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ON 리포트: 케이팝의 제3막이 열리다 ①에서 이어진다.
아이돌 힙합, 이미 현재가 되었나?
작년과 올해 가장 눈에 띈, 동시에 가장 특별하게 읽힌 흐름은 바로 한국산 힙합 아이돌의 전면적인 등장과 미국 내 팬덤의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지난 2014년 케이콘 라인업에서 가장 뜻밖의 반응을 얻은 팀 중 하나는 바로 방탄소년단이었는데, 팬미팅과 쇼케이스 등이 폭발적인 대성황을 이루며 현지 관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팬덤을 끌어 모은 한 팀으로 등극했다. 올해 라인업에서는 블락비, 몬스타엑스, 넓게는 자이언티나 지민(AOA)등이 포함되어 그 흐름이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기대케 했는데, 현장은 예외 없이 이들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으로 넘쳐났다. 이미 베테랑의 위치에 접어든 블락비의 인기는 일견 충분히 수긍 가능한 것이었지만 공식 데뷔가 100일도 채 넘지 않은 몬스타엑스에 쏟아진 환호는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을 것이다.
대세가 된 ‘힙합’의 흔적은 공연에서도 분명했다. 〈언프리티 랩스타〉의 화제성을 다분히 의식한 때문인지 지민이 홀로 DJ 부스와 함께 깜짝 등장, 흥겨운 랩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앞선 AOA의 본 공연만큼이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모두는 단순히 한국 주류 힙합의 대중성만이 아닌 국제적인 케이팝 아이돌 음악의 수용과 팬덤 형성이 이미 한국만큼이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례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2013년의 엑소, 2014년의 방탄소년단, 올해의 블락비와 몬스타엑스로 이어지는 팬들의 열광은 미국 내 케이팝 팬덤만이 가진 취향의 흐름도 함께 증거하는 부분이다.
아이돌과 힙합의 동거는 여전히 필자에게 낯설고 당황스럽다. 작년에 〈아이돌로지〉에서 비슷한 맥락의 대담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사실 힙합만큼 아이돌 음악과 상호 배타적인 음악적 뿌리를 가진 것은 드물다. 힙합은 본래 뉴욕 브롱크스의 유색인종들이 시작한 독립적이고 지역적인 길거리 퍼포먼스를 근간으로 두고 있다. 전국적인 상업화를 거친 후 그 성격에 변화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진정성’, ‘뮤지션쉽’ 등을 강조하는 특유의 문화는 음악과 가사, 태도의 곳곳에 잔재처럼 남아 있다. 다른 어떤 음악에 비해 인종적인, 민족적인 폐쇄성도 강한 음악이니만큼 비-미국적, 비-흑인적인 움직임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에 비해 아이돌 음악은 소위 상업주의 노선의 끝판왕으로, 이미 아이돌이라는 단어 자체에 회사 지향적, 산업적인 성향과, 대량생산 및 통제, 아티스트쉽의 부재를 함의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러므로 미국도 아닌, 흑인도 아닌, 그리고 정통 힙합도 아닌 한국 아이돌과 힙합의 만남이야말로 여러모로 어색한, 동시에 근본적인 위험성을 내재한 장르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궁금했던 지점, 일정 부분 고민을 품는 지점도 바로 이 상호배타성을 미국의 현지 팬과 음악관계자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뜻밖에 현지 팬들은 이 낯선 조합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이돌 힙합의 음악적, 문화적 진정성에 대한 고민을 터놓는 필자에게 뉴욕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존 오(John O.)는 ‘힙합은 음악적 도구에 불과할 뿐 그 본질과 경계를 미리 설정할 필요는 없다’고 반박의 논리를 폈다. 물론 동시에 한국 힙합의 대들보라고 할 수 있는 1~2세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지나친 상업주의에 경도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미국 주류 힙합이 90년대 후반 이후로 지나친 물질주의 및 상업주의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이돌 힙합의 등장 속에서 한국 힙합의 무게를 지켜야 할 이들이 똑같은 함정에 빠지지 말았으면 한다는 관점이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자란, 인종마저 다른 비슷한 연배의 두 사람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의 힙합, 나아가 대중음악 전반에 대해 이렇게 진지한 고민을 하고 꾸준히 발자취를 추적하려는 미국 현지의 시선이 있다는 것은 놀라우면서도 반가운 부분이었다.
