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양연화” 시리즈를 성공리에 마무리한 방탄소년단. 이들과 관련해 조금 낯선 종류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팬들이 방탄소년단과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에 피드백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아이돌로지는 특히, 이들의 요구가 젠더 이슈에 집중돼 있는 것에 주목했다. 과거에 발매한 곡들의 일부 가사와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 등에 여성을 비하하거나 억압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팬덤 내부의 반발도 있지만, 동조하는 팬들도 많아 보인다. ‘방탄소년단 여성혐오트윗 공론화’란 이름의 트위터 계정(@bts_female_fan1)을 운영하고 있는 A(20대, 학생)와 B(30대, 직장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미묘: 우선 이 트위터 계정을 통해 빅히트 측에 요구사항을 전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여성혐오적 언사(트윗과 가사)의 반복에 큰 문제 의식을 느꼈다.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는 팬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개인적인 죄책감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이전에 문제시됐을 때도 정말 많이 화가 났었는데, 이제 두 번째라서 더 이상 뒤에서 믿고 기다리는 것으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역 추모 현장을 찾았는데, 참 슬프게도 일종의 ‘정모’ 장소가 되더라. 아는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고, 추모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페미니스트로서 정체화를 하고 공부하고 있는 내가 젠더적으로 문제적인 콘텐츠를 계속해서 즐기고 재생산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죄책감이 들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묘: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주로 트위터 해시태그 운동인가?
A: 그렇다. 처음 했던 일은 우리의 입장 전문을 올린 것이었다. 이 사안에 어떤 문제가 있고, 왜 우리가 피드백을 요구하는지 설명했다. 트위터 상의 해시태그가 일단 첫 번째 활동이었다. 어쨌든 이번 일이 일어난 곳이 트위터이기도 하니까. #BTS피드백을원합니다 해시태그
B: 공식 카페는 닫혀 있는 곳이라 외부로 노출이 많이 안 되고, 그 안에서 결국 팬 마케팅의 룰에 의해 제한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방탄소년단의 장점인데, 멤버들이 트위터를 많이 한다는 것도 있다. 팬들도 트위터에서 많이 활동을 하고 있고. 그래서 첫째 단계는 트위터라고 생각했다.
A: 팬 카페를 생각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아이돌 사건 때 팬 카페에 글을 쓰신 분들을 봤는데, 다 무시되고 그냥 떠밀려 가더라.
미묘: 욕먹는 것도 아니고?
A: 욕 댓글도 몇 개 안 달리고 그냥 흘러가 버리니까 제대로 된 피드백이 안 되더라.
* ‘방탄소년단 여성혐오트윗 공론화’ 계정의 입장 전문 글타래 바로가기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채로는 의문을 가지기가 힘들지만”
미묘: 두 분은 젠더 이슈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현재 소위 ‘표절’ 건과 젠더 이슈가 겹쳐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서 타 팬덤을 의식하게 되는 팬들도 있는 것 같다. 다른 팬덤의 견제 또는 ‘분탕’이란 식으로.
B: 각자 마음에 안 드는 문제들을 다 동일선상에 놓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라고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쓴 것은 방탄소년단이 수신인이고, 오직 젠더 이슈에 대해서만 입장을 표명해 달라는 거다. 결이 다른 이슈다. 여성혐오는 엄연한 윤리 문제다. 논지가 많이 섞이는 건 트위터라는 공간의 한계가 있긴 한 것 같다. 하지만 한정적 채널 내에서 트위터로 1차적 공론화를 꾀하는 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A: 문제를 제기하면 누군가가 보기엔 똑같이 부정적인 이슈니까 이것저것 끌고 나올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거만 생각하고 언제까지 묻어 버리길 바라는 건 나는 원하지 않는다.
B: 그래서 ‘여성혐오’(misogyny)의 개념에 대해서 약간 주석을 달기도 했다.
A: 이것도 안티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같은 팬들도 이게 여성혐오라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내용을 넣자고 했다.
