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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 2021년 9월 – 앨범

2021년 8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정규앨범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앨범을 다룬다. 에이스, NCT 127, 양요섭, 있지, 도한세, 키, AB6IX 등.

2021년 9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정규앨범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앨범을 다룬다. 에이스, NCT 127, 양요섭, 있지, 도한세, 키, AB6IX 등.

Changer : Dear Eris
비트 인터렉티브
2021년 9월 2일

스큅: 유닛 곡의 완전체 버전, 영어 발매곡의 한국어 버전, 한국어 발매곡의 영어 버전, 리믹스 트랙에 이르기까지, 기발매곡의 리부트 버전에 신곡을 더해 발매한 다소 독특한 형태의 리패키지 앨범 "Changer"는 에이스가 우악스러운 완력 하나로 거침없이 전진해온 지난 4년 반의 세월을 말쑥하게 압축해 보인다. 이전 앨범의 타이틀곡 'Higher'처럼 청량한 사운드마저 박력 있게 채워버리는 에이스 식의 청량감을 보여주는 타이틀곡 'Changer', 그리고 각기 다른 표정의 스웨거를 과시하는 'Black and Blue'와 'Down'의 리부트 버전을 지나면, 케이팝에 의해 재구성된 오리엔탈리즘을 전시했던 '도깨비'의 아성을 잇는 인털류드 격 트랙 '진도 아리랑 (Prequel)'이 펼쳐진다. 뒤이어 흉포한 퍼포먼스로 이름을 알린 데뷔곡 '선인장'이 위화감 없이 녹아드는 모양새는 단연 압권이다. 그러나 에이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룹의 최근 사운드 지향에 근접하게 편곡해낸 '선인장'의 리믹스 트랙과 팬송의 신파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Remember Us'까지 나아가며 앨범을 마무리한다.
에이스의 미학은 케이팝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과잉되다 싶을 정도로 재현해내고 수행해버리는 데서 나오는 신랄함에 있었고, "Changer"는 그 집약체이자 결정체와도 같은 앨범이다. 이들의 과거 주특기였던 이른바 "메타-후까시"(2019년 연말결산에 게재된 'Undercover' 뮤직비디오 평을 참조)부터 강력하게 표백해낸 근래의 '청량' 보이그룹 팝, 팬송의 클리셰까지 한데 담아낸 앨범을 들으며 이들보다 더 케이팝을 잘 간파하고 있는 팀은 없으리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케이팝이라기보다는 케이팝에 대한 탐구와 그 재현에 가까운 듯한 감각은 학술적 목적으로 결성되었던 그룹 EXP(와 그 후속 그룹 EXP Edition)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이러한 결과물을 산업 내부에서 완연한 완성도를 갖춘 형태로 마주하게 되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Sticker
SM 엔터테인먼트
2021년 9월 17일

