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rticle Feature Series

Kenzie 24주년 : ① 켄지 연대기

켄지 12주년 특집 당시 미묘가 작성했던 켄지 연대기에 이어, 퀴비가 2014년부터 2026년까지 켄지의 행보를 돌아보았다.

2002년 9월 이삭N지연의 ‘The Sign’으로 정규작 데뷔를 한 SM 전속 프로듀서 켄지. 아이돌로지는 2014년 창간해 당시 그의 데뷔 12주년을 기념하는 “Kenzie 12주년” 시리즈를 발행한 바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꼭 12년이 흐른 2026년, “Kenzie 24주년” 특집으로 켄지의 음악 여정과 매력 포인트, 그리고 그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발행되는 기사 “켄지 연대기”는 12주년 특집 당시 미묘가 작성했던 켄지 연대기에 이어, 퀴비가 2014년부터 2026년까지 켄지의 행보를 돌아보았다.

*미묘가 작성한 2002년부터 2014년까지의 켄지 연대기를 확인하려면 아래 기사 링크를 클릭
Kenzie 12주년 : (1) 켄지 연대기 (상)
Kenzie 12주년 : (2) 켄지 연대기 (하)

아트웍 강동

두 갈래의 길 (2011~2017년)

미묘는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송캠프가 본격화된 2010년 초부터 켄지의 작업에서 “타이틀 곡은 공동 작업을 통해 확실하게 가져가는 동시에, 다른 곡들을 통해서는 좀 더 개인적인 입맛에 맞는 곡들을 추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나타남을 짚은 바 있다. 이는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경향이지만, 2017년까지 가장 두드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켄지는 타이틀곡으로는 슈퍼주니어 ‘Devil’, 엑소 ‘Monster’, NCT 드림 ‘Chewing Gum’, NCT 127 ‘무한적아’ 등 그룹의 콘셉트를 예리하게 벼른 곡을 다수 작업하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하는 한편, 수록곡에서는 “‘4차원 취향’”(레드벨벳 ‘Attaboy’), “해맑게 애틋한 아이돌 취향”(샤이니 ‘Love Sick’, 레드벨벳 ‘Lady’s Room’, ‘처음인가요’, ‘Some Love’), “’덕후’ 취향”(샤이니 ‘Trigger’, 엑소 ‘Transformer’, ‘Forever’), “디스코/훵크, 제이퓨전 혹은 음악 마니아 취향”(소녀시대 ‘FAN’) 등 “‘켄지 월드’라 부를 만한 어떤 음악 세계”를 펼쳐보였다. 이 가운데 특히 NCT 드림의 경우 소녀시대와 f(x) 이후 켄지가 데뷔 타이틀곡을 써낸 세 번째(작사에만 참여했던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를 포함하면 네 번째) 그룹으로, 이후 ‘덩크슛’, ‘We Young’, ‘We Go Up’ 등 주요 활동곡을 계속해서 도맡으며 긴밀한 호흡을 맞춰 ‘켄지 월드’를 가장 잘 구현해보인 그룹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 (2017년 이후에도 이들은 ‘Hello Future’, ‘Candy’, ‘ISTJ’, ‘BTTF’ 등 다수의 타이틀곡을 함께했다.)

NCT 드림 ‘We Go Up’ / 작사: 켄지, 마크 / 작곡: 켄지, Kevin White, Mike Woods, Andrew Bazzi, MZMC / 편곡: Rice n’ Peas

