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중순의 아이돌 신보 필진 단평. VX, 김재중, AOA크림, 조권, 레인보우, 브레이브걸스, SS301, 뉴이스트, 리온파이브, 유영진 & D.O., 에이플, 식스밤을 다룬다.
조성민: 보컬들이 전형적인 미성의 아이돌 보컬인지라, 'OMG'에서는 EDM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대로 음악 소리에 묻혀버린다. 차라리 커플링 곡 'Sunshine'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하지만, 아직 곡을 제대로 리드하고 소화해낸다기보다는 겨우 불러낸 듯한 인상이 있다. 이런 앨범이라면 누가 듣더라도 다음을 기대하게 되진 않을 듯하다.
김윤하: 김재중이 지금까지 내놓은 솔로 작업들에 대한 아쉬움은 다른 아이돌 가수들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제대로 된 출발선조차 찾지 못한 수많은 이들 사이, 스스로의 색깔에 대한 자각은 명확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풀어내야 하는지를 찾지 못해 오히려 눈에 띄었다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No.X"는 전작 "WWW"에 비해 훨씬 많은 부분에서 마음이 놓이는 앨범이다. 여전히 같은 바운더리 안의 음악을 다루고 있지만 비로소 '힘 조절'이 가능해졌다는 인상을 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대부분 뮤지션 스스로의 성장과 함께 프로듀서와의 좋은 호흡에서 기인하게 마련인데, 흑인 음악 뮤지션들과의 교류가 잦았던 작곡가 태완과의 합이 앨범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타이틀 곡 외 제이록을 좋아했던 이들에게는 'Good Luck'을, 보컬 김재중의 색다른 면모를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마지막 곡 'Run Away'를 권한다.
돌돌말링: 그룹 활동을 할 때도 김재중은 솔로 무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록 넘버를 자주 선보이곤 했다. 앨범 전체가 90년대 제이록의 향수로 가득 차있다. '김재중이 더 트랙스로 데뷔했었던가...?'하고 얼핏 헷갈릴 정도로 이젠 이런 음악이 자기 옷 같다. 전체적으로 진보적인 사운드보다는 지금의 20-30대가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 시절 들었을 법한 철지난 톤으로 채웠다. 중간중간 들어간 슬로우넘버들은 배치를 좀 더 신경 쓰면 좋았을 뻔했다. 타이틀을 제외한 추천곡은 인트로의 기타가 캐치한 5번 트랙 'Good Luck'.
미묘: 영어 제목이 "I'm Jelly Baby"인데, '질투 나는'이란 의미의 구어인 'jelly'가 유닛 명인 '크림'과 맞아 떨어진다. 사람에 따라 이제는 조금 식상할 수도 있는 디저트 계통의 '여성성'이 다방면으로 강조되는데, 비디오의 색감과 안무 등을 곁들여 보면 미각보다는 촉각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AOA의 '짧은 치마'가 보여준 섹스어필 역시 지퍼를 열어 다리를 보여준다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와 손길이 그 핵심이었던 것을 생각하게 한다. 혹시 FNC는 자신들의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흥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광고 속 설현처럼 만지고 소유하고자 하는 ("떼어가고 싶다") 욕망을 자극하며 난폭하게 소비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음악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조성민: 안타깝게도 '3인조 걸그룹 유닛'이라는 장르는 이제 너무나 식상해진 문법이 되었다. '질투 나요 BABY'에서 소녀시대-태티서와 오렌지캬라멜이 이미 사용했던 전략을 빼고 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무게감이 생겨버린 완전체 그룹과의 차별화를 위해 가져온 경쾌하고 가벼운 무드와 여성성을 한껏 강조한 반짝이는 액세서리들, 화려한 색감의 공간, 서브 컬처와의 접점을 만드는 '요술봉'의 등장, 이성과의 관계보다는 소녀들끼리의 케미를 강조한 스토리 등, 굳이 AOA 크림이 아니어도 됐을 것들로만 가득 차있다. 특히 막내 찬미는 제쳐놓더라도, 기존의 AOA에서 성숙미를 담당하던 혜정과 유나가 참여한 유닛 활동이 왜 이런 콘셉트로 나와야만 했는지 의문이 생길 뿐이다.
