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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24와 플레디스 걸즈(프리스틴)가 남긴 것

그동안 한국 아이돌 시장에선 볼 수 없던 시스템, ‘공연형 아이돌’. 이들이 오래도록 공연을 진행한 대가는 무엇일까. 그것은 ‘공연을 위한 공연’이었을까.

공연형 아이돌, 소년24와 플레디스 걸즈

소년24는 엠넷에서 방영된 동명의 프로그램에서 선발된 27인으로 꾸려졌다. 이들은 최종 멤버 선택까지 꾸준히 유닛 및 합동 공연을 펼쳤다. 그런데 이 ‘공연’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한국 가요 시장에서 인식하는 ‘방송국 무대’에서 이뤄진 것과는 다르다. 이들은 무려 1년여의 시간에 걸쳐 서울 중구 회현역에 소년24 전용 공연장을 꾸며놓고 6만 5천여 명(기획사 산출)에 이르는 관객을 맞았다. CJ E&M과 라이브웍스 컴퍼니가 매니지먼트를 함께 맡아 이들을 뒷받침했다.

프리스틴(Pristin)은 오는 3월 21일 데뷔를 앞두고 있는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걸 그룹이다. 이 그룹의 전신은 엠넷 〈프로듀스 101〉을 통해 널리 알려진 플레디스걸즈(Pledis Girlz)다. 플레디스걸즈는 서울 왕십리에 소형 공연장을 임대해 꾸준히 공연을 펼쳤다. 프리스틴이라는 그룹명이 확정된 이후 펼친 공연의 제목은 〈Pledis Girlz (Pristin) Bye & Hi〉. 전신의 종결과 새로운 정체성을 동시에 어필하는 영리함을 발휘했다.

한국에서도 소년24와 플레디스걸즈를 통해 ‘공연형 아이돌’이라는 생소한 개념이 본격적으로 움텄다. 소년24는 130여 회에 걸쳐 무대에 섰고, 당일 MVP로 뽑히는 멤버는 솔로 무대를 가졌다. 플레디스걸즈는 꾸준히 공연 레퍼토리를 확장해왔고, 공연마다 한 명씩 멤버가 돌아가며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회사 측은 두 팀 모두 공연이 끝나면 팬들과 차례로 하이파이브(하이터치)를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안내했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이들은 분명 ‘공연형’이 맞다.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중소규모 공연장을 터전으로 삼아, 매주 1~4회를, 티켓팅만 하면, 아이돌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그동안 한국 아이돌 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스템이다.

소년24 | ⓒ CJ E&M / 라이브웍스 컴퍼니
소년24 | ⓒ CJ E&M / 라이브웍스 컴퍼니
레퍼토리의 다양화, 신비주의의 해체

지난 3월 5일 열린 〈소년24 Semi Final〉 공연에서 소년24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를 커버했다. 눈에 띄었던 것은 일반적으로 남성 아이돌이 여성 아이돌을 커버할 때 흔히 나타나는 ‘희화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대신 소년24는 두 팀의 곡을 기존보다 훨씬 로킹한 사운드, 그루비한 무드로 과감하게 편곡해버렸다. 특별히 사회적인 의식이 수반된 기획처럼 읽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이어진 공연 덕분에 레퍼토리 연구가 꾸준히 이어졌다는 점이 눈에 띄었고, 편곡 및 안무 전반에 걸쳐 생물학적 남성 아이돌이 보여줄 수 있는 신체적 움직임을 최대화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리고 이는 1년간 공연을 해오면서 얻어진 결과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팀과 유닛에 대한 캐릭터적 이해가 충분히 수반된 좋은 결과물이었다.

플레디스걸즈의 경우에는 다양한 커버 무대를 선보이면서 수차례 화제가 된 바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던 애프터스쿨의 ‘Bang!’은 과감한 편곡으로 여러 차례 주목받았다. 곡의 형태를 새롭게 뒤틀면서 선배 그룹과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성을 보여주려 노력했는데, 이 또한 수차례의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스태프들이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소년24와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공연 레퍼토리에 대한 연구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무대였다.

꾸준히 무대를 이어온 결과, 소년24와 프리스틴은 ‘신비주의’의 해체를 선언한 셈이 되었다. 아예 팬과 아이돌 사이에 벌어진 공간의 틈새를 메우면서, 바이럴 마케팅으로 서서히 무너지고 있던 팬과 아이돌 사이의 경계조차 없애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오랫동안 씬(scene) 관계자들과 팬들 모두 궁금해했던 것들에 간접적이나마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팬덤 마케팅의 핵심은 역시 팬 사인회와 같은 ‘스킨십’인가?” 또는 “‘오빠’와 ‘언니’는 정말로 자주 보는 팬과 더욱 정이 들까?”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 말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과연 소년24와 프리스틴은 어떤 식으로 정식 팬덤을 형성하게 될까. 또 이들은 팬덤 바깥의 대중에게 ‘공연형 아이돌’ 출신으로서 어떤 능숙한 제스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이 역시 프리스틴의 데뷔 성적, 소년24의 방송 활동 성적을 지켜보면 얻을 수 있는 답일까.