〈쇼미더머니〉, 그리고 아이돌과 한국 힙합
한국과는 달리 좋아하는 뮤지션의 라이브 공연을 실시간으로 관람할 기회가 사실상 전무한 미국 현지 팬들에게〈슈퍼스타K〉, 〈케이팝 스타〉, 〈쇼미더머니〉 등으로 대표되는 리얼리티 음악 쇼야말로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효과적인 통로이자 소비수단이 된다. 물론 한창 대세를 점하고 있는 힙합 관련 프로그램, 그중에서도 최신 에피소드가 방영 중인 〈쇼미더머니〉는 단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한국의 저널리스트인 필자에게 출연자나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질문은 물론이요 송민호와 블랫넛 등 최근 화제가 된 래퍼들에 대한 질문을 끊임 없이 쏟아내고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에서는 왠지 모를 어색한 기분마저 느꼈다. 지난 시즌 우승자 바비가 한국 힙합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팬심 담은 선언(?)부터 시작해,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논란을 부추기는 쇼의 구성과 탈락 번복 등이 혹시 방송사의 각본에 의해 짜여진 것이 아닌가 하는 자연스런 궁금증, 〈쇼미더머니〉가 한국의 ‘진짜’ 힙합 씬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 출연진의 미국 공연을 고대하는 마음까지. 매니악한 국내 커뮤니티에서나 벌어지면 자연스러울 다양하고 수준 높은 질문과 토론이 오가고, 또 그것을 외국 음악이 아닌 ‘내 음악’으로 간주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이미 케이팝의 새로운 세대가 시작되었음을 감지했다.
아이돌 힙합과 관련한 보다 진지한 목소리도 나왔다. 바로 문화적 전용(轉用, cultural appropriation)의 문제를 주제로 내건 한 패널에서는 한 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에 이식되면서 벌어지는 오용 내지는 오역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논의의 수준을 떠나 여느 학회에서나 있을 법한 진지함이 퍽 인상적이었다. 패널에 참석한 이들은 근래에 벌어진 몇 가지 사건들에 특히 주목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방탄소년단의 〈아메리칸 허슬 라이프〉에 등장하는 무비판적인 흑인 문화의 도용 내지는 왜곡, 그리고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송민호의 여성 비하적 가사와 랩몬스터의 “too black” 발언 등에 담긴 인종적인 함의는 그 핵심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애정을 전제로 이들 저널리스트들과 참석한 팬들은 한국 아이돌 음악이 이미 국제적인 팬덤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그들이 뿌리를 둔 힙합 문화에 대해 더욱 정확한 이해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힙합에 대한 문화적 소유권(ownership)을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미국 힙합에는 한국이 여전히 종속적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인 추종이 능사는 아님은 물론일 것이다. 당연하고, 또 필요한 지적이다. 한국에서 온 칼럼니스트인 필자가 아이돌 힙합을 비판하면 LA에서 온 흑인 칼럼니스트가 그들을 옹호하는 장면, 이런 것은 대중문화만이 줄 수 있는 ‘쿨’한 풍경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미국에는 없는 것 vs. 미국에만 있는 것
2년 연속으로 이곳을 찾으니 사소한 궁금증도 함께 생겼다. 한국의 아이돌 문화에는 있지만 미국에는 없는 것이 있을까? 혹은 그 반대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미국 아이돌 팬들의 관용성이다. 더 쉽게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이외의 사람들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갖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에 있는 케이팝 팬들이 상당 부분 아시아 음악의 전반적인 팬으로서 입문했다거나, 드라마 등으로 처음 음악을 접하면서 장르를 특별히 가리지 않게 된 데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특정한 그룹이나 개인의 팬이기에 앞서 한국 대중음악의 팬이기에 다른 가수를 좋아하는 데에 크게 주저하지 않으며, 이들을 만나고 접촉할 기회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물론 SM, YG, JYP, FNC 등등으로 세분화된 기획사 위주의 음악 판도에서 각각의 레이블들이 가진 독특함을 추종하는 팬들도 분명 존재하긴 했지만 극히 소수였고, 상호 간에 과도한 경쟁심이나 적대적인 태도는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케이콘의 