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지역, 나아가 세계 최대의 케이팝/한류 축제로 평가받는〈KCON: All Things Hallyu〉(이하 ‘케이콘’)를 취재차 LA에 다녀왔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 프레스 참가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해외의 혹은 해외 팬들의 케이팝에 대한 관심과 열의를 확인하는 방법이라고는 고작 간간이 나오는, 조금은 두서없이 편집된 뉴스 보도라든지 여기저기 흩어진 유튜브 영상들과 그 반응을 담은 비디오들이 전부에 가깝다. 2012년 ‘강남스타일’의 대폭발 이후 한국 팝 음악에 대한 해외에서의 관심은 어쩌면 새로울 것이 없는 기정사실처럼 굳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그 깊이와 실체의 전반에 대한 보도는 여전히 ‘세상에 이런 일이’ 수준에 머물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지난 2007년부터 워싱턴 주 시애틀에 거주하면서 사실상 제2의 한류열풍, 그리고 아이돌 2세대라 불리는 케이팝의 붐을 현장에서 체험한 바 있고, 그 흐름의 변화 과정 등을 유심히 관찰해 왔다. 특히 작년에 이은 케이콘의 경험은 필자가 가진 몇 가지 짐작들, 그리고 생각들을 확인하거나 수정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작년에는 일신상 미처 풀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이제 2년 치로 함께 묶어 가볍게 담아 나누고자 한다.
케이콘 : 케이팝 아이돌 음악의 경쟁력과 가능성
올해로 4년째를 맞는 케이콘은 CJ E&M과 엠넷 아메리카의 주최, 도요타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주로 미국 내의 저널리스트, 학자, 산업 종사자들이 컨퍼런스 형식으로 꾸미는 패널 발표/토론 세션, 케이팝 뮤지션과 스타들이 참여하는 팬 미팅 행사인 “Fan Engagement party”, 그리고 음악, 영화, 식품, 코스메틱, 이동통신 회사 등이 참여하는 광고/행사 부스 등의 행사가 다양하게 엮여있다. 그중에서도 이틀에 걸쳐 펼쳐지는 콘서트 〈M-Countdown〉은 이 행사의 백미이기도 하다. 2014년에는 이틀간 총 42,000 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고 올해는 LA와 뉴욕에서 동시에 주최되어 총 75,000명 이상이 운집했다. 단일 행사로서 케이팝 최대의 축제이다.
케이콘은 무엇보다 한국 대중음악, 그중에서도 아이돌 팝에 대한 ‘덕심’으로 똘똘 뭉쳐진 행사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이 주제가 된 〈코믹콘 (Comic-Con)〉 등과 또 다른 것은 이 덕심이 트렌디함과 최신의 유행, 그리고 음악이라는 찰나적이고 매력적인 현대적 퍼포먼스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케이콘에는 다른 아시아 관련 문화 행사와는 달리 젊고, 역동적이며, 쿨하고, 매력적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미국 내 ‘아시안 덕후’를 상징하는 다소 우스꽝스런 분장을 한 전형적인 ‘양덕’의 이미지가 아주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현대적인 청소년 팬들이 다수였고, 이들은 필자가 미국 내에서 흔히 보아 왔던 그런 평범한 사람들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일찍이 아시아 문화에 정통했거나 일본 문화에서 ‘갈아탄’ 일부의 팬들과 달리 상당수의 미국 현지 팬들에게 아이돌이라는 단어는 낯선 개념 중 하나였다. 케이팝을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칼럼니스트들조차 입덕의 시기는 평균 잡아 3~4년이 고작이었다. 케이팝은 정말 ‘핫’하고 여전히 ‘새로운’ 문화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이렇게 엄청난 규모로 성장한 한국 음악의 힘은 무엇일까. 이들이 1년 내내 이 행사만을 기다리고, 아르바이트한 돈을 쏟아 부어 비행기와 콘서트 티켓을 구입하고, 사랑하는 아이돌을 위해 그들의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붓게 만드는 동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또한 미국 현지인들이 보는 한국 아이돌 음악의 핵심은 무엇일까.
