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달에 대한 이야길 다루”는 밴드, 엔플라잉의 첫 한국 정규 앨범이다. 2019년 일본에서 발매한 정규 앨범 “BROTHERHOOD”의 ‘Songbird’는 “조금은 두려워도” “우리 함께”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Another space’, ‘Outer space’로 향했었다. 2021년 “Man on the Moon”의 ‘Moonshot’은 두려움 자체를 동력 삼아 달 위에 올라선다.
성급히 내달리지 않고 침착하게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Moonshot’을 발사하는 순간, 생동하는 밴드 사운드에 브라스까지 터져 나온다. 오랜만에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작열하는 록을 구현했다. 앨범 전반을 프로듀싱한 이승협은 긴 공백기를 보내던 시절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공개했던 ‘Living Proof . 1’의 첫 소절을 가져왔다. 스스로 최악의 시기, “스피커의 Booming이 빨라 보일 때”를 끌어와 엔플라잉은 이미 한계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변화를 이뤄낸 자임을 공표한다.
*엔플라잉 ‘Moonshot’ 브릿지 코드* Em7 D |C Bm7 | 숨 죽여 주문 걸어 눈 Am7 G |F#m7(♭5) B7| 감 았 던 내 모 습 은 Em7 D |C Bm7 | Wonderful my universe Am7 |B7 | Always be shine
노래는 헤매거나 망설이는 법 없이 목적지를 향해 간다. 연이어 하행하다가 끝자락에 반등하는 브릿지의 코드 진행은 극적인 상승감을 불어넣는다. 이어지는 멜로디도 후렴 일부를 3도 위로 변형해 진행하며 중력에 도전한다. 마지막으로 반복되는 후렴은 E단조에서 한 키 위, F단조로 전조하고 모두가 “If you wanna change, be not afraid”를 외치며 추진력을 쏟아낸다. 이 마무리 떼창은 음악방송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멤버들이 충분히 카메라에 잡히게 만드는 장치인 동시에, 청자에게 몰입감과 고양감을 선사하고 라이브 공연을 고대하게끔 만든다. ‘봄이 부시게’부터 꾸준히 전혀 다른 성격의 두 무대를 충족시키는 타이틀을 찾아온 이들은 영리하게 균형을 잡았다.
피아노 아르페지오로 조심스레 시작하는 ‘Ask’는 잔잔함을 유지하다가 마지막 5단 고음이 강한 임팩트를 남긴다.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구성이지만 빼곡한 디테일이 편안하게 듣는 맛을 살린다. 화려한 기교를 부리기보다 기타 레이어를 풍부히 쌓아 잔물결을 만들고 밀도를 높였다. 무의미한 공허를 허용하지 않는 드럼과 베이스 위에 담백한 랩과 물기 어린 보컬이 대조를 이룬다.
강박에 시달리는 순간을 담은 ‘쉼표’는 마냥 무력하게 가라앉지 않으려는 듯 피아노가 반복해 도약한다. ‘Moonshot’과 ‘Moon & Cheese’ 등 이상을 추구하던 이들의 이면을 보여줌으로써 “Man on the Moon”의 인간상은 단순히 이상적인 주인공을 넘어 현실감을 갖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공감대는 이제껏 쌓아온 위로와 응원의 노래들을 뒷받침한다.
4번 트랙 ‘지우개’부터는 사랑 이야기 혹은 사랑에 빗댄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지우개’는 시원하게 빠진 사운드와 단단하게 차오른 이승협의 보컬이 돋보인다. Justin Reinstein과 오랜만에 의기투합한 ‘You’는 청량하고 경쾌하면서도 엔플라잉 특유의 가요적 색채를 보여준다. 앨범 내에서는 팝적인 곡이지만 같은 회사, 같은 작곡가의 손을 거친 SF9의 ‘One Love’, 씨엔블루의 ‘It’s You’ 등과 비교했을 때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파란 배경’은 풍성한 보컬 코러스와 신시사이저 아래 베이스 라인이 한껏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운드를 치밀하게 채웠으면서도 가뿐하다. 느긋하고 상쾌한 코러스에서 베이스를 서늘하게 뚝 떨구며 속도감 있는 랩 파트로 넘어가는 등 완급조절이 탁월하다. 알앤비 스타일의 테크닉까지 섭렵한 유회승에 감탄할 즈음 낯선 목소리가 등장한다. 베이시스트 서동성이 브릿지 파트를 불렀는데, 공기를 넉넉히 머금은 말간 음색이 강도 높은 두 메인보컬 사이 적절한 완충재 역할을 하는 동시에 곡에 부력을 더한다.
‘이 별 저 별’은 홀가분하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지우개’와 함께 가장 먼저 귀에 맴돈다. 힘을 빼고 가볍게 털어 내는 유회승의 목소리는 제법 색다르게 들린다. 다이내믹을 크게 가져가면서 잘게 사운드를 채우는 드럼도 매력적인 요소다. 떠나는 시점의 ‘이 별 저 별’에서 남겨진 시점으로 다음 트랙 ‘빈 집’은 연결된다. 이별 이후의 상황을 그리는 ‘빈 집’과 ‘너에게’는 나긋하게 애틋한 감정선을 이어간다.
서브곡 ‘Flashback’은 기성 록 발라드 문법을 따르지만 출중한 보컬과 연주 기량으로 고전미를 발한다. 탐을 묵직하게 운용하면서 섬세하게 고스트를 깐 드럼이 노래를 지탱하고 웅장한 피아노와 스트링 사이 베이스가 유려하게 흐른다. 브릿지에 기타 솔로가 치고 나와 화룡점정을 찍는다. 가사는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하지만, 멜로디와 코드 진행은 미련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듯 좀처럼 뒤돌아보지 않는다.
전작 “So, 通”은 망원경을 새로 장착한 이들이 갈 수 있는 극단점들을 제시했다면, “Man on the Moon”의 10곡은 넓게 펼쳐져 있는 기존 곡들의 간극을 메운다. 대부분의 멤버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며 스스로에게 더 능숙해진 모습으로 음악적 세계관을 견고히 다지고 확장했다. 다른 무엇보다 듣기 좋은 음악이라는 불변의 원칙에 충실하려는 노력들이 엿보여 즐겁다. 첫 정규 앨범을 대하는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찍은 이 발자국은 더 거대한 도약을 도모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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