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s : 틴탑 –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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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의 일이다. 강남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예전에 만나다 헤어진 여자친구와 우연히 마주쳤다. 수년을 만났다지만, 벌써 십여 년 전 일이니 알아보지 못하는 게 보통일 텐데, 희한하게도 이런 경우는 절대 못 알아보는 일이 없다. 찰나지간 스쳐간 것에 불과한데, 그 순간이 제법 길게 느껴졌다. 마주쳤다곤 해도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서로 잠시 쳐다보다 지나쳐 갔지만, 잠시간의 우연이 준 놀람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기억은 그 후로도 며칠 동안이나 나를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으로 끌고 갔다.

사실 글로 드러내기엔 조금 부끄러운 것이다. 이런 기분이나 감정들은 얼마든지 드러내지 않을 수 있고, 사람들은 대체로 수많은 감정들을 숨기며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내밀한 감정을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사실 그렇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담은 통속적인 유행가가 수십 년의 세월을 버티기도 하듯, 내 일상의 많은 시간을 좌지우지 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많은 유행가가 그런 감정을 담고 불리며, 심지어는 그런 기억들을 노골적으로 이끌어내기도 한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아이돌의 노래로 그런 신파적인 감정을 소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을 둘러싼 눈부시고 화려한 분위기는 그런 소비가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틴탑의 ‘쉽지 않아’는 그 중 예외적으로 90년대식 신파의 감성을 물씬 풍겨낸다. 아마 내가 며칠 전 마주친 옛 여자친구를 두고 미묘한 기분이 들었던 건, 때마침 그 즈음 즐겨 듣던 이 곡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쉽지 않아’는 유행가의 조건 중 몇 가지는 가진 셈이다. 간드러지게 꺾는 니엘의 보컬, 자꾸 반복되는 어렵지 않고 구슬픈 멜로디, 그리고 부담스럽게 박자를 쪼개거나 하지 않는 대중적인 비트와 랩을 가지고 있다.

내 안의 신파를 자극할 만한 유행가의 가장 특별한 조건은 역시 가사다. 감정과잉일지라도 심금을 울리는 가사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다. 유감스럽게도 틴탑의 ‘쉽지 않아’가 그런 가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집착’과 ‘구속’, ‘반복되는 싸움’, ‘변해버린 말투’ ‘점점 깊어만 가는 우리 상처’ 같은 흔히 쓰이는 표현은 별다른 감흥을 안겨주지 않는다. ‘쉽지 않아’의 가사를 읽어보면 서로 다른 점을 용납하지 못하고 계속 다투는 두 연인을 쉽게 상상할 수 있지만, 그뿐이다. 딱히 선명한 내러티브나 화자의 캐릭터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어렴풋한 설정과 분위기만 전달하면 충분하다. 각 파트들은 니엘이 부르는 후렴 부분을 지루하지 않게 반복하는 데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후렴 부분에도 특별한 가사는 없다는 것이다. 문장의 의미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돌아와 지금 내가 / 널 잊는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아 / 말처럼 쉽지 않아” 다음에 의미 없는 “I’m Crazy I’m Crazy ma Girl”이 이어진다. 그 후, 대체적으로 다투고, 힘들었던 기억만 떠올리고 있는 이 노래에서 갑자기 “나처럼 울고 있나 / 같이 즐겨 듣던 노랠 듣고 있나” 라는 가사가 엉뚱하게 튀어나온다.

요컨대, 이 노래의 가사는 모두 이미지다. 모든 표현은 마치 뮤직비디오의 어떤 한 씬을 떠올리게 하면 그만이고, 후렴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는데 거슬리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거슬리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한번쯤 입에 걸리면서 꺾어줘야 할 글자도 필요하다. 간드러지는 R&B 멜로디를 꺾어줄 때 그것은 유행가의 뽕끼와도 통하는데, 틴탑의 ‘쉽지 않아’에서 그것은 ‘-ㅏ’ 발음이다. 이 노래의 후렴에서 니엘은 ‘-ㅏ’ 발음을 모두 강하게 발음하거나, 된소리를 만든다. ‘돌아와 지금 내‘까’ / 널 잊는다는 게 정말 쉽지 안‘나’’ / 말처럼 쉽지 안‘나’” 라는 식이다. 특히 ‘쉽지 않아’는 계속 반복되는데, 모두 ‘쉽지 안’나‘로 발음된다. 때문에 다음에 이어지는 “나처럼 울고 ’인나‘ / 같이 즐겨 듣던 노랠 듣고 ’인나”라는 가사는 이 ‘-나’의 라임을 맞춰 인상을 남기려는 의도가 강하다. 그래서 ‘쉽지 않아’는 듣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도 대입할 수 있는 어렴풋한 이별과 다툼의 이미지, 그리고 적당히 목에 걸리며 ‘캬-’하는 탄성과도 이어질 수 있는 흥얼거림을 얻어낸다.

