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임현식, 김규종&단디, (여자)아이들, 맵식스, 방탄소년단, 원더나인, 청하, 슈퍼주니어-D&E, 미드나잇, 성리, 해시태그, 스테파니, 홀리데이, 영재의 음반을 다룬다.
로지: 팀 내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비투비의 임현식. 솔로곡 ‘Swimming’에서도 이미 두각을 드러냈듯 보컬뿐만 아니라 작사, 작곡, 편곡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이 곡 또한 작사, 작곡, 편곡을 했을 뿐만 아니라 베이스와 피아노를 직접 연주했다. 시작은 피아노 반주와 목소리만으로 잔잔하게 흘러가다 2절부터 베이스, 드럼, 기타가 만나 감성이 풍부해진다. 온전히 그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하듯 노래하는데 특유의 부드러운 보컬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다들 이야기하는 사랑을, 그저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는 직관적인 가사마저 그의 목소리로 들으니 뻔하지 않게 들리는 것은 그가 가진 목소리의 힘 아닐까.
랜디: 김규종의 보컬과 단디의 랩이 반반으로 편안하게 균형을 이룬다. 김규종의 이름으로 발매된 곡들을 되돌아보면 늘 균일한 톤과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었다. SS501 때는 비교적 조용한 서브보컬이었던 그가 솔로가 된 지금은 가장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음에 눈길이 간다. 그룹으로 누렸던 커리어하이가 지났음에도 김규종의 음악성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로지: (여자)아이들의 첫 번째 드라마 OST다. 메인댄서인 수진의 보컬이 잘 느껴지는데, 가성으로 고음을 처리하는 부분이 매력적인 목소리와 잘 어우러진다. 지금까지의 (여자)아이들의 타이틀곡이었던 ‘Latata’-‘한(一)’-‘Senorita’로 줄곧 카리스마 있는 모습만 봐왔는데, 멤버 각자의 음색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와 더불어 따뜻하고 섬세한 반전 매력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랜디: 일본 활동이 길어지고 있는 맵식스의 오랜만의 국내작이다. 2017년부터 함께 작업한 미친감성, KZ 등과 다시 뭉쳤다. (그동안 프로듀서 미친감성은 유튜브에서 모 음악 유튜버의 비리를 고발하며 개인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적 페이소스가 특징인 멜로디에 퓨처베이스 사운드를 입힌 곡으로, 칠링한 사운드가 유행하기 직전이었던 2010년대 초반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로지: “Love Yourself”까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너와 나의 사랑’, ‘팬들을 향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방탄소년단의 가사는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 담백하다. 그것이 감성을 자극하고 공감하게 된다. 특히 리더 RM의 솔로곡인 ‘Intro : Persona’는 씹어 먹을 듯 랩을 하지만 “넌 절대로 너의 온도를 잃지 마”라며 “나는 누구인가”하는 보편적 고민과 혼란스러웠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맨 마지막에 수록된 ‘Dionysus’는 엄청난 하이 텐션으로 콘서트에서 방방 뛰어가며 놀고 싶을 정도로 신이 나는데, 앨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수록된 곡과 순서를 보았을 때 약간 뜬금없다고 느껴졌다. 추천곡은 ‘소우주’. 독특한 음색을 가진 뷔의 담담한 보컬이 왠지 모를 뭉클함을 끌어올리고, 일정하게 계속 깔리는 비트 덕에 정말 우주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해준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우린 “우리대로 빛나”, “우린 그 자체로 빛나”라는 감성적인 가사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토닥거린다.
