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방분석 노동 : 노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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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이 무슨 날일까? 아무 날도 아니다. 그렇다면 2012년의 11월 25일이라고 한정한다면? 역시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공유되어 있을 법한 특출난 사건 있었던 날도 아니고 기념일도 아니다. 근데 나에게는 인상적인 기억이 남아 있는 날이다. 그날 내가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많은 일요일 중 하나였을 테니까. 아마 전날 폭음으로 숙취에 쩔어 반 쯤 죽어 있었거나, 별일 없이 거실에서 뒹굴며 트위터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그날 오후 3시쯤 난 결국 거실 소파 위로 안착하여 리모컨을 쥐게 된다. 재방송 행렬이 이어지는 TV 편성을 한탄하며 열심히 채널을 돌렸을 것이고, 3시 10분쯤 <인기가요> 타이틀 이미지를 발견하고 리모컨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죽거리며 가지고 놀 좋은 장난감을 발견하여 나름 기분이 흡족했을 것이다.

화면 우측 상단에 <인기가요>의 타이틀 이미지가 페이드아웃하고 광고가 끝나자 <인기가요>가 시작했다. 때마침 그날 따라 “외국인 관광객 1000만 시대 K-POP 대축제 특집 방송”이었다. 당차고 야무지게 걷는 아이유의 양 옆으로 광희와 이종석이 얇은 다리로 휘청휘청 무대에 걸어 나와, 작가님들이 저 윗분들 들으시라고 써놓은 멘트를 생선 가시 뱉듯 퉤퉤 하고 뱉은 뒤 샤이니를 소개했다. 평소 같으면 방송 말미에 등장했을 샤이니가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어두운 무대 위에 샤이니가 서서히 페이드인 했고, 음악에 맞춘 지미집(Jimmy Jib) 무빙 이후 민호의 얼굴 클로즈업이 떴다. 그 직후, 별생각 없이 소파에 누워 방송을 본체만체 하던 나는 몸을 일으키고 자세를 바로 잡았고, 방송이 끝날 때까지 넋 놓고 TV를 바라보게 된다. <인기가요>가 685회를 방영하던 2012년 11월 25일의 일이다.

K-POP과 한류가 붐을 이루고 있다는 말들을 온갖 매체에서 쏟아내고 있었지만, 정작 그 붐을 이끄는 당사자들이 펼치는 무대를 제대로 수용하는 매체가 없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아이돌 그룹들은 어떻게든 시선을 끌기 위해 의상, 음악, 뮤직비디오 등으로 내놓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때문에 무대 위에 늘어놓을 것들도 많았다. 게다가 늘어난 그룹 내 멤버 수에 맞춰 안무 대형 설계가 중요해졌다. 라이브-가창력을 위해 안무를 희생시킬 수 없게 설계되었다. 안무는 대형의 변화를 보여주며 공간감을 전달하고, 그 안에서 개별 안무로 디테일을 추가하는 등 복잡해져 갔다. 또한 보컬 파트의 변화도 다채로웠고, 그로 인해 무대 중심축의 변화도 현란해졌다. 영미권과 일본의 서브컬쳐에서 끄집어낸 콘셉트들은 나름의 서사를 가지고 퍼포먼스에 개입했기 때문에, 소품과 백댄서와 아이돌 간 상호작용이 긴밀해졌다.

이런 격렬한 변화에 대한 음악방송의 대응은 볼품없었다. 아이돌이란 기획 자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이란 예능 방송에서 인기를 끄는 멤버였고, 돈 들인 티를 내는 것이었다. 무대 디자인, 새로운 장비 도입, 야외 로케이션 등을 전시하는 것 말이다. 이것들에 밀려,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멤버는 화면 밖에 위치해 있기 일쑤였다. 관행적인 카메라 워크는 각 카메라 간 운동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였고, 중간 중간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간 카메라는 피사체에 대한 정보 전달에 아무 관심을 두지 않고 카메라를 돌려대기 바빴다. 이렇게 영상 연출이 정신없이 엉켜 있는 동안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 불꽃, 폭죽, 꽃가루, 레이저 같은 무대 효과들이 난잡하게 쏟아져 나왔다. 이 광경으로 인해 음악방송을 본 시청자가 아이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리액션이란 별 게 없었다. 화면에서 목소리를 잡아 뜯어 분리해놓는 MR제거 영상 정도?

