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상반기 아이돌팝 중 와인과 훌륭한 마리아주를 보일 곡들을 선정했다. (아이돌 소믈리에 복세훈 씨가 소믈리에계의 아이돌인지 아이돌을 감정하는 소믈리에인지는 묻지 말기 바란다.) 각자 사랑하는 곡을 와인과 함께 음미하며, 다사다난했던 상반기를 되짚어보는 것은 어떨까. -에디터
아이돌로지는 청소년 음주를 권장하지 않는다. 미성년자 독자라면 이 기사를 기억해 뒀다가 성년이 된 뒤에 다시 즐겨주시기 바란다.
걸스데이 – Something
피노누아(Pinot noir)로 만든 신대륙의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 스파클링 와인
무르익은 과일의 향과 치명적으로 톡 쏘는 맛이 느껴지는 걸스데이의 ‘Something’. 이 곡은 솔로인 여성이 남자를 유혹하려고 하는 전형적인 섹시함이 아닌, 바람맞은 여인의 한에서 느껴지는, 음울하고 파탈적인 섹시함이 느껴지는 그런 곡이다. 그런 면에서 보다 어둡고 직선적이며 피노누아의 깊은 향미가 느껴지는 블랑 드 누아로 만든 발포성 와인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 <돈 존>의 스칼렛 요한슨처럼 고혹적이고 섹시한 금빛의 모에 샹동(Moët & Chandon)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통파 샴페인과는 다르다. 이 곡에는 과거 엄정화의 ‘초대’가 누렸던 원조 섹시의 차용은 있지만 살짝 맥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각본은 훌륭한데 캐스팅에서 좀 아쉬운 영화를 보듯 말이다. 차라리 이들은, 샴페인의 ‘오리지널리티’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바다 건너 미국 캘리포니아의 땅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스파클링 와인이다.
* 토막 와인상식
일반적으로 샴페인에 사용되는 품종은 백포도 품종인 샤르도네(Chardonnay)인데, 적포도 품종인 피노 누아(Pinot noir)와 피노 므니에(Pinot meunier)를 블렌딩하기도 한다. 샤르도네만 사용한 경우, 프랑스어로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이라 부르며, 위의 적포도 품종 중 한두 가지를 사용한 경우,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라고 부른다. 이는 적포도주에서 볼 수 있는 검붉은 과실들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으며, 섬세하면서도 직선적이고 힘찬 모습을 보여준다. 아주 섬세하게 프레싱하고 재빨리 포도 껍질을 제거하여 얻은 과즙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껍질에서 유래하는 붉은 색깔을 띠지 않고 일반 샴페인 같이 옅은 금빛의 투명한 색상을 띤다. 대표적인 와인으로는 루이 뢰더러(Louis Roederer)의 크리스탈(le Cristal), 좋은 빈티지의 볼랭저(Bollinger)가 있다.
* 추천 와인
슈램스버그 블랑 드 누아 (Schramsberg, Blanc de Noirs) 2008 : 슈램스버그는 미국에서 최초로 프랑스 샴페인 같은 방식의 스파클링 와인을 만든 생산자이다. 1960년대 이 와이너리를 설립한 데이비스(Jack & Jamie Davies) 부부는 풍부함과 복잡성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샴페인에 비해 너무나도 저급해 보였던 미국의 스파클링와인을 보며 이렇게 다짐했다고 한다. “이렇게 섹시한 샴페인은 우리도 만들 수 있다고!!” 여러 종류의 슈램스버그 스파클링 와인 중에서도 블랑 드 누아는, 살구 같은 무르익은 과실향 및 허니레몬의 뉘앙스가 지배적이며, 로스팅 된 커피의 터치가 살짝 느껴지는데, 여기에 입안에서 오렌지를 머금은 듯 느껴지는 당도와 그를 잘 받쳐주는 산미가 기분 좋게 어울린다. 크리미한 거품이 샴페인이라 해도 무색할 정도의, 가격대비 아주 훌륭한 스파클링 와인이다.