스큅: NCT 127의 이전작들에 비해 정규 3집 "Sticker"는 다소 불친절하다. 타이틀곡 'Sticker'부터가 그렇다. 물론 귀에 거슬리는(jarring) 사운드 소스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것은 NCT 127이 '소방차', 'Chain', 'Simon Says', 'Wakey Wakey', '영웅', 'gimme gimme' 등의 곡들에서 줄곧 보여주었던 주특기다. 그러나 대개 빡빡한 사운드 간의 마찰과 파트 간 낙차 조절로 쾌감을 자극했던 과거와 달리, 째지는 피리 소리 모티브가 미니멀한 구성의 곡을 송두리째 휘어잡는 'Sticker'는 해소되지 않은 (정확히는, 의도적으로 해소하지 않은) 삐걱거림을 보다 전면에 노출한다. 여기에 멤버들의 두터운 보컬이 빈틈 없이 채워지니 부대낌은 더욱 배가된다. 이 의도된 불협에서 빚어지는 자극을 즐기는 데에는 이들의 데뷔 초 '네오'한 스타일링과도 비슷한 문턱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앨범 역시 인털류드 트랙을 중심으로 그룹의 무지막지한 스펙트럼을 응집력 있게 제시했던 1집 "Regular-Irregular", 2집 "Neo Zone"과 비해, 'Sticker'를 필두로 기이한 '네오'함을 전시하는 전반부와 'Magic Carpet Ride', 'Road Trip' 이후로 펼쳐지는 사근사근한 후반부의 괴리감이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Sticker"가 NCT 127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착실히 이행한 앨범임에는 분명하다. 예리하게 벼린 사운드가 돋보이는 'Sticker', 'Lemonade', 'Far', 'Bring The Noize', 유려한 R&B '같은 시선', '내일의 나에게', 'Magic Carpet Ride', 고전적이다 싶을 정도로 정석적인 보이밴드 팝 'Road Trip', 'Dreamer', '다시 만나는 날'까지. 수록곡 모두 그룹이 데뷔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온 스타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멤버들의 탄탄한 보컬 앙상블 역시 어느 때보다도 돋보인다. 단출한 구성의 ‘Sticker’를 맥빠짐 없이 대차게 끌어가는 힘은 분명 멤버들에게 있으며, 'Lemonade', 'Bring The Noize' 등의 곡에서 간만에 묵직한 랩 파트를 맡은 재현, 전곡에 걸쳐 보컬 기동성이 확장된 해찬, 정우, 유타 등 한껏 높아진 멤버 활용도 역시 돋보인다. 익살스러운 뉘앙스가 살아나는 'Dreamer'에서는 멤버들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케 되기도 한다.
귓속을 어지러뜨리는 'Sticker'부터 슈가 러쉬와도 같은 후반부의 안온한 팝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공허한 자극의 나열로 느껴질지 모를 앨범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공허한 자극"이야말로 '꿈'을 소재로 한 형이상학적인 세계관 아래 작동해온 NCT와 NCT 127의 근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NCT와 NCT 127이라는 브랜드의 핵심만큼은 놓치지 않은 앨범.

예미: 고전적인 보컬 팀의 면모와 최첨단의 '네오'함을 아우르는 NCT 127의 바운더리는 "Sticker"에서도 유효하다. 타이틀곡 'Sticker'는 전작 '영웅'으로 형성된 기대치를 배반하는 미니멀한 사운드와 힘 있는 보컬이 빚는 불협화음, 카우보이 콘셉트까지 모든 요소가 충돌한다. 팀의 그간 디스코그래피와 'Lemonade', 'Bring The Noize' 등 래핑과 공격성이 돋보이는 수록곡은 'Sticker'가 보여주는 충돌을 '네오'하다고 해석할 수 있게 해 준다. '내일의 나에게', 'Magic Carpet Ride', 'Road Trip', 'Dreamer' 등에서는 탄탄한 보컬 기본기와 하모니 연출이라는, NCT와 SM의 장기가 드러난다.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울 만한 곡이('Breakfast', 'Far') 존재하기는 하나, 각 곡의 준수한 완성도에 비해 앨범으로서의 단단함은 다소 부족하여, 고전미와 '네오'함이 파편화되어 나열된 듯한 인상을 준다. "Sticker"는 현재의 NCT 127이 잘하는 것을 찬찬히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전작 "Neo Zone"이 입증한, 팀의 양면을 묶어내는 앨범이 가진 파괴력을 "Sticker"에서 다 보지 못한 점이 아쉬울 뿐이다.

Chocolate Box
어라운드 어스
2021년 9월 20일

마노: 솔로 명의로서는 가장 크게 히트한 바 있는 '카페인'의 리바이벌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타이틀곡 'BRAIN'을 지나, 대체로 느긋하고 촉촉한 무드의 미디움 템포 R&B 트랙들이 쭉 이어진다. 큰 기복 없이 마치 한 곡인 것처럼 일정한 기조를 유지하다, 중후반부의 '나만'에서 슬쩍 상승하려는 듯하더니 분위기를 조금 바꾸어 비교적 말랑하고 보송한 무드의 트랙들로 후반부를 채우곤 전체 트랙 중 가장 업 템포의 곡인 'YES OR NO'로 마무리 짓는다. 아티스트의 가장 큰 무기인 음색과 가창력을 십분 살릴 수 있는 트랙들로 앨범을 풍성하게 채웠는데,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일정함 내지는 일관성이 좋은 의미로서의 유기성으로 작용할지 혹은 흐름을 단조롭게 만드는 악재로 작용할지는 듣는 이가 판단할 몫이겠다. 한편으로는 '메인보컬이라면 모름지기 정통 발라드를 내세워야 한다'는 암묵의 클리셰로부터 약간은 비껴가 있다는 점에서 어떤 미덕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군데군데 양요섭이 직접 작업한 곡들이 포진해 있는데, 그중 재지한 구성의 'Good Morning'을 가장 인상 깊게 들었다.

