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댱: ‘봄의 나라 이야기’에서부터 살풋 드러났던 산뜻한 비장함이 ‘손을 잡아 줘’를 지나 ‘파랑새’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면 러블리즈나 여자친구의 아류라고 하기에는 살짝 모호해진다. 에이프릴이 들려주는 색채는 무엇일까. 앨범 제목처럼 ‘Blue’일까.
‘파랑새’는 비장하면서도 파핑캔디같이 터지는 맛이 느껴진다. 다만 ‘손을 잡아 줘’의 절박함 대신에 쌉쌀한 비애감을 담아 짝사랑을 노래한다. 채원과 진솔이 차례로 터뜨리는 첫 번째와 마지막 후렴에는 비장함이 한 스푼, 나은이 풀어내는 두 번째 후렴은 투명한 느낌이 한 스푼 더해진다.
다만 타이틀곡을 제외하면 대부분 ‘베이비 블루’가 느껴진다. ‘Beep’까지는 파핑캔디가 통통 튀는 매력으로 번졌는데, ‘Angel Song’부터는 다시 그때 그 착한 에이프릴이 등장한다. 보도자료에서의 ‘한층 성숙한 모습’이라기엔 이전과 비슷한 모습에 아쉽지만, 어찌 보면 걸그룹의 성숙을 최대한 늦추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희망적인 트랙은 마지막 곡인 ‘아쉬워’다. 장나라의 향기가 느껴지는 아기자기함과 함께 에이프릴이 노래하는 깊어진 관계를 찾을 수 있다. 차분한 템포와 예쁜 멜로디는 동화처럼 아름답지만, 멈춰 있는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와 사랑하는 에이프릴의 모습을 또렷이 그려내는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에이프릴의 현재진행형을 보고 싶다는 감상을 남기게 한다.
마노: 〈프로듀스 101〉 방영 끝자락, 뮤지션 오지은은 윤채경을 두고 ‘망한 왕국의 공주 같다’며, “만일 채경 씨가 조선의 마지막 공주였다면 왕정제가 부활했을 것”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윤채경 특유의 처연한 아름다움과, 묘하게 기품마저 느껴지는 고결한 매력을 일컬은 것이었으리라. 이를테면 타이틀곡 ‘파랑새’는 그것을 여섯 명 버전으로 확장한 느낌이다.
요즘 비슷한 계열의 걸그룹들이 ‘씩씩함 속에 품은 한 스푼의 서글픔’을 표방한다면, 에이프릴은 반대로 ‘서글프고 처연한 가운데 애써 씩씩하게 짓는 옅은 미소’를 이미지화한다. “어쩌죠? 요즘 나 이상해요”라며 한숨과 근심 섞인 어조로 문을 여는 도입부와, “할 말이 있어, 요”라며 곡을 마무리하고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짓는 뮤직비디오 마지막 장면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운드는 화사한데, 그 위를 물들이는 목소리에는 어쩐지 비애가 서려 있다. 앨범 제목처럼, 뮤직비디오에서 펼쳐지는 파란 하늘처럼, 어딘가 푸르스름한 정서를 품고 있다고나 할까.
수록곡에서는 조금 다른 채도의 ‘파랑’을 보여주는데, 마치 세간에서 말하는 ‘하늘 아래 같은 파랑은 없다’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파랑새의 재잘거림처럼 수다스러운 ‘Beep’은 쨍한 코발트 블루, 왠지 90년대에 활약했던 혼성그룹 샵의 대표곡을 떠올리게 하는 ‘Angel Song’은 산뜻한 스카이 블루, 파우더리한 질감의 사운드에 에이프릴의 포근한 가창이 돋보이는 ‘아쉬워’는 파스텔 블루의 색채가 느껴진다.
동화적이다 못해 동요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던 그간의 활동과 비교해 봤을 때, ‘성숙함’으로 가는 길목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팀 컬러와 세계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조심스럽게 내민 한 걸음이지만, 앞으로의 여정을 어떻게 헤쳐갈지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할 것 같다. 새로운 날갯짓을 시작한 그들의 행보를 조금 더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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