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나오는 아이돌들이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게 예쁘고 잘생기고 귀엽고 섹시하진 않았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물론 본바탕의 우월함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겠지만, 그들도 “OO 과거”라는 검색어 앞에서 살아남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키워드로 성형, 다이어트, 서클렌즈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메이크업’이라는 키워드를 좀 더 파헤쳐보기로 한다. 1편에서 이어진다.
‘아브라카다브라’ 이후 가인의 이미지 행보를 굳이 하나로 표현하자면, 섹시함이다. 늘 아슬아슬한 길이의 하의로 각선미를 강조했고, 언제나 강한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이었으며, 무대 위에서는 항상 섹시한 춤을 췄다. 그렇게 단순하게 치부해 버리자면, 늘 똑같았다고 곡해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인의 섹시 콘셉트는 과하되 부담스럽지 않았고, 꾸준하되 지겹지 않았다. 왜일까? 왜 다를까?
‘아브라카다브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예능 활동으로 연타를 날린 브아걸이요 가인이었지만, 그렇다고 가인이 섹시한 팜므파탈의 아이콘이 된 건 아니었다. 섹시한 차림을 한 와중에도 가인에게는 어디선가 어색하고 수줍은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고, 대중들도 그녀를 인형처럼 예쁘고 섹시한 아이돌로 소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가인이 일렉트로닉 탱고를 들고 나타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미묘한 안도의 한숨을 안고 찬사를 쏟아냈던 건. 전형적인 아이돌이 아닌 그녀로서는 좁아질 수도 있었을 운신의 폭을, 장르 선택으로 해결한 것이다. 그녀는 비주얼 역시 ‘영리한 선택’을 했다. 탱고 장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반적인 메이크업의 옵션이 ‘칠흑처럼 까만 머릿결에 새빨간 립스틱으로 고혹적이고 절도 있으면서도 섹시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면, 그녀는 ‘뛰쳐나온 것 같은 맨발, 울다가 번진 메이크업, 한쪽만 남은 귀고리**’같은 디테일로 콘셉트를 새롭게 풀었다.
**<W>, 2014년 1월호
2010년 10월, 가인은 ‘돌이킬 수 없는’ 타이틀 뮤직비디오를 호주 올 로케로 제작하는 승부수를 띄운다. 뮤직비디오 속 가인은 세 가지로 구분되는 메이크업 콘셉트를 소화했다. 놀랍게도 그 메이크업들은 전부 한국 아이돌들은 하지 않는 메이크업인 동시에, 가인에게 너무나 잘 어울렸다!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민트색 아이 메이크업은 아주 짧게, 스토리를 설명하기 위해 삽입된 장면에서 잠깐 나올 뿐이지만, 마치 가인의 데뷔 초 느낌과 같이 풋풋한 인상을 주고, 이로 인해 나머지 뮤직 비디오 내용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이렇게 어리고, 철없고, 불안한 아이였기 때문에, 세상 풍파 다 겪었을 장년의 사내를 안절부절못하게 했고, 그리고 그 속 모를 사내를 따라갔고, 도망칠 수 있었고, 그래서 매달렸다. 그래서 쨍하게 밝은 민트색 컬러여야 했고, 그래서 길고 군데군데 뭉친 듯한 인조 속눈썹이어야 했다. 어린아이가 어설프게 장난친 것처럼. (물론 실제 메이크업은 프로들이 했겠지만..)
영화 <팩토리 걸>로 유명한 에디 세즈윅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패션과 메이크업은, 뮤직비디오 안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가인의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늘 불안하고 사랑을 갈구했던 에디 세즈윅은 아이홀 바깥으로 선명한 아이라인을 그리는 특유의 화장과 커다란 샹들리에 귀걸이를 고집했다. 연극배우처럼 극적인 눈 화장, 어둡고 새파란 아이섀도, 사내아이처럼 짧고 단정한 고수머리, 가녀리고 작달막한 팔다리, 세상을 다 안다는 것처럼 오만한 표정, 어른을 흉내 낸 듯 화려한 액세서리와 퍼(fur)로 치장한 여자아이가 무너지며 사내를 붙잡는다. 단정한 차림의 장년 사내는 작은 새 같은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내치고, 멀어지는 그녀의 화려한 눈가에 점점이 번지는 화장. 이 상황에서 이보다 더 맞는 메이크업이 있을까?
