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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101 – 어떤 미래에 투표할까

〈프로듀스 101〉의 최종 11인이 데뷔할 때, 우리는 프로덕션과 ‘케미’라는 아이돌계의 코끼리 다리를 조금 더 만질 수 있을 것이다.

물량, 물량이다

‘Pick Me’의 뮤직비디오는 〈프로듀스 101〉의 핵심을 보여준다. 101명이나 되는 소녀들을 동시에 무대에 올리는, 물량의 스펙터클이다. A 클래스 20인으로 시작해, 곡이 진행됨에 따라 무대가 움직이며 군무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것이다. 대인원 전략은 무대에서 그치지 않는다. 결국 방송은 101명을 투숙시키며 개별지도 및 관리해야 하는 기획이다. 이것은 엠넷만이 할 수 있는 일일까. 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101명을 동시에 운용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순 없고, 또한 상당한 자본력이 필요한 일이라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의 예술인 아이돌이 101명의 서바이벌에 이르렀다는 것은 한국에서 하나의 마일스톤이 되기에 충분하다.

자본과 경쟁, 블라블라

자본, 그렇다, 이 방송의 주제는 자본과 경쟁이다. 하지만 대중과 언론이 ‘소녀들’에게 등급을 매긴다는 식의 요식적인 비판을 하는 동안, 〈프로듀스 101〉은 한발 더 나아간다. A에서 F까지 나뉜 등급이 나름 실력 평가에 의한 것이라면, 1화부터 카메라가 집요하게 비추는 것은 경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주어진 계급이다. 한 명씩 입장하면서 처음 소개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다른 소속사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긴장하고 불안해한다. 물론 대다수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참가자들의 이력을 그럴듯하게 보여줌으로써 흥미를 유발하려 한다. 참가자들 중 11명은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을 만난 적 있고, 12명은 이미 데뷔한 적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프로듀스 101〉의 시선은 거의 전적으로 기획사의 지명도를 따른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전소미는 참가자들에게 거의 묵시록의 ‘공포의 대왕’처럼 그려진다. 그가 <식스틴>을 통해 알려진 탓도 있지만, 방점은 분명 소속사에 찍힌다. 이외에도 스타쉽, 젤리피쉬, 큐브 엔터테인먼트 등을 소개하고 다루는 방식은, “기획사가 정말 많구나”라는 대사와 함께 넘어가는 다른 기획사들과 판이하다. 편집을 통해 보여지는 참가자들의 긴장은 소속사 지명도라는 상징자본을 고스란히 계급으로 이어 놓는다.

‘흙수저’ 판타지아

김세정-김소혜 콤비를 발견 혹은 창조했을 때 제작진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3화와 4화에서 진행되는 팀 배틀 미션 동안 상당수의 팀들은 팀 vs 팀이라기보다 가진 자 vs 못 가진 자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에서 기희현 팀은 MBK와 JYP를 중심으로 높은 지명도의 참가자들을 한데 모아 ‘어벤저스’란 별명을 얻었다. 방송은 ‘잘나 보이는’ 이 팀에 대한 트레이너의 실망감과, 상대 유연정 팀이 주눅 든 채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집중 조명했다. 카라의 ‘Break It’ 무대에서 김나영 팀은 멤버 선발이 모두 끝나고 남은 참가자들로 이뤄졌음이 부각됐다. 사실 상대 박민지 팀과 결정적이라고 할 만한 조건의 차이는 아니었지만 방송에서 구체적인 비교가 이뤄지진 않았다. 그저 김나영 팀이 ‘부족하다’는 것만 강조됐다. 5화에서 성혜민, 강시원, 김서경 등이 개인 연습생이란 사실이 은연 중에 강조된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장면들은 결국 압도적인 상대에게 노력으로 저항하는 약자의 서사로 압축됐다. 대중적인 서사지만, 때론 무리한 왜곡을 통해서라도 편집이 이를 관철시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참가자들의 캐릭터는 (허찬미와 황인선의 ‘늙음’을 제외하곤) 생략됐다. 누구나 탐낼 멤버를 구성해 낸 기희현의 수완이나, 1차 오디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윤서형, 곡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윤채경과 정채연 등, 뽑아내려고만 한다면 다룰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말이다.

연습생 풀

〈프로듀스 101〉은 그저 ‘101명을 무대에 세워보고 싶었다’는 로망의 실현처럼 느껴지는 지점도 있다. 그러나 이 방송은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작년 신인 최연소가 2001년생이고, 〈프로듀스 101〉에는 2002년생까지 참가하고 있다. 2007년 데뷔 걸그룹들에 1988년~1990년생 멤버들이 다수였던 것을 감안하면, 9년 사이에 12년의 차이가 생겼으니 데뷔 시기도 빨라졌다. 그것은 연습생 풀이 과거 같지 않음을 반영하기도 한다. 반면, 신인의 아이돌 시장 진입은 양적으로 좀처럼 줄지 않았다. 더구나 출산율은 1990년 약 65만 명에서 2002년 약 49만 명으로 24%나 감소했다. 산술적으로 ‘아이돌 재목’ 자체가 줄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101명 중에서 11명을 뽑겠다는 것은, 가능한 한 큰 풀에서 조그만 재능이라도 보인다면 놓치지 않고 포착해야 할 필요성이 구체화된 것이다.

