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육대, 그 찬란한 젊음의 증표

이미지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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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린 건 많은데 도통 먹을 만한 건 없는 지지부진한 명절 특집 프로그램 사이, 〈아이돌 육상 대회〉(이하 아육대)는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장수하며 대표적인 명절 인기 프로그램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방송 초기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나 소소하게 화제를 끌다 그치지 않을까 했던 예상과는 달리 프로그램은 해를 더해가며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의외로 재미있고 신선한 포맷’으로, 아이돌 팬덤에게는 〈우리 결혼했어요〉와 함께 폐지 소원성취 양대산맥을 이루는 프로그램으로 각각 명성을 떨치고 있다. 뻔하지 싶다가도 한결같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오는 이 묘한 프로그램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2015년 설특집은 아이돌스타 육상 농구 풋살 양궁 선수권 대회로 총 4 종목의 이름이 포함되었다.

2015년 설특집은 아이돌스타 육상 농구 풋살 양궁 선수권 대회로 총 4 종목의 이름이 포함되었다.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10대 중반에서 20대 중반, 동일 개체들 사이에서도 월등한 피지컬을 자랑하는 젊은 남녀 수백 명이 한날한시 운동장에 모인다. 평소의 이들이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춤을 추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알 바도 아니다. 나뉘어진 그룹에 따라 색색의 트레이닝복을 갖춰 입은 이들은 꼬박 하루 동안 오로지 뛰고, 차고, 쏘고, 던지고, 탄식하고, 환호한다. 터질 것 같은 생체 에너지와 젊은 육체, 그리고 오직 기록만으로 평가받는 승부의 향연, 〈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다.

2010년 설 특집으로 처음 전파를 탄 이 프로그램은 아이돌을 이용한 흔하디흔한 기획으로 일회성 파일럿에 그치리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무려 5년째 긴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이 뜻밖의 장수의 가장 큰 원동력은 방송사의 기획의도마저 훌쩍 뛰어 넘은 아이돌 가수들의 승부사적 기질이다. 남녀불문 팔보다 가는 다리를 가진, 짙은 메이크업에 화려하게 차려입고 살랑살랑 예쁜 척이나 하는 게 다인 줄 알았던 아이돌 스타들에게 트레이닝복을 입히는 순간, 이들을 둘러싼 극의 장르는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다. 끼와 웃음을 거둔 채 오로지 승부를 향한 집착과 건강한 육체만 남긴 젊음들이 브라운관 너머로 전하는 에너지란 꽤나 압도적이다 굳이 찾아보진 않아도 한 번 멈춘 이상 쉽사리 채널을 돌리기가 힘들다. 전날 밤까지 귀찮아 몸부림치다가도 늦은 오후 무렵 반 대항 릴레이가 막상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우리 편 이겨라 목놓아 소리치던 봄가을 운동회의 풍경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21세기 모니터로 느끼는 릴레이 계주 역전의 짜릿함. 뭔가 노린 스샷인 것 같다면 그건 당신의 기분 탓*^^*

21세기 모니터로 느끼는 릴레이 계주 역전의 짜릿함. 뭔가 노린 스샷인 것 같다면 그건 당신의 기분 탓*^^*

이런 아이돌 스타들의 의외의 선전은 부지런한 제작진의 뒷바라지로 더욱 빛난다. 조금 지루한가 싶어지는 순간 수영, 컬링, 양궁, 풋살, 농구 등 새로운 종목들을 과감히 도입하며 프로그램의 정체를 막는 제작진의 노고는, 장기침체로 들어서고 있는 최근 공중파 프로그램들의 반응 속도를 생각하면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다. 대표적인 회심의 한 수는 2013년의 풋살 카드였다. 당시 애매한 시청률과 잦은 부상 소식으로 폐지 위기에까지 몰렸던 프로그램은 한국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인 미니 축구 풋살의 과감한 도입으로 프로그램의 역동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놀라운 자생력을 자랑했다. 씨스타 보라, 제국의 아이들 동준, 2AM 조권 등, 아육대를 통해 재조명된 ‘체육돌’의 명성을 이어 이미지 쇄신과 인지도 상승을 노리는 신인급 아이돌 그룹들의 야망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하나같이 우리가 쉽게 예상하는 아이돌의 시청률 견인 효과와는 거리가 멀다. 남녀노소 성별불문, 의외로 폭넓은 시청층을 보유한 이 프로그램이 가진 매력은 어쩌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이돌다움’을 모두 지운 아이돌의 맨얼굴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비주얼로 축구도 잘하면 반칙 아닌가요 하느님

이런 비주얼로 축구도 잘하면 반칙 아닌가요 하느님

그렇다면 이즈음에서 궁금해진다. 누구나 가슴 속 삼천 원쯤 가지고 있다는 이 ‘아이돌다움’의 진정한 함의는 무엇인가. 갓 만난 세상이 아름답기만 하다는 듯 구김살이라곤 하나 없이 노래할 것, 과장된 의상을 입고 춤을 출 것, 화려한 조명 아래 서 있을 것,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할 것, 그리고 그 모든 모습에 진실은 한 꺼풀도 없을 것. 아육대가 아이돌답지 않은 아이돌들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프로그램이라는 손쉬운 결론을 내 버리는 순간, 정확히 그 반대편에 위치한 ‘아이돌다움’의 가치는 한없는 부정과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지닌 가치란 과연 그것이 전부인가. 아육대를 보며 흐뭇한 마음이 드는 건 오히려 화려한 조명과 치장에 가려져 있던 아이돌들의 진짜 ‘아이돌다운’ 에너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매스미디어의 탄생 이래 최대치의 상상력을 동원한 대중이 끊임없이 탐해 온 최대가치인 ‘젊음’, 그 젊음의 순수한 빅뱅이 일어나는 지점에 아이돌과 아육대가 자리하고 있다.

2015 설 아육대 최고의 명승부를 보여준 여자 양궁 단체전 포미닛 소현과 씨스타 보라

2015 설 아육대 최고의 명승부를 보여준 여자 양궁 단체전 포미닛 소현과 씨스타 보라

H.O.T.의 ‘캔디’가 전 세대를 주름잡던 학창시절에도 고고한 표정으로 브릿팝이니 네오 소울이니 바다 건너 음악만 탐하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뜬금없는 바닥에 발을 들이게 되었나, 새삼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들이 꾸준히 들려준 맑고 밝은 음악과 화려한 무대의 매력은 익히 알고 있던바, 내가 무심코 열어버린 건 아마도 이제 나에게는 없는 젊음과 청춘이 이상적으로 빚어 놓은 판도라의 상자였던 것 같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는 우렁찬 메아리 소리가 저 멀리에서 사무치도록 울려 퍼진다. 비록 끊이지 않는 부상의 위험, 내 가수를 응원하고 싶은 팬들의 마음과 음악 프로그램 출연권을 걸고 끊임없는 밀당을 요구하는 방송국의 갑질 등 썩 개운치 않은 뒷맛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육대의 앞으로의 선전을 지지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가려 보이지 않던 청춘의 극한, 그 찬란한 젊음의 증표를 가능한 한 오래도록, 건강하게 만나고 싶다.

김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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