또한 지난 글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켄지의 역할로서 보컬 디렉터 역시 언급할 만하다. 보컬 디렉터는 녹음 현장을 지도하며 가수의 표현력과 퍼포먼스 기량을 끌어올리는 역할로, 곡 작업에 참여한 창작자 혹은 보컬 트레이너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켄지가 자신이 작곡/작사/편곡에 참여하지 않은 곡에도 종종 보컬 디렉터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앨범에 동봉된 가사지를 뒤져야만 알 수 있는 크레딧 정보이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2010년부터 켄지가 보컬 디렉터만으로 참여한 발매작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음악 데이터베이스이자 중고 음반 거래 플랫폼인 디스콕스에 등록된 앨범 크레딧 정보를 살펴보았을 때, 애초에 SM이 보컬 디렉터의 크레딧을 명기하기 시작한 것이 2010년 중순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보아 ‘Don’t Know What To Say’, 소녀시대 ‘Trick’, ‘Top Secret’, 샤이니 ‘Sherlock’, ‘Seesaw’, f(x) ‘Toy’ 등이 그 예시다. 2010년은 SM에서 송캠프 프로듀싱을 확대해가던 시기와 얼추 맞물려, 작곡가가 직접 보컬 디렉팅을 보기 어려운 해외 작곡가 곡의 경우 켄지가 일부 보컬 디렉팅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SM 소속 가수들과 긴밀한 협업을 해왔음은 물론, 그의 파트너 김정배가 작업한 투니버스 애니메이션 주제가(〈다! 다! 다!〉의 ‘내게 와 줘’, 〈신의 괴도 잔느〉의 ‘Loving You 시간을 넘어서’)를 직접 가창한 이력도 있기에, 또 다른 SM의 인하우스 작곡가 유영진, 블랙비트 출신 보컬 트레이너 장진영과 더불어 그는 SM의 보컬을 가장 잘 디렉팅할 수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신의 괴도 잔느〉 OST ‘Loving You 시간을 넘어서’ / 가창: 켄지 / 작사-작곡-편곡: 김정배

2022년 〈롤링 스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짧게 언급된 NCT 드림 ‘Hello Future’ 작업기에 따르면 그는 때로 A&R과 대치하기도 하고, 이런 때 이들을 설득하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관철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면에서 그는 분명 (미묘의 표현을 빌리면) “한 곡 한 곡의 작편곡을 하는 사람이란 의미의 프로듀서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지휘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미묘의 표현을 인용하면,) “뮤지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때로 골치 아프고, 보컬리스트와 A&R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끼어든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곳에, 이미 기획을 가장 잘 이해하는 프로듀서로 활약해 온 켄지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새로운 길을 놓다 (2017~2023년)

2010년대 초 SM 내 송캠프 시스템의 정착 이후 SM을 대표하는 프로듀서로 더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켄지는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2017년 SM C&C가 제작한 MBC 드라마 〈미씽 나인〉의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다. 이전에도 2004년 KBS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대표 OST 넘버 박효신 ‘눈의 꽃’(원곡 나카시마 미카 ‘雪の華’)의 한국어 가사 번안과 편곡을 맡은 바 있고, 이후 서현진 ‘Give Me A Little Try’(2006년 MBC 〈궁〉), 동방신기 ‘하루달’(2007년 MBC 〈에어시티〉), 태연 ‘가까이’(2012년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 샤이니 ‘초록비’(2013년 MBC 〈여왕의 교실〉) 등 SM 아티스트가 가창한 OST 곡을 종종 작업하곤 했으나, 음악 감독으로서 드라마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업한 것은 2017년이 처음이다.

그리고 이 때 공동 음악감독으로 이나일(본명 이주영)이 함께했는데, 이나일은 켄지와 동일하게 2002년에 데뷔한 여성 스트링 편곡가다. 대표작으로는 소녀시대 ‘Kissing You’, 아이유 ‘좋은 날’, 샤이니 ‘별빛 바램’이 있다. 2000년대 발매작의 경우 크레딧이 디테일하게 표기되지 않은 경우도 있어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지만, 켄지와는 2006년 동방신기 ‘Remember’를 시작으로 소녀시대 ‘Merry-Go-Round’, 슈퍼주니어-M ‘당신이기에’, 슈퍼주니어 ‘폭풍’, ‘달콤씁쓸’, 동방신기 ‘She’, 규현 ‘밀리언조각’, 레드벨벳 ‘처음인가요’ 등 여러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호흡을 맞춰온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수려한 스트링 편곡으로 정평이 난 두 사람이 깊이 교류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후로도 이들은 2017년 KBS 〈흑기사〉, 2019년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 2: 죄와 벌〉, 2020년 KBS 〈일의 기쁨과 슬픔〉, 2021년 tvN 〈하이클래스〉, KBS 〈희수〉, 2023년 KBS 〈순정복서〉에 이르기까지 한동안 거의 매년 드라마 한 편씩을 함께 작업했다.