결국은 캐릭터

방송에는 44개 기획사가 참가했다. 참가자들의 평균 연습 기간인 31개월을 역산하면 2013년 7월인데, 이 시기 이후에 아이돌 걸그룹을 데뷔시킨 적 없는 기획사는 73%에 달하는 32개사다. 걸그룹을 데뷔시킨 적이 아예 없는 기획사만 따져도 59%다. 기획사의 경험 여부가 훌륭한 ‘아이돌 재목’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동료들이 꾸준히 데뷔하는 와중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던 연습생들만 모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아이돌에게서 익숙하게 기대하는 요소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간형들이 101명 중에는 꽤나 있을 수 있다.

전문 직업인 같은 질감의 이해인, 소박한 리더십을 보여준 강시원, ‘실력 있다’는 것 외에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 전소미, 주어진 상황을 스스로 뚫고 움직이는 김세정, 그리고 좀처럼 시퀀스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하지만 분명 이질적인 많은 연습생들. 때로는 사람에 따라 아이돌이 애초에 적성에 맞지 않아 보이는 인물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지금까지 대중이 접해 온 완성된 아이돌과는 차이가 있고, 그것은 단지 새로운 얼굴이라서, 혹은 정식 데뷔 전이라서만은 아니다. ‘체육계’, ‘섹시계’, ‘청순계’, ‘야심파’, ‘비주얼’ 등 기존의 아이돌 유형에서 크게 또는 작게 벗어나는 ‘인간형’인 것이다. 〈프로듀스 101〉의 남은 여섯 에피소드는, ‘아이돌 재목’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어떻게 아이돌로 형성되거나 그러지 못하는가, 또는 어떻게 자신의 아이돌답지 않음을 간직한 채 아이돌로 데뷔하는가를 보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프로듀스 101〉 이후 우리 아이돌계의 인간형 팔레트는 조금 변화할지도 모른다.

최종 11명의 미래

“101명 중 한 명은 내 타입이지 않겠어?”라는 즉물적인 광고 문구와는 달리, 실제 아이돌 그룹에는 개개인의 매력 이상의 요인이 작용한다. ‘아이돌 엔지니어링’이라 불러도 좋겠다. 하나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그룹의 컬러와도 맞아야 하지만, 내부에서도 각자의 포지션을 갖는다. 그것은 무대에서 수행하는 ‘기능’이기도 하지만, 어떤 팬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 하는 ‘전략’이기도 하고, 어느 멤버와 어떤 상성을 보이느냐 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시청자 투표에 의해 멤버를 선발한다는 이 기획은 일단 ‘전략’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기능’은 결국 프로덕션이 얼마나 기민하게 맞춰줄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서바이벌 오디션을 거치며 유대감을 형성할 순 있지만, 대중이 아이돌 그룹에게서 원하는 미묘한 듯 손에 잡힐 듯한 ‘케미’는 하나의 고난을 함께 겪는다고 해서 반드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형이나 성향의 안배에 의한 조합, 그것은 시청자의 멤버별 인기투표로 이뤄질 수 없다. 김세정-김소혜 콤비가 주목을 받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5화에서 방송의 편집 의도를 비토하는 듯한 김세정의 ‘나는 전소미와 친하다’는 발언이 전파를 탈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 기획에는 바로 그런 것이 필요하기 때문은 아닐까.

프로듀스 101

그러니 〈프로듀스 101〉의 최종 11인이 데뷔할 때, 우리는 아이돌계의 코끼리 다리를 조금 더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프로덕션은 멤버들의 실력과 음색, 음악적 포지션을 얼마나 ‘따라가고’ 보완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이돌로지가 ‘Pick Me’를 2015년 신인 괴작 1위로 선정한 것은 방송 기획이 보여주는 규모에 비해 너무 실망스러운 곡이기 때문이었다. 이 곡의 프로덕션에 관여한 소속사들이 지금 101명 중 n명의 참가자를 내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대로라면 최종 11명의 프로덕션에는 기대를 조금 아끼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11명이 어떤 관계를 맺으며 보여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방송 프로덕션에서 이미 몇 명의 멤버를 내정하고 있다는 (음모론적) 짐작도 가능하지만, 공식적으로는 개개인에 대한 인기투표만으로 조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관찰하면, 오차는 감안해야겠지만, 대중이 바라보는 아이돌 멤버들의 ‘케미’에는 우연과 필연, 착시가 각각 얼마나 포함되는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Pick Me
CJ E&M
2015년 12월 17일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