미묘: 유재하에게서 시작된 현대의 한국형 발라드는 90년대를 거치며 배리에이션을 마쳐 하나의 형태로 정리되었다. 충직하게 짚으면서 선적인 흐름을 보이는 피아노, 기승전결의 구조와 질감, 보이싱의 활용 등 모든 면에서 '횡단보도'는 그런 발라드의 요건을 만족하고, 또한 이를 완성도 있게 구사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이 곡의 곳곳에서 JYP 엔터테인먼트산 비-발라드 곡들의 익숙한 멜로디 패턴이 들린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라져버렸을까봐 겁이 나서 겁이 나서"를 화창한 하우스 풍으로 준케이, 혹은 김태우(!)가 부른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곡을 써낸 것이 에스나라는 것 역시 흥미롭다.
조성민: 개인적으로 JYP는 '발라드 명가'의 타이틀을 달아도 좋을 레이블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퍼포먼스의 댄스 그룹들이 크게 히트했던 이력이 있지만, JYP의 발라드 작법은 확실히 탄탄한 데가 있고, 그것이 이번 조권 싱글에 와서 증명되었다고 본다. 타이틀곡 '횡단보도'에서는 미성에 담백한 창법을 사용하는 조권의 보컬을 유려하게 쓰인 피아노 멜로디가 든든히 받쳐주고, 최소한으로 절제된 오케스트라 편곡은 감성을 촌스럽게 토해내기보다는 담담하게 읊조리는 조권의 목소리가 더욱 부각되도록 돕고 있으며, 심지어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애절하게 외치는 보컬의 뒤편으로 잠시 물러나는 미덕까지 보인다. 수록곡인 '괜찮아요'와 'flutter'도 오랫동안 찾아서 들을 것만 같은 매력적인 트랙들로, 일청을 권한다. 싱글인 것이 아쉬울 정도.
김윤하: 레인보우의 네 번째 미니앨범 "Prism"은 의외의 통쾌함으로 가득하다. 20대 중반을 넘어선 걸그룹에게 남은 카드는 섹시뿐이라는 뻔한 시선, '좀처럼 뜨지 않는 그룹' 타이틀 7년 차에 느껴질 법한 삶의 피로 모두에게서 놀라울 정도로 멀리 위치한 앨범은, 예쁘고 건강한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생의 에너지를 쉴 새 없이 내뿜는다. 그 모두를 응축한 타이틀 'Whoo!'도 좋지만, ZigZag Note와 함께한 'Black & White'는 일정 수준 이상의 커리어를 채운 걸그룹만이 보여줄 수 있는 노련미까지 더하며 그녀들의 미래를 조금 더 기대해보고 싶게 만든다.
맛있는 파히타: 기억을 더듬어보면 레인보우 앨범의 수록곡들이 나빴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문제라면 늘 타이틀 곡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심지어는 팬들의 원성을 들었던 "INNOCENT" EP 조차도 앨범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레인보우가 '안 뜨는 것의 대명사'로서 하나의 인터넷 밈이 된 느낌도 있지만 이들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가혹한 점이 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 트랙인 'Whoo!'는 그런 의미에서 레인보우 스스로에게 대한 다짐처럼 힘차고 새롭다. 이성을 향한 손짓이나 성적인 함의를 걷어내고 뮤직비디오는 철저히 이들의 색깔에 집중한다. 검은색과 일곱 색깔의 대조, 암흑 속에서 프리즘을 통과하는 한 줄기 빛이 일곱 색깔의 스펙트럼을 내뿜는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레인보우가 잃었던 진짜 색깔을 찾고 싶다는 다짐으로 보여진다. 'Whoo!' - 'Black & White' - 'Click!'