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Listen : 2014.04.11~04.30

macrostar: 간지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림.

ML: 박재범이란 개인의 커리어라기 보단 그가 차린 레이블 AOMG가 그릴 그림을 훔쳐본 것 같아 재미있다. 말장난을 중심으로 섹슈얼한 뉘앙스를 유연하게 전달하며 멋을 끄집어내는 점이 적절하다. 간혹 피처링을 한 사이먼 도미닉의 랩처럼 과하게 느끼한 지점들이 있긴 하지만, DOK2의 흔적이 드리워진 이전 작업들에 비해 훨씬 박재범에게 잘 어울린다.

13: 박재범을 (아직도) 댄스 아이돌 출신의 귀엽고 당돌한 예능인 ‘겸’ 뮤지션 쯤으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꽤 추천하고 싶다. 물론 영어로 불렀다면 백배 나았을 법한 아방한 한국어 딕션의 흔들리는 “안.정.Gaaam..” 은 어쩔 수 없지만, 그의 음악에 점차 완성도를 더해가는 무언가가 기특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건 전문가가 아닌 이도 인정할 만하다. GRAY의 맛깔나는 삽입구는 예상 외의 매력 포인트로 재등장을 기다리게 만드는 반면, 사이먼디의 랩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감으로 곡의 후반부를 잡아먹는 듯한 숨찬 느낌을 준다. 아무렴 이토록 테스토스테론 넘치는 세 남자의 쫄깃한 목소리로 격하게 몰아치면 어느 여잔들 숨이 가빠오지 않겠느냐마는…

오요: 여지껏 나온 박재범의 싱글들 중 가장 들을 만하다. 평이한 비트지만 박재범의 능숙한 보컬이 곡을 살린다. 메트로놈이라는 소재도 재미를 더한다. 다만 꼭 피처링을 넣어야 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사이먼 도미닉의 랩은 겉도는 느낌이고 그레이가 맡은 훅은 차라리 박재범이 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이어지는 ‘올라타(Ride Me)’는 흠잡을 데 없이 흘러가지만 그 뿐이라 귀에 남지는 않는다.

유제상: 한 해에 싱글 두 장 꼴로 꾸준히 세련된 힙합 넘버를 발표하는 박재범의 신작. 메트로놈(METRONOME), 올라타(Ride Me)의 두 곡으로 구성됨. 1. 메트로놈(METRONOME) (Feat. SIMON Dominic, GRAY)은 ‘정박의 상징’인 메트로놈을 원하는 엇갈린 연인의 인연을 노래한 곡. 랩퍼 3인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가사 지분은 쌈디가 제일 많다(?). 제이팍, 쌈디, GRAY 팬들에겐 가히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을 듯. 2. 올라타(Ride Me)는 섹스에 대한 열망을 성실한 체위 설명으로 표현한 곡. 매끈한 R&B로 듣기 무난하되, “내 입으로 네 브라를 벗겨”, “빨리 올라타”, “힘들기 시작하면 말해. 자리 바꾸자”는 노골쏭 레벨의 가사는 다소 쇼킹.

김영대: 느긋하게 짝짝 들러붙는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스타일의 레이드백(laid-back) 그루브. 예스럽지만 변함없이 유효한 리듬은 단연 JYP 근작 중 가장 훌륭하다. 단조로운 코드워크의 반복 때문에 뚜렷한 퍼포먼스가 있지 않는 한 낭패를 보기 쉬운 스타일이지만 보컬 기량만으로 보기좋게 메워낸다. 중성적인 호소력이 일품인 박지민도 좋지만 탄력과 디테일을 모두 갖춘 백예린은 반드시 지켜봐야 할 보컬리스트.

13: 우타다 히카루의 ‘Automatic’이란 곡을 매우 좋아했던 필자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 슬프고 절절한 내용일 것만 같았는데 생각보다 밝아서 조금 깼던 가사, 그럼에도 ‘전 애인 옷의 페브리즈향’처럼 상큼하면서도 애틋한 향취의 음색, 파워풀함과 청아함을 동시에 잡은 보물 같은 보컬이 자꾸만 귀를 귀울이게 만든다. 슬플 때 듣는 슬픈 노래처럼, 요즘 같은 날씨의 새벽녘 귀가길만큼 소름 돋고 처연한 시각에 오히려 이런 묘하고 그늘진 설렘 노래야말로 기분을 싱그러이 환기시켜줄 것만 같다. 그나저나 뭘 불러도 미국어 같은 이 느낌은 15&(과 박진영..?)의 사족 같은 종특일런지.

유제상: 일년에 한 곡씩만 발표하는 그룹 피프틴앤드의 신곡. 한동안 본업이 푸르밀러였던 박지민과, 아직은 대중들에게 이름이 낯선 백예린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진 시원시원한 곡이다. 최근 반 년간 선미를 위시로 한 JYP 산(産) 음원이 멜로디로 보나, 곡 구성으로 보나 퀄리티가 매우 높은데, 이는 불꽃이 꺼지기 직전 가장 밝게 타오르는 것 같은 걸까. 아니면…

macrostar: FT 아일랜드, 씨엔블루 같은 남자 아이돌 밴드가 주력타자인 FNC 엔터테인먼트의 솔로 여가수다. 같은 회사의 AOA와 데뷔년도는 2012년으로 같다. 여러 방송을 통해 야망이 꽤 크고 의지가 넘친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하고 있는 음악은 아직 그걸 따라가질 못하고 있다. 과연 언젠가 전기를 잡을 수 있을지?

