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x힙합 (1) 아이돌 힙합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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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Banksy Hip Hop Rat, CC BY thetimchannel

작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던 <KCON 2013>, 지드래곤이 미씨 엘리엇(Missy Elliott)을 불러내 자신의 신곡 ‘닐리리야’를 함께 공연했던 장면을 흥미롭게 기억한다. 그리고 조금은 뜬금없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뮤직비디오를 떠올렸다. 그 누구도 아닌 본토 흑인들의 리스펙트를 한껏 받으며 힙합춤을 대결한다는, 당시로서는 판타지에 다름 아니던 희망을 투영시킨 그 뮤직비디오, 어느덧 그 댄서 중 한 명은 아이돌 왕국의 경영자가 되어, 그들이 만든 ‘아이돌’과 그의 세대들의 ‘아이돌’ 간의 콜라보를 성사시켰다. 그것도 힙합을 매개로. 20년만이었다.

아이돌 ‘0세대’에서 지드래곤까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를 위시한 90년대 초반의 아이돌 0세대(?) 이후를 가만히 떠올려 본다. 당시로서는 생소하게 아이돌 포맷으로 힙합-R&B를 오가는 범-블랙뮤직적 마인드로 새로운 길을 제시한 원타임, 또는 그 징검다리였던 지누션, 갱스터의 마인드를 학교 안으로 끌고 온 H.O.T.라든지 ‘Westside’의 정신을 댄스 가요의 한복판에 곧추세웠던 유승준까지. 아이돌에게 힙합이란 시작부터 가장 매력적인 인용과 탐구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2000년대 초반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태동, 소몰이 발라드와 솔로 댄스 아이돌들의 득세 이후 수면 아래로 침잠했던 이 기묘한 관계는, 그러나 빅뱅의 데뷔와 함께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원타임과 지누션의 유산 위에서 그룹의 정체성을 만든 이들은, 음악적으로는 일렉트로와 힙합의 경계를 적당히 오가면서도 이미지와 패션에 있어서 힙합의 요소를 거의 강박적으로 표방하고 있었다. 게다가 리더인 지드래곤이 힙합을 본령으로 내세워 본격적으로 ‘아티스트’를 표방한 건 그렇다고 해도, (로커로 변신했던 문희준처럼 장르 음악은 아이돌이 뮤지션적 정체성을 ‘과시’하기에 가장 유용한 틀이다.) 불과 두 장의 앨범 만에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공히 합격점을 얻어낸 것은 뜻밖의 전개였다. (빈지노, 허클베리-피 등 쟁쟁한 신진들을 제치고 블랙뮤직 웹진 <리드머>에서 “올해의 싱글”을 수상한 결과는 당시에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돌 프로덕션에서 빅뱅, 그리고 지디의 성공은 중요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마치 EDM이 아이돌 음악에서 나름의 공식으로 변형 도입되었던 것처럼, 힙합은 아이돌 그룹의 주력 장르, 콘셉트, 혹은 이미지나 패션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새롭게 그 가능성이 타진되기 시작한 것이다. B.A.P, 블락비, 방탄소년단 등, 온도차는 있지만 어찌 되었건 힙합을 자청한 아이돌 그룹들의 본격적인 등장, 본격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지만 힙합의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끌어다 놓은 엑소, 비스트 등의 보이밴드, 그리고 심지어 힙합 걸그룹의 잇따른 등장까지. 그 흐름을 흥미롭게 받아들이건, 혹은 마뜩찮게 여기건 이미 일정한 방향성은 설정이 된 셈이다.

아이돌과 힙합의 관계를 생각하는 중에, 필자가 최근 관심있게 읽은 두 개의 기사를 잠시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하나는 매거진 <아이즈>에서 김봉현, 딥플로우 등이 함께 한 아이돌 래퍼들에 대한 감정서였는데, 통상적으로 평가의 대상이라 여기지 않는 아이돌 래퍼들을 따로 떼어내어 그들의 장단점을 여과없이 지적해 낸 것은 역발상이라 할 만했다. (“지코부터 용준형까지, 랩하는 아이돌”, <아이즈>, 2014년 2월) 또 하나는 웹진 <리드머>의 칼럼으로, 아이돌이 힙합을 표방함으로써 생긴 몇 가지 어두운 지점을 장르 음악 미디어 특유의 관점에서 꼬집고 있었다. (“힙합과 아이돌의 민망한 동거동락(落)”, <리드머>, 2013년 7월) 이 글들을 읽으며 나는 당연하지만 미뤄온 질문 하나를 새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아이돌에게 힙합은 어떤 의미인가? 힙합을 통해 그들은 무엇을 (불완전하게) 성취하려 하는가? 왜 그들은 (모순적이게도) 힙합에 천착하는가? 이 글은 이런 질문들과 연관해 아이돌들의 힙합 탐구라는 현상을 트렌드 추종, 이미지의 구축, 진정성의 탐구라는 키워드를 통해 접근해보고자 한다.