으로 이어지는 청량하고 폭발적인 에너지는 케이팝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미묘: 어쩌면 그것이 레인보우의 흥행의 문제점일까. 과거 레인보우의 음반 수록곡들은 대체로 에너제틱하면서 화려하고 상쾌하여 무척이나 매력적인 동시에 레인보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타이틀 곡으로서의 성격을 갖기 어려운 트랙들이었다. 'Whoo!'는 이를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보완해내고 있는 듯하다. 레인보우의 전무후무한 히트곡이었던 'A'에서 많은 요소를 샘플링하듯 가져왔지만 그것이 새로운 맥락 속에서 설득력 있게 결합된다. 유난히 멋지게 들리는 다음 곡 'Black & White'과 비교해 보면, 거의 동일한 기조를 보다 타이틀곡스럽게 다잡은 것이 'Whoo!'임을 알 수 있다. '우린 예쁘니까 그거면 됐어'라는 듯한 뮤직비디오도 명쾌하면서 자존감 있는 자세로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무게를 잡아야만 '성숙'을 표현할 수 있는 듯한 씬 환경에서, 연륜으로 뒷받침되는 상쾌함을 보여주는 곡인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돌돌말링: 레인보우의 시그니처라 하면 'DSP 아이돌다운 예쁨'과 '예능을 비롯한 여러 채널에서 보여준 활기참,' 그리고 'A'로 대표되는 로킹한 사운드일 것이다. 다만 그걸 다 모아 무대로 구현해내는 데엔 늘 한 끗이 부족했다. 이런 것을 어설프지 않게 올리려면 모쪼록 신경 쓸 것이 많은데, 'Sunshine' 같은 경우 '예쁘고 재밌긴 한데 자기들만 재밌는 것 같다...'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레인보우는 "Prism"으로 그 아쉬움들을 한 번에 날린다. 언제나처럼 예쁘고 발랄하면서, 어벤전승과 함께 한 'Whoo!'의 레트로한 록 느낌이 'A'의 좋은 기억들을 불러온다. 뮤직비디오는 저예산으로 보이지만 멤버들의 7색 콘셉트를 촌스럽지 않게 잘 활용했다. "Rainbow, ahh" 하는 부분에선 20세기 TV쇼의 오프닝 같은 기대감을 줘서, 마치 레인보우의 새로운 데뷔곡처럼 들린다. 앨범의 전 트랙을 추천하지만 'Black & White'는 넘기지 말고 꼭 들어보시라. ('Cosmic Girl'을 좋아한 사람이라면 분명 맘에 들 것이다.) 멤버 현영이 하이디란 예명으로 작사 작곡 편곡한 'Eye Contact'도 좋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계절 타이밍인데, 날이 따뜻해지면 역주행도 기대해볼 법하다.
미묘: 요즘 용감한 형제는 열심히 팔레트를 확장하고 있는 듯하다. 딥하우스의 질감과 트랩의 요소를 결합한 '변했어' 역시 "용감한 형제가 이런 것도 하는군?"하는 즐거운 놀람을 안긴다. 꽤나 신선한 접근인데, 편곡의 중심을 차지하는 묵직한 피아노와 그런대로 가요적인 멜로디 라인이 이 곡을 지나치게 낯설어지지 않도록 막아서준다. 오디오로 들을 때 더 기분 좋은데, 아슬아슬하게 산만한 구석이 있어 아무래도 집중도가 높은 환경이 듣기 좋다. 뮤직비디오는 멤버들의 굴곡 외에 딱히 뭘 보여주고 싶은 건지 불분명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돌돌말링: 2013년 이후 명맥이 끊긴 줄만 알았던 브레이브걸스가 대대적인 멤버 개편을 거쳐 컴백했다. 힙합 비트의 곡에 스포티하게 입은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 오랜 공백이 있었음에도 공백이란 느낌보다는 새로운 얼굴이 많아서 그런지 신선한 시작이란 인상이 강하다. 국내도 국내지만 해외 케이팝 매체 프로모션에 힘을 빡 준 걸로 봐서 이번엔 해외 리스너 타기팅에 좀 더 신경 쓸 것인가, 하고 추측해본다.