미묘: FNC의 방향성은 아이돌도, 싱어/송라이터도 아닌 가요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납득이 가는 곡이다. 리얼한 궁상 가사와 산뜻한 사운드 속 적당한 클리셰들이 용감한 형제의 통속적인 매력을 살리고 있고, 주니엘의 음색은 부담을 덜어준다. 좋은 균형의 곡이다. 그러나 만일 이 곡이 주니엘의 커리어에 큰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시기 탓만은 아닐 것이다.

유제상: 기타 소녀 주니엘의 신보. ‘다음날’과 다음날 인스트루멘털 두 곡으로 구성됨. ‘다음날’은 기타 장장 편안한 멜로디에 솔직한 듯 과장된 듯한 가사(“아마 추했을 거야”, “기분 더러워져요” 외)가 어우러진 곡이다. ‘나 싱어 송라이터임ㅇㅅㅇ’에 진정성이 담겨 있음은 인정하지만, 데뷔 이래 3년여 간 비슷한 곡만 계속 내고 있는데 이게 얼마나 더 오래 갈지 모르겠다.

미묘: 강렬한 일렉트로닉은 다소 간만인지라 반갑다. 딥하우스 풍의 화성감과 저역에서 꿈틀거리는 베이스가 인상적이고 보컬 멜로디도 잘 달라붙는다. 다만 그 멜로디가 아이돌팝 혹은 댄스 가요로서 적합하냐 하면 아쉽게도 다소 부족한 편이다. (또한 보컬 파트는 한 명의 메인 보컬리스트에 매우 심하게 의존하고 있기도 하다.) 댄스 가요보다는 일렉트로닉 곡에 가깝다고 하겠는데, 이런 곡을 소재로 아이돌 혹은 댄스 가수로 활동하고자 한다면 다른 영역에서의 서포트가 필수적이란 짐작을 해본다. 개인적으로는 매력을 느끼고 또한 이런 곡이 더 나와주길 바라지만, ‘아이돌팝’으로서는 다소 무리수가 아닐지.

유제상: 불과 작년 가을만 해도 에이핑크 같은 노래를 부르던 그룹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리듬액션 게임의 PV 삽입곡 같은 ‘Bump’로 컴백했다. 평자는 이런 ‘듣기만 해도 화면 상단에 흰색 파란색 note가 쏟아져 내리는듯 한’ 곡에 엄청 약해서 바로 마이앨범에 포함시키긴 했지만, 아무래도 시장에서의 성공 여부는 미지수로 남는다. ‘Jubeat’니 ‘DJMAX’니 하는 폴더가 휴대폰에 있는 분들에겐 적극 추천. 이제 ‘Your Own Miracle’은 폴더에서 지우세욧!

미묘: 남성 댄스 그룹이 R&B 발라드로 활동한 레퍼런스가 국내에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댄스곡처럼 시작해 R&B로 빠지는 구성이, 발라드처럼 시작해 댄스곡으로 빠지는 클리셰를 뒤집은 것은 재밌다. 후렴의 코드 진행이나 몇몇 사운드도 적당히 익숙하면서 예쁜 편.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곡은, ‘팬들을 위한’ 앨범 수록곡이 아닌 ‘타이틀곡의 무엇’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는 못한 채, 터보의 미드템포 활동곡 분위기로 빠지고 만다. 전작을 생각하면 곡의 프로듀싱과 선정에도 조금 더 패기를 기대하고 싶다.

오요: 소녀시대 디스가 별 효과를 못 본 탓일까. 안전한 사랑 노래를 들고 나왔다. ‘It’s You’는 이전의 싱글 ‘MR.MR’보다 지루하고, 어떤 인상도 남기지 못한다.

미묘: 아우라는 전작에서도 뮤직비디오는 곡의 일부만을 들려주는 형태를 취했다. 곡을 따로 들어달라는 요청이라면 나름의 패기를 느낀다. 그러나 다이시댄스의 전성기에서 그리 넘어오지 못한 편곡과 사운드는 지지하기 힘들다. 물론 ‘감성 EDM’을 만들겠다고 할 때 바로 떠오르기 쉬운 형태인 것은 사실이겠으나, 기왕의 자아실현이라면 조금은 더 나아가길 기대한다. 또한 “무드 드라이브 팝스” 풍의 커버와, 담백하다기보단 스케치 녹음에 가깝게 들리는 보컬은, 그나마 완성도마저 후하게 평하기 어렵다.

오요: ‘바닐라’라는 단어 선택과 도입부의 게임음악을 연상시키는 피아노 멜로디까지, 노리는 이미지와 대상이 매우 명확한 싱글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파스텔톤’을 선호하는 십대-이십대 여성이 아닐까 싶다.) 사실 잘만 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전략이지만 아쉽게도 피아노 멜로디를 받쳐주는 전자음과 보컬, 비트 등이 전부 따로 논다. 어쩔 수 없는 ‘저예산’의 한계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