B: 나는 지난 해부터 시작해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혐오가 이슈가 되지 않았다면, 솔직히 방탄소년단의 트윗과 가사가 문제적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가사가 있더라도 ‘그냥 그런 가사를 썼나 보다’하지,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채로는 의문을 가지기가 힘들지 않나. 사회 전반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왜 아이돌은 이 부분에서 덮어주는 분위기여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이돌이 면책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도 가수로서 남에게 노출되는 직업을 가지기 전에 한 명의 사회 구성원이다. 만일 아는 사이인 남자가 (SNS 상에서) 나를 태그하거나 멘션하여 그런 말을 했다면 나는 분명히 얘기했을 것이다. 팬이 스타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지 못하고 표현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팬과 아이돌의 특수적 관계라는 말도 있는데, 그런 관계성이라면 이제 개선될 필요가 있다.
‘왜 지금인가?’
미묘: 젠더 이슈에서 최근 확실한 트리거가 된 것은 트위터였는데, 그건 2013년에 쓰여진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왜 지금이냐?’하는 의문을 갖는 이도 있겠다.
A: 크고 작게 젠더 이슈가 나오는 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진짜로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도 그렇게 큰 회사가 아니고, 이런 이슈에 대한 전담 팀이 있는 게 아니다. 바쁠 텐데, 활동기보다는 그래도 휴식기인 지금 해야 회사에서 피드백을 하더라도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B: 갑자기 얘기가 나왔다곤 하지만, 굉장히 오래 누적된 부분이다. 2013년 트윗이라도 여성혐오 아카이빙을 비롯한 다른 계정들이 (다시) 꺼내곤 한다. 꼬리표처럼 계속 따라다니는 거다. 과거의 트윗이라도 현재 시점에서 리트윗 되는 순간, 그 내용은 현재의 것이 된다. 과거에 공개한 노래가 재생되는 순간 현재성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사과를 한다고 해서 깨끗이 잘리는 문제는 당연히 아니지만, 짚고 넘어가는 건 다른 일 같다. 과거 행적으로 논란이 된 모 아이돌도 최근 방송에서 잘못을 인정한 뒤로 반응이 달라졌다.
미묘: 팬들 입장에선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 있고 언제든 고통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
A: 잘못이 있었다고 인정을 하는 것이 더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부분보다도 피드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론화를 결정했다.
B: 잘못보다 중요한 건 사후처리다.
A: 그렇기도 하고, 지금 방탄소년단이 떠오르고 있는 상태인데, 지금 안 하고 더 후에 하면 커리어 측면에서도 더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더 높은 위치에 가 있을 때 하면 더 힘들어 거라고 생각한다.
미묘: 여성에 관해 어떤 가사를 쓰느냐 자체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것에 대해서 ‘그렇게 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A: ‘배워가겠다’ 정도만이라도 표명해 줬으면 좋겠다.
B: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게 회사의 전략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과연 이들에게 관심 없는 대중도 그걸 들을 준비가 돼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 사실 피드백 안 해서 팬이 손해 볼 게 뭐가 있나. 넓게 보면 그룹과 회사 손해다.
미묘: 어차피 낙인이 찍힌다면, 긍정적인 낙인도 옆에 하나 같이 찍자는?
A: 낙인까지는 아니지만. ‘이랬지만, 사과를 했다’ 하는. 스눕독*도 그랬다.
B: 낙인은 이미 찍힌 건데 뭘. (농담)
* 스눕독은 2011년, 과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여성비하적 표현들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쇼미더머니’ 여성비하 랩 가사 논란, 왜 문제시해야 하는가, 리드머, 2015년 7월)
“분명히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묘: ‘행동으로 보여준다’고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방탄소년단이 젠더 측면에서 꽤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B: ‘상남자’에서 ‘I Need U’의 갭도 있고, 또 거기서 “에필로그”까지의 갭도 크다. 그런 데서 변화를 느낀다.
