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작품의 재발견과 ‘역주행’이 빈번해진 시대, “N년 전 이달”은 N년 전 이달에 발매된 고전, 수작, 그리고 문제작들을 되짚어본다.
2026년 8월 ‘N년 전 이달’에는 13년 전 엑소, 3년 전 트리플에스에 대한 평이 수록되었다.
13년 전 8월

예미: 타이틀곡의 제목 ‘으르렁'에서 자연스레 떠오른 전작 ‘늑대와 미녀'의 잔상은 전작과 전혀 다른 곡조와 스타일링을 통해 긍정적으로 배반당한다. 곡 내내 반복되는 신스 리프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보다 편안히 오를 수 있는 발판으로 작용했으며, 무게를 덜고 R&B식 기교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며 코러스를 쌓는 멤버들의 가창은 당대 영미 팝 보컬을 연상케 하며 곡에 세련미를 부여했다. 빈 공간을 교복 입은 열두 멤버의 퍼포먼스로 채우는 원테이크 뮤직비디오는 간결한 트랙과 맞물려 그룹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낸다. 1, 2절 벌스(verse)에 멤버를 6명씩 세우다가 마지막 후렴을 앞두고 12명을 모두 모으는 인원 배치는 얼핏 K와 M으로 나뉜 그룹 구조를 보여주는 척, 러닝타임 내내 두 유닛의 멤버들을 고루 섞어내어 완전체 엑소를 각인시킨다. 특히 후반부에서 카메라를 통해 열두 멤버의 다채로운 대형 변화를 짚어내는 장면은 카메라 워킹이 아이돌 퍼포먼스의 구성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전사의 후예'로 데뷔한 소속사 선배 H.O.T가 ‘Candy’로 정상에 오른 것처럼, ‘MAMA’와 ‘늑대와 미녀'로 커리어를 시작한 엑소는 ‘으르렁'으로 열풍을 일으켜 남자 아이돌 시장의 1인자로 수년간 군림하게 되었다. 이 곡으로 시작된 엑소의 거대한 성공은 음반 판매량을 주된 지표로 삼는 보이그룹 시장의 규모를 확장시키고, 소위 ‘김여주'로 대표되는 ‘빙의글’의 범람 등 팬덤 문화 번성에 불을 지폈다. ‘으르렁'의 파급력은 본디 SM의 정통 하드코어 보이그룹을 지향했던 엑소의 기획 방향에도 영향을 끼쳐, 이후 엑소는 ‘CALL ME BABY’, ‘LOVE ME RIGHT’, ‘불공평해' 등 직관적인 R&B 팝을 그룹의 중요 레퍼토리로 내세우게 된다. 한편 중국인 멤버들에게 ‘으르렁’을 통해 얻은 지명도는 개인 활동의 유인을 제공하여 이후 법적 분쟁 및 멤버 변동을 촉발하기도 했다. 결국 남자 아이돌 시장을 지금 우리가 아는 규모와 형태로 엮어낸 곡을 하나만 꼽자면 답은 ‘으르렁'이다.
3년 전 8월

비눈물: 멤버와 조합의 변화를 동력으로 삼는 트리플에스에게 다양한 디스코그래피는 곧 정체성이다. 더 큰 규모의 정규 앨범과 여러 유닛 작품을 내놓았지만, LOVElution의 첫 미니앨범 "ↀ"은 여전히 그 방대한 목록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남아 있다. 여덟 명의 멤버와 여덟 개의 트랙을 숫자 8로 묶고, 이를 무한대와 겹쳐 읽게 하는 이미지는 겉으로는 가능성의 확장을 말한다. 그러나 이 앨범의 실제 성취는 팽창보다 구획에서 나온다. 각 곡의 기능이 겹치지 않도록 정리한 결과, "ↀ"은 정규 앨범보다 작은 규모 안에서 오히려 더 또렷한 완결성을 얻었다.