미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 대표되는 달콤하고 편안한 팝 기조의 곡들이 두드러진다. 팬 서비스 성격도 있다지만 세계 시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만한 정통파 팝송을 트렌디한 색채로 담아냈다. 할시나 에드 시런 등의 이름이 화려하지만 정작 이들의 색채가 딱히 음반에서 두드러지지는 않는데, 사실 ‘BTS goes pop’에 이들이 특별히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고도 하겠다. 방탄소년단 자체가 갖는 음악적 유연성과 소화력의 방증이기도. “Map of the Soul” 연작의 향방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밝고 가벼운 색채로 시작해 향후 고민하게 될 무거운 주제들에 대한 티저처럼 ‘Dionysus’를 내비쳤다고 보는 해석도 가능하겠다. 확고한 테마를 중심으로 캐치하게 흐르는 다른 곡들에 비해 ‘완연한 케이팝’으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이 곡은 그만큼 흥미로운 자리를 점한다. 메시지는 무겁지만 낙천적이고 쾌활한 ‘Intro: Persona’로 시작해 달콤하게 흐른 뒤 다시 무겁고 난폭하게 마무리하는 음반으로서의 흐름을 결정짓는 곡이기도 하고, 여느 때보다 한껏 팝적인 이 음반에 상징과 서사를 강하게 드리우는 곡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댱: ‘(상대적으로) 큰 이슈를 몰지 못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데뷔팀 앨범은 대개 퀄리티가 높다’는 가설을 세워도 될 정도라고 하면 좀 잔인할까. 원더나인은 더블 타이틀을 들어 두 개의 축을 제시한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하이틴 장르로 채운 드라마타이즈 버전 뮤직비디오에서 볼 수 있듯이 신인만의 풋풋한 매력이 돋보이고 ‘Spotlight’는 라틴 요소가 깃든 중독적인 훅과 다인원을 활용한 안무로 파워풀한 이미지를 남긴다. 풋풋함과 파워라는 두 요소가 균형을 적절히 이루는 클래식한 데뷔 음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17개월이라는 짧다면 짧은 프로젝트 동안 한 차례 깊은 인상을 주길 바란다. 앞서 언급했던 가설을 넘어 개인의 매력을 대중에 각인하기에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로지: 김건모가 부른 원곡은 이별의 슬픔을 절절하게 노래했다면 청하는 이를 담담히 받아들인 채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느낌이다. 편곡이 왠지 밝은 느낌이어서 낯선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청하의 목소리와는 잘 어울린다. 청하표 발라드는 항상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미묘: ‘땡겨’의 뮤직비디오가 입증하는 것 중 하나는 D&E가 소화할 수 있는 스펙트럼의 넓이다. 갱스터와 도박, 페이셜 타투 등이 꽤나 무거운 이미지들을 던져대고 있지만 딱히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지난 세기의 홍콩 느와르를 끌어온 케이팝 뮤직비디오가 정말 많지만 도박의 이미지를 이만큼 많이 보여주는 작품은 그리 흔치 않다.) 전력이 있어서일지, ‘콘셉트’를 내세우며 나름 즐겁게 살아가는 D&E가 보일 따름이다. 트랩 비트와 결합한 일렉트로 사운드 자체가 환기하는 시대감이 다소 오래됐고 관습적인 멜로디를 포함하고 있는 등 혁신적인 작품이라 하기 힘들지만, 그것도 큰 흠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면, D&E가 즐겁게 살고 있으니까. 그것은 의외로 달성하기 어려운 경지다. 다만 이왕 그렇게, 웬만한 걸 할 수 있는 여유범위가 있다면 조금 더 과감한 것을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랜디: 예산 규모가 크지도, 기획이 과히 섬세하지도 않지만 힙합을 차용해 메타-아이돌의 서사를 들고 나온 점이 아주 독특하다. 특히 ‘파트 2’는 ‘파트 1’에서의 글리치팝의 장르적 발랄함을 다 걷어내고 불량하고 신경질적인 어반 갱스터 느낌으로 재편했는데, 이것이 멤버들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 ‘걸그룹들 하는 양을 보다가 내가 직접 나왔다’는 선언을 아이돌로서 풀어내는 것, 충분히 스왜그로 소화할 수 있을 만한 메시지다.
미묘: 발라드와 R&B로 채운 미니앨범인데 꽤 특색 있다. (비트의 질감이 조금만 더 세련되면 정말 좋겠지만.) 피아노의 무게감을 중심으로 서정이랑 액체에 몸을 푹 담갔다가는, 슬쩍 건져내기만 하듯이 여운을 남기며 각곡이 마무리된다. ‘Glimmer’가 꽤 감정을 격하게 가져가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로맨틱한 가벼움을 잃지 않는 건 성리의 보컬 때문이다. 애절함이 있는 음색이지만 과장하기보다는 조금은 힘을 뺀 듯이 노래하면서 곳곳에서 감정선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것이 주효하다. 전통적인 발라드 가수와 드라마 OST로 수렴하는 ‘적당한 발라드’의 세계와 선을 그으며 독특한 영역을 차지할 가능성을 엿본다.
