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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하바라상의 어떤 노심융해: 덴파구미.inc

일본의 인디즈 아이돌 덴파구미.inc(でんぱ組.inc)와 이들을 낳은 아이돌 카페 디어스테이지. 아이돌인 듯, 아이돌 코스프레인 듯 애매한 모습인 아키하바라의 이들을 동인음악가 RMHN이 살펴보았다.

덴파구미.inc와 아이돌 카페 디어스테이지

일본의 인디즈 아이돌 덴파구미.inc(でんぱ組.inc)와 이들을 낳은 아이돌 카페 디어스테이지(DEARSTAGE). 아이돌 산업의 일원이라기보다는 출발점인 ‘오타쿠의 성지’ 아키하바라(秋葉原)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마치 ‘아이돌 코스프레를 하는 오타쿠’ 같은 모습을 보이는 특이한 집단이다. 디어스테이지를 직접 찾아가 보기도 한 하드코어 테크노 계열의 동인음악가 RMHN이 바라본 이 이상한 전파계 아이돌, 혹은 ‘가짜 아이돌’의 이야기. – 에디터

나의 뜨거운 아이돌 이야기, 시작합니다!

일본 아이돌이라는 키워드를 꺼내보자. 우선 오냥코 클럽(おニャン子クラブ)이나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 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 등을 언급하는 어르신들이 계실 것이고, 모닝구 무스메(モーニング娘)의 리즈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반면, 내 또래 부근에선 퍼퓸(Perfume)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개중에 갑자기 XBOX 이야길 하며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나, 가챠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수많은 흐름 가운데, 어떤 오타쿠들의 머릿속엔, 이상한 콘셉트 전문, 주말 히로인 모모이로 클로버(ももいろクローバー, 이하 모모크로)**가 있었다. 처음으로 오타쿠 문화의 밑바닥-천박함과 맞대면하기로 작정한 아이돌이자, 가시적인 성과까지 일궈낸 대영웅이었다.
**모모이로 클로버는 2011년부로 이름을 ‘모모이로 클로버 Z’로 변경하였다. 많은 이들이 〈기동전사 Z 건담〉 (1985)을 연상했다.

모모이로 클로버行くぜっ!怪盗少女 (가잣! 괴도소녀)
그래도 아직은 그렇게까지 험한 꼴을 당하진 않던(?) 시절의 그녀들.

하지만 그 모모크로의 첫 결성과 비슷한 시기, 아키하바라 한복판에 위치한 아이돌 카페, ‘디어스테이지(DEARSTAGE)’로부터 또 다른 인디즈 아이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이름은 덴파구미.inc(でんぱ組.inc, 당시 DEMPAぐみ로 표기. 이하 덴파구미). 디어스테이지에서 접객원으로 일하던 후루카와 미링(古川未鈴)의 ‘역시 아이돌이 하고 싶다’는 대책 없는 한마디에 응해 결성된 이 2인조 그룹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좀 이상했다. 언뜻 보면 단순한 일회성 기획의 전파계 아이돌 같았지만, 디어스테이지의 괴상한 인테리어 탓인지, 아니면 느닷없이 홍보물에 ‘코무기’**가 등장한 탓인지, 좀 다른 곳에서 이상했다.
**애니메이션 〈너스 위치 코무기쨩 매지카르테〉 (2002)의 주인공

시간이 지나, 2012~2013년 언저리. 제타의 혼을 이어받은 모모크로가 메이저에 진출해 급작스럽게 인기를 얻어 한참 맹위를 떨친 뒤 그 열기가 조금 뜸해졌을 무렵. 이제는 무려 6명이 된 덴파구미는 오타쿠들의 본진 아키하바라로부터 조용한 폭발을 일으키며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름에 충실하게 전파계 음악(전파송)을 주력으로 내세워, “W.W.D(World Wide Dempa)“ 앨범을 기획해 두 번에 걸쳐 발매. 타이틀곡엔 이 분야의 스타, 통칭 ‘햐다인(ヒャダイン)’으로 익히 알려진 작곡가 마에야마다 켄이치(前山田健一)의 이름을 걸어두고, 그 리믹스 라인업엔 PandaBY나 fu_mou 등, 애니메이션 클럽 이벤트에서 주력으로 활동하는 동인 음악가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그 가사는 멤버들의 소외나 좌절 같은 제법 묵직하고 어두운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한편, 한 그룹의 일원으로서의 느낌 등 ‘우리’의 이야기를 읊조리며 신세대 오타쿠들의 공감대를 직접 자극했다.

