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발매되는 음반은 아무래도 연말 시상식이 지나간 직후에 나오는 터라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에서는 벗어나있기 십상이다. 올해 1월에 발매된 우주소녀의 ‘La La Love’도 다소 그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냥 떠내려보내기에는 곱씹어 들을만한 곡이라, 짧게나마 리뷰를 남긴다.
우주소녀의 ‘La La Love’는 사진으로 순간을 붙잡고자 하는 열망을 노래한 곡이다. 촬영이라는 행위가 갖는 낭만성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스타쉽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는 이 곡을 ‘레트로팝’이라 지칭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라는 키워드가 워낙 20세기 중후반을 대중없이 지칭하고 있어서 정확히 언제쯤을 말하는지 난감하긴 하지만, 음악의 스타일에서 추측하기로는 슈퍼모델이 미디어의 핀조명을 받던 8-90년대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전주부터 ‘포 온 더 플로어’로 쿵 쿵 울려대는 하우스킥, 스타카토로 연주되는 싱코페이션 스트링 신스, 이 모두를 감싼 리버브의 과장된 공간감 등은 당대 화보 촬영장이나 런웨이를 장식한 음악들을 연상시킨다. 하우스, 라운지, 캣워크, 눈부신 조명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사진 촬영이라는 가사의 주제를 이렇게 표현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곡이 런웨이용 라운지 하우스처럼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코드의 진행 방식과 멜로디에 있다. 도회적인 느낌, 혹은 간단명료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되도록 단호한 트라이어드 코드나 파워 코드만 쓰던 당시 하우스(혹은 유로댄스)에 비해, 이 곡은 마디마다 재즈적인 화성으로 수를 놓았다. 전주부터 7과 dim을 오고가는 화려한 하모니로 듣는 이를 압도하고, 버스(verse)도 단순 다이아토닉(Diatonic)이 아니라 다른 음계에서 빌려온 세련된 코드들로 한껏 장식했다. 같은 하우스여도 모던한 느낌보다는 샹들리에 아래서 펼쳐지는 무도회의 느낌을 낸다.
우주소녀가 최근작 ‘부탁해’나 ‘꿈꾸는 마음으로’ 등에서 선보인 콘셉트에는 분명 ‘아니메’나 환상문학 등에서 볼 수 있는 서브컬처의 뉘앙스가 있다. 그러나 여자친구 같은 그룹이 2000년대~현재의 아니메 수요층(일명 ‘투니버스 세대’)의 귀를 겨냥한다면, 우주소녀의 세계는 그보다 조금 전 시대인 80~90년대에 더 가깝다. ‘우주소녀’라는 작명도 그렇다. ‘우주’라는 키워드에서는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우주의 낭만만을 기믹으로 차용한 90년대 아니메 〈달의 요정 세일러문〉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스트링을 적극 기용하는 수록곡들에서도 그 시대 마법소녀물 사운드트랙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레퍼런스 삼을 소스가 풍성했던 시대에서 영감을 받았을 거라 짐작되는 우주소녀의 사운드는, 레트로가 곧 세련이 되는 뒤죽박죽 2010년대의 끝물에 이렇게나 멋지게 어울린다.
펀치라인이라 할 만한 B파트 도입부를 살펴보겠다. 설아와 여름이 앞뒤로 교차하며 다음의 가사를 불러낸다.
“아무 준비 없이 널 좋아해도 될까
나 그래도 될까 어렵게 생각 말까”
설아는 음색이 청명하며 울림이 좋은 보컬이고, 여름은 음색에서 말괄량이 같은 느낌이 나는 허스키한 톤의 래퍼/보컬이다. 이 둘의 톤이 서로 대비되며 다이내믹을 발생시킨다. 마치 속마음을 읊조리는 두 가지 다른 방식처럼 들리는 대조가 노래의 뉘앙스를 풍부하게 만든다.
우주소녀는 현재 활동하는 여성 아이돌 그룹 중 최다 인원을 자랑하는 팀이고, 멤버 수가 많은만큼 다양한 톤의 목소리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어떤 시퀀스로 배열하느냐에 따라 노래 안에서 구성해낼 수 있는 표현의 흐름이 다양해진다. ‘누가 이번 곡에서 몇 초를 불렀다’는 파이 차트보다 이런 표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음악을 보다 풍성하게 들을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우주소녀의 전작 중 ‘비밀이야’의 정석적인 가요 전개(마지막 후렴의 고음 애드리브까지 완벽하다)와 비교한다면, 이 곡의 후렴은 그런 드라마틱함이 덜하다. 버스를 거치며 지연되고 지연된 느낌이 후렴 전반 “너무 아름다운 너 Stay ~”에서도 마땅히 해소되지 않는다. “Love 이 순간을 가둘래 ~”의 랩 부분에서 텐션을 충분히 떨어뜨렸기 때문에 ‘이 다음엔 터지겠구나’하며 기대하게 되는데, 이내 오는 여덟 마디 동안 코드 진행이 또 상승하며 숨에 숨이 찰 때까지 해소가 재차 지연된다. 그리고 맞이하는 “La la la la la love / La la la la so stay”는, 이전 마디의 “이 순간 영원할 La la love”에서 자연스럽게 넘어와 물흐르듯 지나가버린다. 극적인 느낌은 적으나, 점진적인 해결 덕에 세련되게 들리기도 한다.
작곡팀 풀블룸(Full8loom)이 우주소녀에게 제공한 최근의 노래들을 돌아보면 대체로 이렇다. 마법소녀 OST 같은 악기 사용과 멜로우한 멜로디로 포장한 구성을 잘 뜯어보면 흔한 가요 작법에서 아주 조금씩 비껴난 의외성이 보이고, 그래서 독특하게 들린다. ‘꿈꾸는 마음으로’는 한 절이 끝나기도 전에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다시 마이너로, 마이너의 또다른 조로 몇 번이나 전조하기도 하고, ‘부탁해’는 버스를 한 줄씩 부를 때마다 종결하는 듯한 코드를 부여해서 (E마이너인 곡을 라인마다 토닉인 E 혹은 Em로 끝냈다) 조각조각 나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이런 음악적 실험성도 우주소녀를 남다르게 만드는 점 중 하나다.
노랫말은 사진의 촬영, 순간의 박제에 집중하고 있다. 프레임 속의 피사체가 되는 아이돌이 직접 부르는 이런 가사는 차라리 아이돌을 촬영하는 ‘찍덕’팬의 시선에 더 가깝다. 망설이다 이끌린 운명 같은 사랑, 그것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카메라를 드는 마음 말이다. 여기에는 지나가버리는 시간을 붙잡고자 하는 인간의 무력한 본능이 엿보인다. 화려하고 눈부신 극치를 그린 노래이지만, 안타까움이 절로 실리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아니, 지금 찬란하기 때문에 그 지나감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일 테고, 그런 감상이 아이돌이 전하는 아름다움의 무상함을 생각해보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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