심댱: 얇지만 호소력 있는 보이스 톤을 지닌 양요섭은 어쩐지 바이올린을 연상시킨다. 그의 목소리는 현이 연출하는 풍부한 감성(축축하게 내려앉는 처량함, 포근한 위로, 다정한 회상 등)과 엇비슷하게 겹치기에, 그의 솔로 앨범은 유독 쌀쌀한 가을이나 겨울을 타깃으로 하는 것 같다. 용준형의 자기장 아래서 펼치던 '카페인', 곡 참여를 통해 영리한 자기 인식이 빛났던 '네가 없는 곳'을 넘어 'BRAIN', 그리고 "Chocolate Box"에서는 그만의 여유를 발견할 수 있다.
'BRAIN'은 양요섭의 보컬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정서 중 앙금과 같은 (흔히 고음으로 표현되곤 하는) 절절함, 미련을 비워내고 남은 말간 내용물처럼 보인다. 서늘한 휘파람 소리, 애수 어린 멜로디 사이사이 읊조려지는 낮은 목소리는 쓸쓸함을 쉽게 느끼게 하는 한편, 보컬은 곡이 깔아준 정서에 앞서지 않고 절제하며 여유로우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여유로움은 섬세한 트랙 리스트 배치에서도 들을 수 있는데, 트렌디하면서도 부드럽게 귀를 길들이는 'Chocolate Box', (보컬과 교수님들의 용맹한 전투와 같던) 'LOVE DAY'를 연상할 수 없는 능숙한 초대('느려도 괜찮아'), 아티스트이자 개인의 고민을 봄날의 시샘 어린 추위에 담은 '꽃샘'을 포함해 로맨스와 자기 고백을 가로지르는 12곡까지 달려도 귀를 쉬이 지치지 않게 한다.
수록곡 중 'Body & Soul'은 조명이 은은한 카페에서 들을 법한 '척' 뒤에 배치되어 미끄러지듯 흘러가지만, 특유의 파우더리(powdery)한 질감이 'BRAIN'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의 매력을 살리기에 조금 더 주목해 본다. 비슷한 듯 조금은 다른 맛을 가진 "Chocolate Box"는 여러 가지를 아무튼 다 담았다는 의미로서의 백화점이 아닌 고급스러운 여유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백화점스러웠다. 양요섭이 섬세하게 담은 초콜릿과 같은 트랙들 사이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맛을 찾을 수 있길, 그리고 즐길 수 있길 바라본다.

CRAZY IN LOVE
JYP 엔터테인먼트
2021년 9월 24일

에린: "CRAZY IN LOVE" 속 있지는 사랑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주저함 없이 드러낸다. 'LOCO'에서부터 있지의 저돌적인 고백이 시작된다. 날카롭게 내리꽂는 "I feel like I was born to love ya"라는 고백은 상대방의 응답을 기대하는 고백이기보다는 상대방을 향한 자신의 사랑 감정 그 자체의 공격적인 표현이다. 'LOCO'의 저돌적인 고백으로 시작한 앨범은 사랑과 관련된 다층적인 감정을 일관적으로 거침없이 드러내는 방법을 선택한다. 일정한 비트 위에 멜로디를 더해주는 랩이 돋보이는 'SWIPE'에서는 모바일에서 귀찮은 소리를 하는 상대방을 손쉽게 화면을 넘기는 터치로 거절의 의사를 표시하고, 'Sooo Lucky'에서는 시원한 기타 사운드를 사용하여 상대방과 서로 마음이 통해서 기쁘다는 감정을 만끽한다. 'B[OO]M-BOXX'는 이미 상대방의 감정을 뻔히 알고 있으니 솔직하게 표현하라는 메시지에는 당돌함으로 가득 차 있고, 'LOVE is'는 사랑의 복잡함으로 답답해하지만 후렴구의 합창에서 마음껏 사랑을 주고 후련히 이별할 것임을 외치고 있다. 앨범 전체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주제로 잡은 것은 전형적이나, 있지의 무대 속 카리스마를 사랑에 대한 저돌적인 태도로 승화하여 일관적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적절한 선택으로 다가온다.