사용 품종 : Pinot Noir 91%, Chardonnay 9%
국내 거래가 : 8만원 선
동방신기 – Something
매우 정열적이고 활기찬, 스페인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의 템프라니요(Tempranillo)
한때는 보르도(Bordeaux) 와인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재배와 양조에 있어 잔기술을 남용하곤 했던 스페인의 양조자들이, 이제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저력과 전통적 방식을 재발견하여 본격적으로 고품질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리베라 델 두에로 지역의 와인들이다.
동방신기는 이 곡에서 단순히 스윙이나 재즈를 카피하는 것이 아니라, 흥겨운 리듬에 맞춰, 아주 개성 있게 잘 짜여진 안무와 정열적인 보컬을 곁들이며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에는 쉽지 않은 장르를 나름대로 멋지게 해석해내고 있다. 이렇게 굉장히 자신감에 차있으며 짙은 향기를 발산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이제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두렵지 않은 리베라 델 두에로의 활력 있고 자신감 넘치는 전성기 남성의 실루엣이 겹쳐 보인다.
* 토막 와인상식
스페인의 대표 품종 템프라니요는 리베라 델 두에로 지역에서 아주 활기차고 향이 깊은 레드와인을 만드는데 사용이 된다. 담뱃잎, 향신료, 가죽 향 등 굉장히 남성적인 향이며, 매우 강렬하고 짙은 과즙의 풍미도 지니고 있다. 최근 베가 시실리아(Vega Sicilia)의 우니코(Unico)를 비롯한 몇몇 와인에서 템프라니요에 보르도의 대표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소량 블렌딩하여, 강렬한 색상과 과즙, 풍미를 지닌 리베라 델 두에로의 전형적인 특징에 보르도 스타일의 도회적인 세련미를 부여하고 있다.
* 추천 와인
뻬스께라 레세르바(Pesquera, Reserva) 2008 : 현실적인 가격에 상당히 풍부하고 개성이 뛰어난 와인을 생산하는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Alejandro Fernandez)의 대표적인 와인. 짙은 보라색에 폭발적인 검은 과일 향과 오크에서 비롯된 다크한 부케가 가득하며, 두툼한 바디감에 골격이 단단한 와인이다.
사용 품종 : Tempranillo 100%
국내 거래가 : 14만원 선
소녀시대 – Mr.Mr.
평범한 빈티지의, 그러나 여전히 위대한 뽀이약(Pauillac) 그랑크뤼 끌라쎄(Grand Cru Classé)
‘Mr.Mr.’는 화려하고 어두우며 선이 굵고 힘차다는 측면에서 보르도 메독 지역의 뽀이약(Pauillac) 꼬뮌(commune)의 그랑크뤼 레드 와인들, 그중에서도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하고 섹시한 몸매에 모던하고 세련된 오피스 룩을 한 당당한 여성 같은 샤또 뽕떼 꺄네 (Château Pontet-Canet)와 닮았다. 소녀시대의 이름값과 이번 곡의 완성도는 1855년에 지정되어 지금까지 거의 변화가 없는 철옹성 같은 그랑크뤼 끌라쎄 와인들과 같다고 할 수 있으나, 기존 히트곡들과 비교하여 봤을 때는 치명적인 매력과 중독성이 약간은 모자란 느낌이다.
하지만 아무리 빈티지가 나쁜 해였다고 하더라도 그랑크뤼의 와인들은 자연의 불가항력적인 영향을 자신들의 경험과 자본을 통한 기술로서 극복하여 좋은 와인을 만들어낸다. 그렇듯 적절히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자신들의 팝적인 컬러를 잃지 않는 이 곡의 균형감과 유려한 무대에서의 연출은, 소녀시대가 여전히 명불허전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 토막 와인상식
당대 최고의 샤또들이 밀집되어있는 프랑스 메독 지역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 뽀이약은 보르도의 심장이다. 뽀이약은 샤또 라피트 로칠드(Château Lafite Rotschild)를 비롯, 메독 그랑크뤼 끌라쎄 1등급의 샤또를 세 곳이나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1등급을 능가하는 품질로 유명한 그랑크뤼 5등급 와인인 샤또 뽕떼 꺄네와 샤또 랭슈 바쥬(Château Lynch-Bages)도 역시 이 조그마한 지역의 샤또들이다. 뽀이약의 와인들은 검붉은 과실과 프렌치 오크의 신선하고도 복잡한 향, 약간의 시거, 그리고 긴 세월을 이겨내는 타닌의 묵직함이 아주 뛰어난 조화를 이루는, 선이 굵고 선명한 훌륭한 와인들이다.
