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초순의 퍼스트리슨. 블루미, 포미닛, 위너, 블랙퀸, 태연, 앤씨아의 새 음반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미묘: 보컬 트랙은 예쁘고 안정된 음색으로 약간의 컨트롤이 아쉬운 면이 있다. 신인의 생기로서 나쁘진 않으나, 쉴 틈 없이 채워져 있어서 다소 벅차게 들린다. '너 때문이야'의 솔직한 가요 필과 함께, 깔끔하기보다는 난삽한 인상을 주는데,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맥락에 따라서는 흥겨운 축제 분위기를 구성할 수 있겠다는 짐작도 간다. 다만 씨스타의 'Lovin' U'를 환기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감상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한 기세가, 감상자로서는 맥이 빠진다. 차라리, "오구오구", "쓰담쓰담" 등의 유행어를 집요하게 끌어들이면서 걸그룹으로서는 자칫 위험해 보이는 영역까지(들어보면 안다) 건드려버리는 '흥칫뿡'이 가사와 발음, 보컬 리듬의 찰진 결합으로 오글거림과 재미를 동시에 제공해 흥미롭게 들린다.
조성민: 왠지 베스티가 생각나는 듯도 하지만, 여러모로 보다 짜임새 있는 구석이 많이 보인다. 안정적인 파트 배분이나, 포인트가 잘 살아있는 안무, 잘 다듬어져 있는 보컬과 랩 등이 어쩐지 계속해서 주목하게 만든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싱글.
미묘: '싫어'가 '미쳐'와 같은 공식이라고 지적하는 이가 많지만 내게는 차라리 '미쳐'와 'Volume Up'의 조합처럼 들린다. 트랙을 맡은 스크릴렉스와 포미닛의 접점으로 가능한 비극적 무드와 함께 브레이크에서 브라스의 존재감 같은 것들이 그렇다. 바로 여기서 공격적인 랩으로 싸늘하게 정점을 찍느냐, 스크릴렉스님의 사운드님에게 자리를 내주느냐에 의해 곡의 집중도에 결정적 차이가 발생한다. '미쳐'의 밸런스는 놀라운 것이었다. '싫어'의 인스트루멘탈 트랙이 훌륭하다고들 하는데, 스크릴렉스는 그것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보컬의 중요도가 유난히 높은 케이팝에 이 곡을 적용시키는 데에 큰 무리가 있었고, 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스크릴렉스님의 사운드님에게 충분한 타협을 요구하지 못한 것에 있다. 어쩌겠는가, -0dB 안에 몸을 맞춰야 하는 음악이란 게 원래 타협의 장르인 것을. 오히려 수록곡들에 더 주목하고 싶은데, 한껏 히스테리컬해진 포미닛과 보다 과감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조합이 기존에 듣기 어렵던 참신한 조합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특히 'No Love'에서 현실감을 거의 제거해버린 것은 늘 포미닛의 R&B에서 '포미닛님이 이런 누추한 곳에'라는 좌불안석을 떨쳐낼 수 있게 해줘 반갑다.
오요: 근래에 나온 아이돌 음반들 중 가장 재밌게 들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미닛의 "Act. 7"에 대해 무작정 긍정적인 평을 하긴 힘들 것 같다. 꽤나 많은 아이돌이, 'EDM'이 아닌 사운드클라우드에서나 겨우 접할 법한 전자음악을 시도해왔으나,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뼈대를 뜯어와 포미닛의 목소리만 덜렁 입혀놓다니 어떤 의미론 대범하고 야심찬 EP가 아닐 수 없다. (타이틀 곡 '싫어(Hate)'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이 그렇다. 타이틀 곡을 따로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스크릴렉스의 머리에 포미닛의 몸통을 붙여놓은 것만도 못한 괴상하고 허망한 트랙이기 때문이다.) 괜찮다 싶으면 맥락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가져와 얼렁뚱땅 케이팝이라고 우기는 그 기세와 근본 없음에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어차피 엄밀히 말해 새로운 음악은 만들어내기 힘든 시대가 되었고 이런 식의 전유 또한 충분히 미적 성취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이 트랙들이 원본으로 삼는 그 전자음악들조차 이미 같은 방법론에 의해 완성된 것이고, 포미닛의 곡들은 결국 흉내 낸 것을 더 어설프게 흉내 내는 우스꽝스러운 결과에 그치고 말았다.