박효신 ‘눈의 꽃’ / 원곡: 나카시마 미카 ‘雪の華’ / 원곡 작사: 사토미 / 번안 작사: 켄지 / 작곡: 마츠모토 료키 / 편곡: 켄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확고해지는 켄지의 경향성이 있다면 그는 분명 단순히 ‘좋은 곡’을 쓰는 것을 넘어 아티스트의 캐릭터를 또렷하게 형상화하기를 표방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그가 작사를 전담한 타이틀곡들, 이를테면 레드벨벳 ‘피카부’, ‘Power Up’, ‘Psycho’, NCT 127 ‘무한적아’, NCT 드림 ‘We Go Up’, 태연 ‘사계’, ‘불티’ 같은 곡들에서 더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켄지는 〈롤링 스톤〉 인터뷰에서 “함께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의 스타일, 캐릭터, 개성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SM 30주년 기념 매거진 〈The Culture, The Future〉에 수록된 인터뷰에서는 “이제는 단순히 좋은 곡을 만드는 것을 넘어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담고 전 세계 다양한 팬에게 지속적으로 영감을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티스트의 개성에 근거해 매력적인 캐릭터를 추출해내는 그의 작업 방식은 어찌 보면 주어진 인물과 서사를 한층 더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OST적 접근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기에. 그가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분한 것은 (물론 뜻밖이었지만) 꽤나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2023년 이후 지금까지 추가적인 음악감독 작업은 확인되지 않으나, 글로벌 영화/드라마의 OST에 참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바 있어 꾸준히 OST 작업에도 의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 2: 죄와 벌〉 OST ‘Shuffal’ / 작곡-편곡: 켄지, 이나일

또한 그는 2017년 엄정화가 8년 만에 발표했던 정규 앨범 “The Cloud Dream of the Nine”에 단독 작사-작곡-편곡 곡인 ‘So What’을 제공했다. 커리어 초창기 정철, 장우혁, 아이비, 스톰 등 SM 소속이 아닌 가수들과 종종 작업을 하곤 했으나, 스톰 ‘Take A Chance’ 이후 그가 외부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은 10년만의 일이다. 또한 그는 같은 해 아무로 나미에의 ‘Strike A Pose’에 작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Strike A Pose’는 (샤이니 ‘Evil’을 켄지와 함께 작업했던) 덴마크 작곡가 프리돌린 노르드소 숄단(Fridolin Nordsoe Schjoldan)의 곡인데,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변칙적인 구성과 선명한 멜로디로 미루어 보았을 때 SM 송캠프에서 작업했던 곡을 아무로 나미에에게 피칭했을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이후로 켄지의 외부 작업은 더욱 활발해진다. 이어진 2018년에는 네이처 ‘Allegro Cantabile’ 리메이크 편곡, 일본 아이돌 페어리즈(Fairies) ‘Fashionable’ 공동 작곡에 참여했으며, 이후 CIX, 에일리, 더보이즈, 있지, 트와이스, 에이핑크 등 다양한 케이팝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본격화했다. 2022년부터는 MBC 〈놀면 뭐하니〉의 WSG 워너비 프로젝트, JTBC 〈피크타임〉, 엠넷 〈퀸덤 퍼즐〉 등 여러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 곡을 공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외부 협업들이 SM에서 파이널 컷에 들지 못해 묵혀져 있던 데모를 제공한 것인지, 혹은 외부의 의뢰에 적극적으로 임한 것인지, 그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자 했던 것은 분명하다.

엄정화 ‘So What’ / 작사-작곡-편곡: 켄지

사실 이러한 역할 확장의 징후는 2015년부터 있었다. 2015년 공개된 SM 자체 제작 홀로그램 뮤지컬 〈스쿨 오즈〉 편곡 참여는 켄지가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나아가는 전초전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2016년 시작된 ‘SM 스테이션’(매월 SM 내외의 아티스트들과 신규 싱글을 발표하는 프로젝트로, 2017년부터는 비정기적 발매로 포맷을 변경)은 그에게 SM의 울타리 안에서 윤미래(‘Because of You’ 단독 작사), 김범수(‘서툰 시’ 단독 작사-작곡-편곡) 등 외부 아티스트들과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시야를 넓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2년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송캠프 시스템이 보편화되며 이전만큼의 신선함이 줄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노래 구조, 멜로디, 협업 방법, 음악 제작 방법을 모색한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SM을 벗어난 여러 활동이 그 방법 중 일부가 아니었을지 추측해본다.