미묘: 랩몬스터가 믹스테잎 이후 ‘힙합계 여성혐오 지양해야 한다’는 인터뷰를 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 (‘방탄’ 랩몬스터 “힙합계 여성 혐오? 지양해야죠”, 앳스타일, 2015년 9월)
B: 분명히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팬들 반응을) 다 보고 있는 것도 알겠는데, 결국은 확실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A: 더디게 갈 거라고 생각했다. 노력도 하고 있고 힘든 건 알지만, 그래도 대응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B: 너무 중요한 문제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미묘: 사실 아이돌은 프로덕션이 방어막이다. 가사에 문제가 있어도 ‘시킨 대로 불렀다’는 게 되는 거라서. 그런데 방탄소년단은 아이돌이 갖출 수 있는 걸 다 갖췄지만, 동시에 굉장히 리얼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그룹이다. 그런 리얼리티가 큰 무기다 보니까, 문제점이 됐을 때도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B: 그렇다. 진정성을 내세우고, 날 것인 랩 가사들도 장점이다. 그런데 그런 이슈가 생겨버리면 참… 슈가가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접점이 되고 싶다고 얘기하더라. 그렇다면 자기 서사에 대한 도덕성까진 굳이 안 가도, 자기 작품이 지적 받을 때 인정하고 책임지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미묘: ‘자기 이야기’라서 팬들이 더 예민하게 반발하게 되는 것도 같다. 거기에 대해서 말참견을 한다는 식으로.
A: 그렇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걸 내세우는 아이돌이기 때문에 더 지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B: 왜 긁어 부스럼 만드느냐 식으로 반응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기다림의 다른 말은 방관 아닌가.
“엄청난 피드백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미묘: 우리나라 연예계가 대체로 민감한 건 다 덮고 가는 분위기가 있지만, 특히 아이돌 기획사가 더 그런 것도 같다.
A: 잘못 건드리면 큰일날 거라고 생각해서 못한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그렇게 덮고 가는 게 과연 좋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엄청난 피드백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B: ‘연습생들에게 페미니즘 강좌를 열겠다’ 같은… (웃음)
A: ‘기부를 하겠다’… (웃음) 그런 정도까지 원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알고 있고, 고쳐가겠다’, ‘앞으로 이런 거는 주의하겠다’ 정도만으로도 더는 바랄 게 없다.
B: 사실 이게 법무팀 나서서 공문 쓰고 그럴 일도 아니지 않나. 유튜브에서 리액션하는 (해외) 팬들 보면 제3세계 사람들도 많고, 성소수자도 많다. 그들이 이런 가사를 봤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방탄소년단도 요즘은 해외 진출을 더 본격화하고 있는데, 장기적인 시각에서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국내외 케이팝 팬, 특히 여성 팬을 위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여성 팬만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
“방탄소년단만의 일이 아니다.”
A: 나는 아이돌을 정말 좋아한다. 모든 아이돌을 다 보는데, 유교적이고 젠더 감수성,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아이돌끼리 얼굴 색으로 놀리는 일 정말 많다.
미묘: 랩몬스터의 믹스테잎 커버아트도 생각난다. 당시 한 외국 사이트에서 불만을 표하기도 했는데, 이 정도 일은 분명 문제제기도 있고 팬덤에서 방어도 할 것 같았는데 별로 안 보여서 의외였다.
A: 그것도 그렇고, 피부색에 대한 발언 때문에 비판도 받았고, 뉴욕에서의 총기 협박 소동이 맞물려 큰일이 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앞으로도 계속 생길 수 있다.
이 얘기를 했더니 동세대나 후배 그룹 이야기도 줄줄이 나오더라. 이번 일이 처음이라 그렇지, 어떻게 보면 트리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팬들도 더 강하게 나갈 수 있고, 그러면 회사들도 대비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아직 매뉴얼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이 된다. 그럼 앞으로 매뉴얼도 생기지 않을까.
