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신작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혜이니, 갓세븐, 에이프릴, 시오시작, 소유, 더이스트라이트, 빅뱅, 정인&예지, 호야, NCT, 김보형, 에이스, 업텐션, 트위티, 워너원, 젤리걸을 다룬다.
마노: 듣자마자 코지마 마유미가 생각났다고 하면 과언일까. 소위 ‘외국 느낌’이 물씬한 보사노바 사운드에 얹어지는 가냘픈 보컬의 오묘한 조화가 한때 ‘시부야계’로 통칭되곤 하던 일본발 재즈풍의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새벽 두 시’라는 가사 속 시간적 배경에 딱 걸맞은 미니멀한 악기 구성과, 칭얼거림과 한숨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혜이니의 보컬이 의외로 좋은 합을 보인다. 특유의 가느다란 목소리 끝에, 비브라토 섞인 숨소리가 한숨처럼 퍼져 나가는 느낌도,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의 쓸쓸함과 잘 어울린다는 인상. 이 근사한 보사노바 팝을 대체 누가 작곡했나 궁금해서 찾아보곤, 혜이니의 자작곡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다음에 또 놀라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Discovery! 선사.
심댱: 혜이니의 풋풋하면서도 독특한 음색을 동요처럼 혹은 어른스럽게 연출하던 두 갈래 길 중에서 가장 근사한 방식으로 후자를 선택한 트랙. 보사노바 리듬에 약간의 청승이 들어가 아이유가 흔히 보이던 소소한 일상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왜 뮤직비디오는 유아적인 섹스어필인 걸까. ‘처음으로 몸이 드러난 옷을 입고 평소 좋아하는 장난감을 소품으로 쓴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는데 그만의 이미지를 잘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을 남긴다. 감성적인 노래만큼 적어도 이해가 되는 이미지가 나열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마노: 갓세븐이라는 그룹 전체의 수행력은 물론, JB(Def soul)의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 능력이 어떠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JB가 작사를 담당한 선공개곡 ‘너 하나만’의, 헌신적일 정도로 마음을 표현하는 남성 화자와, 그를 ‘음, 그럼 너로 정해볼까’라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하는 여성 화자의 관계성을 드러내는 가사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듣고 있으면 기승전결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하는데, ‘너 하나만’으로 가볍게 예열한 뒤 ‘Look’에서는 적재적소에서 청량감 있게 터지는 사운드로 분위기를 한껏 달구었다가, 이어지는 수록곡으로 찬찬히 쿨다운하고는 차분하게 마무리하는 구조가 그러하다. 마치 둘이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길거리를 경쾌하게 걷다가 어딘가에 들어가 신나게 춤추며 논 뒤, 고요한 새벽을 보내고는 함께 일출을 맞이하는 그런 풍경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서늘하고 촉촉한 공기를 품은 뱀뱀의 ‘The Reason’, 아련하고 풋풋한 영재(Ars)의 ‘망설이다’, 나른한 리듬이 인상적인 유겸의 ‘우리’ 등 멤버들의 자작곡은 크게 강렬하진 않아도 묵묵히 앨범을 받쳐주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잘 만든 R&B 발라드지만, 어떤 종류로든 팬이거나 팬이었던 적이 있는 사람은 가슴이 절로 뭉클해질 진영의 자작곡 ‘고마워’는 앨범의 마무리로 손색이 없다. 특히 ‘Look’은 귀로만 들어도 즐겁지만 퍼포먼스로 보면 두 배 세 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므로, 뮤직비디오나 퍼포먼스 영상을 한 번쯤 꼭 감상해 보길. 어른이 된 ‘캘리포니아 소년들’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하며 Pick!을 보낸다.
미묘: 퓨처 사운드로 기조를 잡은 세월이 무색하지 않게, 어느덧 갓세븐은 새벽의 축축한 공기가 일상인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EP에서 그들은 어느 때보다도 진심으로 기분 좋아 보인다. ‘Look’의 2절 버스처럼 밉지 않게 건들거리다가는 “Question!”이라고 실없는 소리를 던지는 순간들도 과장 없는 미소처럼 다가온다. 질감 좋은 스네어와 멀리 뻗는 사운드, 심플한 멜로디의 ‘The Reason’ 같은 곡이 더욱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이유기도 하다. 설득되지 않기 어려운 매력적인 인물상이 입체적으로 제시된다. 팝적인 감각이 선명하면서도 수시로 기대를 조금씩 배신하며 모퉁이를 돌아버리면, 또다시 매혹적인 팝이 새로운 재치로 등장하길 거듭하는 음반.