예미: "CRAZY IN LOVE"의 가장 큰 매력은 10대 후반~20대 초반 여성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는 것이다. 'SWIPE', '#Twenty' 등의 수록곡은 현실적인 Z세대의 생활양식을 가사와 음악으로 살린 점이 매력적이었다. 랩의 비중이 큰 트랩 기반의 곡이 앨범 곳곳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전작 "GUESS WHO"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사운드가 가벼워지고 랩 디렉팅이 개선되어, 멤버들의 통통 튀는 음색과 일상 속 사랑을 다룬 가사가 밀착되어 설득력을 더했다. '달라달라'부터 가까이는 '마.피.아. in the morning'까지 간간이 존재했던, 기성세대가 그들 시대에 맞춰 상상해낸 청년의 정서를 Z세대 아티스트가 외쳐 느껴진 괴리감이 앨범 전체에서 줄어든 점이 긍정적이다. 다만 커리어 축적에 따라 팀이 변주와 도약을 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보 속에서 본작은 비교적 안전한 지점에 머무르고 있다. 있지가 품은 에너지를 "CRAZY IN LOVE"보다 더 입체적으로 풀어갈 여지는 많아 보인다. 이들의 수준 높은 퍼포먼스에 'LOCO'보다 세련된 타이틀곡을 입힐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BLAZE
플레이엠 엔터테인먼트
2021년 9월 25일

스큅: 위악적으로 짓이기는 랩 방식, 젠더의 경계를 허무는 스타일링, 핫 아이콘으로 부상하는 이단아로서의 포지셔닝 등. 'TAKE OVER'와 'Public Enemy'를 더블 타이틀로 한 "BLAZE"가 내보이는 도한세의 캐릭터는 "One Of A Kind"에서부터 "쿠데타", "권지용"에 이르는 지드래곤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차이점은 그의 얼굴에 비치는 혈안(血眼)이다. 지드래곤이 자신을 둘러싼 왈가왈부를 따돌리고 여유롭게 얄궂은 유희를 향유했다면, 악에 받친 듯한 도한세의 랩은 앨범 내내 좀처럼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듯 들린다. 짓궂은 위악을 빙자해 에너지를 한껏 난사하는 트랙들과 그에 맞춰 숨구멍 없이 내뱉는 플로우는 일견 화려해 보이나, 결국 전위적인 호쾌함보다도 절치부심의 피로감을 잔여물로 남긴다. 케이팝 보이그룹이 결정적인 순간 꺼내 드는 도취적인 '악동' 캐릭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기 이전에, 캐릭터를 구축하고 구현해내는 방식에 회의가 드는 솔로 데뷔 EP.

BAD LOVE
SM 엔터테인먼트
2021년 9월 27일

마노: 전작이며 솔로 데뷔작이었던 "Face"가 "'아티스트 키' 혹은 '인간 김기범'"의 아이덴티티를 오롯이 드러내고 조형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EP는 (프로모션 당시의 여러 인터뷰에서도 공공연히 언급했듯) 그의 오랜 욕구를 드러내며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미래지향적이며 '커팅-에지(cutting-edge)'한, 아티스트 본연의 매력을 극대화하기에 알맞은 사운드와 콘셉트를 능수능란하게 밀어붙이는 솜씨에는 '역시'라는 탄복이 절로 터져 나온다. 스타일링 등에서 언뜻 비치는 젠더 교란적 이미지, 가사 및 콘셉트 등에서 드문드문 포착되는 SF 레퍼런스, 레트로한 무드로 이루어진 트랙 구성 등에서 그가 꾸준히 '워너비'로 호명해온 데이비드 보위가 연상되기도. "Face"의 수록곡 'Imagine'의 연장선상에 놓인 듯 날카롭게 몰아치는 'Helium'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이 EP의 백미.

