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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아이라인 (1)

가인의 아이라인은 단순히 한 여성의 아이라인이라기보다는, 아이돌 계의 역사적인 아이템에 가깝다. 또한 그 변천사는 단순한 메이크업 방법의 변화가 아니라, 한 소녀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TV에 나오는 아이돌들이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게 예쁘고 잘생기고 귀엽고 섹시하진 않았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물론 본바탕의 우월함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겠지만, 그들도 “OO 과거”라는 검색어 앞에서 살아남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키워드로 성형, 다이어트, 서클렌즈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메이크업’이라는 키워드를 좀 더 파헤쳐보기로 한다.

아이돌의 메이크업을 논할 때 가인의 아이라인을 빼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가인의 아이라인은 단순히 한 여성의 아이라인이라기보다는, 아이돌 계의 역사적인 아이템에 가깝다. 전형적인 외모에 대한 기준을 바꿔버렸고, 과거사에 대한 대중의 혹독한 시선을 중화했으며, 아이돌 메이크업의 금기를 깨버린 것이다. 그 변천사는 단순한 메이크업 방법의 변화가 아니라, 한 소녀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가인의 아이라인 변화를 통해 그녀가 꾀했던 변화의 과정을 짚어보자.

브라운아이드걸스(이하 브아걸)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잘 나가는(?) 여성 그룹이 아니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초창기 브아걸은 아이돌이 아니라 가창력을 강조하는 보컬 그룹이었다.

데뷔 초, ‘인형 같은 외모의 아이돌’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노선의 브라운아이드걸스. 이 시기는 굳이 다루지 않겠다… | 사진=노컷뉴스, 2007년 6월 18일

가인이 대중들에게 어필했던 첫 순간은,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L.O.V.E’의 스타킹걸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때부터 이미, 작고 가는 눈을 보완하기 위한 짙은 아이라인이었다. 이전 무대와 달리 다소 가볍고 대중적인 곡이었던 ‘L.O.V.E’에서 가인은 무거운 단발과 복고풍 패션으로, 당시 흔하지 않았던 굵은 아이라인을 매치했다.

아이 그러지 말고 얘기를 해봐~ | <음악중심> 2008년 3월 1일 ⓒMBC
‘어쩌다’ 무대의 가인. 상큼하고 풋풋하고 귀엽고 애기 같다. | <인기가요> 2008년 9월 21일 ⓒSBS

이후에 나온 ‘어쩌다’도 비슷한 룩으로 진행되었다. 이때는 아이라인을 인위적으로 길게 빼지 않고 눈 주변 라인의 연장선상으로 굵고 둥글게 그렸다. 눈꼬리는 살짝만 올렸고, 짙은 검정색 라인에 흰색 하이라이팅 컬러로 눈 앞꼬리와 애교살을 강하게 올려줘서 블랙&화이트로 강조했다. 무대 화장치고는 매트한 메이크업 마무리와 무거운 단발 등으로 인해 조금 답답해 보인다. 아마도 긴 얼굴형을 커버하고 어린 듯한 인상을 주기 위해 (이미 충분히 어렸지만) 머리를 무겁게 내린 것으로 보이며, 핑크 계열의 볼터치(블러쉬)와, 이에 맞는 색상의 립스틱+글로스로 마무리했다. 아이라인이 좀 과한데도 치크/립 모두 포인트를 준 것은 복고풍 콘셉트에 맞춰 귀여운 느낌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이때까지 가인은 그냥 눈이 작고 다리가 가는, 귀여운 스타킹걸이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시건방춤’ | ⓒ 내가 네트워크

‘L.O.V.E’와 ‘어쩌다’가 대중들에게 브아걸을 좀 더 어필했던 곡들이라면, 브아걸의 위상 자체를 바꿔버린 곡은 역시 2009년의 ‘아브라카다브라’일 것이다. 귀여운 막내 이미지였던 가인은 ‘아브라카다브라’에서 소위 말하는 ‘파격 변신’을 했는데, 지금이야 별별 섹시 노출이 판을 치지만, 당시만 해도 핫팬츠에 골반 흔드는 춤은 엄청난 센세이션이었다. 다행히도(?) 그전까지의 귀여운 막내 이미지+아담한 체구의 가인이었기에 가능한 포지션이이었다고 생각된다. (글래머러스하고 성숙한 이미지의 걸그룹 멤버가 같은 포지션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과한 콘셉트가 되어 지지를 받긴 어려웠을 것이다.)

