 “사과나무 따위보단“ ‘3분까진 필요 없‘는 “지금 이 노래를 너에게 불러주”겠노라 다짐하고(‘3분까진 필요 없어‘), 함께 노닐던 유령 친구가 초록별이 되어 떠나간 뒤에도 실의에 빠지지 않고 한여름의 단꿈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함께 초록별을 배경 삼아 일상을 살아낸다(’Steady’). 그럴 수 있는 이유는 “함께”에 관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세상의 반짝임도 혼자선 아무런 의미조차 없어”(‘WISH’),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Anywhere”(‘Songbird’), “우린 또 해낼 거야”(‘Dunk Shot’)). 곡들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 울컥 울컥 솟구치는 멜로디의 합창은 이러한 믿음으로 쏘아올린 소망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린다. 무한정의 외연 확장에 치중되어 있던 NCT의 심장부에 불굴하는 무한의 소망을 채우는, NCT 유니버스의 더할 나위 없는 완결이다. 저마다의 재기발랄한 캐릭터로 그룹 콘셉트에 활기를 불어넣는 멤버들은 물론, 프로듀서로서 제3의 커리어를 시작한 보아, 피지컬 앨범 디자인부터 SNS 피드에 이르기까지 온/오프라인 콘텐츠 전반에서 재치와 사려가 돋보였던 ‘팀 위시’ 실무진들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리센느
비눈물: 2024년, 신생 기획사에서 출발한 리센느는 프루스트 효과에서 착안하여 ‘향기’를 그룹의 독자적인 정체성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한 콘셉트가 아니라 오디오와 비주얼, 코레오그래피 전반에 녹아들어 청자에게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프리 데뷔 곡 ‘YoYo’는 안티-드롭을 활용해 리듬을 위아래로 자유롭게 휘저으며 몽환적인 감성과 감각적인 사운드로 팀의 기반을 다졌고, 데뷔 곡 ‘UhUh’는 도드라지는 베이스 위로 절제와 폭발을 오가는 흐름을 조율하며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기세를 잇는 컴백 곡 ‘LOVE ATTACK’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멜로디와 펑키한 리듬을 교차시키며, 후렴구의 몰입감과 벌스의 역동성을 극대화한다. 더블 타이틀곡 ‘Pinball’은 알앤비 리듬을 타고 유려하게 흐르다 벌스의 끝에서 공이 바닥에 튕기듯 순식간에 낙폭을 그리며 떨어지고(‘I’m falling’), 후렴에서 짜릿한 청각적 도파민을 터뜨린다. 리센느는 음악의 완성도를 고집하는 회사의 자신감과 멤버들의 보컬에 담긴 잠재력을 꾸준히 드러내며,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주도적으로 구축해 나가고 있다. 시간을 점유하는 대신 축적되고, 사라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향기처럼, 리센느의 음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짙어지며 케이팝 씬 전반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비비업
마노: 어떤 신인 팀을 봤을 때 호감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요소를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 ‘기세’라고 하겠다. 세상에 출사표를 갓 던진 젊은 피들의 떠들썩한 활기로부터 비롯되는 일종의 상승 기류라고나 할까. 그런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된 순간, 저절로 설득당해버리고 마는 경험을 종종 하곤 한다. 이 팀 역시 그러했다. 하이틴이라는 다소 뻔해진 콘셉트마저 ‘기세’로 어떻게든 설득해버리고 마는, 뻔뻔할 정도의 당당함과 패기를 이 팀은 갖추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신인의 가장 큰 미덕이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말이다. 마치 원석과도 같은 반짝임을 가진 이 팀이 앞으로도 그런 ‘기세’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길 빈다.
아일릿
예미: 아일릿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무엇인가를 꾸미는 소녀들의 모습으로 대표되는, 내밀하고 아기자기한 ‘소녀적’ 감각이 2024년의 걸그룹 판에서도 주목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촘촘하게 세공된 신스 사운드와 마이너 코드 배치라는 앞세대 ‘소녀’ 걸그룹의 레거시 위에 올린 앳된 음색의 로우톤 보컬, 힘찬 댄스와 자기중심적 가사 전개는 편안한 감상과 여성의 주관을 초점에 올린 시대상에 발을 맞췄다. 숱하게 만들어진 소녀의 세계 중 그 세계의 주인이 무대 위아래의 여성임을 이토록 크게 강조한 결과물이 또 있었을까. 아일릿이 구축한 2024년판 ‘소녀만의 세계’는 분명 기획안 바깥에 있으니, 한 번쯤은 감상의 초점을 결과물 안으로 옮겨 그 세계에 들어가보길 권한다.
배드빌런
에린: 배드빌런은 데뷔곡 ‘BADVILLAIN’을 시작으로 ‘HURRICANE’과 ‘숨’을 발매하며 2024년 활발하게 활동한 신인 그룹이다. ‘BADVILLAIN’은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활용해 웅장한 데뷔를 알렸으며, 귀에 꽂히는 랩이 특징적인 ‘HURRICANE’, 무게감 있는 리듬과 반복적인 후렴구가 인상적인 ‘숨’을 통해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배드빌런의 2024년 활동에서 특히 돋보이는 점은 메가 크루를 활용한 퍼포먼스다. ‘BADVILLAIN’과 ‘숨’의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메가 크루 퍼포먼스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위압감을 연출했으며, ‘+82’의 퍼포먼스 비디오(BADVILLAIN – ‘+82’ Performance Video)와 ‘야호’의 뮤직비디오(BADVILLAIN – ‘야호(BADTITUDE)’ MV)에서는 짜임새 있는 안무를 통해 퍼포먼스에 강점을 지닌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현재 케이팝 아이돌의 기본 실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상황에서, 배드빌런의 퍼포먼스는 이들을 ‘능숙한 패기’를 갖춘 올해의 신인으로 자리잡게 했다.