조성민: 미니 7집까지 발표한 지금, 포미닛의 성장사는 두 가지 측면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2NE1의 아류'에서 '2NE1의 공석을 발판으로 진일보한 대체재'가 되기까지"다. 2NE1이 일렉트로니카로 담보해오던 독보적인 위치를, 포미닛은 스크릴렉스와의 협업을 통해 완전히 빼앗아온다. 그와 동시에 언젠가부터 2NE1이 그다지 신경쓰지 않던 '걸크러시'로서의 비주얼적 어필까지 더해, 결과적으로 어떤 '역전극'을 만들어낸다. 두 번째 측면은 "현아 원톱 그룹에서 5인조 걸스 힙합 그룹으로 거듭나기까지"다. '미쳐'에서 수시로 텐션을 고조시켰다가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면서 숨 가쁘게 달렸던 것과 달리, '싫어'는 후렴에 거의 모든 것이 올인 된 노래다. 특히 후렴 부분의 사운드에는 완전히 압도되어서 'pick!'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렴의 무게에 전복되지 않게끔 무척 영리하게 설계된 노래이기도 한데, 다섯 멤버 모두가 각자 충분히 고르게 집중되도록 한다. 이를 통해 5명 멤버 각각에다 후렴 부분의 단체 파트까지 총 6가지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미쳐'에서 약점을 보였던 남지현마저도 '싫어'에서는 절 후반부 파트를 충분히 소화해내고, 다크호스로 떠오른 권소현은 자기 파트에서만큼은 원톱으로서 완벽하게 역할을 해낸다. 나머지 네 명이 절대로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았던 현아의 끼를 결국엔 다섯 명이 균일하게 나눠 가져 시너지를 내는 것을 보니, 이제 정말 재밌는 게 시작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김윤하: 위너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승자이자 (데뷔앨범 한 장으로) 가요계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건 대중-프렌들리한 음악 안에서도 각 멤버의 개성은 확실히 살린 신의 밸런스 덕분이었다. 안타깝게도, 오랜만에 발표한 새 앨범 "EXIT:E"는 그 절묘한 밸런스가 상당 부분 무너져 있다. 편안하다 못해 주저앉아 버린 듯한 노래들은 딱히 잡히는 곳 없이 미끈거리며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멤버들은 앨범 내내 위너를 연기하는 위너처럼 보인다. 1년 6개월이라는 공백기, 멤버들을 둘러싼 구설수, 같은 기획사 후속그룹의 생각보다 빨랐던 데뷔까지. 쉽게 웃어넘기기 힘든 우여곡절이 한 점이 되어 터지지 못한 후폭풍을 "X"와 "I", "T"로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궁금하다.
맛있는 파히타: 블루스와 모던록, 그리고 발라드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들로 채워 넣은 미니앨범이지만 음악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역시 YG라 할 정도로 흠잡을 데 없다. 게다가 앨범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인 정서의 흐름을 보인다는 점도 완성도의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그러나 기호의 측면에서 위너의 곡들 모두 낮에 듣기엔 부담스러운 느낌이 있다. 술에 취한 밤에 어울릴 만한 곡들이다. 이런 정서는 실은 돌아보면 YG의 릴리즈 대부분에 녹아있다. 빅뱅과 아이콘, 그리고 위너의 곡들이 정서적인 오버랩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그것은 '취중진담'으로 전달하려는 어떤 진솔함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돌이 가져야 할 패셔너블한 모습과는 연관 짓기 어렵다. 청춘의 화려함과 그 이면의 잠 못들고 술취한 밤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뮤직비디오는, 어떤 면에서는 YG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미묘: 가능하면 조만간 별도의 리뷰를 쓰고 싶다. 소속사의 다른 아티스트들과 비교하여 단정하다는 인상이 있는 위너가, 이번 음반에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노린다. 간혹 우악스럽기엔 너무 고운 목소리란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듣다 보면 나름의 매력이 되기도 한다. 음반의 흥청망청한 전반부는 아무래도 빅뱅이 보여준 명쾌한 흥이나 날카로운 광기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위너만의 색을 모색하는 과정이 느껴지는 점이 긍정적이고, 어쨌든 앞뒤가 어긋나지 않는 그 나름의 완결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 진정 위너의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좋더라'의 맑은 공기와 말끔한 서정이란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철없는 것이 미덕일 수 있다면, 점잖은 것도 충분히 미덕이다.