타이틀곡 'Girls' Capitalism'에서는 자본에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아이돌이 대담하게 자본주의를 입에 올리지만, 이를 전면적인 고발이나 냉소로 다루지는 않는다. 노래는 화면 속 필터와 끝없는 피드에서 잔고와 계좌 관리로 시선을 옮기며, 자기애를 지키려면 돈과 선택권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뮤직비디오 속 Mad Money Club의 열 가지 규칙도 이런 양가성을 드러낸다. Don't Cry, Be Rich와 No Money, No Future 같은 자본의 명제가 Eat Healthy와 Just Be(You)tiful 같은 자기 돌봄의 조언과 한 목록 안에 묶인다. 펑키한 기타와 명랑한 보컬, 즉각적인 훅은 이 복잡한 메시지를 쉽게 전달한다. 초기 곡 'Generation'부터 이어진 라라라 구절 역시 이 곡에서 도입과 결말을 묶는 장치가 되며, 반복되는 음절만으로 트리플에스의 노래임을 각인시킨다.
앨범은 타이틀곡의 메시지를 단순히 반복하지 않는다. 인트로 'ↀ'는 "ASSEMBLE"의 마지막 트랙 '초월'에 남아 있던 허밍을 비트로 변주하며 전작의 끝을 새 유닛의 출발점으로 잇는다. 이어지는 '복합성'과 'Black Soul Dress'는 타이틀곡의 밝은 자기 확신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사랑 앞에서 변덕스러워지는 마음과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는 자아를 다루며 앨범의 온도를 낮춘다. 소재가 화면과 거울에서 마음과 도시로 넓어지는 동안, 앨범은 하나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기보다 같은 감각을 서로 다른 장면으로 옮긴다. 각 곡의 개성은 선명하지만, 트랙 사이의 흐름을 끊는 위화감은 거의 없다.
앨범 안에서 가장 구체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곡은 'Seoul Sonyo Sound'다. ‘2호선은 지루하지만’이라는 체념에서 출발해 ‘청담역 기나긴 출구’처럼 멀어진 미래와 한강 너머의 불빛을 바라본다. ‘이 도시의 네온 불빛 더 화려해도 이 현실은 서울’이라는 구절은 도시를 동경의 대상으로 꾸미는 대신, 생활의 거리가 선명하게 보이는 공간으로 만든다. 곧바로 등장하는 'Cry Baby'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밝은 팝의 문법을 따르며, 다른 곡에 비해 인상이 평이하다는 약점이 있다. 그러나 후반부의 분위기를 환기하고 화자와 청자를 위로해 주는 징검다리로서는 제 몫을 한다.
'Speed Love'는 'Seoul Sonyo Sound'와 함께 또 하나의 핵심 수록곡이다. 잘게 쪼개지는 드럼 위로 가볍게 흩어지는 소리가 곡에 비현실적인 부유감을 더한다. 망설임 없이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마음은 리퀴드 DNB의 거침없는 흐름으로 구현된다. 감상을 정리하듯 느린 곡이나 발라드를 끝에 놓는 일부 케이팝 앨범의 관성적인 배치와 달리, "ↀ"은 가장 빠르고 감각적인 곡으로 마지막까지 열기를 밀어붙인다. 그 뒤 'Number 8'은 한국 전통 악기의 음색과 두 사람의 목소리만 남겨 짧지만 선명한 여운을 만든다.
물론 이 완결성은 선택과 생략의 결과이기도 하다. 러닝타임은 20분이 채 되지 않고,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제외하면 여섯 곡만이 본편을 이룬다. 'Cry Baby'의 익숙함과 스케치에 가까운 'Number 8'은 모든 순간이 같은 밀도로 채워졌다고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후 작품들에서 흐름을 끊는 트랙이나 단순 나열에 가까운 배치가 자주 보였던 것과 달리, "ↀ"에는 굳이 덜어내야 할 곡이 없다. 이 작품의 가치는 많은 것을 펼쳐 보여준 데 있지 않고, 트리플에스가 가진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필요한 여덟 개의 자리만을 골라 배치한 데 있다. 무한을 내세운 "ↀ"이 지금까지도 트리플에스 디스코그래피의 기준으로 남는 이유 역시 이 절제와 균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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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년 전 이달 : 8월 - 2026-08-23
- Weekly : 2026년 8월 2주차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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