B: 공인이냐 아니냐 하지만 공적인 영향력은 있다. 그걸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피드백의 방법론이 아예 무결할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은 든다. 그렇다고 과거를 답습하며 가만히 기다리는 건 더 이상하다. 상대가 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람 재량이다. 할 말은 해야 한다.
팬으로부터의 피드백
미묘: 팬이 아이돌에게 피드백을 하는 부분에 대한 기준도 논의 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젠더 이슈에 대해 피드백해야 한다고 한다면 누군가는 ‘살 빼라’, ‘휴대폰 뺏어라’ 같은 것도 진심으로 멤버들을 위하는 것이라 믿고, 이런 것도 합리적인 피드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A: 내가 젠더 이슈에서 피드백을 요구하는 건 대부분의 팬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살 빼고, 매니저가 때리고 하는 문제는 회사 측에서 인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중요하지만 여성팬인 내가 먼저 집중하고 싶었던 일이 이것이었다. 인권문제에 우선순위는 없지만.
B: 결국 그거 같다. 핵심적인 문제는 아이돌 팬들이 자기 발화에 대한 서사가 너무 없어서. 팬은 자기 의견 내지 못하고, 나는 좋아하는 입장이니까 당연히 수동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팬들이 몸을 사리는 게 이해는 되면서도 안타깝다. 싫다는 게 아니라, 답답했다. 나도 옛날에 젝스키스 시절부터 겪었지만, 하나도 개선되지 않고 역사가 쌓인 거다.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과거의 룰이 오늘날에도 유효성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유난스럽다고 하는 말도 왜 그런지는 알 것 같다. ‘너희들만 레이시즘을 알고 너희들만 젠더 의식이 있냐?’ 하는데, 그럼 알고 있는 것에 행동이 같이 따라가야 맞다. 거대한 운동도 아니고, 주변의 일부터 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그냥 그 행동을 했을 뿐이다.
A: 나도 ‘코어 덕후’였다. 그런데 한번 하고 나니까 내가 미칠 것 같았다. 오직 팬질만 하고 아이돌만 위해서 사는 사람들을 몇 번 보다 보니까, 이런 식으로 팬질이 계속되고 팬덤이 이렇게 계속 폐쇄적으로 가는 게 앞으로 아이돌 문화, 팬 문화에 도움이 되는 건가 싶었다. 팬 본인들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변해 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 방탄소년단은 거의 팬덤 밖에서 혼자 팬질했다.
사실 그래서 아마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좀 더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코어 팬덤 안에 속해 있는 분들 중에서 공론화 지지 발언해 주신 몇 명 안 계신 분들에게 되게 고맙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그 집단 내에서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게…
B: 약간 내부고발자 같은 느낌으로(받아들여진다).
A: 진짜다. (그들이 나보다) 더 배척 받을 수 있는 상황이고, 인간관계 정리되고, 블락, 언팔 당하고… 그래서 그분들이 진짜 고맙다.
미묘: 문제제기 자체에 대한 금기 의식이 진짜 장벽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번 일이,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피드백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B: 문제제기하는 방식도 다양하게 의견이 나올 수 있는데, 공론화를 원하는 사람들도 (누군가는)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겠고, (누군가는) 모든 것을 다 했으면 좋겠고, 그렇게 각자의 입장이 다르다. 그걸 하나인 것처럼 뭉뚱그려서 얘기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고 생각하는 게 같을 수가 없는데. 어떤 거대하고 동일한 의견이길 바라는 것도 너무 몰이해인 것 아닌가.
‘오빠 위에 페미니즘 없다’
미묘: 계정을 만들고서 받은 반응 중에 특이하거나 기억에 남는 게 있는가.
A: 나 같은 경우는 고맙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다. 문제점을 알고는 있지만 선뜻 나서기는 힘들었는데 고맙다고. 멘션이나 DM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처음 시작하기가 조금 덜 두려웠던 것 같다. 그 외에는 이걸 내 개인적 욕심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미묘: 그런가? 그걸로 뭘 얻을 수 있지?