* 추천 와인
샤또 퐁테 꺄네(Château Pontet-Canet) 2006 : ‘자연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는 비오디나미(biodynamie) 농법과 친환경 농법 등을 실천하면서도 동시에 최신 양조설비를 신설하는 등, 전통과 과학기술의 접목을 통한 끊임 없는 혁신을 추구하는 샤또. 그랑크뤼 5등급이었던 자신의 지위를, 1등급 샤또 무똥 로칠드와 당당히 겨루는 당대 최고의 와인으로 격상시켰다. 어둡고 깊은 검은 과실의 향기에 더해진 섬세함과 복잡성, 그리고 매끈한 바디감과 단단한 골격은 평범했던 빈티지라는 단점을 바로 잊게 만든다.
사용 품종 : Cabernet Sauvignon 63%, Merlot 32%, Cabernet Franc 5%
국내 거래가 : 20만원대 후반
2NE1 – Come Back Home
보르도에 대한 신대륙의 오마쥬(hommage), 유명 와이너리의 신-구대륙 합작 와인
미국 와인을 세계적 와인으로 성장시킨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와 프랑스의 그랑크뤼 일등급 와인인 샤또 무똥 로칠드의 합작으로 탄생한 와인. 라벨에서도 볼 수 있는 두 인물의 서로 붙어있는 옆모습 실루엣은 하나의 팀이 되어 위대한 첫 번째 작품 (Opus One)을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미국에서의 보르도 스타일 블렌딩은 하나의 오마쥬로서, 옛 전통에 대한 그리움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 흐름에 맞게 와인의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곡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에 대한 오마쥬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해석이다. 견고하고 응축된 베이스 위에 깔려, 처음엔 어둡고 매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꽃 향이 강하게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때, 그 다채롭고 강력한 이 곡의 중독성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어진다.
* 토막 와인상식
캘리포니아의 나파 밸리(Napa Valley)는 지역 전체 생산량의 4% 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가격으로 따지면 약 20%나 될 정도로 가격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자본의 집중도도 아주 높은 지역이다. 러더포드(Rutherford), 스태그스 립(Stag’s Leap)과 함께, 나파 밸리의 3대 지역으로 꼽히는 오크빌(Oakville)에서는 오퍼스 원(Opus One)을 비롯해, 미국 최고 컬트 와인의 양대산맥인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과 할란 이스테이트(Harlan Estate)를 생산해내고 있다. 이들 와인의 대부분은 보르도 메독의 그랑크뤼 클라쎄 와인들에 대한 오마쥬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만생종인 까베르네 소비뇽이 보르도에서처럼 정수를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최적의 기후와 토양을 오크빌이 제공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추천 와인
오퍼스 원(Opus One) 2010 : 힙합 뮤지션 제이지(Jay-Z)는 ‘Show me what you got’에서 “I’m just getting better with time, I’m like Opus One (난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지, 마치 오퍼스 원처럼 말이야)”라고 말하면서 오퍼스 원을 인용하여 자신을 표현한다. 오퍼스 원이 보르도 메독의 그랑크뤼처럼 장기보관이 가능하며, 최소 십수 년이 지나야 그 풍미의 정점에 이른다는 점을 자신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붉은 과실과 자두의 풍부한 향에 다크 초콜릿과 에스프레소, 감초 등의 다양한 부케를 느낄 수 있으며, 뛰어난 구조감과 부드러운 피니시로 입안을 현란하게 사로잡는다. 하지만, 2010년 빈티지는 지금보단 먼 미래에 마셔야 더 좋을 와인이다.
사용 품종 : Cabernet Sauvignon 81%, Merlot 9%, Cabernet Franc 6%, Malbec 3%, Petit Verdot 1%
국내 거래가 : 가격 미정
*각 와인의 국내 거래가는 와인21닷컴을 기준으로 표기하였으며 실제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 아이돌 소믈리에의 2014 상반기 결산 (2) - 2014-07-07
- 아이돌 소믈리에의 2014 상반기 결산 (1) - 2014-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