돌돌말링: 입시생의 적 '암욜맨'이 양심 있게 수능을 넘기고 신학기 즈음에 돌아왔다! 'U R Man'으로 나왔을 때는 서브유닛이더라도 SS501이란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팬들끼리만 농담으로 "삼공일"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제는 아예 SS301로 앨범을 냈다. 미묘한 변화지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곡의 형식이 'U R Man'과 너무도 판박이이다. 한상원의 이름을 보는 것도 꽤 오랜만이다. 유머러스한 발음인데 본인은 웃지도 않는 김형준의 랩부터 셋이 돌아가며 부르다 갑자기 뚝 끊듯 허영생이 짧게 터뜨리는 브리지, 재킷을 벗는 안무까지, 자기 곡을 자기가 패러디한 듯한 느낌마저 있다. 'U R Man'이라 표기하고 "Your Man"이라고 읽던 콩글리시까지 "I'm in pain"도 "I'm so painful"도 아닌 "I'm so pain"으로 이어진다. 그때도 그 독특함이 멤버들의 아이돌스러운 적당한 뻔뻔함과 버무려져 밈(Meme)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이 아이돌스러움은 유효한데, 이들이 이제 모두 30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새삼 놀랍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조성민: 예나 지금이나 SS501 멤버들의 매력이란 '아이돌이 이 정도면 됐지'하게 되는 그 설득력에 있다. 전곡 뮤직비디오 공개와 한껏 각 잡힌 퍼포먼스, 그리고 의외로 완성도를 잘 갖추고 있는 앨범이 외려 당황스러울 정도로, SS501은 원래 '쉽게 가는' 아이돌이었다. 그런 입장에서 그들의 최고 히트곡이었던 'U R Man'의 쌍둥이 곡을 통해 유닛의 정체성을 아예 '암욜맨'으로 잡은 것은 분명 쉽지만 강력한 카드로 보인다. 보이그룹들이 불타는 연말 이후로 잠시 휴지기를 갖고 있을 때 등장해 주목을 끈 것도 현명해 보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현역 보이그룹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건재한 이들의 '아이돌력'이다. 7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이들의 여전한 '아이돌미'는 SS501 전성기에 '4 Chance'로 활동할 때 입었던 롱코트를 다시 입음으로써 강렬한 이미지로 부각되었다. 비록 멤버 한 명이 아이돌성을 잃고 말았지만, 어쨌든 남은 아이돌은 아이돌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 팀의 운명이란 처음부터 '5'보다는 '01'에 강조점이 찍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김윤하: 2012년 데뷔 이후 발표한 앨범만 10장. 뭘 해도 중간은 갔지만 그 이상 내세울 뾰족한 카드는 없었던 뉴이스트가 드디어 자신들이 설 곳을 찾았다. 김강원의 순정만화 〈여왕의 기사〉 원작을 바탕으로 꾸린 탄탄한 세계관을 통해 자신들만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낸 이들은, 빅스 이후 잠잠하던 '오버-컨셉츄얼 보이 그룹'의 명맥을 이으며 분연히 일어섰다. 이 낯선 풍경에, 지난해 세븐틴과의 작업으로 모종의 '감'을 잡은 계범주를 중심으로 한 프로듀서진들의 세련된 어번팝 넘버들이 파도처럼 쏟아진다. 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부족함이 없는 앨범이다.
맛있는 파히타: '여왕의 기사'라는 제목은 당장 책 한 권을 써낼 수 있을 정도로 해묵은 이미지와 콘셉트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인물로 시각화되고 음악으로 덮여지는 순간 그 파괴력은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최근 여러 케이스로 확인했다. 그러나 이런 피상적인 공식을 떠나서 뉴이스트의 신보 "Q is."에 실린 노래들은 매우 좋다. 첫 곡 '나의 천국'이 '이야기의 시작'으로서의 나른하게 도입되어 EDM적으로 바뀌는 지점, '여왕의 기사'의 현대적 편곡이 비장미를 너무 우스꽝스럽게 만들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고, '티격태격'의 리드믹하며 밝은 느낌도 아이돌적이다. 앨범 전체적으로 크게 궤도를 벗어나는 지점이 없이 좋은 팝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점이 더할 나위없이 좋다.