키워드 1 : 트렌드 추종

아이돌이 천착하는 힙합이 그 어떤 장르 음악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하나의 잘 빠진 최신 트렌드의 하나일 뿐이라는 해석은 가장 표면적이면서도 가장 실질적이다. 모든 개별적인 최신 유행을 받아들여 아이돌이라는 그릇 안에 담아 내는 케이팝의 아이돌 제작방식에 있어서 힙합 역시 예외일 리는 없다. 쉽게 말해 그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힙합’이라기 보다는 힙합이 상징하는 ‘유행’이라는 것. 최근 아이돌이 들려주는 작법은 트랩이나 일렉트로-합 등 이미 미국 팝 음악 시장에서 대중화되었거나 글로벌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계열로, 그 도입 자체가 ‘힙합’이라는 음악 혹은 문화의 직접적인 인용을 의미하냐는 딴지는 유효하다. R&B-힙합-일렉트로가 절묘한 역할 분담으로 팝씬을 나누어 온 것은 적어도 지난 10년 가까이 미국 주류 대중음악계에서는 일관된 흐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돌 힙합은 예정된 수순이자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키워드 2 : 이미지 구축

동시에 힙합(랩 혹은 비보잉 등 개별 요소들을 포함한)은 아이돌의 이미지 구축에 있어서 제법 그럴싸한 차별화 전략이 된다. 힙합은 소프트한 이미지의 아이돌로부터 이들을 ‘전사’로 만들어 주는 가장 손쉬운 아이템이며, (H.O.T.의 데뷔곡이 강렬한 힙합 리듬을 차용한 ‘전사의 후예’였던 걸 기억하는가?) 록 혹은 발라드 풍의 ‘가요’와 그들을 구분짓는 젊고 세련된 이미지의 표상인 셈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차용되는 것이 바로 힙합이라는 음악과 문화에 담긴 진정성의 함의이다. 힙합이라는 ‘트렌드’가 대중음악으로서 아이돌의 일시적이며 불가피한 선택일지는 몰라도, 이 선택은 적어도 힙합의 진정성이라는 틀 안에서 세부적으로 방향성이 결정되어야 힘을 받는다. 과장을 섞자면, 아이돌에게 힙합 아티스트적 진정성은 소위 힙합 ‘코스프레’에서 가장 중요한 필요충분 조건이 된다.

키워드 3 : 진정성의 탐구

본토 힙합 역사에서 진정성은 지역, 인종, 산업, 남성성 등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으로 거론되어온 것은 바로 메시지의 진위, 쉽게 말해 그 메세지를 ‘누가’ 쓰느냐, 그리고 그 메세지가 ‘진짜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상품에 가까운 케이팝 아이돌 음악과 그 본질에서 상충되는 부분일 수 밖에 없지만, 모순적이게도 바로 그 점에서 힙합 아이돌의 변별점이 모색된다. 생각해 보면 일반적으로 외모나 춤과 같은 요소 이외에 아이돌들이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바로 악기 연주나 자작곡 능력이었다. 아이돌 래퍼의 존재는 그룹에 힙합이라는 장르가 품은 자유로운 이미지나 비타협적 태도, 뮤지션으로서의 능력을 부여해주며, 스스로 랩을 쓰고 공연하는 래퍼는 그 자체로 연주가이자 작사가인 것. 바로 이점에서 이들은 ‘꼭두각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고민하고 참여하는 적극적 ‘뮤지션’의 존재라는 실질적, 혹은 허상적 이미지를 심는다. 단순히 저작권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스스로 가사를 만들면서 이들은 음악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그 아티스트쉽의 ‘전시’, 혹은 ‘과시’에 공감하는 (혹은 공감하고 싶어하는) 청자들에게는 그들을 좋아하는, 혹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힙합 아이돌의 원조인 YG가 심지어 TV 오디션에서도 힙합 스피릿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인하우스(in-house) 원타임, 빅뱅, 그리고 데뷔를 앞둔 위너 등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아이돌들을 ‘프로듀싱’이 가능한 래퍼로 육성시키는 것 역시 이 같은 욕망 내지는 강박의 표출이 아닐까?