인기가요 카메라 배치도(예상)

<인기가요> 카메라 배치도(예상)

헌데 <인기가요>는 달랐다. 우선 무대 위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모조리 치우고 실연자에게 집중했다. 무대의 사이즈를 줄여나갔고, 배경에 걸릴 요소를 최소화해 나갔다. 때문에 배경의 기본 바탕은 검정이 되었고, 필요에 따라 무대를 감싸고 있는 LED 디스플레이에서 그래픽 이미지를 방출하였다. 조명들은 무대에 집중되었고, 특별한 이유가 없을 시에 조명은 카메라로 향하지 않았다. 무대미술은 실연자가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들고 왔을 경우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여 콘셉트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소품들이 아니면 최소화했다.

이렇게 기본 세팅을 한 뒤 두 가지 규칙을 정하고 영상 연출을 한다. 하나는 음악, 하나는 퍼포먼스. 일단 장면 전환은 안무의 전체상을 전달하기 위해 풀 숏(설정샷)을 잡고, 세부 요소를 부각시키는 쇼트로 전환해 나간다. 전환은 주로 음악-비트에 의해 이루어지고, 때론 안무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는 것처럼, 안무에 몸을 맡긴 것처럼 화면을 넘긴다. 이로 인해 음악과 안무의 리듬감이 영상으로 분명하게 전달되게 된다. 화면 안에서 이루어지는 카메라 워크들 또한 음악과 퍼포먼스에 조응한다. 손동작이나 발동작 디테일, 또는 퍼포먼스의 무드를 각인시키는 아이돌의 표정 연기를 강조하기 위해 줌인이 들어간다. 안무 대형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공간감이나 대형 변화로 발생하는 운동감을 강조하기 위해 트랙킹이나 지미집을 사용하는 식이다.

이러한 <인기가요>의 연출을 잘 드러내는 685회의 훌륭했던 무대 중 하나인 샤이니 – ‘Sherlock’을 살펴보자.

  • 좌우 지미집으로 안무 대형을 훑은 뒤, 안무 대형의 강조점인 민호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들어간다. 음악에 맞춰 포커스인을 하며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이후 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대형은 변화한다. 그 변화에 따라 화면 좌측으로 트랙킹하는 카메라는 비트와 안무를 강조하는 카메라 워크를 보여준다. 이후 곡의 변화된 전개에 맞춰 발생한 안무의 디테일을 강조하기 위해 손가락을 튕기는 실연자의 팔을 클로즈업하는 쇼트로 전환되고, 변화된 안무 대형의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지미집샷으로 전환된다. [00:00~00:20]
  • 종현 파트의 시작을 알리는 강한 비트 하나하나에 맞춰 종현에게 줌인 후, 대형에서 떨어져 나오는 종현의 동선을 쫓아 장면이 전환된다. 대형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종현이 자신을 강조하는 안무를 보여줄 때가 되어서야 개인 샷으로 전환된다. 이후 트랙킹을 하고 있는 카메라로 풀샷과 종현 개인 샷을 오가며 전체적인 상을 그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종현에서 온유로 파트 전환을 예비하는 안무를 따르던 카메라 워크는 대형이 V자로 열리며 중심에서 온유를 앞으로 내밀자 줌인을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파트 전환을 강조한다. [00:35~00:50]
  • 무대 오른쪽 끝으로 이동하는 종현을 지미집 카메라1로 바스트를 잡고, 뒤에 있을 장면을 예비한다. 바로 다음 풀샷으로 변화된 안무 상태를 그린 후, 지미집 카메라2로 종현 뒷모습을 걸고 키를 잡은 뒤 키에게로 줌인하며, 종현과 키의 조응을 그리고 있는 안무 상태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던진다. [01:12~01:25]
  • 니샷으로 종현을 중심에 두고 있던 카메라는 화면 왼쪽으로 파도 타듯 움직이는 안무를 따라 좌측으로 패닝을 한다. 몸을 돌려 오른쪽으로 파도를 타는 안무에 따라 풀샷으로 전환되고, 안무 대형의 운동방향이 왼쪽으로 향하자 다시 좌측 패닝 후 종현 바스트 샷을 내보내며 현란한 카메라 워크 안에서도 파트 담당자를 강조한다. [02:52~03:00]
  • 민호의 점프를 강조할 수 있는 로우앵글로 화면을 잡은 뒤, 격한 운동감을 유지하기 위해 바로 다음 장면은 풀샷에서 민호의 바스트샷으로 과감한 줌인이 들어간다. 이후 풀샷에서 바스트샷으로의 빠른 컷 전환과 과감한 줌 사용으로 곧 다가올 클라이맥스에 대비해 장면의 현란함을 유지한다. [03:10~03:20]

