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현은 ‘누나스플레인’ 당하지 않았다

이미지 ⓒ MBC FM4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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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MBC FM4U 〈푸른 밤 종현입니다〉에서 샤이니 종현은 “예술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존재”인 여성이 “축복받은 존재”라 발언했다. 이를 두고 SNS 상에서 논란이 있었고, 종현은 대화에 나섰다. 대화에 참여한 이들이 교조적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 사건의 논점은 여러 가지다. 1) ‘뮤즈’ 발언이 성차별적인가, 2) 문제 제기는 폭력적이었는가, 그리고 3) 대화 과정은 ‘누나스플레인’이었는가.

‘뮤즈’ 발언은 성차별적인가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인 뮤즈가 된다는 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멋진 일일 것이다. 종현 자신이 트위터에 게재한 당시의 대화 녹취를 읽어보면 그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당일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한 디어클라우드의 나인은 여성 아티스트로서의 고충을 이야기했고, 종현은 이에 공감을 표했다. 나인 역시 “그렇게 얘기하니까 멋있다”며, 누군가의 뮤즈가 되는 일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님을 시사했다. 적어도 방송 중 종현의 의도는 여성의 고충에 대한 일종의 위로로, 여성의 ‘축복받은’ 면모 중 하나로 뮤즈를 거론하고자 한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젠더 권력 구조 속의 수많은 것들이 그렇듯 뮤즈 또한 양면성을 갖는다. 기사도나 가부장제가 일견 여성을 보호하고 아끼는 양상을 보이지만, 동시에 여성을 동등한 주체로 간주하지 않고 종종 착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뮤즈 개념이 고대 그리스의 여성 숭배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여성 비하가 아니라는 지적은 완벽하게 틀렸다. 여성 숭배는 여성을 ‘나’와 똑같이 살과 피, 욕망과 한계를 가진 인간이 아닌, 이상화된 존재로 대상화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시민’이 아니었으며, 여성과의 성행위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남성 간의 동성애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것이 여성 숭배의 의미다. 그래서 뮤즈 개념은 타자로서의 여성을 박제함으로써, 주체로서의 여성이 갖는 다면성을 박탈하기에 십상이다.

“위대한 뮤즈들은 […] 동시에 자기 스스로도 위대한 예술가들이었다”는 진중권 교수의 지적은 그래서 반만 맞는 말이다. 남성 예술가와 동반자적 관계였던 여성 예술가 중, 파트너를 초월하는, 혹은 파트너에게서 독립적인 이름을 지닌 이가 얼마나 있는가. 제인 버킨? 프리다 칼로마저 디에고 리베라와 짝짓지 않고는 성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흔하다. ‘비틀즈 해체의 원흉’이나 ‘존 레논 부인’을 거론하지 않고 오노 요코의 예술 세계를 말하는 기회는 얼마나 있는가. 위대한 예술가들을 왜 우리는 작품이 아닌 뮤즈로서 기억하는가. 그들이 뮤즈로 남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뮤즈 개념이 갖는 위험을 폭로하고 있는 셈이다.

종현이 나인에게 ‘아티스트가 힘들면 뮤즈가 되시면 되잖아요’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그런 폭력적인 의도가 없었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여성 아티스트의 고충에 대한 따뜻한 위로가 하필 뮤즈였다면, 문제적이란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예술가는 종현의 말처럼 여성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영감을 얻지만, 여성의 ‘뮤즈-되기’란 영감 제공 이상의 희생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문제 제기는 폭력적이었는가

‘뮤즈’란 개념은 어떤 의미에선 ‘여류화가’, ‘여교수’, ‘여기자’ 같은 표현들과 비슷하다. 이 단어들과, 단어들이 지칭하는 바에는 이데올로기가 깃들어 있다. 이 이데올로기를 인지하고 나면 적어도 좋은 의도로는 발화하기 곤란해지는 표현들인 것이다. 종현 역시 뮤즈 개념의 함의를 인지하고도 그런 발언을 했을까. 그가 문제 제기에 대해 대화를 요청한 것 역시, 그런 무지를 경계해서가 아니었을까.