메이크업으로 이해하기 : 짙은 쌍꺼풀에 눈 아래 애교살이 있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얼굴이 같은 메이크업을 하면 이렇게 된다. | 사진=한경 bnt 뉴스, 2009년 11월 27일

이 때는 강하고 섹시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머리는 어두운 갈색에 불규칙한 컷으로 짧게 잘랐다. 아이라인에 집중한 만큼, 메이크업의 컬러는 철저히 자제되었다. 아이라인의 색상도 검정/베이지/차콜 톤으로만 매치했고, 눈가의 펄은 윤곽과 입체감을 살리는 정도만 사용되었다. 볼터치 없이 창백한 피부 톤을 살리는 대신, 하이라이팅을 얼굴 전체에 강하게 넣어 촉촉한 느낌을 살렸다. 립은 매트한 누드나 페일 핑크로 마무리, 오로지 아이 메이크업만을 강조했다. 아이라인이 강한 만큼 아이브로우는 가늘고 약하게 형태만 잡았다.

<음악중심> 2009년 9월 5일 ⓒ MBC
ⓒ 내가 네트워크


아이 메이크업을 좀 더 자세히 보자.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은 있는데, 뮤직비디오에서는 일단 모든 포인트 메이크업이 과해진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길고 가늘게 뺀 아이라인에 검은색 섀도우를 넓게 얹어준다. 눈꼬리 부분은 아래 라인과 위 라인을 따로따로 그려서 트는데, 무대에서는 간혹 눈꼬리 라인이 두 줄인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가짜 쌍꺼풀처럼 눈두덩이 (일명 아이홀!)에 라인을 얹듯이 한 번 더 그리는 경우도 많았다.

2009년 10월, 브아걸은 후속곡 ‘Sign’ 무대를 발표했다.

사실 이 때는 가인보다는 ‘나르샤 정변’이 더 이슈였지만… | ⓒ 내가 네트워크

‘Sign’ 활동 때의 가인은 ‘아브라카다브라’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되, 아이 메이크업에 약간의 배리에이션을 줬다. 마찬가지로 치크와 립 메이크업은 완전 누드로 누르고 아이라인에만 힘을 줬는데, 이때는 밀리터리 스타일에 맞춰 골드/카키 톤 아이섀도를 사용하여 아이 메이크업에 컬러감을 좀 더 부여했다. 그리고 눈꼬리 라인에서 차이가 보이는데, 무대 혹은 행사, 의상 등에 따라 조금씩 다양한 라인을 시도했던 것 같다. 콘셉트 사진에서는 눈두덩이 전체에 짙은 라인을 넣고 무거운 속눈썹을 붙였다. 행사 사진에서는 눈꼬리 라인이 위아래로 트여서 답답함이 덜해 보인다. 무대 사진에서는 아이홀 부분에는 라인을 넣지 않고 대신 골든 카키 아이섀도를 채워넣었다.

기자님께서 참 잘 찍어주셨다. | 사진=경제투데이, 2009년 11월 6일

2009년은 가인에게 하나의 분기점이 되는 해였다. 그건 연예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한 옷을 입고 야한 화장을 하고 섹시한 춤을 췄던 여가수는 많았지만, 가인 같은 가수는 없었다. 애기 같은 피부와 앳된 인상에 작고 마른 여자아이가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짙은 아이라인을 하고 섹시한 춤을 추는 모습은, 신선하고 이질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가 때로는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아브라카다브라’의 뮤직비디오 속, 어쩐지 안쓰러운 자그마한 여자아이. 가인의 두텁고 진한 아이라인이 마냥 섹시하기만 한 코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 불안함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것이겠지만. 가인이 진한 아이라인과 함께 마냥 불안한 매력의 소녀로만 남았다면, 이 글을 쓸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2편에서는 이 자그마한 소녀가 무대 위를 호령하는 ‘손 사령관’이 되기까지의 메이크업 변화를 다룬다.

딤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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