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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미닛 – Crazy (2015)

가진 무기를 다 꺼냈다는 인상을 주는 와중에도 어느 정도 여유나 힘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포미닛도 어느덧 데뷔 7년 차다.

포미닛이기에 가능한 퍼포먼스

리뷰를 쓰면서 어디까지가 리뷰의 범주일까, 어디까지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일까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유독 아이돌로지에 글을 쓸 때 더욱 고민이 커진다. 아무래도 그룹이 무언가를 선보일 때, 중심이 되는 건 음악이지만 안무, 무대, 영상 등이 함께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부터 꺼내는 이유는, 포미닛이 컴백한 이후 그들이 나온 방송을 어느 정도 다 챙겨봤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직접 찾아본 것도 있고 우연히 접한 것도 있는데, 그중 콘셉트를 이야기할 때 ‘힙합’을 자연스럽게 꺼내는 게 흥미로웠다. “힙합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부터 트랩(남부 힙합에서 비롯된 음악 장르), 808(롤랜드 사에서 출시한 TR-808 악기) 같은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모습을 보며 콘셉트나 음악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앨범을 열심히 들었다. 내가 종파를 따지거나 진정성을 의심하는 그런 딱딱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힙합’이라는 단어가 어떤 곳에서 쓰일 때 그곳이 어디냐에 따라 때로는 마음 한편에 불편함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그것은 ‘그들이 힙합을 또 한 번 망치면 어쩌나’와 같은 기우가 아니라, ‘대체 무엇이 힙합이란 말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다. 하지만 힙합은 하나의 문화이며 생활 양식이다. 하나의 스타일을 힙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장르의 갈래가 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워낙 많은 요소가 뒤섞이고 있지만, 포미닛은 힙합의 최근 트렌드를 잘 흡수하면서도 굉장히 재미있는 걸 해냈다. 의상이나 비주얼 콘셉트부터 음악까지, 멤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들의 관심이나 정성이 어느 정도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포미닛에게 힙합은 이번 앨범의 큰 콘셉트인 셈이며, 여기에 ‘센 언니’와 같은 맥락이 들어갔다.

사실 두고 보자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다는 말처럼 보통 센 언니를 표방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걸그룹 치고 센 그룹을 못 봤다. 하지만 포미닛은 센 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앨범 전체를 통해서 말이다. 멤버들이 비주얼뿐만 아니라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했음에도 완성도를 해치지 않았고, 오히려 ‘추운 비’를 제외하면 EP 규모의 앨범임에도 트랙 간의 긴밀함이 작용한다. 특히 가사의 결에서도, 마찬가지로 ‘추운 비’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통일된 정서를 가지고 있다. ‘미쳐’의 경우 현아와 전지윤의 파트, 소현의 파트가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는 동시에, 화자가 여럿이지만 가사들끼리 잘 맞는다는 점에서 더욱 성공적이다. 안무도 한 몫 단단히 했지만.