마노: 슬슬 ‘성숙한’ 이미지를 보여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내지는 고민 같은 것이 느껴지는 가운데, 지금까지의 노선을 고려하여 무리수를 두지 않는 범위에서 안전하게 가는 방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전작 ‘봄의 나라 이야기’와 ‘손을 잡아줘’에서 ‘처연한 표정의 소녀’를 연기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씩씩함이 조금 더 비중이 큰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화사한 비애’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그 방향성 전환이 효과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물음표가 남는다. 안전한 것도 좋지만 때로는 과감한 시도로 돌파구를 찾을 필요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파격적인 콘셉트를 취하라는 뜻은 아니지만, 이래서야 치고 올라갈 여지조차 없지 않은가 말이다.
미묘: 지금껏 에이프릴이 잘못한 것은 무엇도 없다. ‘파랑새’의 “할 말이 있어”는 시청각적으로 가슴 철렁하지만, 그 할 말은 에이프릴의 ‘성숙’은 세상의 쓴맛을 보고 난 뒤 마음 기댈 곳은 파랑새를 기다리는 일 뿐이라는 듯이 들려 마음이 편치 않다. 전략적으로 유리할 것도 없는 레퍼런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그나마 완성도도, 곡의 흐름도 썩 좋지 못한 수록곡들도 아프긴 매한가지다. DSP가 공격력은 약하더라도 ‘기획력’이 나쁜 적은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EP가 정말 합격점이었는지 묻고 싶다. 상업적 파급력을 차치하고, DSP는 이것보다 훨씬 좋은 음반을 수도 없이 내왔기 때문이다. 그저 극장이란 공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이겠지만, 뮤직비디오의 시작부터 멤버들이 객석을 등지고 무대 뒤를 향해 서있는 모습이 괜히 눈에 밟힌다. 과몰입한 것 같다.
마노: 주로 무대 공연과 커버댄스로 활동해온 걸그룹 시오시작의 첫 디지털 싱글. 첫 음원답게 무척이나 기세 좋은 전자음으로 시작하는가 싶더니, 이어지는 “빵야빵야빵야빵야빵야” 라는 추임새를 그것도 참 쓸데없을 정도로 남발하는 느낌에 실례인 줄 알면서 헛웃음이 터져버렸다. 사운드 자체는 크게 나쁠 것이 없는데, 그것을 수행하는 멤버들이 무리해서 ‘쎈 척’하는 듯한 느낌인 데다 영 조잡하기 짝이 없는 랩이 그나마 있던 퀄리티도 깎아 먹고 말았다. 플로우도 엉망이거니와, 기본적인 박자도 맞추지 못해서야 없느니만 못하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을 무리해서 입은 것 같아서 안타깝기까지 하다.
미묘: 무겁고 강한 스타일을 구사하는 걸그룹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유감이다. ‘하이햇이나 스네어를 연타하면 아무튼 신나고 세겠지?’나 ‘랩은 평생 들어온 가사들을 이어붙이면 되겠지?’, ‘걸그룹이지만 강렬한 부분은 남자가 맡아주면 되겠지?’ 같은 안일함으로 가득하다.
마노: 제목부터 가사, 멜로디, 보컬, 편곡까지 모든 것이 ‘봄 시즌송’의 공식을 모범적으로 따르고 있다. 찰랑이는 어쿠스틱 기타 선율, 포근하게 얹어지는 보컬, 느긋한 걸음에 맞춘 듯한 템포까지 그야말로 벚꽃 시즌송의 모범 답안이라 할 만하다. 벚꽃이 만개한 길거리에서 ‘너의 하루를 책임질 테니 빨리 나오라’는 소유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확인해보니 벚꽃 피크닉 페스티벌의 공식 테마송이라고 해서 순간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납득되었다. 의도한 그대로 거슬리는 느낌 없이 매끄러운 만듦새를 자랑하긴 하지만 두고두고 들을 시즌송이 될지는, 글쎄.
