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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트 – Season 2 (2014)

아이돌 ‘5년 차 징크스’와 대혼란 속에서 인피니트가 선택한 카드. 원튼말든 선택을 끝낸 인피니트의 정규 2집 “Season 2″가 가진 진짜 힘은 무엇일까?

아이돌의 순정

‘아이돌 그룹 5년 차 징크스’라는 게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H.O.T, god까지,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아이돌 그룹들이 약속이나 한 듯 데뷔 5년이 되던 해 해체하면서 시작된 이 괴담은 2014년 가요계에도 다소 완곡하게 변형된 형태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아이돌 그룹으로서 5년 차에 접어드는 해, 대중들에게 무언가 ‘보여주지’ 않으면 서서히 동력을 잃다 결국 하락세를 타고 마는 일이 익숙해진 것이다. 숨 막히는 노동강도와 유례없는 노동환경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아이돌 시장에서 어떻게든 버텨내느냐, 서서히 소멸하느냐. 아이돌에게 ‘5’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생존을 위해 지켜내야만 하는 절망과 희망의 교차로에 놓인 절대숫자다.

2010년 6월 데뷔한 인피니트 역시 흐르는 세월과 함께 올해 5년 차 아이돌 대열에 합류했다. 사실 인피니트의 경우, ‘어쩌다 보니 지금의 위치에 있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그룹일지도 모르겠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형 기획사 출신도 아니고 데뷔는 그 누구보다 조용했다. 이들의 노래는 아이돌 그룹으로선 이례적으로 대중들보다 뮤지션이나 평론가들이 선호해왔고,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남자 아이돌 그룹 가운데 1위를 하기까지 가장 오랜 기간이 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렇다고 이 모든 의문점을 상쇄할 정도로 큰 히트곡을 양산해 왔느냐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후렴구만으로 전 국민이 알 정도의 노래라면 ‘내꺼하자’ 정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런 와중 지난해 이들의 행보가 잠시 주춤했다. 2012년 ‘추격자’가 실린 “Infinitize”를 기점으로 앨범의 완성도가 점차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2013년 내놓았던 두 곡 ‘Man In Love’와 ‘Destiny’는 잘해야 현상유지 혹은 간신히 체면치레를 하는 수준이었다. 인피니트를 대표하는 단어이자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인 ‘칼군무’마저, 그간 가요계 대세로 자리 잡은 드라마틱한 구성의 무대들에 가려 이미 지난 유행 취급을 받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된 월드 투어 이후 반년여 만에 돌아온 국내 시장은 엑소라는 거대한 폭풍우가 휩쓸고 난 뒤였다.

그룹 안팎을 휘감은 이 대혼란 속, 이들이 선택한 카드는 ‘인피니트’ 그리고 ‘음악’이었다. 선택했다고 할까, 이것밖에는 선택지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3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 앨범으로 제2막을 열겠다는 이들의 뜨거운 포부는, 오랜만에 익숙한 모습으로 수록된 인트로에서부터 감지된다. 데뷔 앨범부터 타이틀곡과 찰진 짝을 이루며 앨범의 전체적인 색을 규정해 온 다채로운 인트로들은, 인피니트 앨범에 있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이번 앨범의 경우 타이틀곡의 일부를 차용해 믹스했던 이전 작업들과는 달리, 마치 콘서트의 오프닝처럼 편곡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뒤이어 강렬하고 둔탁한 드럼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는 타이틀곡 ‘Last Romeo’가 이어진다. 세월을 거슬러 다시 친정부모 같은 스윗튠과 손을 잡고 완성한 이 노래는, 인피니트가 지금껏 사랑받아왔던 모든 요소들 – 8, 90년대 팝을 연상시키는 편곡, 선명한 멜로디, 집착으로 수렴하는 가사 등이 그 어느 때보다 진하게 블렌딩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전면에 밴드 사운드가 나선다. 드럼, 베이스, 기타에서 관현악기에 이르기까지, 플러그나 전기의 힘보다는 손과 발의 도움이 훨씬 크게 느껴지는 이 ‘생’ 소리들은, 다른 아이돌 그룹들과 차별되는 인피니트의 다소 촌스럽고 낭만적인 색채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이 신박한 조화는 지금까지 진행한 모든 콘서트에서 올 밴드 라이브만을 고집해 온 이들의 이력과 겹쳐지며, 이들의 ‘두 번째 시즌’에 그 어느 때보다 라이브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런 예측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사천리다. 이미 일본에서 공개했던 싱글 ‘Follow me’와 인피니트의 시그니쳐 사운드라고 할 수 있는 시원하고 훵키한 댄스넘버 ‘로시난테’, 가사만으로는 인피니트 데뷔 이래 가장 이례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숨 좀 쉬자’까지, 전반부는 그야말로 숨도 쉬지 않고 내달린다. 앨범의 정 가운데에는 ‘이런 곡이야말로 인피니트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곡이 아닐까’ 싶은 청춘아련송 ‘Memories’가 배치됐다. 이후의 후반부는 복고풍라기보단 그냥 복고 그 자체인 ‘Reflex’와 ‘미치겠어’를 지나, 그나마 가장 ‘요즘 코드’가 반영된 ‘소나기’로 마무리된다. 수록곡은 총 13곡. 아무리 정규 앨범이라고 해도 아이돌로는 좀 부담스러운 볼륨이다.