앨범은 첫 곡부터 ‘미쳐’로 시작한다. 첫 트랙을 재생하자마자 “I’m the female monster”라고 하는 이 굉장함을 보라. 흔히 말하는 ‘걸그룹의 카리스마’로 아예 분위기를 다잡고 시작한다. ‘미쳐’에서는 권소현의 존재감도 존재감이지만, 미쳐있는 현아에게 뒤지지 않는 전지윤의 힘 있는 랩도 인상적이다. 허가윤이 맡은 빌드업 파트에서는 “문이 열리고 멋진 그대가 들어오네요”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며 충분히 긴장을 쌓고, 그 뒤로는 신스 플레이가 인상적인 훅이 등장한다. 사실 이 신스 때문에 레퍼런스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나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따지면 스캇 스토치(Scott Storch)부터 꺼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농담을 던져본다. 곡은 소스 선택부터 스크래치, 훅 등 여러 면에서 구성의 짜임새가 탄탄하다. 무엇보다 지속해서 교체되는 사운드 소스와 빠른 전개는 시원시원하게 느껴지면서도 곳곳에 전체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요소들을 배치해 재미를 더했다. ‘미쳐’의 분위기는 ‘1절만 하시죠’의 버스(verse)에서도 이어진다. “내 인생에 간섭 마라”고 하는 가사의 내용 자체는 아이돌이라는 영역에서 신선하게 느껴지지만 랩의 구성이나 단어 선택, 두 글자씩 끊어 읽는 플로우 등은 조금 아쉽다. 잘 만든 트랩 비트 뒤에 등장하는 메이저 코드의 훅은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케이팝의 공식에 가까운 구성으로 하이햇 롤(박자 안에 잘게 쪼개서 연주하는 것)을 그대로 끌고 가며 BPM을 두 배로 당기는데, 이것이 나머지 구간에서 선보이는 강렬함을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그다음 등장하는 ‘간지럽혀’를 생각하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간지럽혀’는 넵튠즈(The Neptunes)와 팀버랜드(Timbaland)가 미국을 주름잡던 2000년대 중반을 떠올리게 하는, 그야말로 팀버랜드에게 영감을 받은 트랙이다. 특히 입에서 나는 소리로 곡 전체에서 리듬을 만들어내는 부분, 가끔 등장하는 “yeah” 추임새는 적극적으로 팀버랜드의 것을 가져온다. 그렇기에 레퍼런스라고 생각되는 트랙이 몇 떠오르지만, 훅에서 브라스를 쓰는 방식이나 보컬 커팅은 이 곡이 가진 차별화된 부분이다. 무엇보다 랩과 노래 모두 곡에 잘 어울려서 높은 완성도를 챙긴다. ‘눈에 띄네’는 ‘간지럽혀’와 온도를 같이 하는, 비슷한 듯 다른 곡이다.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접해온 포미닛이 떠오른다. 이 곡에서 댄서블한 트랙과 함께 등장하는 적극적인 여성의 모습은 포미닛의 정체성이 어느 정도 담겨있는가 하면, 전지윤과 권소현의 멀티 포지션이 장점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만 ‘Show Me’의 경우 ‘1절만 하시죠’에서 등장한 문제점이 더욱 크게 드러난다. 두 곡 모두 버스와 훅의 간극이 너무 큰데, 문제는 그 거리감을 해결하지 못한 채 그냥 페이드인/아웃 정도로 두 곡을 붙였다는 느낌으로 넘겨버린다는 것이다. 팝적인 요소가 강한 트랙의 보편성 역시 앞에서 선보인 메리트에 비하면 아쉽게 느껴진다. ‘추운 비’의 경우 앨범의 보너스 트랙 느낌에 가까울 정도로 이질적인데, 좀 더 트렌드에 가까운 곡을 선보이거나 장르 문법에 충실했다면 덜 아쉬웠을 것 같다.

앨범은 각 곡이 가지는 성격이 뚜렷하고, 그게 굉장한 장점으로 통한다. 다만 마지막 두 트랙에서 지구력이 떨어지는 듯해, 앞의 네 트랙이 가진 성격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워진다. 그럼에도 수록곡 모두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점이 느껴지며, 가진 무기를 다 꺼냈다는 생각이 들어 그야말로 전력을 다했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그 와중에도 어느 정도 여유나 힘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포미닛도 어느덧 데뷔 7년 차다. 그간 이런저런 콘셉트를 거쳐왔고, 실패라고 할 만한 지점도 있었지만, 시행착오만큼 역량과 스펙트럼을 얻었다.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 팀, 개인, 유닛 활동 모두 어느 정도 쌓아온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에 소속사 안팎에 있는 작가들이 쓴 좋은 곡과 회사의 도움이 있지만, 그보다 멤버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회사가 던져줬던 그 어떤 것보다 흥미로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앞으로도 계속 포미닛의 멋진 팀워크와 고민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Crazy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5년 2월 9일
  1. 미쳐
  2. 1절만 하시죠
  3. 간지럽혀
  4. 눈에 띄네 (Feat. 매니저)
  5. Show Me
  6. 추운 비
이 음반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의 단평은 1st Listen : 2015년 2월 초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블럭

By 블럭

블럭이라는 이름을 쓰는 박준우입니다. 웨이브, 힙합엘이, 스캐터브레인을 하고 있습니다.

4 replies on “포미닛 – Crazy (2015)”

좋은 말씀 감사하게 잘 보았습니다
저는 그저 멤버들을 사랑하고 노래가 마냥 좋다고 생각하며 응원했는데
멤버들의노력과 써주신 글을보고 좀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듣게 되는 순간입니다
글 잘읽어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5년전 이효리의 치티치티뱅뱅과 어떤 점에서 더 발전된것으로 평가될수있는곡일까요

좋은글이네요~ 이렇게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더 좋은듯!!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