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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 전 이달

N년 전 이달 : 5월

과거 작품의 재발견과 ‘역주행’이 빈번해진 시대, “N년 전 이달”은 N년 전 이달에 발매된 고전, 수작, 그리고 문제작들을 되짚어본다.
2026년 5월 ‘N년 전 이달’에는 14년 전 인피니트, 10년 전 루나, 9년 전 러블리즈, 빅스, 5년 전 태민에 대한 평이 수록되었다.

14년 전 5월

인피니트 “Infinitize”
Infinitize
울림 엔터테인먼트
2012년 5월 15일

조은재: 트랙간 유기성이나 개연성이 잘 갖춰진 앨범은 아니지만, 이 앨범이 유난히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유는 ‘순수 체급으로’ 명곡들만 모은 앨범이기 때문이다. 모든 트랙이 10여년의 세월을 거쳐오도록 사랑받기란 쉽지 않은데,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유명한 인피니트 공연 레퍼토리 중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 될만한 곡들은 모두 이 앨범에 모여있다. 까딱하면 트로트가 될 뻔했던 ‘국악풍’의 타이틀곡 ‘추격자’는 일찌감치 빌보드에서 주목한 케이팝으로 꼽히며 뉴욕의 빌보드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를 선보인 적도 있었고, 발표된 그 해 연말 무대에서는 다양한 편곡과 퍼포먼스 변주로 인피니트가 단지 원-히트-원더의 루키에 머물지 않고 한 차원 높은 위상을 가질만한 그룹임을 입증했다. 백화점식 앨범 구성에 맞게 ‘Feel So Bad’나 ‘눈물만’과 같은 서정적인 곡부터 ‘그 해 여름’, ‘니가 좋다’와 같은 청량계 캔디팝까지 갖추고 있어, 인피니트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 썸네일이 될만한 앨범이라 하겠다.

10년 전 5월

루나 ‘Free Somebody’
Free Somebody
SM 엔터테인먼트
2016년 5월 31일

퀴비: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근미래의 느낌을 주는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몇 있는데, 루나의 ‘Free Somebody’가 바로 그 중 하나다. ’Free Somebody’는 2010년대 초반까지 즐비하던 폭발적인 EDM 스타일을 등지고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한 사운드로 케이팝의 하우스 작법에 새 지평을 열었던 샤이니의 ‘View’와 f(x)의 정규 4집 “4 Walls”의 연장선상에 놓이면서, 에너지를 더욱 증강하며 한 발짝 더 진취를 이뤄낸다. 나도 모르는 너와 내 안의 “누군가”를 해방시키고 싶다는 가사, 옥타브를 겅중 건너뛰는 멜로디를 대차게 몰아붙이는 루나의 파워 보컬은 가히 야생적이라 할 만하다. (f(x)로서의 커리어와는 별개로) MBC 〈복면가왕〉의 초대 가왕 자리를 차지해 발라더 이미지가 강하기도 했던 루나가 첫 솔로 앨범 타이틀로 강력한 클럽 앤썸(anthem)을 내놓은 데서 오는 짜릿한 배반감 또한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성을 한껏 더 강화하기도 했다. 난데없어서 더욱 아이코닉했던 샛노랑 DHL 티셔츠라든가, 실사를 비집고 들어오는 김용오의 만화적이고 공상적인 일러스트 등 예측불허의 비주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토록 펄떡이는 에너지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그럼에도 곡은 어디까지나 쿨하고 도회적인 무드를 고수했다는 점이겠다. 고난도의 노래를 너무나도 손쉽게 가창해버리는 루나의 보컬, 보컬을 과시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드롭에 자리를 내어주는 과감한 ‘비움’의 태도는 “힘들이지 않은 듯 수월한(effortless)” 톤앤매너를 견지하고, 클럽 음악의 배경으로 정적인 엘리베이터를 택한 뮤직비디오는 텐션을 터뜨리기보다 줄곧 팽팽한 서스펜스를 유지한다. 말하자면 끓는점에 다다르기 직전의 부글거리는 열감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는 셈이다. 임계치에 아슬아슬하게 근접하는, 체성을 바꾸어 훨훨 날아가기 직전의 격동적임. 어쩌면 ‘Free Somebody’가 꼬박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보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그러한 운동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Free Somebody’는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자주 플레이되는 등 트랙 하나로 씬(scene)을 막론하고 숱한 음악 애호가들을 결집시켰다는 측면에서도 기억될 만한데, 지금은 케이팝 계에서나 알앤비 씬에서나 거목이 된, 커리어 초창기 수민의 커버를 꼭 들어보길 권한다.