살펴본 것처럼 <인기가요>의 카메라 워크는 실연자에게서 연장된 신체처럼 안무의 운동감을 전달하고, 가장 적절한 위치에서 화면을 잡아내며 상을 재조립해서 안무에 대한 훌륭한 해석본을 내놓는다. 이전의 음악방송들과 달리 촬영장 안의 모든 요소들은 실연자에게 집중하고, 퍼포먼스를 다각도로 조명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 와중에 진행이 한껏 고조된 상태에서 도장을 찍듯 아이돌들의 얼굴 클로즈업을 내보내며 쉽게 휘발되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또한 사운드의 자잘한 요소에 반응하며, 음악이 주는 재미를 증폭시킨다. 2009년 즈음부터 재정비에 들어간 이후, 이 묘기와 같은 영상 연출을 매주 생방송으로 이루어낸다. 이렇게 <인기가요>는 K-POP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갱신해 나가고 있다. (물론 몇몇 무대는 사전녹화를 한다. 그렇다고 이 차력 같은 프로덕션 퀄리티를 이뤄내는 것이 쉬워질 순 없다.)

<인기가요> 685회의 샤이니 무대 외에도, 카라의 ‘판도라’와 인피니트의 ‘추격자’ 무대 또한 추천한다.
 

자!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여태까지의 글들은 하나의 예고편이다. 아이돌로지에서 (아마도) 격주로 내보낼 음악방송 리뷰 코너에 대한 예고편 말이다. 2012년 11월 25일 이후 음악방송들을 지켜본바, KBS2의 <뮤직뱅크>를 제외하곤 차츰 평균적인 질적 향상을 보여왔다. 이게 <인기가요>가 준 자극 때문인지 아니면 K-POP이 확실히 돈 되는 장사라는 걸 파악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후자가 큰 영향을 줬고, 전자가 좋은 참고점이 되었을 것이다. K-POP을 가장 훌륭히 수용하는 매체들이 한껏 빛을 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들을 그냥 흘려보낼 순 없는 것 아닌가? 물론 몇몇 매체에서 이미 음악방송에 대한 리뷰를 내보내고 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됨으로 인해, 좋은 음악방송이란 상을 좀 더 구체화하는데 작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선 음악과 함께 제시되는 시각적인 요소, ‘볼 거리’는 죄스러운 영역이었다. 단순히 잡음을 내서 이목을 끄는 것이었고, 음악의 후짐을 감추는 분칠 같은 것이었다. 허나 시각적인 요소는 하나의 뮤지션을 향유하는데 가장 중요하고 자연스러운 것 중 하나이다. 게다가 아이돌에게서 시각적인 요소는 필수조건이다. 성적인 요소들을 대중의 불쾌감을 사지 않을 미묘한 위치에서 시각화하고, 그에 적합한 음악을 교차하여 구현된 것이 아이돌이었다. 음반 커버를 제외하곤 뮤지션이 내놓은 시각적인 요소를 파악하기 힘든 시대에서 음악을 즐겨온 분들에겐 귀찮고 설명하기 힘든 부분일 테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아이돌을 즐기는 온갖 잡스러운 일들을 덮어버리는 면죄부로 음악을 쓰며, 도리어 음악을 가장 욕보이는 이들의 고집을 두고만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때문에 이 코너가 희미하게나마 아이돌이 제시하는 시각적인 요소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아이돌로지는 빠심의 집합으로 이루어졌다. 빠심의 필수요소는 편향성 아닌가? 때문에 음악방송 리뷰는 한 회의 <인기가요>에서 가장 훌륭했던 무대 하나를 선정한 뒤 MBC의 <음악중심>, KBS의 <뮤직뱅크>, MNET의 <M-COUNTDOWN>과 상호 참조한다. 물론 글의 중심은 주로 <인기가요>지만 다른 음악방송의 연출이 훌륭했을 경우 중심은 이동한다. 시작이 요란했는데, 성실하고 편향적인 글로 찾아뵙도록 할 예정이다. 적절한 관심 부탁드린다.

음방분석 노동 시리즈

“음방분석 노동”은 제목처럼 음악방송을 분석하는 성실한 노동과 편향적 빠심의 연재물이다. K-Pop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갱신해 나가는 에서 가장 훌륭했던 무대 하나를 선정한 뒤, 다른 음악방송과 비교해 본다.

  1. 음방분석 노동 : 노동의 시작
  2. 음방분석노동 : 2014년 3월 셋째주 투하트 – Delicious
  3. 음방분석 노동 : 2014년 5월 넷째주 인피니트 – Last Romeo
  4. 음방분석 노동 : 2014년 5~6월 엑소 –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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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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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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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기가요 버젼 판도라는, 카라의 랩을 들으면서 소름이 끼칠 수도 있다는 매우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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