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하: 오마이걸의 ‘Windy Day’에 대한 호평이 넘친 한 해였지만, 뮤직비디오에 있어서만은 ‘Liar Liar’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토록 사랑스럽고 서늘한 ‘피노키오’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걸팝적 매쉬업이라니.
미묘: 색채와 귀여움, 서스펜스가 도사리고 있는 건물 속을 탐험하며, 커다란 비밀을 감추고 있는 소녀들을 만난다. 2016년 디지페디즘의 금자탑이 아닐까.
NCT U – 일곱 번째 감각
김윤하: 별다른 잔재주 없이 하나같이 남다른 비트와 안무, 색채와 패션을 세련되게 늘어놓는 것만으로 NEO로써의 임무를 더없이 충실히 이행한다. 이후 127이 ‘무한적아’로 맹추격 해보았지만 ‘일곱 번째 감각’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느낌적 느낌’을 따라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돌말링: 아무래도 올해 나온 SM의 뮤직비디오 중에서 가장 좋은 것 같다.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가 없다…
맛있는 파히타: 시청각적인 충격이었다. 2016년 내내 멀게만 느껴졌던 미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비디오였다. 이 임팩트를 뛰어넘을 수 있는 뮤직비디오를 조만간은 보기 힘들 것 같다.
박희아: 시공간, 동시에 인간계에 필수적인 중력까지 지워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화면은 다분히 인위적이다. 거기서 오는 쾌감을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대단한 기술력을 직접 체험한 순간 느껴지는 짜릿함, 오차 없는 공식처럼 똑똑 떨어지는 안무가 주는 신비로움, 마지막으로 철저히 조작된 퍼즐의 허점을 알아챘을 때 느끼는 성취감, 같은 것들. 그런데 허점이 뭐냐고? 이 소년들은 비디오 속 가상 세계를 위해 만들어진 인형이 아니라는 거! 직접 이 모든 걸 연기하고 있다는 거!
방탄소년단 – 불타오르네
돌돌말링: 거의 대부분의 컷이 정직한 백색 조명인데, 어둡고 난잡한 불놀이를 본 것 같은 인상을 남긴다. 에너지의 양으로 압도한다.
박희아: 기지(機智)의 총합 같은 뮤직비디오다. 시니컬한 조소로 시작된 화면은 어느새 라이터로 저지르는 소심한 불장난을 통해 실소를 유발하며, 다리미로 가슴에 열을 내는 개구진 장면은 곧 폭소를 자아낸다. 그 순간, 이 팀이 무대 위와 모니터 속에 사는 아이돌이 아니라 ‘살아있는(alive)’ 무언가란 생각이 스친다. 불현듯 보는 이의 생명력을 깨우는 위트, 그리고 반짝이는 에너지 모두 담겼다.
티파니 – I Just Wanna Dance
김윤하: 특별한 내용이나 서사가 있다기보다는 밝고 화려하고 명랑한 캘리걸 티파니의 모든 순간을 화보처럼 담는데 최선을 다 한다. 그리고 그 최선은 티파니라는 인물과 음악,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 모두에 더할 나위 없이 밀착된다. 3분 30초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경험, 흔치 않다.
블럭: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가 뚜렷하고, 그에 충실한 구현이 있었다. 야심이 느껴지는 멋진 작품.
몬스타엑스 – 걸어
김윤하: 방탄소년단이 개척한 ‘위험한 소년들만의 세계’를 가장 개성 있게 발전시킨 사례. 배경이 어디인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아포칼립스 속 일곱 멤버들은 끊임 없이 뛰고, 끌려 가고, 도망치고, 구하고, 꽃피운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영상 속 소년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것만으로 성공이다.
미묘: 너도 나도 청춘을 묘사하고 그것은 늘 세계와의 불화지만, 어른스럽고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의 행위에서 파국이 비롯되는 뮤직비디오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곡은 바로 그런 ‘저지르는’ 청춘을 그려내고, 그것이야말로 진정 청춘물이다. 심지어, 반성하거나 개선하지 않고도 우연한 기회로 국면이 전환된다니, 너무나 근사하지 않은가.
루나 – Free Somebody
돌돌말링: 노래에, 그리고 루나에 잘 어울리는 뮤직비디오였다. 일러스트레이터 김용오의 작업이 키치한 느낌을 더했다.
맛있는 파히타: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넘나들며 현실과 상상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올해 가장 스타일리시한 뮤직비디오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원더걸스 – Why So Lonely
돌돌말링: 올해 내내 유행한 트로피컬 에스테틱을 크지 않은 세트에서 미국 B급 범죄 영화처럼 소화해냈다. 데뷔 뮤직비디오 ‘Irony’와 거의 비슷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으나, 그 때와 아주 달라진 발화자 여성의 애티튜드가 감상 포인트.
블럭: 이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안정적이면서도 정체성을 잘 가져간 작품.