현지 팬들의 증언을 종합해 케이팝 아이돌 음악의 매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는 ‘가장 강렬한 음악적 체험’이 될 것이다. 케이콘에 온 미국 음악 팬들의 증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한가지는 이들은 자국의 음악인 미국 대중음악에 비해 케이팝을 훨씬 ‘재미있는’ 음악으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상당수의 팬들은 미국 팝을 ‘단조롭다(monotonous)’거나 ‘지루하다(boring)’고 표현했으며, 그에 비해 한국 아이돌 음악은 다양하고, 흥겹다고 말했다. 이는 다소 충격적인 의견이었다. 〈빌보드〉에 케이팝 평론을 기고하고 있는 대표적인 케이팝 칼럼니스트 제프 벤자민(Jeff Benjamin)은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케이팝 아이돌 음악의 최대의 매력으로 ‘완벽에 가깝게 준비되고 훈련된 음악과 퍼포먼스의 수준’이라고 단언했다. 미국 팝에 버금가는, 혹은 대등한 정도의 ‘높은 퀄리티’의 사운드와 춤은 다른 아시안 팝에서는 일찍이 없던 것이다. 인종적 편견을 가지지 않는 미국 내의 현지 팬들에게 한국의 아이돌 음악은 이국적 느낌(exoticism)에 기반한 신기한 즐길 거리가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트렌디한 음악에 불과했다.
미국-한국, 원조-아류 식의 이분법적 편견은 적어도 케이콘 내에서는 듣기 힘들었다. 오히려 한국 칼럼니스트로서 자국의 음악에 가질 수밖에 없는 지나친 자기검열적 비판은 일종의 편견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국 영화, 한국 음식, 심지어 굳이 아이폰을 마다하고 갤럭시 폰을 선택할 만큼 한국에 대해 호의적이고 충성스런 이들만이 모였지만, 그렇다고 케이팝에 대한 일말의 비판의식마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 결은 분명 달랐다. 국내의 미디어들이 일부 뮤지션의 표절 문제나 걸그룹의 노출 등 다소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하거나, 한류나 케이팝을 지나치게 애국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과는 달리, 현지 저널리스트나 팬들의 주된 관심은 뮤지션에 대한 서포트와 기획사의 불공정한 계약문제 등 실질적인 문제들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확실히 다른 점이었다.
“아이돌을 듣습니다. 아이돌만 듣진 않습니다”
케이콘의 백미인 〈M-Countdown〉에서 아이돌로 구분할 수 없는 팀을 굳이 골라내자면 자이언티/크러쉬와 로이킴 정도였다. 둘 다 이제는 미디어 노출 빈도가 높은 팀으로 아이돌 음악과 완전히 다른 생태계에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전형적인 아이돌 댄스 그룹과 다른 층위에 놓여 있는 팀들에게 다양한 관심이 쏠리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힙합과 록에서 각각 가장 대중적인 팀이라 할 수 있는 에픽하이, YB 등은 미국 팬들 사이에서도 소위 ‘지존’급으로 대접받으며 그들의 모든 음악, 음반이 관심의 대상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충성스런 팬들에게 서태지의 컴백이나 신해철의 죽음이 주는 무게감은 한국과 완전히 다르지 않았다. 인디의 메카 홍대는 그들이 가장 방문하고픈 성지순례 장소였고, 한국의 록 페스티벌은 현지의 케이팝 팬들에게는〈코첼라〉나 〈서머페스트〉보다도 더 의미 있고 중요한 행사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아이돌 음악 위주의 행사인 케이콘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마련된 인디 음악 패널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청중이 몰려서 참석한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크라잉넛, 갤럭시익스프레스, 로다운30, 옐로우몬스터즈, 혁오 등이 호명되며 질문과 답이 오갈 땐 마치 한국에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관심은 있지만 아직 한국 인디에 입문하지 못했다는 한 청중의 질문에 ‘솔루션스 같은 팀은 아이돌 음악 팬들이라도 전혀 위화감 없이 즐길 수 있다’며 센스 있는 추천을 해주는 한 패널리스트의 답변도 인상 깊었다. 단순히 맹목적인 열광이 전부는 아니었다. 한국 음악 산업이 아이돌 음악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이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함께했다. 또한 이들의 공연을 북미에서 즐기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음반과 음원을 반드시 돈을 내고 구매할 것과, 댓글과 SNS 팔로우 등을 통해 이들에 대한 미국 내의 관심을 보여주는 등 리스너의 지속적인 후원을 강조하는 모습에서는 ‘덕’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곱씹게 했다.
김영대의 KCON 리포트 2부에서는 달라진 미국 내에서 달라진 케이팝의 위상과 수용방식 등을 통해 케이팝의 미래를 점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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