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의 보컬은 다른 팀들과 조금 다르다. 동세대의 소녀시대나 카라의 음색이 이후 걸그룹들에게 어느 정도 계승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원더걸스의 누구와 음색이 비슷하다’는 표현은 흔치 않다. 굵고 호소력 있거나 가녀리게 찌르는 음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크레용팝처럼 ‘아기 목소리’도 아니다. 비교적 매끄럽고 유려한 창법을 구사하기도 하고 비교적 굵은 음색을 가진 멤버들도 있지만, 전체적 보컬의 인상은 심지는 굳으나 풍성하기보다는 플랫하게 펼쳐지는 편이다. 여기에 소속사인 JYP 엔터테인먼트의 ‘약점’으로 꼽히기도 하는 젓가락 부러지는 듯한 랩이 포함되면, 이 보컬의 표정은 다소 뻣뻣한 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실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원더걸스의 목소리들은 굳이 말하자면, 노래한다는 의식 없이 부르는 중고등학생 소녀와 같은 뻣뻣함을 통해 하나의 캐릭터를 구사하고 있다.
원더걸스가 ‘Tell Me’를 통해 삼촌 팬들을 일으켜 세웠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들이 표현하는 캐릭터는 그러나 삼촌에게 다정하게 안기는 ‘기특한 소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성인 남성과의 공감을 철벽처럼 거부하며 뻗대는 소녀에 가깝다. 그래서 ‘Tell Me’와 ‘Nobody’의 뮤직비디오는 박진영이 ‘아저씨’들의 대표로서 등장하여, 촌스럽다며 내팽개져치는 퇴물을 연기한다. (‘아저씨’로서는) 도무지 따라갈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요즘 여자애’가 내내 (소희의 표정처럼) 비죽거리며 냉소하다가 어느 순간 “사랑한다 말해줘요”, “내가 원하는 건 너뿐”이라고 말하는, 그런 츤데레가 삼촌들을 빨아들인 것이라 하겠다. (이런 기조는 “REBOOT” 앨범에서도 유지되는데 특히 ‘OPPA’ 등의 곡에서 선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원더걸스의 멜로디는 뻣뻣한 목소리를 다소의 칭얼거림에 실어 흘려보낸다. ‘Tell Me’에서 “Tell”을 길게 끌다 “me”로 내려놓는 리듬, ‘So Hot’에서 음정을 꺾으며 밀어내는 “왜 자꾸 쳐다보니 왜-애-애” 등은 모두 응석 부리는 말투를 음악으로 옮긴 것만 같다.
달라진 목소리, 같은 말투
‘I Feel You’에서는 이것이 조금 달라진다. 선미와 예은의 보컬은 특히 후렴에서 감정을 담아 그윽하게 노래하는데, “하루종일 이래”로 시작하는 혜림의 파트는 어느 때보다 맥없이 속삭인다. 여기에, 알 수 없는 표정의 백치미를 담은 그의 눈빛과 배경의 숨소리까지 섞여든다. 이런 부분은 다른 파트의 감정을 대조적으로 강조해주는 한편, 이 곡의 중요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어쩌면 공표된 레퍼런스와의 관계 속에서 ‘몽환적 사운드’가 언급되곤 하는 것도 이런 특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운드 자체는 몽글몽글한 기타 아르페지오에도 불구하고 ‘몽환적’이라기엔 상당히 하이파이하니 말이다.
가사는 “너”를 말하고 있으나 듣는 이에게 전하는 메시지보다는 혼잣말에 가깝다. 애매한 문장이 있다면 혼잣말로도 할 수 있는 “기다리기만 해”, “이제 please baby be mine” 정도로, 듣는 이에게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바가 거의 없다. 원더걸스의 기존 대표곡들 중 상당수와는 큰 차이점이다. ‘I Feel You’는 대상에게 흠뻑 빠져 자신 안에서 맴도는 이야기다. 그것을 깜짝 놀라며 손으로 입을 가리던 ‘Tell Me’의 원더걸스보다 성숙한 인물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 논한 원더걸스 목소리의 뻣뻣함에 변화가 온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칭얼거리는 멜로디는 여전하다. 후렴의 “혼자 있어도”의 패턴이나, 길게 끌며 내려놓는 “느껴져” 같은 구절이 그렇다. 또한 버스(verse)에서는 4분음표 단위로 반박자씩 밀려 움직이는 계단형 리듬의 멜로디를 취하고 있다. 물론 이는 대중음악에서 흔한 패턴인 것은 사실이나, 16비트 싱코페이션을 구사하는 베이스 리듬과는 또 다른 엇갈림을 만들고 있어 더 두드러진다.
여기에 JYP 특유의 뻔뻔한 라이밍이 노골적으로 구현된 랩, “달려갈 생각뿐이 없어” 같이 단정하지 못한 구어들이 가세한다. 앞서 언급한 “기다리기만 해” 역시 혼잣말을 하는 상황에서도 다소 막무가내로 저지르는 인물의 대사라 하겠다. 이를 통해 이뤄지는 것은 오랜만에 돌아온 원더걸스가 기존과 똑같은 캐릭터로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서사다. 상대를 대할 때는 여전히 뻣뻣한 말투로 남자를 우습게 알며 튕기겠지만, 혼잣말을 할 때만큼은 같은 목소리라도 전혀 다른 어조를 갖는 것이다. ‘I Feel You’를 듣거나 보는 3분 33초간은 이 반가운 츤데레 소녀의 속마음을 엿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속마음은 한없이 애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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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음원분석 노동 : 원더걸스 – I Feel You ①”
그러고 보니 필자님이 이야기 했던 케이팝의 무국적성(근본없음)의 시작도
텔미 뮤비에서 확실하게 드러나네요~
우리나라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미국식 노란색 스쿨버스를 타고
샌프란시코처럼 도로에는 전철철로가 있는데 비녀를 꽂은 할머니가 지나 가네요.
여러모로 원더걸스가 선구자적인 역활을 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