덴파구미.incマイナスからのスタート、やっぱキツい!? (마이너스에서 스타트, 역시 힘들까!?)
‘친구’, ‘외톨이’, ‘탈덕’. 그리고 극복. 21세기의 오타쿠들에겐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리더인 리사(相沢梨紗)는 성우 덕력을 바탕으로 ‘2.5차원 전설’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미링은 KONAMI의 게임 〈Beatmania IIDX〉에 객원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네무(夢眠ねむ)는 오타쿠 클럽 ‘MOGRA’에서 ‘DJ 네무큥(DJ Nemukyun)’이란 이름의 애니송 DJ가 되어 나타났다. 당시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모가미 모가(最上もが)는 평범하게 잡지나 그라비아 활동이 주인가 하고 보면, 온라인 게임 폐인 히키코모리였던 과거를 트윗으로 읊곤 했다. 이렇게 멤버들의 개별 활동도 그 형식 자체는 기존의 다른 아이돌들과 비슷한 각개전투성 운영이겠으나, 그 내용 면면은 보다 ‘깊숙했다’.

여기까지 오고 나니, 이들이 풍기던 이상함과 위화감은 어느새 쾌감이 되어 있었다. ‘아이돌이 되고 싶어!’라는 한 마디로 그 길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이들은 그 말에 화답해 아이돌이 되었다기보다는, 아이돌의 모습과 입을 빌려 오타쿠 센스를 마구 어필하고 있는 고퀄리티 아이돌 코스튬 플레이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가짜가 최선을 다해 진짜를 모방하고, 이윽고 진짜의 위치를 뛰어넘기 시작하는, 이상하고 익숙한 광경.

kors k feat. 古川未鈴Drive Me Crazy
게임 오타쿠로서 자신이 좋아하던 게임에 직접 참여한다는 감각은 어떤 느낌일까.

관심은 서서히 그런 덴파구미를 낳은 공간, 아이돌 카페 디어스테이지에까지 번져나갔다. 메이드 카페라면 너무 유명하다 못해 이제는 도쿄의 홍보 영상이나 일본 관광 안내 자료에까지 공공연히 얼굴을 드러내는 지경이 되었지만, 아이돌 카페는 다소 낯선 콘셉트. 관련 정보를 찾아도 그 공간에서 유래하는 경험을 곧바로 상상하기는 어렵다. 나는 결국 직접 방문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마주한 디어스테이지의 외관은 제법 사이키델릭한 장식을 온 건물에 두르고 있었다. 척 보아서 그나마 ‘아이돌’을 연상할 수 있는 부분은 홍보용 포스터가 붙은 창이나 오늘의 식사와 공연을 소개하는 입간판 정도. 그마저도 건물의 위치가 골목길인 탓에 예쁘고 밝은 느낌이 드는 구석은 전혀 없고, 오히려 언더그라운드 클럽이나 아지트 같은 분위기.

CC BY 2.0 Streetviewer
CC BY 2.0 Streetviewer

하지만 그런 눅눅한 인상과 다르게, 건물 내부의 구성과 운영 시스템은 제법 따뜻한 인상이었다. 안내를 받아 입장 줄을 서 들어가면, 그럴싸하게 꾸며진 라이브 스테이지가 가장 먼저 손님을 반긴다. 카페라기보단 클럽이나 공연장에 온 느낌. 2층과 3층은 각각 카페와 바(bar)로 구성되어 있고, 각 층엔 라이브 스테이지를 바로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접객원들은 각 층에서 그 날의 콘셉트에 따라 지정된 의상을 입고 분주히 움직인다. 평소엔 이곳에서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주문을 받고 음식을 서빙한다. 몇몇 점원을 제외하면, 메이드 카페가 콘셉트에 맞춰 움직이는 것과는 다른 듯하다. 의상도 다르고 대화 주제나 분위기가 다소 매니악하지만, 그냥 점원과 손님이 좀 친한 카페의 화기애애한 일상적 분위기. 음식과 음료들도 별다른 기대를 걸만한 퀄리티가 아닌 점까지 평범하다.