이러한 가운데 2018년은 그의 데뷔 이래 단독 작업곡이 발매되지 않은 첫해로 기록된다. 2019년부터 다시 첸 ‘사랑의 말’, ‘우리 어떻게 할까요’, 2021년 규현 ‘커피’, ‘투게더’, SM타운 겨울 앨범 수록곡 ‘Ordinary Days’, 2022년 슈퍼주니어 ‘Callin’’ 등 드문드문 단독 작업곡을 냈지만 그 비중이 이전보다 줄었으며, 대체로 발라드에 국한되어 있다. 본격적인 댄스곡은 대한항공 CM으로 쓰인 슈퍼엠의 ‘Let’s Go Everywhere’ 정도다. (켄지만의 기이한 댄스곡을 좋아했던 입장에서는 못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공식적으로 공개된 작업이 그러할 뿐 실제로 켄지가 개인 곡 작업을 줄였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공개된 다른 작업들을 함께 살펴보았을 때 이 무렵은 그가 새로운 협업 작업들에 몰두한 실험의 시기였을 것으로 보인다.

SM 3.0, 그리고 켄지 3.0 (2023년~)

2023년 전후로는 켄지의 커리어에 또 한 번의 분기점이 감지된다. 2023년은 SM이 지난했던 경영권 분쟁 끝에 사내 프로덕션 체계를 재정비하며 ‘SM 3.0’ 시대가 선포된 해였다. 이 과정에서 “SMP(SM Performance Music)”라는 용어로 압축되는 SM 스타일의 큰 축을 담당하던 창립자 이수만과 프로듀서 유영진이 SM을 떠났기에, SM의 미래 향방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현 시점 확실해보이는 것은 SM에 잔류한 켄지가 이 ‘SM 3.0’ 시대를 이끄는 핵심 인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상징적인 트랙은 2024년 발매된 에스파의 ‘Supernova’라 할 수 있다. 에스파는 SM 경영권 분쟁의 여파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한 그룹이었다. “거창한 세계관 놀음과 장엄한 사운드로 현 SM 내 이수만과 유영진의 논조가 가장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그룹”(아이돌로지 “Monthly: 2023년 5월 – 앨범” 中 “SPICY” 평 발췌)이었기 때문이다. 2023년 초 발매 예정이던 정규 앨범의 곡들(경영권 분쟁 도중 진행된 첫 단독 콘서트에서 대부분 선공개했다)을 2장의 EP로 쪼개 활동을 연명한 뒤 첫 컴백작이 바로 ‘Supernova’였다. 켄지가 뎀 조인츠(Dem Jointz), 파리스 알렉사(Paris Alexa)와 함께 작업한 이 곡은 세계관의 균열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돌파해낸 일종의 “메타-SMP”로, 에스파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며 그룹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Next Level’로 대변되는 에스파의 구약을 매듭지은 신약 1장이 곧 ‘Supernova’다. (관련된 자세한 평은 아이돌로지의 “결산 2024 : ②올해의 노래 16선” 선정의 변을 참고.)

에스파 ‘Supernova’ / 작사: 켄지 / 작곡: 켄지, Paris Alexa, Dem Jointz / 편곡: Dem Jointz

또한 켄지는 2023년 라이즈와 NCT 뉴 팀(차후 NCT 위시)의 프리-데뷔 싱글을 시작으로, 2024년 NCT 위시, 2025년 하츠투하츠, 2026년 차기 보이그룹 프리-데뷔 쇼 엠넷 〈응답하라 하이스쿨〉의 테마곡에 이르기까지, (라이즈 ‘Get A Guitar’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SM 3.0 시대 모든 신인 그룹의 프리-데뷔 및 데뷔곡을 작업했다. 그에게 신인 그룹을 전담하는 임무가 새로이 주어진 것인지, 혹은 A&R이 낙점한 데뷔곡이 모두 우연히 그의 참여곡이었던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이전까지 21년 간 그가 데뷔곡을 맡은 그룹이 단 세 그룹이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는 분명 주목할 만한 변화다.