축제적인 성격이 그러한 관용도를 더욱 과장한 측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올해 음원 차트를 수놓았던 빅뱅-엑소의 경쟁적인 음원 순위 쟁탈전 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이나 일본에서의 반응을 일종의 ‘바로미터’로 여기고 뿌듯해 하거나 우월감을 느끼는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특정 앨범이나 곡의 순위나 기록보다는 음악이나 공연 자체를 즐기려는 마인드가 투철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미국 내에서 케이팝은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화 되고 있었다. 모든 팬이 모든 곡을 따라 외워 부르고, 그것을 케이팝 팬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표식쯤으로 여기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한 패널에서는 ‘굿즈’들을 놓고 퀴즈가 벌어졌는데, 사회를 맡은 저널리스트가 아이돌 음악을 1초 정도 들려주면 거의 모든 팬들이 즉각적으로 손을 들어 정답을 맞히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어찌 보면 대단히 미국적인 ‘매니악함’의 단면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화면으로만 익숙한 아이돌 스타들을 행사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실신을 하는 팬들의 모습, 그들을 비현실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현지 팬들의 관점에서, 과거 흔히 볼 수 없던 미국 팝스타에 막연한 환상과 집착을 품던 우리의 모습도 겹쳐 보였다. 실제로 이러한 문화적인 집착(fetishization)과 이상화(idealization)의 부정적인 효과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바른 팬덤 문화를 공론화하고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습에서 부러움도 느꼈다.
로컬 음악이 된 케이팝, 그 미래는?
한국계, 혹은 아시아계만이 즐기는 일시적인 문화적 유행이라 내다본 전문가들의 몇 년 전 예상을 비웃듯 케이팝은 미국 내에서 그 양과 질 모두가 몇 배 이상 성장했다는 사실을 다양한 경로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매년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추세로 대기업의 후원이 증가하고 있고, 특히 올해 LA의 행사는 서부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스테이플스 센터(Staples Center)에서 열릴 정도로 그 위상이 커졌다. 굳이 분류하자면 절대다수의 참가자가 비-한국계 미국인일 정도로 케이콘은 사실상 미국인들을 위한 맞춤형 행사로 위치를 확고히 다져가고 있다. 한류 컨텐츠 행사이니만큼 스폰서 역시 한국 기업이 대다수이지만, 올해는 맥도널드와 버라이즌(Verizon Wireless) 등 미국 기업이 대거 진출하면서 급성장을 이뤘다. 이를테면 케이팝의 미국 내 ‘로컬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는 중요한 변화다. 케이팝, 혹은 한국의 아이돌 산업이 철저히 한국과 일본의 수익에만 의지하고 있던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면, 이제 미약하지만 대중문화의 본산 미국에서 일정 부분 실질적인 위치를 확보되기 시작한 것, 그리고 한국과는 별개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생 팬의 올바른 자세’라는 기상천외한 주제로 진지한 토론을 벌여 필자를 기함하게 했던 작년에 이어 올해에는 ‘30대 이상의 케이팝 팬의 삶’에 대한 흥겹고도 진지한 고민을 펼쳐내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아시안 레스토랑 하나 없는 뉴햄프셔 주에서 한국 음악을 홀로 좋아해 왔다는 한 패널리스트,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재즈 댄서로서의 커리어를 버리고 케이팝 전문 댄서의 길을 택한 한 젊은 여성, R&B 가수 지망생에서 케이팝 가수의 길을 택하고 오디션에 노크 중인 한 흑인 소녀, 아이돌을 좋아하는 딸을 따라만 다니다 결국 올해는 ‘나만의 케이콘’을 선언하고 홀로 이곳을 찾았다는 중년 백인 여성까지, 이미 케이팝과 아이돌팝은 ‘미국’의 하위문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매년 개최되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가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전반적인 위상을 확인할 수 있던 자리라면, 케이콘은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 아이돌 음악에 대한 미국 내의 열광적 인기를 증폭시킨 궁극의 초국가적 이벤트라 부를 만했다.
