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개편의 일환으로 “Draft” 코너를 재개한다. 기존에는 타이틀 곡만을 빠르게 리뷰하는 코너였지만, 올해부터는 음반 전체에 대해 다룬다.
미묘: 음반 전반의 레퍼런스에서 00년대 후반 힙합 기반 남성 아이돌들, 그러니까 블락비, 비스트, 빅뱅 같은 팀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이들이 고전의 지위를 얻어가고 있음을 감안해도, 록 밴드 지향에서 꽤 흥미로운 선택들이다. 그리고 이는 편성의 신스 함량이나, 드럼머신 vs 리얼 드럼 같은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스매싱 펌킨스, 위저, 제인스 어딕션, 존 제츠 앤 더 블랙하츠 등이 스쳐 가며 보다 록 밴드 어필을 하는 듯한 ‘딱 하루만’이 앨범 속에서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지에 가깝다. 곡의 구성 역시 (비슷한 입지의 데이식스와 비교해) 상당히 ‘케이팝적’으로 이뤄져 있다. 두 세계의 다리가 되는 것은 역시 씨엔블루나 ‘한국 드라마 OST풍’이다.
록과 아이돌의 결합이라는 난제. 소속사의 선대 밴드들이 기존의 ‘록 발라드 가요’ 이외에는 참고서도 없이 독학해야 했다면, 엔플라잉에겐 얼핏 다른 과 전공 서적처럼 보일지라도 공부할 수 있는 것들이 주어졌고 이를 꽤 설득력 있게 연결해내고 있는 듯하다. ‘록과 힙합, 둘 다 젊음 아니겠어? 하하하!’나 ‘요즘 하-드코어라는 게 있다면서?’ 정도의 막무가내 접붙이기에서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갈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이들의 노선을 예의주시하고 싶다. 다만, 비루한 듯해도 꿋꿋한 청춘이나 다분히 힙합 아이돌에게서 가져온 자신감 등의 현재적 주제를 굳이 비주얼 요소에서 복고풍으로 표현해야만 했는가는 강한 의문이 남는다.
조성민: 밴드의 멤버가 변동되는 것은 댄스팝 위주의 아이돌 그룹 멤버가 드나드는 것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밴드에 새로운 멤버가 영입될 때는 기존 멤버들이 갖고 있던, 단순한 캐릭터 이상의 음악적 역할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영역을 찾아 팀으로 조화되는 것이 관건이다. 다른 악기도 아닌 무려 보컬을 새로 영입한 엔플라잉은 이번 앨범을 통해 새로운 멤버 유회승이 명확하게 자리 잡게 해주면서, 동시에 다른 멤버들이 밴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오고 있었는지 주목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동안 보컬과 래퍼를 겸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듯했던 이승협이 2 보컬 체제 이후 발군의 랩 실력을 발휘함은 물론, 보컬 또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포지션 하나라기엔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특히 밴드의 핵심 콘텐츠에 해당하는 음악이 바뀐 것이 눈에 띈다. ‘멤버 영입’이라는 이벤트 자체에 주목한 이전의 앨범과 달리, 이번 앨범에야말로 확실히 ‘FT아일랜드도, 씨엔블루도 아닌’ 새로운 밴드가 등장했음을 선언했다. 데이식스 등의 록 밴드가 주목받고 있는 지금, 엔플라잉 또한 새롭게 찾은 색깔을 통해 전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고, 나아가 케이팝 아이돌 장르 안에 작은 씬을 구축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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