A: 난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수단으로 이용해서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한단다. 내가 하는 건 페미니즘이 아니란다. 나는 그렇게 꼬아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포장지를 까고서 얘기하자’는 게 뭔지 모르겠다.
B: 숨은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나?
미묘: 관심 받는 것?
B: ‘나는 일침을 날리는 빠순이’ 같은 것?
A: 결국은 ‘네가 뭔데 오빠들에게 이래라 저래라냐?’인 것 같다. ‘빠순이인 주제에’, ‘오빠한테 이런 얘기하는 것 아니다’.
B: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피드백 요구를 반대하는 팬들도 나름대로 모여서, 피드백 요구하는 팬들과 서로 상이한 의견에 대하여 토론하는 게 이상적인 방향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게 되고 있는 거 같진 않다. 서로 미워하고 욕하고, 그 뿐이다. 여태까지 그래왔듯.
A: 그리고, 페미니스트랑 빠순이 같이 못한다는 것. 왜 그러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나는 나고, 내 안에 빠순이인 특성도 있고 페미니스트인 특성도 있는 건데, 그걸 왜 같이 못한다는 건가. 그래서 ‘오빠 위에 페미니즘 없다’ 이런 말 나오고. 그것도 결국은 빠순이는 오빠 밑에 있는 존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B: 페미니즘에 래디컬도 있고 라이트도 있고 팬 역시 그렇다. 그런데 ‘그건 팬이 아니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식으로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묘: ‘오빠 위에 페미니즘’ 같은 말은, 너는 빠순이 정체성보다 페미니스트 정체성이 크고 중요하다는…
B: ‘그러니까 너는 빠순이가 아니다’ 이런 식인 것 같다.
미묘: ‘오빠 옆에 페미니즘’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B: 속에 있어도 되고, 여집합으로 있어도 되는데.
“더 멋있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다.”
미묘: 이번 일 이후에 다른 팬덤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올 수 있을까.
A: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다른 팬덤에서도 (해당 아이돌의 발언에 대해) 지금도 계속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B: 난 이런 말 봤다. “내 오빠를 까면서 페미니즘을 합니다. 내 아이돌의 젠더의식을 얘기하면서 빠질 합니다.” 같은.
A: 문제제기가 계속 나오는 걸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나도 아이돌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동참할 수 있다.
B: 혼자 나서고 고립되는 게 두려워서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움직임이 조성이 되면 그렇게 두렵지 않은 일이지 않을까. 모여서 하는 게 훨씬 힘이 있고 목소리가 커지기도 쉬운 일이니까. 정치할 때도 시민들 의견을 받듯이, 팬덤 문화도 이제 쌍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일방적인 태도는 이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팬들도 ‘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고, 인지에서 행동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이제부터 진통일 것 같다.
미묘: 마지막으로 빅히트나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말.
A: 더 멋있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다. 이번 기회로 더. 충분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으면 아예 시도도 안 했을 것이다. 회사도 멤버들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아직 젊고 이제 창창하니까. 이제 시작이니까. 멤버들 다 계속 음악 할 사람들이니까 과정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B: 이걸 멤버들이 혹여나 ‘현자타임’ 오는 일로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 내가 이런 일까지 겪어야 하나?’하고. 나 또한 ‘아이고, 우리 애들 발목 잡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는 빠순이인 거다. 그런데 여러 팬이 느끼는 불쾌함이 나는 왜 개인의 ‘기분 나쁨’으로 치부되어야 하는지가 의문이다. 좋은 기분도 자본이란 말이 있더라. 여성 개인의 불쾌함은 결국 시스템과 구조 문제에서 올 때가 많다. 그런데 아직도 모두 오빠보단 ‘나’를 탓한다. 그래서 ‘빠순이’의 감정 가치 되찾기가 더더욱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바뀌면 더없이 좋을 것이고, 앞으로도 아이돌 팬들의 많은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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