오요: 데뷔 때부터 일관되게 선보이는 '마이너 팝'인 'BABY BABY', '센치해', 강승윤의 솔로 곡이라 해도 상관없을 '철없어'까지 위너란 그룹의 정체성은 조로(早老)인가 싶을 정도로 무리하지 않는 곡들이 이어진다. 오히려 태현 솔로곡 '좋더라'가 제일 인상 깊다. 차라리 발라드를 밀고 나가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앨범 제목을 보아하니 빅뱅의 "MADE"처럼 여러 장의 미니앨범을 내고 그를 한데 묶어 정규반을 낼 계획인 것 같은데 일단 "E"만 들어서는 이어질 "X", "I", "T"에 대한 기대감을 그리 높게 잡지는 못할 것 같다.
미묘: 그룹 네이밍이 대체 무슨 생각일까 싶긴 하지만, 음악은 의외로 야심이 가득하다. 동요를 차용하고, 감성적인 파트를 삽입하고, 단순한 멜로디의 유니슨으로 외치며 기세를 몰아붙이다가, 과격한 템포 변화를 시도하고, 보컬 트랙은 적극적인 연기를 하여 변화를 주는 등, 케이팝의 역사에서 가장 강렬하게 두드러진 요소들을 이어붙였다.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심지어 그 상당수가 제법 설득력 있다. 아쉬운 것은 보컬 디렉팅이 적극적이고 때로 귀에 띄는 순간을 만들기는 함에도 보다 큰 그림에서 적확하게 이뤄지진 못했다는 인상이 남는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전체적인 사운드가 납작하고 다이내믹의 음악적 컨트롤이 섬세하지 못해, 작곡상의 야심을 거의 살려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간만에 듣는 격하고 과감한 트랙이라 아쉬움이 더욱 크다.
김윤하: 한 기획사가 한 해 동안 매주 한 곡씩 새로운 노래를 내놓는다. 아무리 (대) SM 엔터테인먼트라고 해도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 기획의 첫 주인공이 소녀시대의 태연이라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소녀시대의 메인 보컬이라는 위치와 'SM 공무원'이라는 농담처럼 보장된 결과물, 지난해 솔로 활동으로 남긴 각종 인상적인 기록들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장기 프로젝트의 첫 스타트로 그녀만한 인물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쓰는' 태연이 부르는 두 곡의 팝 발라드 넘버는 이 프로젝트가 진행될 앞으로의 1년이 무탈하리라는 행운의 부적과도 같은 울림을 전한다.
맛있는 파히타: 매니아와 대중 모두를 폭넓게 커버할 수 있는 정통 보컬로서 태연이 내놓은 'Rain'은 솔로 데뷔곡인 'I'처럼 강한 선언은 아니지만 촉촉하게 스며든다. 곡 분위기에 맞는 물기 있고 잔잔한 사운드와 힘찬 코러스 사이의 전환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고, 보컬 역량은 전혀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딱 이상적인 형태의, 부담 없고 폭넓게 사랑받을 수 있는 좋은 팝이다. 한편 B사이드의 'Secret'은 정제되고 침잠하는 분위기로 조금 더 깊은 정서를 전한다. 태연의 보컬을 더 차분하고 깊게 느껴보고 싶은 이에게는 충분한 선물이 될 만하다.
미묘: 'Rain'의 계절감이 약간 묘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비를 소재로 한 밝은 곡은 보통 봄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분명 내용은 추억과 아픔, 그리움이지만 에너제틱한 구성과 편곡 속에서 달콤한 사랑의 기분으로 균형점을 찾는다. 그런 일종의 중립성이 세련미를 더해 이 곡을 더 우아한 '팝'으로 듣게 한다. 호소력과 폭발력을 갖고 있지만 감성을 과장하기보다는 목소리와 노래하는 자세를 분리하여 침착하게 소화할 줄 아는 것은 보컬리스트로서 태연의 큰 강점이자 품위일 것이다. '비밀'을 포함해, 전작 'I'보다 보컬의 디테일이 두드러지면서 '노래'를 듣는 재미도 더한다.
미묘: 깜찍하고 방정맞은 이미지에 주력하던 앤씨아의 슬로 넘버. 개인적으로 체감할 기회는 그리 없으나 나름 초통령의 칭호를 받은 바도 있다고 하지만, 조금은 노선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묵직한 비트와 서글픈 정서에 다소 금속성이 섞인 보이스가 한 안으로서 납득은 간다. 그러나 '나도 눈물이 있어요'라는 듯이 들이미는 방식이 다소 촌스러울 수 있는 점을 차치하고도, 굳이 단순히 낡은 분위기의 가요 R&B를 선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음색의 매력이든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든, 앤씨아는 이것보다는 참신한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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