캣츠아이
마노: ‘그래서 케이팝(K-POP)의 ‘K’는 도대체 뭔데?’라는 오랜 논쟁이 채 갈무리 되기도 전, 마치 그런 논쟁은 본인들의 존재 당위에 있어 전혀 무용하다는 듯 홀연히 씬에 등장했다. 멤버들 대다수가 비-한국인이고, 곡 역시 모두 영어 가사로 이루어져 있는, 그리고 활동 거점은 미국 LA에 두고 있는 글로컬 걸그룹. 그러면서 철저히 케이팝의 트레이닝 및 캐스팅 시스템을 거쳐서 데뷔하게 된 점이나, 기존의 영미권 걸그룹과는 차별화된 퍼포먼스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영락없는 ‘K’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K’의 소프트웨어에 ‘탈-한국적’ 하드웨어를 이식한 신종 하이브리드라고나 할까. ‘그래서 결국 ‘K’가 뭔데?’라고 재차 묻는다면, 아마 이 팀에게 있어서는 어깨 한 번 으쓱이고 넘어갈 정도의 질문이 되지 않을까. 백문이불여일견, 이들이 직접 무대 위에서 부리는 마법을 체험하고 나면 이 질문이 어쩌면 다소 무용한 것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소위 말하는 ‘스타성’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아크
조은재: ‘들을거리’와 ‘볼거리’를 최대한 풍부하게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요즘은 보기 드문 ‘맥시멀리스트’의 데뷔작이다. 선공개 싱글이었던 ‘dummy’에서는 올드스쿨 힙합의 젠지적 해석을 보여줬다면, 데뷔곡 ‘S&S’에서는 변화무쌍한 무드 안에서 ‘여우와 신포도’에 등장하는 ‘여우’의 다양한 모습을 다채롭게 연기한다. 최근 유행하는, 숏폼 바이럴을 다분히 의식한, 짧은 재생시간 내에 많은 것을 쏟아내는 케이팝 사이에서 모처럼 정석적인 뮤지컬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인상도 있어, 레퍼토리의 입체감과 외연이 좀 더 확장된다면 상당한 수작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아무래도 요즘은 이렇게 4분 넘는 노래는 찾기 힘드니까.
미야오
미묘: “‘TOXIC’의 가장 큰 특징은 슬프고 감성적인 곡이라는 데 있다. (중략) 함께 수록된 ‘BODY’도 데뷔곡 ‘MEOW’의 기조를 이어 힙합 기반의 만만치 않은 에너지를 들려주지만, 발매된 3곡 중 하나인 두 번째 타이틀을 한껏 감성적으로 꾸린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중략)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박쥐 날개와 발레 투투 드레스의 대조는 조금 미묘하게 다가온다. 달콤하고 쓰라린 양가적 감정의 표현이라고는 하나, 이를 백과 흑으로 대조하는 것은 다소 전형적이다. 특히 여성성이나 순수의 상징으로서 발레는 지나치게 닳고 닳은 감이 있다. 다만 이 같은 이미지들이 곡이 담고 있는 양면적 성격을 매우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여성을 고양이에 비유하는 것도 진부하기는 한데, 우아한 보드라움과 날카로운 공격성을 동시에 지닌 고양이를 브랜딩 중심에 둔 그룹의 데뷔 초기 작품임을 감안하면 쉽고 확실하게 팀을 각인시키는 선택이라고도 할 만하겠다.” (〈주간동아〉2024.11.26 “초고속 컴백한 ‘테디 걸그룹’ 미야오” 中)
이즈나
스큅: 레트로라 하기에는 다소 애매하게 예스러운 시대 감각에 당황스러워하는 것도 잠시, 이내 곧 군더더기 없는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된다. 앨범 내내 레이어가 두텁지 않은 가벼운 사운드 위에서 기지개를 켜는 듯 가뿐한 멜로디와 보컬/랩이 도드라진다. 안무가 베이비주가 다듬은 날렵한 퍼포먼스 역시 가뿐하면서도 텐션을 팽팽하게 유지하며 신인으로서의 기세를 잘 보여준다. 단지 시대감각만으로 평가절하되기에는 아쉬운, 기본에 충실한 신인. 그룹을 대표할 트랙으로는 맹렬한 보이스 샘플(“Hey! You you got that!”)을 주재료로 삼고도 그저 상쾌하게 “출렁출렁”, “주르륵” 흘러가는 ‘DRIP’을 추천한다.
- 결산 2024 : ④뮤직비디오 Pick! - 2025-02-28
- 결산 2024 : ③올해의 앨범 16선 - 2025-02-28
- 결산 2024 : ②올해의 노래 16선 - 202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