햄촤: (현 시점에서)원더걸스의 마지막 싱글이라는 맥락을 제외하더라도 무척이나 강렬했던 뮤직비디오. 연애의 권태기 혹은 끝을 노래하면서 이처럼 화사한 색감에 이토록 섬찟한 전개라니. 그들의 다음 앨범만큼이나 나는 이 뮤직비디오의 후속편을 남몰래 기대했다. 특히나 마지막 숏의 기묘한 쓸쓸함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우주소녀 – 비밀이야
김윤하: 케이팝의 가장 큰 특징이 근본 없이 뭐든 뒤섞는 것이라 한다면, ‘비밀이야’ 뮤직비디오는 그 자체로 케이팝의 모든 것이다. ‘네 안의 코스모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라는 시작문구에서 각종 아시안/마법/전대물적 B급 정서, 텀블러용 GIF 생성에 최적화된 화면 구성까지 모든 것이 뒤죽박죽 완벽하다. 게다가 이 모든 게 새 멤버 유연정의 영입을 설득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당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돌돌말링: 예쁜 아이템과 서브컬처적 기호로 가득 채운 이미지. 가사처럼 연애에 앞서 조금 불안해하는 소녀의 심리를 적절하게 표현했다.
맛있는 파히타: 서브컬처 콘텐츠들을 맥락없이 조합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이 정도라면 너무 근사하다. 아마도 향후 아이돌씬의 뮤직비디오는 어느 정도는 이런 흐름으로 진행될 지도 모르겠다.
유제상: 오타쿠 코드가 이렇게 범지구적인 것인 줄은 몰랐다. 하긴 중국인 동료에게서 중국에서 〈세인트 세이야〉가 인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코스모…!
조성민: 아마도 최근 활동 중인 모든 걸그룹이 욕심 냈을 법한 미장센을 구현했다. 팀명과도, 곡과도, 그리고 다인원 그룹과도 가장 잘 어울리는 영상이 조합되어 있다. 앞으로 오랫동안 이 팀의 대표 이미지가 될 비디오.
햄촤: 도대체 뭐가 비밀일까. 〈백 투 더 퓨처〉의 드로리안을 연상시키는 우주를 날아다니는 자동차, 〈드래곤볼〉에서 훔쳐온 듯한 스카우터, 정체 모를 풍경 속 하늘에 새겨진 마법진. 도무지 이게 다 무슨 뜻일까? 몰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네 안의 코스모스를 느껴본 적 있는가?’란 오프닝 문구처럼 해석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있고, 12명은 이제 13명이 되었다는 결과만이 오롯이 남는다.
샤이니 – 1 of 1
맛있는 파히타: 추억팔이가 아닌 미래로서의 과거를 보여주었다. 풍부한 색채와 넘치는 자신감은 우리 세대의 이상이고 곧 아이돌이 아닌가 싶다.
미묘: 이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만나기 위해 지금껏 한없이 게으르고 치졸한 레트로를 얼마나 많이 보아왔는지. 한국이/케이팝이 갖지 못했고 가질 수 없을 동경의 과거에서 가장 빛나는 것들 것 가져와 일종의 대체역사물처럼 보여준다.
햄촤: ‘샤이니 is 뭔들’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뮤직비디오. 혹시 United Colors of Benetton이라고 들어보셨는가? 아무래도 좋다. 그들이 하려고만 한다면 90년대 아니라 60년대라도 소화 못할까. 샤이니는 케이팝의 시간을 달린다. 부상으로 온유가 춤추는 장면이 없다는 것만이 이 뮤직비디오의 유일한 아쉬움.
아래는 각각 한 명씩의 필자만이 추천한 뮤직비디오들이다. 역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공개한다. 누가 어떤 뮤직비디오를 선택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박희아: 춤추는 것만 담으면 다같은 안무 비디오(cheography video)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이건 퍼포먼스 비디오(Performance video)가 안무 비디오 및 안무 연습 영상(Practice video)과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면 속 태민은 경계 밖에 예리한 관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평가를 기다리기 보다는 스스로에 도취된 자신감으로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이 ‘잘난’ 작업에 투입된 모든 디렉터들은 정돈된 감각과 예리한 카메라 워킹으로 태민, 더 나아가 SM 엔터테인먼트의 자존심을 위한 순간을 잡아낸다.
햄촤: 콘셉트가 뚜렷한 만큼 뮤직비디오에 차용된 이미지 또한 직관적인 동시에 뻔뻔하다 싶을 만큼 아무런 스토리도 없다. 이미 그녀들은 이 세계 속에서 완벽한 라이프가드인데, 사실상 무슨 더 이야기가 필요한가? AOA란 그룹이 가진 매력과 장점을 백분 활용한, 일말의 낭비조차 허용하지 않는 뮤직비디오.
박희아: 이렇게 밝고, 맑고, 아름다운 축제의 현장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아주 자유로운 표정으로 춤을 추는 가인은 하나의 이미지 아이콘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피어나’와 ‘Apple’에 이어 사랑스러운 가인을 기록한 비디오. 극도로 순진하게 추는 벌레스크(Burlesque)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