413일의 대가, 방송 출연

5일 열린 〈소년24 Semi Final〉에서는 첫 번째로 정식 활동에 나서게 될 아홉 명의 멤버(진성호는 10일 개인사 논란으로 자진 탈퇴)가 발표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미’와 ‘첫 번째’라는 단어고, 예상대로 이들은 최종 멤버가 아니다. 3개월간 소년24를 대표해서 활동하는 것뿐이다. 정리하자면, 이 세미 파이널은 2016년 엠넷 〈소년24〉 방송을 포함해 400여 일간 달려온 대가를 결산 받는 무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소년24가 국내 최초로 공연형 아이돌을 표방하며 매주 4회씩, 총 132회의 공연을 진행한 대가는 무엇일까. 바로 ‘방송 출연’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현재로서 ‘공연형 아이돌’은 방송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선택하는 발판 같은 인상을 준다. ‘공연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방송을 위한 공연’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실제로 5일 공연에서 가장 부각된 코너는 백스테이지 인터뷰였다. 27명이 각각의 특징을 살려 ‘보컬 그룹’, ‘재간둥이 그룹’, ‘댄스 그룹’, ‘랩 그룹’으로 나뉘어 자신들의 얼굴과 이름을 정확히 소개하려 애썼다. 기존에 진행된 온라인 투표와 현장에서 진행된 모바일 투표, 생방송 투표를 합산한 결과로 방송에 출연하게 될 대표 멤버가 결정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년24를 오프라인 공연만을 위해 만든 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프리스틴 | ⓒ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프리스틴 | ⓒ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이는 플레디스걸즈(프리스틴)도 마찬가지다. 데뷔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며 여러 가지 미디어 콘텐츠가 활발히 등장했다. 연습실에서 찍은 셀프 캠, 라이브 앱 등은, 팬들과 얼굴을 익히던 전용 공연장을 떠나 전형적인 아이돌의 방송 데뷔 수순을 밟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다른 아이돌 그룹들이 만들어 놓은 선례에 비춰볼 때, 방송 활동을 시작하고 나면 이들 또한 다시 소규모 공연장으로 돌아오기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소년24는 지속적으로 공연장 무대에 설 예정이고, 여기에는 방송 출연이 결정된 멤버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제작사와 기획사 측이 끊임없이 ‘국내 최초 공연형’임을 강조하면서도 방송에 출연할 멤버들을 ‘대표’라고 지칭하는 것은, 정작 이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음악 방송 무대와 공연장 무대의 위계를 뚜렷하게 구별 짓고 있음을 드러낸다.

‘공연형 아이돌’은 인턴이 아니다

소년24 방송 멤버로 뽑힌 박도하는 “여기까지 정말 오래 걸린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가 말하는 ‘여기’는 과연 어디를 의미할까. 또 다른 멤버는 “무대에 대한 열망을 뽐낼 시간이 찾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는 무대라고 다 같은 무대가 아니라는 점을 얘기하는 것이고, 수백 회의 무대가 결국에는 활동 내내 스무 차례가 채 안 되는 방송국 무대를 위한 여정이었음을 의미한다. 웬만한 신인 아이돌 그룹보다 많은 무대를 선 그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이럴 거면 그냥 데뷔를 하지, 왜 이렇게 오랜 ‘인턴 기간’을 갖느냐. 이런 시간을 거쳐서 얻는 게 대체 무엇이냐”고. 하지만 기회비용이라면 아이돌들이 공연장에 서 있는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별것 아닌 무대’로 만드는 시선일 것이다. 이 말이 일본처럼 세분화된 지역 아이돌 시스템을 과감히 시도하라거나, 미국처럼 방송 활동을 지양하고 투어 형태로 활동하는 무대 친화적 시스템을 무조건 도입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인턴’이 아닌데 구조상 언제까지고 ‘인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413일 동안 인턴이라니, 솔직히 끔찍한 일이다. 플레디스걸즈가 프리스틴이 아니라 여전히 플레디스걸즈였다면, 그들은 언제쯤 ‘정규직’으로 인정받았을까. ‘공연형 아이돌’이 마케팅 수단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현실적 이유에서다. 이들은 연습생을 벗어나 정식 무대에 섰지만, 방송국 카메라 앞이 아니라는 이유로 여전히 다른 ‘신분’을 갖는다. 마치 ‘전문적인 인턴’과 같은 모순.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을 꼽자면, 그들이 공연장을 벗어나 ‘방송형’이 되는 순간 일어날 변화다. 두 팀이 공연을 통해 축적해 놓은 다채로운 레퍼토리들은 이제 연말 시상식 무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한시적 이벤트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아깝다.

E
CJ E&M, 라이브웍스 컴퍼니
2016년 11월 9일
We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2016년 6월 27일
박희아

By 박희아

음악기자. 사랑스런 콘텐츠들을 골라 듣고,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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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소년24와 플레디스 걸즈(프리스틴)가 남긴 것”

이달소가 보여준 처참한 데뷔무대를 생각하면 소규모 공연으로 내공을 다진 이들이 좀 더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