그룹이 세상의 빛을 보는 첫 순간마다 함께한 켄지의 곡조와 가사는 향후 그룹의 또렷한 청사진이 되어주었다. 라이즈의 ‘Memories’는 “성장하고 실현해나간다”는 그룹의 표어에 걸맞은 풋풋한 포부를, NCT 위시의 ‘WISH’는 화사한 “소망의 멜랑콜리”(관련된 자세한 평은 아이돌로지 “결산 2024 : ①올해의 신인 10선” 선정의 변을 참조) 감성을, 하츠투하츠의 ‘The Chase’는 관계의 주도권을 쥔 제멋대로 소녀들의 세계를 확고히 정립했다. 데뷔곡 이후로도 켄지는 이들의 주요 활동곡 작사-작곡(라이즈 ‘Combo’, ‘Soar’, NCT 위시 ’Steady’, ‘Melt Inside My Pocket’, ‘Color’, 하츠투하츠 ‘Lemon Tang’) 혹은 작사(라이즈 ‘잉걸’, NCT 위시 ‘poppop’ 하츠투하츠 ‘Style’, ‘Focus’)를 꾸준히 담당하며 그룹의 개성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발전시켜나갔다. 이전부터 있었던 그의 프로듀서 기질은 SM 3.0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NCT 위시 ‘WISH (Korean Ver.) / 작사: 켄지 / 작곡: 켄지, dress, 헌서, jeanjinn jane, George Gershwin, Ira Gershwin / 편곡: 켄지, dress

그의 이름을 내건 퍼블리싱 컴퍼니 KZLAB이 꾸려진 것도 2023년이었다. 켄지, 앤드류 최(Andrew Choi), 노이즈캣(no2zcat), 제이송(JSONG), 라우노(Rouno)로 구성된 KZLAB 팀은 샤이니 8집 타이틀곡이었던 ‘Hard’를 시작으로 다수의 곡들을 공동 작업했다. NCT 드림 ‘Chiller’, NCT 위시 ‘Melt Inside My Pocket’, ‘Color’, ‘Cheat Code’, 하츠투하츠 ‘Flutter’, ‘Lemon Tang’, 샤이니 ‘Atmos’가 모두 이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토마스 트뢸센(Thomas Troelsen), 런던 노이즈(LDN Noise), 문샤인(Moonshine)과 선샤인(Sunshine), 에이드리안 맥키논(Adrian McKinnon), 뎀 조인츠 등 이전에 켄지와 여러 차례 협업하며 안정적인 호흡을 자랑했던 작곡가들과 비교했을 때 이들 조합의 특징은 상쾌하고 청명한 사운드 질감, 애틋한 서정성이 유독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특히 앞서 이야기했던 NCT 위시, 하츠투하츠 등 SM 신인 그룹의 음악관을 축조하는 데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는 커리어 초창기 단독 작업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하고, 이후 송캠프를 통해 다양한 작곡가들과 교류하며 세계관을 한껏 넓힌 다음, 손발이 잘 맞는 파트너 작곡가 및 그룹들과 함께 다시금 ‘켄지 월드’의 코어를 단단히 다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SM 3.0 시대에 시작된 켄지의 3.0 시대인 셈이다. (물론 켄지는 여전히 단독 곡 작업, 다양한 작곡가들과의 교류 역시 계속해서 전개해나가고 있다. 전자로는 NCT 도영의 ‘댈러스 러브 필드’, 후자로는 프로듀서 드레스(dress)와의 첫 공식 작업 NCT 위시의 ‘WISH’를 꼽을 만하다.)

독립적인 퍼블리싱 컴퍼니인 만큼 KZLAB은 SM 외부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활발히 하고 있는데, 특히 제로베이스원을 언급할 만하다. 이들은 2024년 ‘Good So Bad’에 이어 2025년 ‘Blue’까지 두 번 연속 제로베이스원의 타이틀곡을 맡았고, 이어진 정규 앨범 “Never Say Never”에도 수록곡 3곡(‘Extra’, ‘Long Way Back’, ‘I Know You Know’)을 제공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켄지의 외부 협업곡이 늘긴 했지만, 그가 수록곡이 아닌 타이틀곡에 참여한 것은 제로베이스원이 처음이다. 이후 웨이크원의 차기 그룹 알파드라이브원의 프리-데뷔곡 ‘Formula’ 역시 켄지가 참여한 작품이었다. 이러한 외부 그룹 타이틀곡 작업이 더 늘어날수록 ‘SM 스타일’을 넘어선 켄지와 KZLAB만의 특색은 더욱 선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미 그러하지만.)