미묘: 봄 노래로서의 차별화에 ‘소유가 부른다는데 뭘’로 그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래에 연동되는 기타와 화성의 매끄러운 흐름도 듣기 좋고, 적당히 참신한 방식으로 유혹적인 후렴의 도입부, 그리고 후렴 뒤에서 고운 색깔의 기체처럼 퍼지는 훅도 매력적이다. 소유의 가창도 좋지만 이를 담아내는 곡 또한 상당히 잘 맞는 옷 같다. 다만 후렴의 결론이 주는 익숙함은, 여기서는 너무 내려놨다는 생각에 아쉽다. 그것이 이어지는 훅의 ‘어디서 들어본 팝송 느낌’을 더 튀게 하기도 한다.
마노: 크레딧을 굳이 확인하는 수고 없이도 누가 작업했는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는 것도 어찌 보면 대단한 능력이라는 생각은 든다. 전작 ‘레알 남자’에 수록된 ‘Don’t Stop’을 구준엽이 리믹스했는데, 꼭 이래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 끝에 그만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까까까까까만 선글래스”로 대표되는 빌드업을 지나치게 남발했다는 것은 둘째 치고, 이미 그 자체로 꽤 준수한 록 넘버인 원곡을 공연히 망쳐버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럭저럭 먹을 만했던 음식에 갑자기 쓸데없는 조미료를 왕창 부어버린 것 같은 느낌. 이 리믹스, 꼭 해야만 했던 걸까.
미묘: 입대일이 닥치면 왠지 그냥 친한 여성에게도 애틋하게 구는 남자들이 있다. 그런 인물형을 담은 노래가 진솔할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도 있었는데 굳이 다른 누구도 아닌 빅뱅이 그래야 하나 싶다. 적어도 커버아트가 ‘꽃 길’이라는 흔한 말을 빅뱅 식으로 스타일라이즈하듯 뒷모습 역시 조금은 더 ‘있어 보이길’ 기대하는 게 무리는 아닐 텐데.
서드: 지드래곤의 흥얼거림으로 노래가 시작되는 즉시 빅뱅의 곡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뻔한 빅뱅 스타일’ 같다가도 막상 비슷한 기존의 곡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다섯 명이 주고받는 합의 능숙함과 익숙함이 한편으로 대중에게 쉽게 선입견을 심어주는 건 아닌지, 문득 빅뱅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해보게 되는 곡.
‘꽃 길’이라는 이제는 거의 닳아버린 은유를 변주 없이 그대로 쓰지만, 그 상투성마저도 흥겨움 속에 섞어 설득시켜버리는 능수능란함은 힙합을 베이스로 성장하기는 했지만 가요적 감수성이 진하게 섞인 ‘빅뱅다움’이 있어 가능한 영역이란 생각이 든다. 멤버들의 군입대로 한동안 완전체로서의 빅뱅은 볼 수 없기에 지금 발표된 이 노래는 더욱 팬들에게 보내는 송가처럼 들리는데, “떠나려거든 보내 드리오리다/님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리오리다/그리워지면 돌아와 줘요/그때 또 다시 날 사랑해줘요”라는 구절이 공백기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팬들의 ‘탈덕’마저도 노래 속에서 끌어안는 여유처럼 다가온다.
마노: 정인의 걸출한 가창력도, 예지의 뛰어난 래핑도 곡에 심폐소생술을 가하지 못했다. 도리어 두 아티스트의 능력치마저 깎아 먹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닌지 싶을 정도다. 둘에게 실례일 정도로 곡의 퀄리티가 처참하기 짝이 없다. 음반 소개에 따르면 ‘강한 이미지의 래핑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유니크한 예지의 보컬과 래핑이 돋보이는 곡’이라고 되어있는데, 곡 이미지에 최대한 맞추려고 한 의도는 알겠으나 전혀 돋보이지도 않고 어우러지지도 않는다. 거기에 뜬금없이 남성의 내레이션이 더해지는 순간,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말았다. 예지라는 래퍼를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이렇게 쓸 거면 차라리 쓰지 말라고 하고 싶다.
마노: 노래부터 퍼포먼스까지, 그야말로 솔로로서의 호야가 가장 잘 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끈적한 무드의 슬로우잼에 야살스러운 노랫말을 흘리듯 가볍게 노래하고 있는데, 춤이 최대의 무기인 그답게 퍼포먼스를 함께 봐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느낌이 있다. 엠넷 〈Hit the Stage〉에서 다수의 뛰어난 무대를 남겼지만 특히 느릿한 리듬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을 확장해 다양한 각도로 판을 연출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 나올 본작에 기대를 걸게 된다. ‘래퍼 호야’만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사하게 될 한 방.