하지만, 예정된 라이브 시각이 다가오면 모든 것이 변한다. 이날은 디어스테이지 소속 아이돌, 망상 캘리브레이션(妄想キャリブレーション)의 싱글 발매일. 매니저가 라이브를 고지하자 손님들이 우루루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곳을 따라가면 분명히 조금 전까지 신작 게임 이야길 나누던 그 여자아이는 어느새 단장을 마치고 무대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리허설이 끝난 뒤 능숙한 멘트로 인사를 마치고, 나름 혼을 담은 콩트를 선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곡의 공연. 환호. 서포터들은 공연이 끝나면 격려의 인사를 보내고, 담배를 태우며 공연의 내용과 이런저런 서포트의 방향에 관한 이야길 나눈다. 그러는 사이, 약 200장 남짓 쌓아둔 앨범은 단 30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잠깐의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고개를 돌려보면 저 너머에서 넥타이 부대가 양손에 CD를 석 장이고 넉 장씩 끼고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떠나가고 있었다.

망상 캘리브레이션何故なら私、妄想少女ですの (왜냐하면 나, 망상소녀인 걸요)
디어스테이지의 후속 타자 ‘망상 캘리브레이션’. 덴파구미보다 좀 더 미쳐있는 캐릭터 컨셉이 매력적.

아키바계 아이돌들에게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당장 읽어서 알겠지만, 이야기한 개별적인 요소 하나하나가 분명 디어스테이지만의 아이템은 아니다. 오히려 ‘인디즈 아이돌’이나 ‘지하 아이돌’이란 키워드를 들으면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디어스테이지의 강점은, 그것을 이전보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함께 땀 흘리며 지켜볼 수 있도록 한 장소에 묶어둔 것, 또한 그것을 더이상 무방비한 음지에 두지 않고, 보호되고 관리되는 ‘양지’로 끌어올린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요컨대, ‘어제 카페에서 본 귀여운 여자아이가 다음 날 아이돌로 무대에 오르더니, 기어코 〈록 인 재팬(Rock In Japan)〉 페스티벌에 나왔더라’는 애니메이션 같은 이야기를 패키지로 체험하고, 꾸준히 가꿔 나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디어스테이지란 것이다.

오너 후쿠시마 마이코(福嶋麻衣子)는 디어스테이지에 그런 요소들을 면면히 끼워 넣으며, 동시에 최대한 ‘닫힌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국제 사회에서 일본 문화가 갖는 위치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로컬라이즈’와 ‘갈라파고스’라는 키워드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대상을 베껴오자면, 그것이 금세 기묘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뭔가 ‘이상한’ 형태로 변해버린다. 디어스테이지는 이러한 일련의 시퀀스, 그로부터 배어 나오는 이상함과 이질감을 한껏 담아낸 공간, 즉 오너가 높은 시야에서 바라보는 일본을 재현한 공간 그 자체다.

이렇게 디어스테이지와 덴파구미가 가장 강력한 무기로 내세우고 있는 일본 문화에 대한 시각-오타쿠로서의 경험과 이야기들은 어쩌면 어떤 일본인에겐 가장 부끄러운 영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어차피 일본은 그래 왔지 않냐’며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런 골칫덩어리 핵융합로와도 같은 아키하바라에서, 그 안에 뛰어들어가 보고 싶은 오타쿠들의 아이돌에 대한 동경과 관심을 한데 모아 만든 돌연변이 ‘가짜 아이돌’. 그런 그들이 지금은 요코하마 친선 대표로, 다른 나라에서 일본을 말하겠다며 최전선에 깃발을 펼쳐 들고 있다. ‘성공한 덕질’이란,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변방의 오타쿠는 조용히 그 모습을 기록하며 응원하기로 했다.

덴파구미.incちゅるりちゅるりら (츄루리츄루리라)
전국 난세는 꿈과 환상처럼! 핵융합로에서 멜트다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참조

RMHN

By RMHN

모두의 하드코어 오타쿠 아이돌, RMH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