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일 금요일, 엠넷 〈프로듀스 101〉이 드디어 끝났다. 프로그램 자체가 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그 정체성을 요약한 테마곡인 ‘Pick Me’, 그 연장선상에 놓인 같은 프로듀서의 작품 ‘24시간’, 그리고 최종 심사곡으로 결정된 ‘Crush’ 역시 계속해서 ‘K-EDM’에 대해 무수한 이야기를 낳고 있다.
‘EDM(Electronic Dance Music)’, 명명의 적합성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이것이 2010년대 전후의 주류 댄스 뮤직에서 가장 커다란 타이틀로 등극한 것은 이미 근 5년 전의 일. 지금은 다들 한물간 것으로 비웃지만, EDM은 DAW(Digital Audio Workstation)의 세계, 샘플과 프리셋의 바다에서 태어난 첫 번째 시대 양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다들 이 버스를 놓치면 영영 뒤처질 것이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나와는 아예 상관이 없을 것 같은 팝의 영역에서부터, 가깝게는 주변의 동료 프로듀서들까지 모두가 그 구간에 탑승하거나, 또는 그것을 거부하거나 하는 식의 작업을 연이어 선보이곤 했다. 그러나 ‘Pick Me’와 ‘Crush’는 단순히 EDM이라는 이름 아래, 같은 노선 번호의 버스에 탑승한 악곡일까?
2010년, (당시 기준으로) 아는 사람들은 알던 제드(Zedd)와 같은 프로듀서들은 이미 블랙아이드피스(Black Eyed Peas)의 ‘Time’에 리믹스 아티스트로 참여하는 등 착실히 그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기존에는 팝 아티스트들과 테크노-레이브 세대 프로듀서들의 영역이었던 그래미 어워드의 베스트 댄스 레코딩 부문에 스크릴렉스(Skrillex)가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 2012년이었다. 이후 덥스텝과 일렉트로 하우스를 선두로, 그것을 포괄한 EDM이란 키워드는 엄청난 열기를 동반해 대형 음악 페스티벌의 군데군데를 휩쓸듯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케이팝이 EDM을 차용하다
한국 역시 이러한 ‘대세’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같은 2012년, 돈스파이크, 신사동호랭이와 같이 새로운 흐름의 선두를 잡은 프로듀서들에 의해 ‘우리끼리나 쓰는 물건’인 줄 알았던 벤전스(Vengeance) 샘플 패키지, 넥서스(Nexus)나 사일렌스1(Sylenth1)과 같은 가상악기의 프리셋 패치, 즉 ‘EDM의 소리’가 이전에 비해 좀 더 대놓고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EDM의 언어는 좀체 종래의 가요 또는 케이팝과 섞여들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을까? 수많은 릴리즈 가운데, 진정 그에 대해 본격적인 시도와 그 결과를 선보인 악곡은 많지 않았다. 이 구간에서 가장 활발했을, 티아라의 연이은 시도는 대체로 ‘뽕짝’ 이상의 평가를 획득하지 못했고, 포미닛의 ‘Volume Up’이나 f(x)의 ‘Electric Shock’ 같은 경우가 개중에선 가장 만족스러운 타협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해 말, SM 엔터테인먼트는 ‘SM The Performance’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는 슈퍼스타가 된 제드의 ‘Spectrum’을 커버하여 발표한다. 이듬해 2013년엔 그 경험을 토대로 보다 진짜 EDM에 훨씬 더 근접한 SMP 넘버 ‘Everybody’가 샤이니의 곡으로 등장한다. 같은 해 5월, 2AM의 임슬옹은 느닷없이 아비치(Avicii)의 ‘Levels’를 커버한 트랙을 발표하고, f(x)는 ‘첫 사랑니’와 ‘Airplane’을 통해 ‘Electric Shock’의 도전을 완성하게 된다. 그 외 수많은, EDM에 대한 집착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시도들이 연잇는다. 이때쯤 이미 주변의 전자 음악 리스너들은 ‘아직도 EDM이야?’라는 목소리와 함께 이를 유행에 뒤떨어진 것으로 외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로부터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한국에서 EDM은 그러한 시도들을 발판 삼아, 케이팝의 기본 양식에 EDM의 언어를 표면에 덧씌워 새로운 ‘음악’의 경지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2014년, 빅스는 그간 악곡 내의 일부 파트, 또는 개별 악곡 단위에서만 적용되던 EDM의 양식을 앨범 전면으로 확대한 작품 “Error”를 발표하고, 같은 해 티아라는 그간의 경험을 훨씬 정교하게 다듬어 ‘Sugar Free’를 발표한다. 좀 더 훗날, 2015년에 이르러 빅뱅은 트랩(Trap)과 록의 언어를 통해 이에 대한 총체적 재해석이라 할 수 있는 ‘Bang Bang Bang’과 ‘맨정신’을 발표하며 일련의 시도에 대한 완벽한 종료-이탈을 선언한다.