이 진정성 키워드의 활용은 한편으로 한국 힙합 씬, 특히 언더그라운드와의 연계를 의도적으로 강조함으로써 득의의 효과를 얻는다. 블락비의 지코나 B.A.P의 방용국, 방탄소년단의 랩몬스터 등이 노골적으로 혹은 은연 중에 언더그라운드의 ‘경력’을 내세우는 것은 아무리 아이돌 그룹이라 하더라도 ‘리얼real’임을 증명해내야 하는 힙합의 종특을 의식하고 있는 제스처일 것이다. 특히 이는 정통 힙합과 아이돌 음악 간에 큰 간극을 두지 않은 저연령층이나 라이트 청자들에게서 그 효과가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 YG가 힙합 컴피티션인 <쇼미더머니>에 ‘검증된’ 연습생 B.I.와 바비를 출연시킨 것 역시 아이돌의 한계를 힙합의 진정성으로 넘어서려는, 즉 또 다른 의미의 ‘검증’의 관문을 통과해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 혹은 다분히 의식적인 경계 흐리기의 일환일 수 있다.

힙합 걸그룹

보이밴드와는 달리 걸그룹 음악에서 힙합은 공격성과 스왜거라는 ‘태도’의 측면으로 보다 한정적인 차용이 이뤄진다. 남성중심적인 음악으로 정체성을 부여받은 장르지만 지배적인 남성성에 대항하거나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힙합을 가져오는 것은 본토에서도 뿌리 깊은 접근이다. 걸그룹에서 힙합은 이미지라는 측면에서는 귀여움이나 섹시함과 구별되는 제3의 매력을 위한 돌파구일 것이고, 음악적인 면에서는 일렉트로나 EDM을 풀어내기 위한 포석이 된다. 쿵쾅대는 리듬에 블링블링한 힙합 패션, 그을린 피부, 도발적으로 깔아 보는 눈빛과 자신만만한 걸음걸이는 2NE1에서 지피베이직, 디유닛, 와썹까지 이어지는 걸그룹 힙합의 공식이다. 단정하긴 이르지만 과거 TLC 등의 발랄함과 악동 이미지를 차용해 연출했던 디바나 베이비복스, 스위티 등의 이미지와 태도의 영역에서, 이제는 ‘몸’의 영역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최근 힙합 아이돌 걸그룹을 표방하며 등장한 와썹의 멤버 나다가 마치 흑인을 연상시키는 굴곡 있는 몸매를 스스로 셀링 포인트 삼아 강조하는 것은 주목할 지점이다. 게다가 귀여움과 섹시함이라는, 소재는 다르지만 여성성의 판타지를 동전의 양면처럼 운용하는 아이돌 프로덕션에서, 인종적 함의가 다분한 트워킹의 영역을 건드리고 있는 것은 우연일까 아닐까. (<쇼미더머니>의 예선에서 미국 동부 언더그라운드 랩의 전설 우탱클랜의 ‘Wu-Tang Clan Aint Nuthing Ta F’ Wit’을 (어설프게) 부르던 그녀가 난데없이 뉴올리언즈 트워킹을 시전한 것은 케이팝의 아이돌 음악이 가진 탈맥락성, 무국적성, 혹은 ‘근본없음’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나를 보여주는 기가 막힌 예가 아닌가!)

한국 대중음악에서 힙합은 다른 그 어떤 장르 음악에 비해서도 늘 맹렬한 ‘오용misappropriation’ 내지는 ‘오역mistranslation’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힙합 아이돌은 대중음악의 최신 트렌드를 배경으로 로컬이나 문화적 배경이라는 ‘씬’이 선행하지 않은 장르 음악의 함정 위에서, 음악이나 문화의 모든 면을 부속처럼 활용하는 아이돌 프로덕션의 철저한 분업과 탈맥락성을 양날개로 삼아 떠올랐다. 모순적이게도 이들은 힙합이 가진 진정성의 기준을 변형시켜 도입함으로써 이전 세대 아이돌과는 차별화 되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한편으로는 장르 음악과의 경계를 흐리면서 힙합의 자양분을 아이돌 안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이는 아이돌 산업의 꼼수일까? 아니면 한국 힙합이 가진 내재적 시스템의 한계일까? 아니면 그 둘을 잇는 징검다리로서 케이팝만이 가진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이는 하나의 방향성이 있는 일관된 흐름이었으며, 결국 그 미래는 로컬 씬, 흔히 ‘국힙’이라고 일컬어지는 한국 힙합의 역동성에서부터 다시 예측해봐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그 어느 장르와 마찬가지로, 팝의 본고장의 흐름 혹은 세계적인 추세와 별개로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힙합이 대중음악계의 대세로 남아 있는 한, 한국 힙합의 성장과 함께 그 안의 욕망들이 다변화 하는 한, 그리고 아이돌 산업이 힙합을 활용한 구별기제를  지속적으로 작동시키는 한 이들의 다소 어색한, 그러나 흥미로운 동행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김영대

Author:

음악평론가.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 [한국힙합]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의 저자. 번역서 [미국 대중음악] (한울)이 새로 나왔습니다. 미국 Lewis & Clark 대학교에서 대중문화강의. toojazzy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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