미묘: 은근하게 부글거리는 신스 루프 하나에 긴 호흡의 비트를 올린 설계의 심플함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기분 좋은 긴장을 유도한다. 영상을 통해 드러나는 퍼포먼스도 짜임새와 임팩트 모두 인상적이다. 다만 보컬이, 특히 가성을 활용할 때, 담백함을 넘어 납작하게 느껴지는 대목들이 있어 아쉽다. 슬로우잼의 기조를 매우 끈적하게 가져가는 것은 아니라서 이를 그나마 보완한다.
서드: 호야 특유의 절도 있는 퍼포먼스에 최적화된, 선공개로 프로모션하기에 적합한 곡이다. 컷 없는 원테이크로 촬영된 뮤직비디오 또한 모노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니멀한 연출과 맞물려 그의 퍼포먼스에 집중하게 하는 시너지 효과를 낸다. 첫 솔로 앨범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갖기에는 충분한 매력이다.
마노: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한 박스의 초콜릿 상자와도 같은 앨범. 왕도 중의 왕도 밀크 초콜릿, 쌉쌀하고 묵직한 다크 초콜릿, 달콤하다 못해 혀가 녹을 것 같은 화이트 초콜릿까지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키기에는 충분하다. 뮤직비디오로 선공개된 신곡(‘Boss’, ‘Baby Don’t Stop’, ‘Go’, ‘Touch’)과 이미 싱글컷 되었던 곡(‘일곱 번째 감각’, ‘Without You’, ‘몽중몽’, ‘텐데…’), 그리고 무대로는 공개되었으나 음원화는 처음인 곡(‘Black on Black’)에 이번 앨범으로 처음 공개하는 곡(‘Yestoday’)까지 총망라했는데, 다소 들쭉날쭉하게 느껴지는 트랙 배치가 문제인지 풀렝스 앨범이라기보다는 싱글 컬렉션에 가깝게 느껴지는 점이 아쉽다. 곡 각각의 퀄리티는 물론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라 그 아쉬움이 더더욱 크다. 그럼에도 다양한 조합과 다채로운 장르를 통해 NCT라는 그룹의 어떠한 비전과 ‘곤조’ 같은 것이 느껴지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것을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나, 효과적인 트랙 배치로 풀어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는 안타까움은 여전히 남지만서도. 섹슈얼한 텐션의 보컬/랩과 퍼포먼스가 매력적인 NCT U의 ‘Baby Don’t Stop’, SMP의 ‘2018년 틴에이저식 번역판’이라 할 수 있는 NCT 드림의 ‘Go’를 추천하며, 특히 ‘Baby Don’t Stop’은 뮤직비디오나 연습 영상으로 퍼포먼스를 함께 감상하길 강력히 권한다.
서드: 여전히 NCT는 설명서가 주어지지 않은 조립식 프라모델 같다. ‘2018’이란 타이틀을 달고 18명의 완전체 활동을 할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음악방송에서는 다시 127과 드림, 그리고 U로 나뉘어 곡별로 활동을 한다. 18명의 일사불란한 군무와 노래를 보여주는 ‘Black on Black’은 정작 뮤직비디오도 없고, V앱 라이브와 예능에서 프로모션처럼 선보인 것이 전부다.
한 편 각 팀을 활용하는 방식에선 작지 않은 변화가 엿보인다. ‘츄잉검’ 같은 곡을 선보였던 청소년 유닛인 드림은 전통적 SMP에 가까운 ‘Go’를, ‘소방차’와 ‘체리밤’ 등 늘 힙합을 베이스로 한 어둡고 거친 이미지를 내세웠던 127은 감미로운 ‘Touch’로 방향을 선회하며 이전까지 잘 보여주지 않았던 다른 색깔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단기간에 발표한 뮤직비디오만 여러 편에 각 곡의 퀄리티 또한 고르다는 점에서 그 준비성과 기획, 투자에는 감탄이 나온다. SM의 거창한 프로젝트가 올 한 해 대중의 관심을 얼마나 사로잡을지, 결과가 궁금하다.