〈프로듀스 101〉은 특별히 케이팝과 EDM의 교류에 관한 언급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의 전반부 내내 연습생들에게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의 아이돌의 역사를 분류하여 ‘스킨화’하여 적용하는 가운데 이렇게나 뚜렷한 흔적을 새긴 대상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 장르 ‘K-EDM’
그러나, 같은 ‘EDM’의 태그 아래에는 분명히 다른 흐름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오히려, ‘EDM’의 가능성에 대해 발 빠르게 인지하고, 어떤 장르 시장으로서의 영역을 확보하고자 하였던 것은 이 부류의 아티스트들이었을 것이다. 다른 장르가 해외에서 흥할 때의 양상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주된 사명은 한국에 EDM이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이 2010년 전후, 이미 사운드클라우드 등을 무대로 자신의 악곡을 발표하고, 또 EDM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아티스트들은 계속해서 등장해 왔다. 현재 ‘K-EDM’이라는 타이틀의 주역들이 속속들이 프로듀싱에 관심을 두고 참여를 결정한 것은 바로 이 2013년경의 일이다.
그 가운데 특별히, ‘Pick Me’의 프로듀서인 DJ 쿠(DJ Koo)와 맥시마이트(Maximite)에 주목해 보자. 이들은 2012년을 전후로 한국의 클럽들이 페스티벌 붐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EDM을 하나의 ‘브랜드’로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행보를 준비하던 시기, 각자 댄스 그룹 멤버, 또 비보이로서의 커리어를 토대로 발돋움한 인물들이다. DJ 쿠는 2013년, 강남 소재 클럽 매스(MASS)의 오너가 설립한 K-EDM 레이블, 문 레코즈(Moon Records)를 통해 ‘Bob Bob Dee Lala’라는 충격적인 트랙을 선보였고, 같은 해, 시간이 좀 더 지나 같은 이름표 아래 DJ 한민(DJ Hanmin)이 발표한 공전의 히트 튠, ‘Show Me Your BBA SAE’가 놓이게 된다.
이 계열 악곡들의 주된 형식을 텍스트로 기술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대개 빅 룸 하우스(Big Room House), 또는 멜버른 바운스(Melbourne Bounce) 리듬을 토대로 깔고, 강력하게 왜곡된 베이스를 덮은 뒤 강렬한 후버(hoover)나 슈퍼쏘우(supersaw) 패치를 사용해 멜로디를 작성하여 완성. 분명 그 구성 요소 하나하나는, 이들이 모태로 삼은 ‘진짜 EDM’으로부터 유래한 것들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그 사용 방식이 본래의 그것과 어긋나 있고 섬세한 마무리가 부족한 탓에 마치 어설픈 ‘짝퉁 EDM’ 같은 모양새가 되어 버린다. ‘Pick Me’와 ‘24시간’의 형식은, 바로 이 구간에서 유래한 것.
평행세계의 조우
언뜻, 영미권의 EDM을 그 모태로 공유한다는 것 외에 이 두 노선은 별다른 접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서로 다른 두 노선은 일반 소비자들의 손에 의해, 본래 페스티벌의 광고와 브랜딩을 목적으로 했던 단어인 ‘K-EDM’이라는 태그로 묶이게 된다. 연이어 그에 속한 요소 하나하나는 다시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 또는 방송국과 클럽, 페스티벌의 현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부딪혀 다양한 혼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정리하자면, ‘Crush’는 먼저 설명한 구간에서 유래한, 각 멤버들의 파트를 엄격히 분리하고 과감한 보컬 믹스를 적용하는 케이팝 댄스 뮤직의 양식과 경험을 토대로,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 관찰한 EDM의 다양한 언어를 덧씌운 악곡이다. 반면, ‘Pick Me’와 ‘24시간’은 보다 페스티벌에 특화된 양식을 토대로, 구색을 맞추기 위한 정도의 보컬 라인을 가볍게 덧씌운 악곡이다. 이 두 종류의 K-EDM의 대조는, 단순히 오프닝-엔딩, 또는 101명-22명(11명)의 낙차를 넘어, 같은 대상에 대한 다른 해석에서 유래한, 그렇지만 동시에 양자 가운데에 있었던 치열한 사건들에 대한 요약이다.
이제 한국에서 EDM이란 단어는 마치 바로 지난 시대의 ‘테크노’처럼, (특정 하위 장르에 한정해서나마) 댄서블한 현대의 전자 음악 일체, 새로운 시대의 ‘로큰롤’을 일컫는 것이 되었다. 고작 4-5년 전에 이 명명의 정당성에 대해 간신히 논의하고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번져 나간 셈이다. 그러나, 이젠 그 주역들조차 EDM을 거진 철 지난 유행으로 접어둔 채, 그다음 타자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여전히 한국의 수많은 문화 콘텐츠, 특히 케이팝은 해외의 것을 어떻게든 간신히 뒤따라가는 것, 소위 ‘스까듭밥’ 수준의 거시적-수동적인 평가 이상의 이야기를 확보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러한 표현들로만 메워둠으로써,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세부적인 사건들과 맥락에 대해 살펴볼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 순번이 오기 전 잠시 발생한 이 짧은 틈 안에서, 우리는 이 구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주목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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