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서문 by 퀴비
2025년의 케이팝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바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전세계적 흥행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넷플릭스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통합 조회수 1위를 기록했으며, 영화의 메인 OST인 ‘Golden’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7주 연속, 총 8주 간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2026년 골든 글로브, 그래미, 아카데미 등 미국의 연초 영화/음악 시상식 시즌을 맞아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또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여기서 되새겨 볼만한 사실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제작한 것이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과 넷플릭스, 즉 미국의 스튜디오라는 것이다. 물론 매기 강 감독을 비롯한 한국계 스태프들, 그리고 이제이(EJAE)와 더블랙레이블을 비롯한 케이팝 작곡진의 공로가 크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구조를 벗어난 곳에서 케이팝에 관한 영화가 제작되어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분명 특기할 만하다.
섣부른 예측일지, 혹은 너무 늦은 예측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이러한 케이팝의 탈-중심화는 케이팝의 ‘다음 스텝’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케이팝을 위시한 한국 대중문화의 성장사를 면밀히 지켜봐온 해외 관중의 관점이다. 본 글은 저자 SplaSh가 레터박스드에 포르투갈어로 작성했던 리뷰이다. 글의 게재에 관하여서는 저자의 동의를 얻었으며, 아래에 정동진의 번역을 거친 한국어 번역문을 공유한다.

“케이”팝은 한국에서 제작되고 상업화된, 혹은 한국에서 발전한 시스템을 토대로 생산된 대중적 감성의 음악을 이르는 말이다. 독자적인 시선으로 해석해낸 전 세계의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케이팝은 역사·문화적 정체성의 표현에 몰두한다.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초로 하는— 케이팝은 다양한 씬의 등장을 가능케 한 무대를 마련했다. 그 중 하나인 아이돌 씬은 이수만에 의해 체계화되어 1996년 H.O.T.의 데뷔와 함께 대중화되었는데, 이 아이돌 씬은 1997년 외환 위기, 내수 시장의 규모적 한계 등으로 국내 시장에만 전념하는 것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발전해왔다.
이처럼 외부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이돌 씬은 세계화를 생존과 확증의 도구 삼아 국경을 넘었다. 2000년대 초 보아가 일본에서 선구자 격의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의 시스템이 단순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전까지만 해도 우위에 있던 인근 국가들의 시장을 휩쓰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또한 이후 원더걸스 등이 미국 진출을 시도하며 케이팝이 전 세계적으로 확장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상품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해외 진출이라는 선택은 —한국 예술 역사상 항상 그랬듯이— 전적으로 보전의 필요성에 따른 것이었다. 정치에서 음악에 이르기까지 현대 한국 문화는 자신들의 문화를 정복해왔던 이들 앞에서 인정 받고자 하는 바람과 문화가 가진 가장 본질적인 것들을 보존하려는 시도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한국인들이 가진 집단적 한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인들은 그저 현대 문화를 형성할 힘을 빼앗겨버린, 전후 시대의 불행한 피해자일 뿐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미학이 선망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한국의 고유한 역사에 기반한 미학을 뿌리 삼아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한국 경제가 “제1세계” 반열에 이르는 동안 한국인들은 더 열성적으로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나갔다. 한국인들과 한인 디아스포라는 자신들의 문화와 더욱 깊이 상호작용하기 시작했으나 마치 여행객인 듯 자신들의 유산에 대해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그러다 2010년이 지나서야 —전통 무용의 움직임을 퍼포먼스에 포함시키거나 전통 악기(특히 현악기)들을 작곡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들이 케이팝에 통합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생겨났다. 케이팝이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아티스트들은 독자적인 정체성을 전략적·상징적 차별화 요소 삼아 이를 해외 시장에 선보이고자 했다.
이렇게 케이팝은 스스로의 뿌리를 재발견하며 단순히 이국적인 장르로만 머무는 대신 세계와 더욱 강력하게 연결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케이팝은 한국의 것이지만 그 정체성은 국경을 넘어 문화의 영역에 들어섰고 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다양한 장르와 가치관들이 케이팝이 가진 회복탄력성, 완벽에 대한 추구와 함께 공명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이 가진 역사적 상처와 정체성의 딜레마를 생동감 있는, 기술적으로 흠잡을 곳 없는 미학으로 변화시키며 케이팝은 세계에 음악 그 이상의 것을 선보인다. 바로 국경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공동체 의식과 소속감이다.