로지: 아이돌은 6개월 이상 공백기를 가지면 길다고 느껴지는데 해시태그는 왜인지 ‘해시태그의 유닛’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던 유닛 활동을 제외하면 1년 반 만에 컴백을 했다. 신인에게 주어진 방송 기회는 음악 방송뿐이라 컴백을 빨리 하여 무대를 보여주어야 이름을 알릴 수 있는데 아쉽다. 신나는 곡이었던 전작과 달리 걸크러시로 노선을 바꿨다. 그런데 음반 소개에서 말하는 ‘성장한 여성의 느낌’, ‘성숙해진 멤버들이 가진 여성적 매력이 표출’을 보여줄 길이 바닥에 엎드려 허리를 튕기면서 섹시한 척하는 안무밖에 없었던 걸까? 발라드 곡 ‘안녕 이밤’도 멤버들의 보컬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싱글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심댱: ‘선수 입장’. 그야말로 자기의 색깔과 방향을 잘 이해하고 있는 스테파니에게 어울리는 가사다. 뮤지컬의 넘버처럼 무대를 넓게 쓴 안무와 함께 무대 위 긴장, 그리고 유혹의 순간을 레트로 무드로 매만진 ‘Dance Ver.’,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 일렁이는 소울풀한 바이브를 재지하게 담은 ‘Piano Ver.’. 이렇게 두 가지의 편곡이 스테파니의 강점과 매력을 두루 살린다.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Dancer In The Rain’에서의 댄서 이미지를 다시금 볼 수 있어서 반갑다. 역시 선수는 다르다는 말 밖에.
랜디: 5인조 신인 그룹 홀리데이의 데뷔곡. 케이팝 씬에는 이미 나올 만큼 나온 트로피컬 하우스인데도 어두운 코드 진행에 귀여운 스틸팬이나 차임벨 같은 소스를 가미해 세련되게 편곡한 탓에 어설프지 않게 들린다. 특이한 점은 유튜브 채널이나 뮤직비디오가 전혀 없다는 것. 어설프게 만들 바엔 아예 안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대신 음악 방송 무대를 정성껏 꾸몄다. 안무도 준수하고 ‘헤메스’(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링의 줄임말)도 꼼꼼하게 챙겼다. 갈수록 소비자의 눈은 높아지고 신인 런칭의 비용도 올라가고 있는 요즘 같은 때에, 아예 초기 기획 단계부터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한 듯 보인다.
로지: 또 하나의 걸그룹이 데뷔했다. 회사도 신생이고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그룹 같은데 그래서인지 데뷔 싱글임에도 불구하고 뮤직비디오가 없다. 하지만 무대 의상도 곡의 분위기를 살려주기에 충분하고, 무엇보다 멤버들 실력이 모두 골고루 좋은 듯하다. 안무가 꽤 어려운데 라이브를 능숙하게 소화한다. 눈에 띄는 멤버는 새벽과 청음인데, 곡을 잘 이해하고 무대에서 표출한다. 왠지 데뷔 맛보기 싱글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다음에서 홀리데이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는 음반을 기대해본다.
미묘: B.A.P 영재의 솔로 미니앨범. ‘Another Night’과 ‘Gravity’를 더블타이틀로 하고 있는데 두 곡 모두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각각 신스와 브라스로 청량미가 넘실대고, 팝적인 감각과 좋은 취향의 편성이 촘촘한 그루브로 흥을 한껏 끌어올린다. 응어리 있는 듯한 영재의 보컬도 매우 효과적으로 곡을 관통하며 귓가에 뚫고 들어온다. 컴팩트하지만 확고한 네 곡이 담긴 고무적인 EP. 그러나 금발 백인 여성에게 집요하게 따라붙는 ‘Another Night’의 뮤직비디오는 좋게 보아도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데, 주인공이 껄렁한 남자냐 화사하고 상큼한 남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B.A.P에서도 이런 것은 이미 다 뛰어넘었다고 생각했는데.
- 아이돌로지 10주년 : 현 필진의 Essential K-pop 플레이리스트 - 2024-05-13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前 필진) - 2024-04-29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미묘) - 2024-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