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의 교체가 다른 그룹보다 유독 많았던 나인뮤지스지만 멤버 세라의 탈퇴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모 위키의 설명에 의하면 류세라는 그야말로 ‘나인뮤지스의 영혼’ 그 자체였다. 나인뮤지스가 가진 특유의 비장함은 송수윤의 가사도 한몫했지만, BBC 다큐멘터리 〈나인뮤지스 : 그녀들의 서바이벌 (9 Muses of Star Empire)〉(2012) 속 류세라의 처절함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무방하다. 다큐멘터리 속 류세라의 고군분투로 인해 ‘Wild’가 가진 비장함과 ‘Dolls’가 가진 청승맞음이 더욱 돋보일 수 있었다. 다른 아이돌이 케이블 리얼리티를 찍으며 상큼한 모습을 보여줄 때 나인뮤지스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처절하고 비참한 모습들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나인뮤지스는 상큼할 수 없었다. 스윗튠의 뮤즈였던 나인뮤지스의 무거움은 사실 류세라의 무거움이었다. 팬들은 나인뮤지스의 그 무거운 비장함에 익숙했고, 그렇기에 정규앨범 타이틀 곡 ‘Gun’이 팬들에게 큰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그런 류세라의 탈퇴는 그야말로 나인뮤지스라는 그룹 자체의 무너짐이란 말과도 같았다. 2014년 6월 그녀의 탈퇴 후 긴 공백기를 갖게 된 나인뮤지스. 류세라가 없이 펼쳐져야 하는 나인뮤지스의 세계. 나인뮤지스는 앞으로 어떤 세계를 구축해나갈 것인가. 희망적인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7개월만인 올 1월 미니 앨범 “Drama”가 나왔다. 절망적인 물음들에게 던지는 대답으로.
류세라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다름 아닌 ‘가벼워지기’였다. 드라마는 무겁지 않았다. 이별에 대한 회한도, 너는 나의 구원이라는 식의 가사도 없었다. ‘나는 네가 너무나도 좋은데 하필 네가 내 가장 친한 친구의 남자친구야,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니?’ 하는 말 그대로 통속극 같은 노래. 앨범 수록곡으로는 나인뮤지스의 팬클럽 마인을 위해 나온 노래인 ‘9월 17일’도 있다. 이전의 팬 송이었던 ‘Wild’가 벼랑 끝을 함께 하는 듯한 감정이라면 ‘9월 17일’은 나란히 아침을 맞는 느낌이다.
새 멤버인 금조와 소진 역시 한몫했다. 소진은 멤버 경리가 제국의 아이들 케빈과 함께한 유닛 네스티네스티를 통해 데뷔하여 이미 팬들에게 알려진 상태여서인지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고, 금조는 탈퇴한 류세라의 빈자리를 채워주기에 적합한 음색과 보컬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류세라 탈퇴 이후에 들어온 멤버들은 나인뮤지스의 무거움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고 그로 인해 나인뮤지스는 가벼워짐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 선택은 유효했다. 1위 후보에까지 오르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성공적인 활동이었다. 세라의 나인뮤지스였고, 스윗튠의 나인뮤지스였던 나인뮤지스는, 세라와 스윗튠이 떠난 지금이야말로 나인뮤지스의 나인뮤지스가 된 것이다. ‘Wild’에서 “You are mine”이라 하던 나인뮤지스는 ‘9월 17일’에서 “Always you are mine”이라 말한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언제나 마인이구나.’ ‘9월 17일’은 마인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나인뮤지스의 노래인 것이다. 이후인 7월에 나온 미니 앨범 4집 “9MUSES S/S EDITION”에서는 외국 작곡가의 곡도 사용했다. 멤버 이유애린은 처음으로 랩 메이킹에도 참여를 했다. 5년 만에 팬클럽 Mine은 공식 팬클럽이 되었다.
오글거릴 만큼 비장한 가사는 이제 없지만 여전히 그녀들은 뒤에서 청승맞은 멋진 언니들이다. 세계의 중심이 떠나간 후 무너질 줄만 알았던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 세계는 무너졌었으나 그녀들은 다시금 나인뮤지스를 쌓아 올리고 있다. 그것도 아주 순탄하게.
글: 김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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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나인뮤지스의 드라마 :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다”
너무 멋져양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