스큅: "우린 정상이길 거부한 사람들이니까." 앨범 발매 하루 전 진행된 온라인 콘서트에서 그가 스쳐 지나가듯 남긴 말이 귀에 박혔다. 케이팝 씬(scene) 내 샤이니라는 그룹의 이질성도 있지만, 그중 유독 키는 언제나 (그것이 어떠한 것이건) 소위 "정상"이라 일컬어지는 통념과 규준에서 한 발짝 비껴서 있던 사람이었다. 5년 전 JTBC 〈말하는 대로〉에서 그는 자신을 선천적인 재능으로 우아하게 헤엄치는 백조가 아닌 보컬도, 춤도, 비주얼도 타고나지 않은 닭과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데뷔 초 이수만 프로듀서에게 보컬과 춤, 비주얼에 대한 칭찬과 조언을 들은 다른 멤버들과 달리 "너는 이마가 넓으니 성공하겠지"라는 말을 들었다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청담동 편집숍을 발로 뛰며 패션 업계에 이름을 알리고 스스로를 브랜딩해간 그의 행보 역시 통상적인 아이돌의 커리어 발전사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띠었다.
제대 후 '엔딩요정'의 새로운 유행을 불러왔던 샤이니 활동과 각종 예능을 통해 이목을 끈 현재, 그는 비로소 자신이 고집스레 쌓아 올린 취향의 결정판, 레트로 스페이스 위로 청중을 잡아끈다. 외계 생명체들이 노니는 그곳은 별종 소리를 들었던 그가 곧 “정상”이자 통념이자 규준이 된, 이른바 "닭 그라운드"다. 그가 오롯이 조타수로 자리한 덕인지 근래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발매작을 통틀어 이례적인 수준의 프로덕션 합치도가 빛난다. 우선 음악적으로는 레트로 스페이스 테마에 걸맞게 신스웨이브 사운드를 주축으로 한 극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타이틀곡 'Bad Love'는 "널 빛이며 어둠이라고 불러", "환희도 절망도 나의 것", "번지는 불길처럼 더 커져"와 같은 문어적인 표현을 비장한 가창과 구도 연출에 집중한 안무에 실어나르며 가련하고도 강렬한 멜로드라마를 폭발적으로 그려내고, 이어지는 수록곡에서도 이와 같은 연극적인 퍼포먼스가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중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단연 'Helium'인데, '헬륨'이라는 곡의 소재에 걸맞게 정착되지 않는 화성 위를 고고하게 부유하는 멜로디와 그를 가뿐하게 수행하는 키의 애티튜드가 돋보인다.
이외에 자신만큼이나 콘셉트를 상징하는 외계 생명체들을 비춘 무드 샘플러와 티저 이미지, 문방구에 파는 장난감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앨범 패키징, 비극적인 사랑에 몸부림치는 모습과 우주선이 함락되는 장면을 교차시키는 뮤직비디오, 다수의 댄서를 동원해 입체적으로 연출된 퍼포먼스, 색색깔의 복면을 쓴 백업 댄서 스타일링,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의 영향을 받은 키 본인의 스타일링에 이르기까지. 앨범을 둘러싼 모든 요소가 어느 하나 허투루 짜인 구석 없이 키의 세계를 쌓아 올리는 튼튼한 자재로 자리하고 있다. "저마다 복잡다단한 심상이 녹아있는 악곡, 가사, 안무, 뮤직비디오를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서 내놓"는 선미와 더불어, '별나다' 소리를 듣던 자신의 캐릭터를 케이팝 프로덕션을 동원해 입체적으로 연성해나가는 훌륭한 '아이돌 아티스트'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정성' 자체가 곧 고평가될 가치인 것은 아니라지만, 케이팝 아이돌의 정형에서 이탈함으로써 대외적인 '진정성'을 확보하려는 구도에 갇히지 않고 케이팝의 정수를 파고들며 '진정성'을 타진해나가는 이들에 대해 분명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가 일궈낸 "닭 그라운드"는 분명 현/후세의 또다른 "닭"들에게도 좋은 영감이 되지 않을까.

