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가 ‘잘나가서 그래 (feat. 정일훈 of BTOB)’로 컴백을 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성적 코드를 둘러싼 담론으로 읽히고 있다. 하지만 나는 현아가 이미 ‘빨개요’ 때 그의 코어가 되는 성적 코드에 관한 논란을 한 차례 마무리 지었다고 본다. 혹자는 현아를 성 상품화의 선봉이라며 인격 모독에 가까운 비난을 했고, 누군가는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그리 고까운 일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현아의 태도는 쿨하다.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할 사람은 신경 끄라는 식이다. 실제로 그를 싫어하는 자들이 현아를 가로막을 방법은 별로 없다. 방심위 등 권위와 제도에 통제를 요청하는 것 외에는.
현아는 스스로가 뭘 잘하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섹시함이다. 그러면 이제 현아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가 섹시함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콘셉트 역시 꽤나 명료하다. ‘야한’, ‘영미권’, ‘파티’, ‘어린’, ‘광란의’ 등등 여러 단어를 붙일 수 있겠는데, 이번 뮤직비디오 및 비주얼과 일맥상통하는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스프링 브레이커스 (Spring Breakers, 하모니 코린 감독, 2012)〉다.
영화와 뮤직비디오 모두 화면 구성에 있어서 특히 포인트를 둔 부분 중 하나는 그들의 네온 의상이다. 최근 여러 핫한 영상이나 콘셉트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형광은 밤, 파티와 잘 어울린다. 또한 어둠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이지만 밝은 곳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색이다. 하모니 코린 감독은 형광 수영복이 지니는 이미지를 두고 ‘폭력적이고 섹시하지만 귀엽기도 하다’고 말한 바 있다. 〈스프링 브레이커스〉의 시간이 ‘밤’으로 기울어질수록 그러한 색상은 더욱 의미를 지니게 된다. 네온은 파티 외에도 환각의 이미지 역시 지니고 있어 ‘트리피(trippy)’를 가장 잘 드러내는 색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래퍼 영 벅(Young Buck)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스키 마스크, 힙합에서 자주 다루는 스왝, 돈 등의 소재들은 〈스프링 브레이커스〉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영화가 힙합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권선징악 따위 없는 컬트적 요소, 하모니 코린 특유의 자유분방함은 영화의 모티브 및 코드들과 잘 맞아 떨어진다. 이러한 코드를 잘 차용한 것이 현아의 이번 활동일 것이다. 심지어 폭력적이고 섹시한 파티의 이미지 속에 ‘순진한 얼굴을 내포하고 있다’는 부분까지 연결돼 있다.
영화의 경우 클리프 마르티네즈(Cliff Martinez)와 스크릴렉스(Skrillex)가 스코어를 썼는데, 파티 음악에 적합한 요소, 그리고 불안함을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트리피한 사운드를 모두 하나의 결 안에 구사하고 있다. 클리프 마르티네즈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드러머 출신으로, 이제는 영화 음악 감독으로 더욱 유명하다. 1989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Sex, Lies and Videotape)〉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트래픽 (Traffic)〉을 포함하여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감독과 함께 작업을 하였고 그 외에도 〈드라이브 (Drive,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 2011)〉,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The Lincoln Lawyer, 브래드 퍼맨 감독, 2011)〉 등 다양한 영화 음악을 작업하였다. 장르나 문법을 가리지 않고 영화에 초점을 두고 작업하는 편이지만, 그가 선보인 인상적인 음악 중에는 엠비언트 음악들이 종종 있었다. 스크릴렉스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현재 세계 최고의 DJ 중 한 명이다. 밤에 주로 이루어지는 난잡한 파티와 범죄 행위, 그리고 어색하고 낯선 느낌의 낮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이 둘의 음악은 더없이 적합하다. 영화는 굳이 번잡함을 깔끔하게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EDM 중심의 음악들은 나름의 콘셉트를 지니면서도 혼란스러운 느낌의 구간들과 잘 어우러진다.
현아의 음악은 힙합, 랩 음악에 등장하는 리듬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타이틀곡의 경우 래칫(ratchet) 스타일을 기반으로 빌드업 등 전자음악에서 유행하는 몇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트리피한 음악은 아니지만, 완성도나 실력을 떠나 콘셉트와는 어느 정도의 합을 맞춘 듯하다. 적어도 ‘빨개요’ 때의 번잡함은 피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다소 평이한 만듦새, 그리고 랩과 노래의 퀄리티는 여전히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정서 혹은 결을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이해하고 보여주려고 노력한 듯하다. 적어도 예쁜 모습, 섹시한 모습, 귀여운 모습을 한 곡에 다 보여줘야 했던 ‘빨개요’의 현아보다는 성장했다.
거듭 말하지만, 현아에게는 여전히 쌓아야 할 실력과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그래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수준의 악평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대상이 한 발 나갔는데 비평은 제자리면 그것도 그것대로 속상한 일이다. 이미 현아를 규정지으려는 시도는 ‘빨개요’ 때 끝났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현아가 뭐라고 이렇게 글을 쓰나 싶지만, 현아는 전무후무한 포지션에서 성공한 가수 중 한 명이다. 더욱이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적어도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분명히 응시하며 활동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현아는 그렇게 쉽게, 단순히 읽어낼 수 있는 2차원적인 피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여담으로 들리겠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바로 리프 래프(Riff Raff)이다. 리프 래프는 디플로(Diplo)의 레이블인 매드 디센트(Mad Decent) 소속의 래퍼로서 주로 남부 음악과 파티 음악을 선보이는데, 다소 정신 빠진 콘셉트와 행동, 독특한 음악과 외향으로 유명하며 영화 속 에일리언이란 인물이 비주얼에 있어서 그와 상당한 유사점을 보인다. 처음에 하모니 코린 감독은 리프 래프에게 배역을 제안할 정도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지만, 후에는 다른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캐릭터의 모티브를 다시 설명했다. 이 영화로 인해 그와 하모니 코린 감독 사이에 법정 공방까지 있었는데, 리프 래프가 약을 사랑한다는 것만큼 총이나 갱단과는 무관하다는 것 역시 공개되어 있는 사실이다. 불가능했겠지만 현아가 리프 래프의 피처링을 받았다면 더없이 멋있었을 텐데. 그건 리프 래프에게도 큰 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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