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유튜브 <KBS Kpop> “뮤직뱅크 Music Bank – 사랑앓이 – FT아일랜드.201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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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FT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명곡 ‘사랑앓이’의 상징과도 같은 후렴의 가사를, 진심을 담아 되뇌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와의 아픈 이별을 맞이한 사람일 수도, 본인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바람 잘 날 없는’ 작금의 아이돌 팬덤 내에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을 지켜보는 팬들이라면 위의 가사가 한층 더 다른 의미로 다가올것이다.
최근 몇 달 동안 적지 않은 수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뉴스 기사의 ‘사회’ 면에 오르내렸다. 누군가는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받은 후 SNS에 긴 사과문을 올리게 되는 한편, 다른 누군가는 20년이 다 되어 가는 시간 동안 쌓아 온 이미지가 ‘유흥업소에 들른’ 의혹 하나로 무너질 위기에 봉착했다. 언급한 사건들만큼 대중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지만, 소위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해당팬덤은 물론 트위터 등 여타 커뮤니티에서 논란을 일으킨 아이돌 멤버가 적지 않다. 이러한 일이 밝혀졌을 때, 소위 ‘아이돌을 깊게 좋아하지 않는’ 대중들은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폭력이나 위법 행위의 무게를 가볍게 생각한다기보다는, 논란을 일으킨 인물에 대한 실망감이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 대다수에게 그 사람은 ‘문제 행동을 일으킨 인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장 크게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은, 평상시에 그들이 보인 모습을 지켜보며 지지했던 팬들이다. 진정한 문제의 핵심은, 바로 그 ‘돌아선 팬들’의 발생이다. 매우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음악을 선보이고 공연을 하기 이전에 방송 등의 매체로 대중에게 노출되는 ‘공인’으로서의 아이돌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응원하는 팬덤, 정확히말해서는 앨범과 굿즈를 소비하고 노래를 들어 주는 등의 적극적인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지지 기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지속적으로 좋아하는 아이돌, 즉 ‘최애’들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것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상품을 대하는 ‘소비자’로서 받을수 있는 보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비자’로서의 팬덤이 그들의 ‘최애’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이미 뭇사람들의 담론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 이를테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음악, 잘 갈고 닦은 퍼포먼스, 시선을 끌어당기는 외모 등이있겠다. 거기에 더해, 한국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덤에서 흔히 언급되는 ‘아이돌의 조건’에는 공통적으로 ‘품성’이 꼽히는 편이다. 이는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회자되는 아이돌 산업의 궁극적 목표가 말 그대로 ‘아이돌(Idol)’, 즉 ‘우상’화된 사람들이 보유한 환상을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을 쉽사리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매체에서 수없이 아이돌을 보다 보면, 그런 사람이 어딘가에는 실제로 존재하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이돌들의 소속사 및 방송사는 이렇듯 손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꿈’을 팔며, ‘완벽한 이상형과의 만남’을 동경하는 사람들을 새로운 소비자층, 즉 ‘팬덤’으로 끌어들인다. 출중한 실력, 수려한 외모에 친근하면서도 다정해 보이는 태도를 고수하는 아이돌은 이러한 ‘환상’을 훌륭하게구현하고, 따라서 팬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다. 그렇기에 아이돌이 윤리적 논란을 일으킨다는 것은, 팬덤이 가지고 있던 ‘환상’을 깨트리면서 스스로의 상품성을 낮춰 버리는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이상형’에서 더 이상 ‘완벽’을 기대할 수 없게 된 팬덤은, 그렇게 하락해 버린 아이돌의 ‘상품성’에 실망하고 외면하게 된다. 즉, 구설수에 오른 아이돌에 실망하며 지지를 철회하는 해당 팬덤의 심리를 살펴보자면 인간으로서 그 사람의 행실에 실망한 것도 있겠지만, ‘너에게 기대를 가지고 많은 투자를 했는데 왜그 기대를 저버리냐’는 심리에서 기인한 허탈감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소위 ‘K-pop 팬덤’ 바깥에 있는 대중 중 일부가 가질 오해와는 달리 팬덤 내의 모두가 맹목적으로 아이돌의구설수나 치부를 두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평상시 그들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그 믿음과 신뢰가 저버려진 것으로 인한 좌절감과 분노가 반영돼 일반 대중보다도 더욱 날이 선 비판을 하기도 한다. 소속사에 메일을 보내거나 공식 SNS 계정의 최근 게시물에 지속적으로 댓글을 남기며 피드백을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 그 특유의 익명성으로 인해 건설적인 비평을 넘어선 ‘인신공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나 – 논란이나 구설수에 오른 아이돌에게서 돌아선 팬덤 중 일부가 주축이 되어 개설되는 소위‘알계’(트위터에서 개인 정보를 작성하지 않고 기본 프로필 사진을 유지하는 계정)가 개설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실제로존재하는 ‘사람’으로서의 아이돌의 인간적인 됨됨이에서 완전무결함을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오로지 ‘뮤지션’/’퍼포머’/’아티스트’로서 특정 아이돌의 음악적인 성과와 업적만을 지지하는 팬들도 (팬덤의 주류가 아닌 경우가 많지만) 존재한다. 이외에도 소위 ‘메타(meta-) 덕질’로써, 철저한 소비자로서의 관점에서만 ‘상품’으로서의 아이돌을 바라보고 관망하고자 하는 지향점도 어느 정도는 논의되고 있다. (사실 이 ‘메타 덕질’의 정의는 아이돌 팬덤 내부에서도 많은 의견이 분분한데, ‘아이돌의 과오까지 무조건적으로 감싸야 하냐’는 의견과 ‘이게 안티와 다를 게 무엇이냐’는 의견으로 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텔레비전이나 노트북, 스마트폰 모니터 속 ‘우상’에서 완전무결을 기대할 수 없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아이돌을 좋아할지는 순전히 팬 자신의 선택이다. 자신을 실망하게 한 ‘최애’를 향해 날 선 비판을 할 수도 있고, 그다지 심한 과오가 아니라며 감쌀 수도있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미련 없이 팬덤을 떠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논란이나 구설수에 대해 크게 좌절하는 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자책하지도 말고, 분노를 쏟아내며 익명의 타인과 싸우는 데 부질없이 힘을 쏟지도 말아라. 어떤 방식으로든, 분명히 여러분이 여러분의 ‘최애’를 대하는 그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고, 단지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일까지 당신이 책임질 필요는 없으니까.
서문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라고 언급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 정확히는 ‘좋아했던’ 마음에는 죄가 없다. 모든 죄는, 순전히 그 진심과 신뢰를 저버린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글: 최예은
평소에는 방송국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여유가 생기면 글을 쓰는 사람.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방향을 다르지만 ‘꿈을 이루는 길’로 함께 걸어가고 있는 또래의 누군가를 화면으로 지켜보며 응원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한때 10년 넘게 어느 아이돌 그룹을 좋아했지만, 잦은 구설수에 지쳐 ‘탈덕’한 후에만난 지금의 ‘최애’는 워너원 메인보컬 출신의 김재환. 그 외에도 BTS, NCT, 뉴이스트, (여자)아이들, 레드벨벳, 마마무등 다양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폭넓게 즐겨듣는 ‘리스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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