김윤하: “몸담고 있는 그룹 f(x)의 바운더리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렉트로 팝을 베이스로 어반 R&B를 살짝 끼얹어 변주하는 앨범은 루나의 뛰어난 곡 소화력과 연출력만큼 안정적이고 매끈하다.” (“1st Listen : 2016년 5월 하순 ②” 中)

미묘: “싸늘하게 번쩍이는 퓨처하우스의 선상에 있는 ‘Free Somebody’를 비롯해 음반의 업템포 트랙들은 모두 난폭하게 몰아치면서 보컬리스트와 정면대결을 벌인다. 그것이, 시원한 절창의 이면에서 다만 직선적인 도로시 같은 루나의 캐릭터를 ‘디바’의 위치로 떠받든다. 아티스트의 캐릭터와 사운드, 콘셉트가 드라마틱할 정도로 맞아떨어진 순간.” (“1st Listen : 2016년 5월 하순 ②” 中)

9년 전 5월

러블리즈 “지금, 우리”
지금, 우리
울림 엔터테인먼트
2017년 5월 2일

비눈물: 정규 2집 리패키지의 ‘지금, 우리’는 지난 활동곡 ‘WoW!’가 남긴 과제, 즉 러블리즈 고유의 음악적 색채를 보다 대중적인 문법 안에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었다. 1Piece는 복잡한 화성학적 전개 대신 트랜스 장르의 속도감 있는 리듬을 전면에 내세우며 신스팝 본연의 청량한 에너지를 극대화했다. 여기에 케이를 중심으로 한 멤버들의 투명한 보컬 톤이 효과적으로 배치되었고, 5월이라는 계절이 주는 설렘과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비현실감을 공감 어린 언어로 둥글게 풀어낸 서지음의 가사가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대중성을 위해 직관적인 흐름을 택하면서도 팀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이 곡은, 러블리즈라는 팀이 가장 폭넓은 공감대를 확보했던 순간으로 남았다.
타이틀곡의 의미와 별개로 수록곡들이 지닌 가치 역시 크다. 함께 추가된 ‘Aya’는 정규 1집의 ‘놀이공원’을 연상시키며 초기 러블리즈의 결을 충실히 이어간다. 지금 시점에선 낯간지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고전적인 소녀 감성이지만, 그 정서를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오히려 강점을 만든다. 훗날 ⟨퀸덤⟩에서 그룹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Cameo’는 앨범이 지향하는, 밝고 경쾌한 에너지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반대로 ‘Night and Day’는 러블리즈 특유의 서늘하고 우울한 잔혹동화 정서를 밀도 높게 담아낸 숨은 명곡이다. 한편 ‘똑똑’은 “A New Trilogy” 시기부터 이어져 온 반짝이는 신스팝 무드를 자연스럽게 잇고,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나의 연인’은 ‘인형’을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멜로디로 아련한 엔딩 감각을 완성한다.
물론 겨울 콘서트 선공개 곡과 유닛 곡들이 함께 수록되면서 앨범 전체의 유기성이 다소 느슨해진 측면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산만함이라기보다 러블리즈가 보여줄 수 있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다채롭게 펼쳐낸 결과에 가깝다. 한편, 이러한 음악적 다양성 뒤에는 멤버들의 역량을 앳된 소녀 캐릭터 안에 머무르게 했던 기획적 한계 역시 존재했다. 물론 보컬 인재가 집중된 팀 특성상 파트 분배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이미주의 보컬적 가능성을 충분히 확장하지 못하거나 유지애의 음색을 편향적으로 활용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류수정과 케이를 중심으로 간질거리는 아련함과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보컬 운용은 러블리즈라는 브랜드를 성립시키는 결정적인 무기였다.
오늘날 케이팝 씬에서 음악방송 1위의 의미는 팬덤 중심의 지표에 가까워졌지만, 발매 당시 ‘지금, 우리’가 안겨준 첫 1위의 무게감은 분명 남달랐다. 이는 대중적 인지도의 확장을 증명하며 그룹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멤버들이 각자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에 당분간 완전체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 앨범은 지금까지도 팀을 끈끈하게 붙들어주는 중요한 구심점으로 남아 있다. 특히 “지금, 우리”는 당시에도 지금도 러블리즈가 케이팝 내에서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독자적인 위치에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프리데뷔 시절부터 치밀하게 구축해 온 러블리즈의 소녀 감성은 콘셉트가 파편화되어 엄격하게 소비되는 현재 환경에서는 재현하기 어려운 감각이다.

미묘: “앨범으로 들었을 때 충실한 세계관의 질감을 형성한다는 것은 이 리패키지 앨범의 장점. 그런데 그것이 ‘Aya’에서 마음을 무겁게 하는 방향으로도 작용하는데, 러블리즈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 또는 원피스가 2017년의 케이팝을 주조하는 공식에 음울한 가정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1st Listen : 2017년 5월 초순~중순” 中)

오요: “분명 새로운 시도였으나 아쉬움을 많이 남겼던 ‘WoW!’와 달리 ‘지금, 우리’는 ‘Ah-Choo’의 연장선상에서 익숙한 톤과 분위기를 전달한다.” (“1st Listen : 2017년 5월 초순~중순” 中)

햄촤: “멀찍이에서 지켜만 보고 주위를 하염없이 맴돌던 거리에서 마침내 한 걸음 성큼 다가가 연애의 시작점에 당도한 러블리즈. 여전히 확신보단 의문형으로 끝나는 아슬아슬함이 앞으로 러블리즈의 가사 속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감을 품게 한다.” (“1st Listen : 2017년 5월 초순~중순” 中)