올해의 피날레 무대는 원조 아이돌 밴드인 신화가 장식했다. 전설이지만 이미 노장이 되어버린 신화를 현세대의 아이돌 팬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다소 우려에 찬 시선을 품었던 필자를 머쓱게 하듯 현지 팬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룬 케이팝은 이렇게 한 사이클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케이팝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한국 아이돌 음악의 미래는 무엇일까? 케이콘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필자가 던진 일종의 ‘공통 질문’이었다. 낭만적이지도, 그렇다고 염세적이지도 않은 이들의 답변은 그 내용과 층위가 다양했지만 공통적인 핵심을 하나만 짚자면 한국 대중음악이 더욱더 과감하고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규모만으로 현재 세계 8위의 음악 시장으로 등극했다고는 하지만 그 위상은 언제든 가변적일 수 있다고 첨언한 제프 벤자민의 의견처럼, 보다 공격적이고 과감한 마케팅과 음악 만들기를 수반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당연한 듯했던 케이팝과 한국 아이돌에 대한 열광 역시 언제든 거짓말처럼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뮤지션과 산업의 책임감, 팬과 커뮤니티, 담론 생산자들의 지속적인 협력이 조화를 이룰 때만 가능하다는 어쩌면 당연한 결론으로 귀결된다. 미국인들이 만드는 한국음악 축제, 흑인과 백인과 아시안과 라티노가 함께 어우러진 아이돌 축제인 케이콘이 내게 새삼 확인시켜준 너무도 당연하지만 위대한 교훈을 곱씹으며 내내 중얼거렸던 한마디, 음악은 정말 위대하다!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前 필진) -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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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eplies on “KCON 리포트: 케이팝의 제3막이 열리다 ②”
읽고 또 읽어도 생각할 거리가 있네요! 한국 기획사들이 이런 해외 팬덤들에 대해 얼마만큼 깊이 이해하고 있을지… 현장감과 통찰이 살아있는 좋은 리포트 감사합니다
제가 조금 더 입체적으로 뛰어다닌 것은 있겠지만 이미 기획사들의 수많은 A&R들이 이미 상당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거라고 봅니다. 아무래도 실제 반영되는데에 있어서는 보스의 견해, 한국 대중의 취향과의 관계등을 고민하느라 복잡한 점이 많을거라 봅니다. 좋은 말씀 고마워요!
아이돌음악도 즐기지만 주로 힙합을 듣는 사람으로서 재밌네요. 힙합은 수단일뿐이다. 한국엔 아직 힙합이 컬쳐폼보다는 아트폼으로 이식됐기 때문에 아트폼만을 가지고 가는 아티스트를 배척했고 진정성 언행일치 대한 부분도 그런 종류의 것이었는데 미국에서 힙합은 수단일 뿐이라는 말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케이콘이라는 특수성도 있겠고, 아니면 한국에서 온 평론가인 저에게 다소 쿨한 입장을 전한 것일 수도 있겠죠. 살짝 다듬었지만 정확한 워딩은 “그게 설령 아이돌이든 인디든 주류든 힙합을 하는데에 있어서 이건 되고 이건 안된다는 식의 제한을 미리 둘 이유는 없다” 정도였습니다. 흑인임을 감안하면 더욱 전향적인 자세라 좀 놀랐습니다.
생생하고 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저도 케이팝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 지 회의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던 한 사람으로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기획사에 관계없이 케이팝 자체를 즐긴다는 점도 흥미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