이 덕분에 2025년 6월 공개 이후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넷플릭스 역사상 최다 시청 기록을 세운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가 되었고 —미국, 그리고 OST가 최대 스트리밍 플랫폼인 멜론 차트 정상에 오르기도 했던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의 문화적 자신감을 보여주는 본작의 인기에 힘입어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업숍의 상품들이 매진되는 일도 있었다. 마침내 한국은 거리낌 없이 스스로의 가장 깊은 뿌리를 꺼내 세계의 판타지에 녹여내어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세계에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문화적 양식, 건축, 의상, 그리고 한국의 시선에서 본 세심한 디테일을 통해 놀라운 사실성을 구현해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중심 서사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라는 가면을 쓰고 선조들로부터 악령 퇴치라는 무거운 과제를 이어받은 세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들의 힘은 한국 최초의 공연으로서 무당들의 의식을 재해석한 음악적 퍼포먼스의 신비성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본작의 헌터들은 음악과 춤에서 힘을 얻는데 여기서 선조들의 의식은 악령 무리에 맞서기 위한 “음악 무기”로 변모하고, 전통적인 무당들의 도구는 기술적으로 발달된 무대 위 무기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를 통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조심스레 무속 의식과 아이돌들의 엄격한 트레이닝 과정을 연결 지으며 영적인 요소들과 쇼 비즈니스의 요소들을 융합하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한다. 무속 의식과 팝 퍼포먼스를 연결해내는 상상력은 현대와 전통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본작이 거둔 최대의 성과다.
다양한 시대가 공존하는 이 세계관 속에서 선조들의 유산과 개인의 정체성 간 충돌은 루미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난다. 루미의 몸에 새겨진 악령의 문양은 -전통적으로 다양성보다 집단의 통합을 우선시한 동아시아의 집단적 사고 방식을 반영하는- 루미가 짊어진 죄책감과 가족사를 상징한다. 이렇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가족, 의무, 속죄 등 유교의 핵심 가치에 기반한 도덕적·감정적 유산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루미의 존재는 그 자체로 가장 큰 역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악령의 피를 물려 받은 헌터인 루미는 내재화된 편견과 자기 수용 사이에 존재하는 고통스러운 여정 속 끊임없는 충돌을 상징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루미를 넘어 다른 주인공들을 통해서도 본질과 희생에 대한 탐구를 이어 간다. 이와 같은 도덕이라는 굴레는 효도의 무게를 상징하는 진우에게도 이어진다. 진우는 —가족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높게 평가하는 사회에서는 중대한 과오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성공을 위해 귀마와 “악마의 계약”을 맺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본작은 루미와 양어머니인 셀린의 관계를 통해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고통을 더욱 심도 깊게 분석한다. 완벽에 대한 셀린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숨기는 루미는 스스로가 사냥의 대상이면서도 최고의 헌터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딜레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죄책감과 정체성, 가족의 기대라는 요소들의 결합을 통해 본작은 한국의 강력한 도덕관 (그리고 아시아계 디아스포라의 삶)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이와 같은 서사적 구조를 기반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단지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는 것을 넘어 현대 한국인의 심리를 탐구하기에 이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진정 쓰러뜨려야 할 악령이 선조의 유산 혹은 정체성에 남겨진 오점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외부의 엄격한 기대로 강요된 침묵이라고 말한다. 루미는 악령이라는 자신의 본질과 보호자로서의 의무를 모두 끌어 안으며 세대를 건너 이어져 온 고통의 굴레를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본인을 거부하던 사회에 통합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정의한다.
주인공들이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국제 무대에서 한국이 걸어 온 길을 그대로 보여준다. 루미와 헌트릭스 멤버들이 상처를 감추는 대신 힘의 원천으로 삼은 것처럼 한국은 수동적으로 서구의 미적 기준을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복잡성, 트라우마와 성취들을 당당히 뽐냈다.
결국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단순히 물리적인 위협의 소멸을 넘어 분열과 스스로에 대한 체념 대신 자기 수용과 공감을 기반으로 새로운 혼문을 여는, 집단적 한의 상징적인 정화를 통해 막을 내린다. 과거로부터 대물림된 고통이 예술과 —아이돌 시스템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퍼포먼스로 승화되어 결국 등장인물들을 자유롭게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작은 케이팝이 역사적 상처를 미적 성취로 승화시키는 집단적 치유의 무대이자 초문화적 시대를 향한 무속 의식의 진화임을 재확인한다. 한국은 그저 지도 위 한 나라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어 국제 무대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고, 더 나아가 스스로의 오랜 뿌리가 마침내 가장 강력한 힘의 기반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그려낸다.
포르투갈어-한국어 번역: 정동진 (이메일: [email protected])
서문 작성: 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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