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든든한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이라면 으레 팬송 하나쯤은 내주는 것이 이 곳의 섭리 중 하나다. 그리고 콘서트나 팬미팅 등, 팬심 충만해진 팬들이 가득 모여있는 곳에서 팬송을 따라 부르며 울어본 경험 정도는 있어야 진정한 ‘빠순이’ 아니겠는가. 염전보다 짭쪼름한 냄새로 가득한 팬송 8곡을 순전히 필자의 팬심 하나만을 기준으로 골라보았다. 오글거림과 빠심의 증폭을 위해 가수 이름 옆에 팬덤의 이름도 적어두었으니, 호명된 이들은 손수건을 준비하시라.
1. H.O.T. (Club H.O.T.) – 너와 나 (1997)
태초에 H.O.T.가 있었다. 그리고 Club H.O.T.가 있었다. H.O.T. 팬덤 안에서는 애국가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노래가 바로 ‘너와 나’이며, 이후 여러 아이돌의 팬송들이 ‘너와 나’와 유사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H.O.T. 광팬이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도 이 곡이 배경음악으로 종종 등장하며, 심지어 팬들이 모여앉아 이 노래를 떼창하는 장면 또한 나온다.
2. god (fan god) – 하늘색 약속 (2014)
god는 그들의 팀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팬송도 항상 밝고 유쾌한 것이 큰 특징이다. god의 대표 팬송이었던 ‘하늘색 풍선’은 아이돌 팬송 중에서도 아마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번 8집에 수록된 ‘하늘색 약속’도 그런 노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god 콘서트에 다녀온 필자 주변의 많은 팬들이 이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는 간증(!)을 해오기도 했다.
3. SS501 (Triple S) – 완.두.콩 (2009)
팬들을 여러 아름다운 존재들에 비유하거나, 팬덤 이름이나 기념일 등 의미 있는 상징들을 제목으로 한 팬송은 굉장히 많다. 그러나 팬들을 부르는 별명이 팬송의 제목이 된 경우는 없었다. ‘완두콩’은 연두색 풍선을 들고 다녔던 SS501 팬들을 부르는 별명이었다. 실제로 SS501은 멤버와 팬들간의 유대가 어느 팬덤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긴밀한 것으로 유명했다. 노래 역시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서로 둘러앉아 키득거리며 편하게 부를 수 있게 만들어져있다.
4. FT 아일랜드 (Primadonna) – 고백합니다 (2011)
보컬인 이홍기 뿐만 아니라 악기를 담당하는 멤버들도 파트를 나누어 부른 노래. 의외로 모든 멤버들이 노래를 잘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공적인 일본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처음 발표한 미니 3집 “RETURN”에 수록되어 있다. 두 번씩 반복되는 가사마다 부르는 멤버들의 감정이 듬뿍 배어나오는 느낌이 든다. 바쁘고 무리한 일정으로 힘들었던 멤버들과 팬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 법한 노래.
5. 샤이니 (SHINee World) – 늘 그 자리에 (2012)
멤버 종현이 작사한 곡. 오랜 해외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서 오랜만에 발매한 미니앨범 4집 “Sherlock”의 수록곡이다. 한국에서 기다려준 팬들을 위해 붙인 가사라서, 일본어로 번안하는 것을 종현이 반대했다는 후일담도 전해진다. 소년의 말투로 소녀의 감성을 적어내는 재주가 있는 종현과, 마찬가지로 감성 충만한 샤이니 멤버들의 마음이 십분 전해지는 노래. 샤이니는 작년 연말 콘서트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를 부른 뒤 ‘먹먹해진다’고 말하기도.
6. 아이유 (U愛나) – 유애나송 (2012)
아이유가 데뷔 4주년을 맞아 팬들에게 ‘역조공’한 노래. 공식 팬카페 ‘유애나’에만 공개한 곡이라 정식 음원은 없다(물론 팬들을 알음알음 통해서 구할 수는 있겠다). SBS 인기가요 MC를 맡고 있을 당시 방청 온 팬들에게 선물상자에 담아서 선물하기도 했다고. 아이유 콘서트에서는 굵직한 목소리의 남성 팬들이 ‘내 이름은 유애나~’를 깜찍하게(…) 떼창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7. 블락비 (BBC) – 빛이 되어줘 (2013)
정규 1집 발매 이후 1년여의 공백 끝에 컴백한 블락비가 앨범 발매에 앞서 먼저 공개했던 곡. 아이돌과 팬덤이 서로를 ‘빛’에 비유하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수사지만, 어두운 암흑기를 거쳐온 이들에게는 좀 더 애절한 의미로 다가오는 표현이기도 하다. 재기불능에 가까웠던 상황에서 극적으로 돌아온 블락비가 가장 먼저 부른 것이 ‘팬송’이라니, 이 정도면 웬만한 다른 팬덤보다도 훨씬 강한 애착이 생길만도 하다.
8. 인피니트 (인스피릿) – With… (2012)
1번 트랙으로 꼽은 ‘너와 나’를 한국 아이돌 팬송의 원형으로 친다면, ‘With…’는 아마 그 원형을 마치 타임캡슐에 보관해온 것처럼 거의 그대로 복원해낸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90년대 아이돌을 떠오르게 하는 음악과 퍼포먼스로 21세기 아이돌 사이에서 살아남은 인피니트답게, 팬송 또한 철저히 90년대스럽다. 발표 이후로 줄곧 인피니트 단독 콘서트의 엔딩곡 역할을 하고 있으며, 팬들은 물론, 부르던 인피니트 멤버들까지도 거의 항상 오열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노래다. 이 노래를 웃으면서 완창할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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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plies on “Play 8 : 짠내 폭발의 아이돌 팬송”
아이돌팬송의 원조는 H.O.T라기 보다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 더 꼽히지 않을까요?
서태지와 아이들을 ‘아이돌’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그렇겠죠? :)
카라의 ‘내마음을 담아서’도 마음을 찡하게 했던 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