사막에서의 촬영분에서는 이미 파국을 맞은 여자의 모습이다. 겹겹이 그려진 아이라인, 마구 문지른 것처럼 흩어진 검은색 섀도. 사랑의 집착. 광기 어린 비극. 이런 키워드들을 모조리 담아 메이크업으로 구현했다.
무대로 옮겨지면서 메이크업이 조금씩 수정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60년대 스타일의 아이홀 메이크업과 번진 것처럼 보이는 언더라인, 과장된 인조 속눈썹을 언더라인에도 붙이는 등 다양한 메이크업을 적절히 섞었다. 컴백 무대는 맨발이었지만, 무대에 따라 털 부츠를 신거나 해서 60년대 느낌을 내기도 했다.
아쉽게도 가인의 첫 솔로 활동은 꽤 금세 끝났다. 아무래도 시트콤 활동 때문이었던 듯한데, 솔로 활동 직후에 바로 촬영이 들어간 듯하다.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 메이크업은 실제 생활에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신 가인은 직후 촬영한 시트콤 <몽땅 내 사랑>을 통해, 그녀가 자신의 아이 메이크업을 일상 속에 어떻게 녹이는지 보여주었다. 콧날 등은 자연스럽게 셰이딩을 넣어주되, 하얀 피부 톤은 그대로 살리고, 트레이드마크인 아이라인은 정성스럽게, 너무 답답하지 않은 동시에 과해 보이지 않도록 살짝 빼줬다. 가인 얼굴의 특징은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의 굴곡이 적다는 점인데, 대신 아이 메이크업을 진하게 해도 부담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만일 가인의 메이크업을 따라 하고 싶다면, 얼굴의 굴곡이 어떤지 스스로 체크해본 후에 살짝 따라 해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2011년 9월, 브아걸은 강렬한 리듬의 4집 “Sixth Sense” 앨범으로 컴백했다.
가인은 얼굴에 그림을 그리듯 브라운 카키 톤으로 윤곽을 그대로 그은 메이크업을 보여주었는데, 섹스어필이라기보다는 강한 이미지를 강조했다고 보인다. 이례적으로 광대뼈 쪽에도 메이크업을 했는데, 볼 터치나 셰이딩의 개념이 아니라 정말 전쟁터를 구르는 것처럼 ‘그었다’. 미간의 윤곽도 셰이딩이라기엔 아예 짙은 회갈색으로 선을 긋듯이 구분 지었다. 부드러운 브라운 톤으로 살짝 아치를 그리던 브로우도, 이번에는 살짝 더 굵게 일자로 그렸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눈두덩에 진흙을 짓이기듯 거칠게 색을 입혔지만, 무대에서는 좀 더 부드럽게 아이라인 가까이에 섀도를 발라주었다.
이쯤 되어서는 가인이 핫팬츠를 입든, 바디 수트가 얼마나 짧든, 대중들은 별로 충격이라든지 놀라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가인은 이제 더이상 초기의 그 불안한 소녀가 아닌 것이다. 어엿한 아티스트로서,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를 당당히 보여주는 여가수로서, 가인은 어느덧 브아걸 ‘언니’ 멤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그룹 활동도 전반적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계속해서 유지해오고 있었고, 그녀의 솔로 1집도 비록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정열적인 이미지로 그룹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인은 계속해서 강렬한 이미지의 섹시 디바가 되려고 했던 걸까? 3편에서는, 이미 20세가 지나 섹스어필을 하는 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녀에서 여인으로’ 거듭 자라야 했던 가인의 메이크업 변화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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