이 앨범이 가진 진짜 힘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온다. 그렇게 부담스럽도록 많은, 심지어 한 곡 한 곡 공통점을 찾기도 힘든 다양한 곡들이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가 “Season 2” 안에서 너무도 잘 어울린다. 실제로 이번 앨범은 지난 5년간 인피니트가 발표한 그 어떤 앨범보다도 유기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더욱 고무적인 건 그 끈끈함의 원인이 그 누구도 아닌 인피니트 멤버들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아이돌 앨범의 완성도를 낮추는 주범인 멤버 개개인의 솔로 곡들과 뻔한 발라드 트랙들, 그리고 이번 앨범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작곡가 이기/서용배의 곡 ‘소나기’까지. 이 모든 게 ‘말이 되는’ 지점에는, 한결같이 인피니트 멤버들이 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기분을 선사하는 성규와 우현의 목소리가 여전히 건재한 것은 물론, 오랜 투어 덕분인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각 멤버들의 곡 소화력은, 주요 멤버의 역량에 기대는 것에서 그치고 마는 아이돌 악곡 특유의 단조로움을 매번 요령껏 피해간다. 특별히 누가 눈에 띄거나 튀려고 하기보다는, ‘인피니트’라는 브랜드 가치 하나만을 위해 그 누구도 한눈팔지 않는 멤버 이하 스태프들의 집중력이 앨범 전체를 휘감고 있다. 그 놀라운 기운이 손실 없이 그대로 반영된 앨범을 우리는 흔히 좋은 앨범이라고 말한다.

잠시 다시 시계를 돌려보자. 인피니트의 위기가 아닐까 수군대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Destiny’는,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인피니트라는 그룹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해 준 노래이자 ‘시즌 1’의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마무리였다. 그 자신감으로 단단해진 마른 자리, 모두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맡은 바 소임을 기꺼이 해냈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가지고 돌아온 이들의 앞길이 꽃길일지 자갈밭일지, 이들이 지금의 자리에 있으리라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것처럼 누구도 섣불리 예상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 앨범은 인피니트의 인피니트를 향한 지고지순한 순정의 결정체다. 원튼말든 모든 선택을 끝낸 이들이 가진 이 썩 괜찮은 무기가 부디 두 번째 시즌의 탄탄한 디딤돌이 되어 주길 바란다.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

Season 2
울림 엔터테인먼트
2014년 5월 21일
  1. Season 2
  2. Last Romeo
  3. Follow Me
  4. 로시난테
  5. 숨 좀 쉬자
  6. Light (SungKyu Solo)
  7. Alone (Infinite H)
  8. Memories
  9. 나란 사람
  10. Reflex
  11. 미치겠어 (Infinite F)
  12. 눈을 감으면 (WooHyun Solo)
  13. 소나기
이 음반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의 단평은 1st Listen : 2014.05.21~05.31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윤하

By 김윤하

듣고 보고 읽고 씁니다. 특기는 허송세월.

5 replies on “인피니트 – Season 2 (2014)”

인피니트는 노래가사가 주로 한글로 되어 좋고 ,가사 내용이 정서적 공감과 시적이라 좋아요~

인스피릿으로서 마음이 갑자기 울적해지고ㅠㅠ
인피니트화이팅!!

인트로관련한 이야기는 사실과 좀 다른것같지만 !
애정가득한 글 잘 읽었습니당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