길이 남을 유행가는 아닐 것이다. 한 시절 TV에서, 그리고 노래방에서 소비되기 편한 반복적인 멜로디를 가진 곡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쉽지 않아’의 모든 파트, 가사, 구성은 그 이상의 성취를 전혀 의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른 틴탑보다, 후렴을 부른 니엘보다 띠동갑 이상 나이가 많은 나는 지나치게 무거워지거나, 사무치게 옛 기억을 추억하고 싶지 않다. 그때 그렇게 다투지 말 걸 그랬다는 약간의 후회와 마주쳤을 때, 말이라도 걸어볼 걸 그랬다는 조금의 아쉬움을 담아 니엘의 꺾기 보컬을 흉내 내며 흥얼거리는 정도에 충분히 만족한다. 그것은 이 깊어가는 가을밤은 즐기되, 부질없는 상념에 젖어 통한의 구남친 카톡을 보내지 않을 적정한 선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 대중음악에 존재하는 많은 작가들의 노래 대신 아이돌의 노래를 택해 흥얼거리는 이유일 것이다. 어떨 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You got a be stronger cause you’re my star
You got a be stronger cause you’re my star

I think about you 후회와 miss you
아무런 말도 하기 싫던 나와
나를 떠나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던
그 표정 변해버린 말투에 너

너는 Bad Girl 나는 Bad Boy
어쩌면 우리 둘은 처음부터 왜 꼬인
사이에 집착하고 서로를 구속 했을까
맘에 없는 말을 뱉을까
반복되는 싸움에도 이게 사랑이라 믿어가며
서로를 위로했을까
계속 난 내 습관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니 얼굴은 어둡게만 보여 uh

돌아와 지금 내가
널 잊는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아
말처럼 쉽지 않아
I’m Crazy I’m Crazy ma Girl
나처럼 울고 있나
같이 즐겨 듣던 노랠 듣고 있나
쉽지 않아 난 쉽지 않아 (왜)
넌 어때

모든 게 달라져가
널 보낸 후에 찾아 온 변화와
내가 없이 지낼 너의 모습이 자꾸만
날 더 미치게 해
점점 깊어져만 가 우리 상처
조금씩 보이는 단점
아님 처음부터 장점
찾으려 노력했던 건 우리 둘 사이 함정
오늘따라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날씨는 십점만점
모든 건 그대로인데 내 옆엔 너만 없네
이게 이별이란 거 이제 현실이란 거

돌아와 지금 내가
널 잊는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아
말처럼 쉽지 않아
I’m Crazy I’m Crazy ma Girl
나처럼 울고 있나
같이 즐겨 듣던 노랠 듣고 있나
쉽지 않아 난 쉽지 않아 (왜)
넌 어때

또 하루가 달라져가 예전의 내 모습과
너와 싸울 수 있었던 그 때가 좋았던 거야
좋았던 거야

틴탑 – TEEN TOP ÉXITO
티오피 미디어, 2014년 9월 15일

  틴탑의 ‘쉽지 않아’가 수록된 미니앨범 “TEEN TOP ÉXITO”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들의 단평은 1st Listen : 2014.09.11~09.20에서 확인할 수 있다.

letters 시리즈

letters는 아이돌팝 가사에 관한 칼럼이다. 때로는 이색적이고 때로는 마음을 파고드는 아이돌팝 가사의 세계를 쓴귤의 섬세하고 재치 있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1. letters : 갓세븐 – ‘A’
  2. letters : B1A4 – ‘Solo Day’
  3. letters : 박보람 – 예뻐졌다
  4. letters : 틴탑 – 쉽지 않아
  5. letters : 신해철 1집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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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귤

Author:

TV를 보고, 음악을 듣고, 만화를 읽고 글 씁니다. 귀여운 사람과 이쁜 것들을 좋아합니다.


http://twitter.com/babyleh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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