오요: 한동안 그 맥이 끊겼던 동방신기 풍의 비장미와 콘셉트가 다시 등장했고 그 그룹이 뉴이스트라는 점은 그닥 놀랍지 않다. 그간 몇 번의 시행착오('잠꼬대'가 가장 대표적이다)를 거쳐 제대로 된 그룹의 콘셉트와 방향을 잡은 모습이고, 다행인 점은 그것이 그룹에 꽤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계범주는 그런 뉴이스트를 뒷받침해 줄 최선의 음악적 선택이었을 테고 그의 장기라 할 수 있는 R&B 트랙을 타이틀곡으로 낙점 지으며 일종의 '계범주 효과'를 최대한 살리려 한다. (여담이지만 계범주는 플레디스의 다른 보이그룹 세븐틴 음반에도 참여했는데, 플레디스 아이돌과 궁합이 좋을 것일까.) 타이틀곡 '여왕의 기사'는 케이팝계에 오랜만에 등장한 정통파 R&B 곡이지만 몇 가지 장치들을 추가하여 세련된 사운드를 획득한다. 후렴구가 특히 그러한데, 풋워크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하이햇 리듬이라든가 사용한 가상악기의 종류 등이 최신의 전자음악 경향을 확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멤버들의 보컬이 시원하게 뻗어 나감과 동시에 마치 세밀하게 저며낸 듯한 코러스 화음이 한데 엉겨 공간을 빡빡하게 메워나간다. 상당히 복잡하게 중첩되는 소리 요소들을 균형 있게 배치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한동안 뉴이스트가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유행과 타협하려기보다는 본인들의 색을 뚜렷히 하려는 곡과 앨범이 반갑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미묘: 위압적인 공기와 숨 가쁜 긴장감을 노린 것 같지만 분위기가 영 따라와 주질 못한다. 흐름은 나쁘지 않지만 끝없이 에너지가 새어나간다. 보컬 자체의 약점일까 생각하다 리믹스 트랙을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같은 소스와 같은 멜로디인데 (당연한 말이지만) 믹스만으로 이렇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리믹스 트랙이 비록 가요-케이팝으로서의 질감과는 거리가 있지만, 타이틀 트랙과의 퀄리티 차이는 그러한 특성에서 비롯된 것도 절대 아니다. 더이상 소규모 아이돌의 곡에 보컬 실력 탓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맛있는 파히타: SM의 시그니처 보이스, 그리고 프로듀서로서 유영진은 어쩌면 SM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프로듀서 이전의 R&B 가수 유영진은 한국에 슬로우잼을 처음으로 가져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마일스톤들을 생각하면 '유영진의 뮤즈'라는 타이틀은 SM의 정통성을 자연스럽게 부여받는 위치일지도 모르겠다. 엑소의 첫 릴리즈였던 'What Is Love'가 유영진표 슬로우잼이었다는 점에서 메인 보컬로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백현과 디오가 처음부터 어떤 의미를 부여받았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그런 의미를 생각해보면 유영진과 디오의 콜라보레이션은 음악 그 자체보다는 이런 배경이 주는 의미가 크다고 본다. 유영진표 슬로우잼은 이미 식상하기 이를 데 없지만, 유영진을 복제해서 유영진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이 주는 무게감은 크다.
오요: 기본적인 소리의 상태가 처참하다. 보컬, 비트, 신시사이저, 어쿠스틱 기타 따위의 모든 소리 요소들이 죄다 납작하게 눌려있다. 이런 지경의 사운드가 어떻게 회사 내에서 컨펌을 받았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믹싱 상태부터 귀를 괴롭히는데 그렇다고 이 곡의 다른 요소들이 이런 소리의 질을 감안하고서라도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런 식이라면 매주 한 곡씩 공개하는 '스테이션 프로젝트'는 대체 왜 하는 건지 의문이다.
미묘: 제목에서 긴장한 것에 비해서는 나긋나긋한 곡이다. 트렌드와는 별 상관없지만 트랙이 자아내는 공기는 그런대로 탄성 있는 비트와 양념이 돼주는 베이스 덕분에 부드럽게 흐른다. 그것이 차별점이 될 수도 있었겠으나, 곡 자체의 중심이 확고하게 잡히지 못해 효과는 좀처럼 거두지 못한다. 보컬과 랩의 질감이나 완성도가 빈틈을 보이기도 하지만, 후렴에서만이라도 포인트를 짚어주는 작곡상의 안배가 아쉽다.
맛있는 파히타: 식스밤의 '10년만 기다려 베이베'는 모든 면에서 어떤 코멘트조차 하고 싶지 않은 곡이다. 좋지 않은 것에는 언급조차 필요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능력상, 혹은 생업을 이유로 리뷰를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곡과 앨범들 중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장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정말 좋으니 꼭 들어보시라"는 말 한마디라도 더하고 싶은 것들도 무척 많다. 그 두 가지의 구분은 분명히 했으면 한다.
미묘: 전작은 뮤직비디오 없이 전원의 하의가 레깅스였는데, 이번에는... (중략) 아무튼 그 어설픔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지만, 의상만을 논할 작품은 아니다. 혹은 아닐 수도 있었다. 2012년에 발매된 남성 곡을 보컬만 새로 녹음했는데, '성공할 테니 기다리라'는 내용을 매우 속물적인 코드로 그려낸 원곡이 성 반전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효과 역시 어느 정도는 감안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물론 원곡의 장렬한 저렴함이 의미부여를 적극적으로 막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곡의 진정한 실패는 의상의 '막장성'이 아니라, 이를 포함한 다방면의 막무가내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네 명의 인간을 '소시지' 정도로 단숨에 소비해버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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