빅스 “桃源境 (도원경)”
桃源境 (도원경)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2017년 5월 15일

조은재: 전세계로 무대가 확장된 케이팝의 입장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느냐는 이제 단순한 콘셉트 전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케이팝’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국에서 기원한 장르’라는 정체성을 갖기에, 전세계 청자를 대상으로 ‘한국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에 대한 비평적 기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뻔히 한국적 요소를 중심으로 제작되는 케이팝 안에서도 한국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것은 때로 ‘뻔한’ 그래서 ‘위험한’ 전략으로 치부되곤 한다. 수많은 문화권에서 케이팝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던 2010년대 중후반 시점에서 등장한 빅스의 “도원경(桃源境)”은 케이팝 안에서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재해석해내는 데에 성공해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등장하는 ‘동양풍 케이팝’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도원경’은 발표 당시 케이팝 씬(scene) 안에서 유행 중이었던 퓨처 베이스 사운드를 중심으로 가야금의 선율을 배치하고, 국악풍의 멜로디 라인을 문학적인 한국어 가사가 보여주는 서사성과 접목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음악으로 조형되어 있다. 여기에 도포 자락의 휘날림을 극대화한 퍼포먼스와 한지, 동양화 같은 시각적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단순한 ‘동양풍 콘셉트’를 넘어 하나의 완성도 높은 텍스트로서의 음악을 각인시켰다. ‘도원경’은 발표된 지 무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자보이즈의 ‘Your Idol’을 비롯해 여러 오리엔탈 콘셉트의 기원이자 기준이 되고 있다. 세대가 거듭되는 동안 수많은 팀이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음에도 이 작품을 넘어서지 못한 이유는, 후발 주자들의 시도가 대체로 단편적인 콘셉트의 차용에 그쳤기 때문이다. 반면 ‘도원경’은 전통의 원형을 해치지 않으면서 팝의 트렌디함을 수용한 음악적 완결성을 보여줌으로써, 마치 음악적 이종교배의 웰-메이드 사례인 국악-재즈 크로스오버 무대를 감상할 때와 같은 쾌감을 준다. 어쩔 수 없이 90년대 문화개방과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퍼지던 슬로건을 꺼내올 수밖에 없겠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김윤하: “가끔 ‘컨셉돌’이라는 수식어가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싶지만, 어쨌든 빅스가 내놓는 결과물들은 늘 그 우려를 살짝 상회하는 것들이다. 동양인이 따로 마음먹고 그려내는 ‘동양 판타지’가 주는 이상스런 위화감을 걷어내고 나면 타이틀곡 ‘도원경’은 적당히 세련되게 잘 뽑힌 곡조와 멤버들의 숙련된 콘셉트 소화력이 잘 조화된 안정적인 타이틀곡이다.” (“1st Listen : 2017년 5월 초순~중순” 中)

오요: “타이틀곡 ‘도원경’의 경우 ‘동양 판타지’라는 콘셉트를 차용했으면 (어떤 식으로든 오리엔탈리즘을 피해가기 어려운 주제라면) 더 뻔뻔하게 과잉으로 치달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현악기의 사용은 적절했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전자음이 빈약하다.” (“1st Listen : 2017년 5월 초순~중순” 中)

5년 전 5월

태민 “Advice”
Advice
SM 엔터테인먼트
2021년 5월 18일

예미: 입대를 2주 남기고 야심작을 내놓는 아티스트는 보통 없는데, 태민은 그렇게 했다. ‘Advice’는 태민이 길게는 그룹 시절부터, 짧게는 ‘MOVE’ 부터 온몸으로 보여준 젠더 횡단적 면모를 한 곡으로 압축했다. 긴 머리에 때로는 어깨가 강조된 자켓, 때로는 크롭 후드티를 입고 움직임을 쉬지 않으며 공격적인 힙합 비트에 고음을 내지르는 곡은 태민 커리어에서도 손꼽히는 극한을 보여주었다. 한편, 태민의 보컬 표현력을 다채롭게 드러내는 수록곡들은 직전까지 진행된 “Never Gonna Dance Again” 연작의 잔열을 정리한다. 드라마틱한 감정 표현을 보여주는 ‘Light’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성 보컬과의 케미스트리를 선보이는 ‘If I could tell you’도 훌륭하지만 ‘2 KIDS’로 시작한 대 서사를 매듭짓는 ‘SAD KIDS’에 눈길이 간다.
이후 ‘Advice’는 태민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하여 2026년 코첼라 무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미발매 신곡 ‘Frankenstein’의 피아노 반주와 이어진 ‘Advice’ 무대에서 태민은 5년 전 본작 발매 당시를 가뿐히 넘어서는 경지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군백기에도 잊혀지지 않고 싶어 내놓은 곡이 미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그를 각인하게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안다면 더더욱 경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예미: “2020년, 2021년 내내 그룹과 솔로 활동으로 역량을 입증한 태민은 본인의 확고한 지향점을 끝까지 보여주며 입대 전 마지막 활동을 마무리했다. 이 숨 가쁜 행보의 의미는 그의 존재감을 오래도록 기억하라는 충고일 것이다.” (“Monthly : 2021년 5월 – 싱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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