MO' COMPLETE
브랜뉴뮤직
2021년 9월 27일

랜디: AB6IX가 정규 2집 "MO' COMPLETE"를 내놓았다. 지난 정규앨범 이후 2년 만의 발매다. "Be complete"에서 "More complete"로 변한 앨범의 제목처럼 곳곳에서 변화와 성장이 눈에 띈다. 트랙 수도 그렇고, 멤버들의 음악적인 능력도 그렇다. 특히 타이틀곡 'CHERRY'에는 이전부터 꾸준히 곡을 써온 이대휘의 멜로디 감각이 가사 속의 과실처럼 달콤하게 무르익어있다. 이제 케이팝 씬(scene)에서 곡 쓰는 아이돌이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존재지만, 단지 곡을 쓴다는 행위에 의미를 두는 초보 단계의 창작자도 적지는 않다. 이제 이대휘의 감각은 기성 작곡가들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다. 트랙마다 각각 다른 무드를 지녔지만, 앨범 전체로 볼 때는 결국 비슷한 레벨의 적당한 생동감이 느껴져 들쑥날쑥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타이틀곡에서 쫄깃한 인스트루멘탈과 달리 박자가 엇맞는 부분들이 들린다는 점이다. 딱히 한 부분을 꼽을 것이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불쑥불쑥 그런 구간들이 있다. 그루브를 위해 의도된 엇박이 아니라 프로듀싱이 급하게 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는 부분이라 아쉽다. 이는 이번 앨범뿐 아니라 'BREATHE' 같은 이전 곡들에서도 종종 느껴지던 점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곡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레코딩의 아쉬움을 라이브로 상쇄할 수 있을 만한 것이라 짐작한다. 또 다른 추천곡은 'SIMPLE LOVER'. AB6IX 하면 떠오르는 그 느낌, 앳되면서도 세련된 기분 좋은 바이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곡이다. 누군가 '요즘 케이팝은 어때?' 하고 묻는다면 첫 번째로 추천하고픈 앨범이다.

에린: AB6IX의 "MO' COMPLETE"는 트랙 간의 무게감을 조절하며 그룹의 소소한 감성들을 담아낸다. 앨범의 첫 곡 'SHOWDOWN'는 꿈을 이룰 것이라는 선언으로 비장하게 앨범의 포문을 열지만, 앨범은 무거운 비장함을 이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Level Up'을 통해 현실을 헤쳐나갈 것이라는 태도로 유쾌하게 전환한다. 앨범 초반부의 비장함을 유쾌함으로 전환한 덕분에 앨범의 타이틀 곡 'CHERRY'로의 연결이 자연스럽다. 'CHERRY'는 상대방에 대한 수줍은 마음을 통통 튀는 멜로디 라인으로 표현하여 고백의 장면을 구현해낸다. 이러한 소소한 감성의 표현은 앨범 후반부 트랙 'OFF THE RECORD'에 더욱 강조되는데, 어설픈 사이에서 주고받는 메시지 속에 마음을 표현하는 설렘을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앨범 중반부에 자리한 라틴 팝 트랙 'DOWN FOR YOU'도 라틴 팝의 끈적함을 강조하기보다는 AB6IX의 산뜻함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돋보이고, '그해 여름'과 '사라지지마'로 찰나의 설렘을 포착하며 아련하고 낭만적인 감성을 표현한다. 앨범 초반부 꿈을 향한 포부는 후반부의 '믿어'로 이어지는데, 서로 간의 믿음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그룹으로서의 결집을 강조하고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에 함께하는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한다. 강렬한 퍼포먼스에 집중하기보다 소소하고도 유쾌한 감성으로 가득한 트랙들을 배치하여 그룹의 서정성에 초점을 맞춘 "MO' COMPLETE"는 그 표제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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