제로베이스원 ‘Good So Bad’ / 작사: 켄지 / 작곡: 켄지, Andrew Choi, No2zcat, JSONG / 편곡: No2zcat

마지막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켄지의 개인 작업이다. 2024년 그는 스크림 레코즈와의 협업으로 자신의 히트곡(NCT 드림 ‘Hello Future’, 라이즈 ‘Memories’, 에스파 ‘Supernova’)을 새로이 재구성한 (리믹스가 아닌) ‘리웍스’ 싱글 “RE:WORKS”를 발매하고, 2024~2025년 아트테크 그룹 앰버린(AMBERIN)과 함께 이와 연계된 이머시브 미디어 아트 전시 〈NEO PARASPECTRUM〉을 진행했다. 22년 만에 처음으로 켄지가 스스로의 이름을 앞세운 이 프로젝트에는 미래 세대의 음악에 대한 그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SM 30주년 기념 매거진 인터뷰에서 “어떤 음악이 새로운 주류 장르로 등장할 거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켄지는 “결국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음악은 좋은 멜로디와 가사를 지닌 진정성 있는 곡”이라 강조하면서도, 다만 기술적인 측면에서 “음악은 단순히 듣는 것에서 벗어나, 시각적-감각적 요소가 결합된 다차원적 경험으로 발전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바 있다.

켄지, 에스파 ‘Supernova (KENZIE RE:WORKS)’ / 작사: 켄지 / 작곡: 켄지, Paris Alexa, Dem Jointz / 편곡: 켄지 / 프로듀서: 켄지

2024년 직접 가보았던 전시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음원만으로는 의문스러울 정도로 분절적이고 과격하게 ‘들렸던’ 음원이 현장에서는 영상, 조명, 음향 연출과 맞물려 꽤나 매끄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콘셉추얼한 이미지, 전면에서 천장으로 이어지는 90도 스크린을 활용한 영상-조명-공간 연출은 곡의 분절적인 구성에 개연성을 부여했다. 이와 맞물려 상하-전후 방향의 역동적인 청각 경험을 일깨우는 입체 음향은 (이어폰, 가정용 스피커 등) 일상적 음악 청취 환경에서는 사실상 좌우 방향으로만 제한되어 있던 스테레오 사운드를 확장하며 몰입감을 더했다. 평소 거의 이어폰으로만 음악을 듣다가 현장 공간에 귀속되는 음악 경험을 간만에 체험하며 그가 생각한 미래의 음악 향유 방식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녹음 기술의 개발이 실연으로부터 분리된 ‘듣는 음악’의 개념을 만들어내고, MTV가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던 것과 같이, 켄지는 메타버스, AR, VR과 같은 신기술이 ‘체험하는 음악’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본 듯하다. 그러나 체험의 중시는 역설적으로 소리와 영상을 기록하는 기술이 발명되고 상용화되기 이전 태초부터 존재해왔던 가장 원초적인 음악 경험을 상기하기에, 결국 이 역시 그가 “좋은 멜로디와 가사”를 중시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음악”의 근본을 깊이 고민하는 태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2024년 〈NEO PARASPECTRUM〉 전시 현장 ⓒ 퀴비

멈추지 않을 실험

2000년대 SMP의 계승과 변용, 2010년대 송캠프에 대한 투신과 환기구 모색, 2020년대 작가관 재정립과 미래를 내다보는 도전에 이르기까지. 늘 쇄신을 멈추지 않은 켄지는 24년의 시간 동안 줄곧 동시대성을 띤 프로듀서로 자리해왔다. 1세대부터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인 케이팝 작곡가들(계속해서 아이돌 음악에 집중하고 있는 이들로만 한정한다면 박진영, 방시혁, 유영진, 테디, 켄지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가운데 가장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가장 많은 작업을 하면서도 고갈되지 않고 꾸준히 신선함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놀랍다. 미묘가 2014년에 ‘켄지 월드’를 이루는 요소로 언급한 것들, “불안과 슬픔 속에서도 꿋꿋한 소녀의 감성과 흑켄지의 카리스마, 당혹감과 물음표를 매력으로 치환하는 의미불명의 미학, 디스코/훵크와 록에 탄탄하게 뿌리를 내린 정통파 팝의 양분과,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감각적인 실험들”은 모두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이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을 꼽으라면 바로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감각적인 실험들”일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멜로디, 사운드, 노랫말, 기술, 그리고 그를 아우르는 새로운 경험을 찾아 헤매는 켄지이기에, 그가 선사할 놀라움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리란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지난 24년만큼이나 앞으로의 24년, 그리고 그 너머의 시간이 기대되는 이유다.

ⓒ Kenzie

퀴비
Latest posts by 퀴비 (see all)

By 퀴비

前필명 '스큅'.
우리 가락을 간증합니다.
블로그 blog.naver.com/dis1co
사운드클라우드 https://soundcloud.com/quibbie
이메일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