팬의 입장에서는 문제제기의 과정을 다소 거칠게 느낀 이도 있을 수 있다. 반대로, 문제제기한 이들 역시 거친 표현들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SNS에서 난상으로 오간 발언들의 폭력성을 계량화해 누가 폭력적이었냐 하는 것을 따지기보다는, 문제제기의 정당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종현 자신이 ‘알려달라’고 말했고 또한 그 답에 대해 전체 혹은 일부를 납득한 지점에서 종료되는 논의다. 어떤 발언의 방식이 서운하다고 해서 그 내용마저 ‘쓸데없는 시비’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누나스플레인’

‘내 아이돌’이 곤욕을 치르거나 누군가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팬은 없다. 그 부분에서 종현의 처신은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는 무작정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본의 아니게 상처를 드렸다면 죄송합니다”라는 형식적 사과로 무마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문제 제기의 정당성과 그 내용을 스스로, 또한 깊이 있게 파악하고자 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무오류성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자 ‘첸’과의 메시지에서 드러나듯,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생각과 언동에 책임을 지고, 또한 자신의 이해의 한계와 그 개선 가능성을 믿는 사람의 행동이다.

그렇기에 종현의 요청에 의해 상호 정중하게 이뤄진 이 대화의 분위기를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맨스플레인’은 ‘여자들은 남자를 몰라’ 같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어떤 지식이든 알 수도,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성의 맨스플레인은 상대가 여성이기에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전제하고,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하며, 이를 통해 권력적 우위를 확인하려는 행동이다. 그래서 약자가 강자에게 하는 ‘부하스플레인’, ‘제자스플레인’ 등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성이 여성운동가에게 갑작스럽게 여성운동의 올바른 방향과 ‘진정한 페미니즘’을 설파하는 것은 맨스플레인이고, 이는 폭력이다. 반면, 여성이 요청에 의해 여성의 입장을 남성에게 설명하는 것은 ‘누나스플레인’이 아니며, 이는 폭력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스플레인’으로 프레이밍하는 것은 결국 어딘가에서 한 가지 정황을 왜곡한다. a) 여성주의자들이 종현에 대해 권력적 우위를 점하고 있거나, b) 종현이 듣고 싶지도 않은 설명을 들었다는 것으로 말이다.

a)는 조금 복잡한데, 아이돌과 일반 대중의 위계관계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아이돌의 추종자로서 하위에 놓이기도, 소비자로서 상위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남성과 여성처럼 압도적인 권력관계라 보기 어렵고, 이 대화는 순수하게 아이돌 대 일반 대중의 대화도 아니었다. 뮤즈 개념이 여성에게 줄 수 있는 함의를 종현은 ‘아이돌이라서 몰랐던’ 것이 아니라 남성이라서 몰랐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b)는 대화에 나선 종현의 진심과 정중함을 부인하는 일이다.

종현은 뮤즈가 아니다

이번 사태에서 종현은 문명인으로서 모범적인 태도를 취했다. 사실, 최근에 두드러진 수많은 여성주의 관련 논란들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현명했으며 또한 성실했다. 그가 존중받아야 한다면 그에게 어떤 오류나 결점도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개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 경우에는, 남성으로서 놓치기 쉬운 여성의 입장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그의 인간적 의지와 오류를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숭배’함으로써 대상화하는 행동이다. 마치, 뮤즈처럼 말이다.

종현은 아이돌이고, 아이돌은 그런 대상화를 전제로 소비된다. 소비의 방식은 각자의 몫, 누군가 그를 무결점의 완벽한 인간으로 이상화하고 사회적으로 박제하고 싶다면 그런 욕망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종현은 ‘누나스플레인’ 당한 뮤즈가 아니다. (나보다 한참 잘 생겼지만) 나와 동등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 인간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사고하고 성장하고 있다. 그것이 무결점의 인간보다 더 훌륭한 인간이 아닐까.

미묘

Author: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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