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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러블리즈! : ①나의 짝사랑 이야기 – 러블리즈라는 소녀에 대하여

2021년 11월 16일, 울림 엔터테인먼트의 전속 계약 만료 이후 멤버들이 거처를 달리하며 그룹 러블리즈의 활동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3세대 걸그룹이 부상한 이래로 독특한 입지를 점해왔던 그들을 기리며, 〈아이돌로지〉는 “굿바이, 러블리즈!” 특집을 준비했다. 첫 번째 글 “나의 짝사랑 이야기”에서는 필자 조은재가 러블리즈라는 소녀에 대하여 고찰한다. 러블리즈가 없는 겨울이 저만큼 왔지만, 그들을 품은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봄처럼 따뜻할 것이다.

2021년 11월 16일, 울림 엔터테인먼트의 전속 계약 만료 이후 멤버들이 거처를 달리하며 그룹 러블리즈의 활동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3세대 걸그룹이 부상한 이래로 독특한 입지를 점해왔던 그들을 기리며, 〈아이돌로지〉는 “굿바이 러블리즈!” 특집을 준비했다. 첫 번째 글 “나의 짝사랑 이야기”에서는 필자 조은재가 러블리즈라는 소녀에 대하여 고찰한다. 러블리즈가 없는 겨울이 저만큼 왔지만, 그들을 품은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봄처럼 따뜻할 것이다.

3세대 여자 아이돌의 커리어가 분수령을 맞은 시기, 러블리즈는 그룹 활동을 잠정적으로 멈추고 멤버 개인 활동에 집중할 것을 시사했다. 러블리즈의 소속사 이적과 동시에 3세대 여자 아이돌의 종언과 4세대 여자 아이돌의 부상을 체감하는 이가 적지 않다. 러블리즈가 비록 3세대 전체를 대표할만한 위상은 아니었을지라도 3세대 여자 아이돌 신(scene)을 생각했을 때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를 꾸준히 소구해오던 그룹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세대와 4세대의 분기점에서 등장한 블랙핑크의 영향으로 강렬한 사운드에 카리스마를 부각하는 퍼포먼스로 무장하는 것이 4세대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면, 3세대는 좀 더 멜로딕한 음악에 섬세하게 포메이션 된 퍼포먼스를 앞세우는 것이 주된 이미지였다. 그리고 러블리즈는 3세대 여자 아이돌 중에서도 가장 선이 여리고 고운, 그만큼 정교하고 촘촘하게 잘 짜여진 퍼포먼스로 자리매김 해왔다. 때로는 이 ‘부드러움’이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아이덴티티의 가장 큰 축으로 남게 되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겠다.

2016.04.25 러블리즈 “A New Trilogy” 쇼케이스 현장

그러나 여리기만 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는 쉽지 않다. 4세대에 들어와 많은 아이돌이 무용해 보이는 ‘쎈캐 경쟁’을 하는 것 또한 무대에서는 강렬한 것이 잔잔한 것보다 더 쉽고 빠르게 각인된다는 대전제와 무관하지 않다. 3세대가 한창 부흥하던 당시에도 여자 아이돌 성공 공식으로 꼽히는 것은 ‘캐치한 퍼포먼스’라든가 ‘힙한 이미지’, ‘활기차고 파워풀한 안무’ 등이었지 ‘청순’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블리즈는 독보적이고 강렬한 청순함을 각인시켰다. 연출 톤은 부드럽지만, 러블리즈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선은 충분히 격정적이면서 역동적이고, 이 점을 음악과 퍼포먼스에서 충분히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청순계 걸그룹답게 러블리즈의 노래 가사 대부분은 순애보를 바탕으로 한 짝사랑의 서사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짝사랑은 동시에 아주 강한 자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감정이며, 러블리즈의 짝사랑은 그 대상이 어떠하다는 묘사보다 짝사랑을 하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표현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것은 가장 소녀적인 서술 방식으로, 스스로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섬세하면서도 격렬한 감정의 동요를 인식해낼 수 있는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서사이기도 하다.

감정의 동요가 격한 만큼 러블리즈의 보컬과 댄스는 마치 마음을 알아달라는 고백의 말처럼 다른 그룹에 비해 명료하고 명확하게 연출되는 경향이 있다. 케이의 드라마틱한 보컬과 류수정의 아련한 음색, 처연한 무드를 극대화하는 진의 보컬과 날카로운 포인트를 만드는 베이비소울을 중심으로 미성의 다른 네 명의 보컬이 적소에 배치되어 복잡다단한 짝사랑의 심층을 쌓아나간다. 또 멤버가 짝수임에도 불구하고 페어 안무와 대형 조합을 다양하게 연출해 여러 멤버가 골고루 주목받을 수 있도록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특히 이미주와 정예인의 춤선은 러블리즈가 다른 ‘센 콘셉트’의 그룹보다 퍼포먼스 측면에서도 절대 약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래서 러블리즈는 누구보다 생기 넘치는 소녀상을 보여준다. 케이의 애교스러운 말투와 이미주의 명랑한 입담도 모두 ‘러블리즈다운’ 모습이다. 짝사랑 중인 소녀를 가까이에서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소녀는 그들의 숫자만큼의 짝사랑 방식을 갖고 있다. 그 주체할 수 없는 감정선을 이리저리 표현하고 또 감추는 것이 짝사랑의 전부이며, 러블리즈가 격렬한 비트를 감추거나 복잡한 멜로디를 꺼내놓는 식으로 생동감을 연출하는 방식과도 닿아있다. 마음을 영영 숨길 것처럼 고요하다가도 한 번쯤 왁 소리 내며 관심을 끌기도 하는 소녀의 모습과 똑 닮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러블리즈가 ‘Obliviate’로 다시 한번 변주를 시도한 시점에서 완전체 활동을 멈춘 것은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다. ‘Destiny’ 이후로 다시 한번 어둡고 예민한 단면을 연기해낸 러블리즈가 ‘짝사랑’이라는 대주제를 확장할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비극으로 끝나기 쉬운 짝사랑임에도 불구하고 러블리즈의 곡들은 대체로 밝은 콘셉트가 주를 이루었는데, 유일하게 비극성을 극대화한 곡이 바로 ‘Destiny’와 ‘Obliviate’였다. ‘Destiny’와 똑같이 삼각관계의 비극을 노래한 ‘삼각형’이나, ‘Obliviate’와 마찬가지로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잊는 ‘그날의 너’와는 완벽한 대칭점에 놓인 곡들이다.

러블리즈의 짝사랑은 서사적 비극보다는 자의식에 기반한 감정 표현에 집중했기에 밝고 생기있는 청순 콘셉트로 표현해내는 것이 가능했다. 생각해보면 짝사랑이 늘 슬프지만은 않았던 보편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이입할 수 있는 부분이겠다. 이 ‘프로 짝사랑러’가 늘어놓던,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짝사랑 이야기’를 당분간 들을 수 없게 된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러블리즈의 데뷔곡 ‘Candy Jelly Love’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우리 어디까지 갈는지 어떻게 될 건지 나는 몰라도 겁먹진 않을래요”. 러블리즈라는 소녀의 여린 이미지 아래에는 늘 이렇게 담대한 포부가 깔려있었고, 그것이 러블리즈가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무사히 사뿐사뿐 걸어온 원동력이 되었다. 막연한 미래를 향해 불친절하고 가혹한 현재를 헤쳐나가야 하는 모든 소녀가 러블리즈와 같은 담대함을 갖기를, 그리고 러블리즈 멤버들 또한 앞으로 쭉 그러하기를 바라본다.

By 조은재

우리 존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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