심댱: NCT의 세계관과 방향성을 집대성한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보인다. 이전 활동곡을 싱글로 풀지 않고 풀렝스로 묶어내고 마는 SM의 뚝심에는 흔들림이 없는 것 같다. ‘Go’까지 단단하게 올라간 텐션이 ‘Touch’에서 한 번, ‘Black on Black’까지 올라온 텐션이 ‘텐데...’ 로 다시 어정쩡 풀려버려 당황스럽다. 다만 ‘Touch’에서 상큼한 몸짓과 얼굴을 보며 또다시 설득당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SM마저도 쉽게 정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NCT에서 가장 큰 개연성을 보여주는 요소는 그들의 비주얼이 아닐는지. 다만 동방신기의 ‘All In Vain’을 연상시키는 ‘Yestoday’나 엑소의 ‘늑대와 미녀’에서 볼 수 있던 와일드한 패기가 돋보이는 ‘Black on Black’ 등 트랙리스트를 보건대 SM의 적장자는 역시 NCT라고 공고히 하고 있다. SM 그룹 중 가장 힙합에 가까우면서 재능과 재능을 접붙이는 유닛 등 NCT는 앞으로 보여줄 색깔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발걸음을 갈무리한 만큼, 그다음도 기대하게 한다.
마노: 스피카의 ‘Secret Time’에서 보이던, 김보형의 ‘외국스러움’과 ‘여자 으른’적 모먼트를 잊지 못했기에 이 싱글이 유독 반가웠다. 특이하게도 가사가 전부 영어인데, 김보형 특유의 고혹적인 음색과 차진 발음,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곡 수행력이 위화감 없이 곡에 녹아 들어있다. 외국의 어느 근사한 라운지바에 틀어 놔도 이질감을 못 느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K함’을 한없이 지워낸 치밀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자랑하는데, 김보형이 작곡에 편곡까지 참여했다고 하니 앞으로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EP나 풀렝스 앨범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Discovery!를.
서드: 복고적 사운드에 김보형의 음색이 착 달라붙어 마치 오래전부터 들어본 노래 같다. 가사 전체가 영어로 된 점이 곡의 색깔에 어울리면서도 케이팝보다는 팝송 같은 이미지가 두드러지는데 국내 시장을 넘어선 활동에의 의욕이라고 보아도 좋을까. 스피카 시절부터 작곡에 참여했던 만큼 자신의 음악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그의 재능이 돋보이는 곡.
미묘: 격렬한 스타일을 선보이던 에이스가 (일종의) 팝 발라드를 시도. 자칫 질척거리기 쉬운 지점에서 금속성 두드러지는 드럼과 록적인 편곡을 덧대어 스케일을 확장하면서, 절절한 감성과 품위를 함께 잡아낸다. 누구에게나 통할 공식은 분명 아니지만, 에이스와 낯선에게는 묘하게 잘 맞아 들어가는 선택.
심댱: 1절까지는 편하게 들을 수 있겠다, 했는데 어째서 피치가 높아져 있는 걸까. 고마운 감정을 날 것처럼 내보이는 팬송을 개인적으로 좋아라 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꽤 준수한 편이다. 힘이 점차 생기는 팬송을 원한다면 추천한다.
마노: 인트로 ‘Invitation’에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예감하다가, 타이틀 ‘Candyland’에서 느낌표가 열 개쯤 떠오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거부할 수 없어”라며 기세 좋게 터뜨리는 도입부처럼, 정말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사운드로 가득 차 있다. ‘Candyland’에서는 밀고 당기는 드럼과 베이스 위에서 축포처럼 펑펑 터지는 브라스 사운드가 은근히 흥을 돋우고, 야실한 질감의 보컬과 타이트한 래핑이 모두 충실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거기다가 앨범 처음부터 끝까지 90년대 음악을 변주 내지는 번역한 곡으로 일관되게 밀어붙이니, ‘곤조’를 넘어 일종의 집착(?)처럼 보이기까지 해서 어쩐지 박수를 치고 싶어진다. 한국의 1세대 아이돌보다는 굳이 말하자면 미국의 백스트릿보이즈나 엔싱크 등을 레퍼런스 삼은 듯한 모양새. 요즘 음반 시장에서 보기 드문, 11곡을 꽉꽉 채운 풀렝스 앨범이라는 점도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반해, 안 반해’와 ‘Superstar’, ‘Love sick’을 추천한다.
미묘: 걸스데이의 커리어를 새로 쓴 ‘잘해줘봐야’가 슬그머니 떠오른다. (두 곡 모두, 일렉 기타를 멘 여성이 등장하는 이미지에서 매우 드물게 손에 피크를 쥐고 있다는 점 때문일까?) 록적인 악곡과 뽕끼 댄스가요의 결합에서 얼마나 품위 또는 우아함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메이저 지향과 마이너의 시장 특성에서 갈리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걸스데이의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기합과 자산에는 아쉽게도 도달하지 못한다.
서드: 나쁜 남자에게 상처받은 여성의 심경을 센 콘셉트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곡의 템포나 분위기는 그에 맞지 않게 느긋하며, 그를 상쇄하기 위해 록 사운드가 가미된 듯하지만 원곡에 잡음이 낀 것처럼 좀처럼 섞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요소를 한 번에 다 잡아 보려다 산으로 간 이미지로, 퍼포먼스 역시 곡과 썩 어울린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기획적 측면에서 사전에 좀 더 정리가 이뤄져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미묘: ‘Boomerang’ 같은 곡을 어떤 이들이 자꾸 발매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나는 좀 신기하다. 아이돌로지를 꾸준히 봐온 독자라면 여전히 꽤 많은 소자본 보이그룹들이 이렇게 스테로이드로 덩치만 부풀린 듯한 곡으로 카리스마를 선보이려 하고, 대체로 실패한다. 지금 이런 곡으로 멋지려면 그보다 잘해야 하는데, 대뜸 때리는 드럼 롤, 맥 빠지는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나 “Hey…” 같은 것들이 이에 일조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좀 더 트렌디한 접근인 ‘보여’, 내부의 논리 구조만은 확고한 ‘약속해요’ 등, 다른 수록곡들이 그래도 체면치레는 하는 것을 봐도, ‘Boomerang’이 워너원이 가장 잘하고 가장 빛날 수 있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안주하지 않고 (전작의 전후 시대 신파 드라마 등의)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존중할 일이지만, 함부로 다뤄지는 모르모트를 보는 것 같아 괴롭다.
마노: ‘동요팝’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무리하지 않는 음역대, 흥겨움을 더하는 떼창, 마치 게임 음악처럼 통통 튀는 사운드, 밝고 착한 에너지로 가득한 가사, 순수함과 자연스러움이 함께 느껴지는 풋풋한 보컬. 모든 요소가 딱 ‘키즈돌’에 맞는 눈높이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뮤직비디오는 없는 것 같아서 대신 쇼케이스에서 선보인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확인했는데, 가끔 동작이 안 맞거나 틀리는 듯한 장면이 있었으나 지나치게 어른스러움을 어필하는 부분이 없어 편한 마음으로 ‘엄마 미소’를 지으며 볼 수 있었다. 키즈 걸그룹이라는 보도자료와, 다소 조악한 만듦새의 커버아트에 깜박 속아 지나칠 뻔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을 정도. 젤리걸의 건강한(!) 활동과 성장을 응원한다.
심댱: 아이돌이 어린이들의 꿈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의 방증으로 키즈 엔터테인먼트의 시장이 커지고 있다. 그렇기에 주의 깊게 보고 있는 편인데, 키즈돌은 주로 아역 배우나 모델 등 미디어 활동을 하는 이들로 구성되는 편이다. 음의 고저가 많지 않은 업템포 스타일이 키즈돌 팝의 한계이지만, 그간 들었던 키즈돌 팝 중 어설프지 않고 자연스럽다. 이 정도의 적당한 밝음이라면 칠공주를 노려볼 만하지 않을까? 이들의 열정만큼은 여느 아이돌 못지않으니, 지켜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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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on “1st Listen : 2018년 3월 중순”
혜이니, 가치 있는 보컬인데 회사를 옮기고 자기 색깔을 찾은 느낌이네요. 정병기 프로듀서가 찾던 목소리라는 생각이
에이프릴은 이원곡으로 활동하려면 봄나이 이상을 들고 와야할 겁니다. 아님 가볍고 발랄하면서 당찬 곡으로 가는 방법도 있구요.
업텐션은 인트로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를 예감하다가, 타이틀에서는 물음표가 떠오른? ‘반해, 안 반해’가 타이틀감이고, ‘모호해’, ‘Love sick’은 괜찮게 들을 수 있는 수록곡인데 전체적으로 올드한 느낌이 있네요. 그래선지 개인적으로 제일 나은 마지막 트랙이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