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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 전 이달

N년 전 이달: 9월

과거 작품의 재발견과 ‘역주행’이 빈번해진 시대, “N년 전 이달”은 N년 전 이달에 발매된 고전, 수작, 그리고 문제작들을 되짚어본다.
2026년 9월 ‘N년 전 이달’에는 25년 전 알(AL), 8년 전 선미에 대한 평이 수록되었다.

25년 전 9월

Feeling
록레코드
2001년 9월 14일

퀴비: 오랜만에 이 앨범을 들으며 가장 먼저 든 인상은 ‘가요적이다’였다. 이는 사실 케이팝과 한국 대중가요를 평할 때 자주 손쉽게 동원되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의 자의적 기술 내지는 (흡사 고이즈미 신지로 밈과 같은) 순환적 정의에 가까운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요’를 ‘팝’의 동의어가 아닌 상대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알의 “Feeling”은 가요계에서 댄스 음악에 대한 실험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격동의 시기 한국적인 댄스 가요의 실마리를 보여준 수작 중 하나로 언급될 만하다. 물론 이 앨범이 당대 서구권 팝과 (역시 서구권 팝의 영향을 받은) 제이팝의 자장(磁場)에 속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Come To Me’, ‘Brand New Day’, ‘Goodbye’ 같은 트랙에서는 90년대 서구권 힙합, R&B의 흔적이 더 명료하게 읽히고, 블랙 뮤직 장르를 해사한 걸-넥스트-도어 이미지로 탈맥락화해낸 것은 스피드 같은 제이팝 걸그룹과 비슷한 결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앨범에는 그러한 원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집합의 영역이 감지된다.
내가 이 앨범이 특별히 ‘가요적’이라고 느낀 지점은 블랙 뮤직에 참조점을 두고 있을 풍성한 화성-멜로디가 높은 비중의 한국어 가사와 결합하는 방식이다. 스웨덴 작곡가 안드레아스 외베리는 아이돌로지와의 인터뷰에서 제이팝이 “보다 평이하고 직선적인 프레이징을 선호”한다면 케이팝은 “조금 더 리드믹한 음악, 더 많은 16분 음표로 이루어지고 싱코페이션(당김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다시 말해 ‘훵키한’ 음악을 더 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그 근거로 “한국어의 발음”을 짚은 바 있다. 알의 앨범은 이러한 그의 주장을 꽤나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는 사례로 보인다. “Feeling”에는 강한 액센트가 가해지는 된소리나 씹는 받침 발음이 많고 부드러운 연음화도 빈번한 한국어의 말맛이 싱코페이션 리듬감을 배가시키는 대목이 많다. 꼭꼭 씹어 부르는 ‘경고’와 ‘Be Free’의 후렴구(“속았어 느꼈어 지쳤어 / 웃겼어 잘났어 정말 모르겠어”, “나 이젠 너 없이도 살 수 있어”)나 ‘Brand New Day’의 프리-코러스(“첨엔 뭐든 좋~아”)가 대표적인 예시다.
더불어 애달픈 연정을 투박하리만치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한국어 가사에 유달리 배배 꼬인 재지(jazzy)한 곡률을 입힌 아이러니한 케미스트리는 응어리진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낸다. 당대의 한국형 ‘테크노’가 슬픈 가사를 빠른 템포의 유로댄스 트랙 위에서 신랄한 가창으로 불러제끼며 억압되어 있던 감정을 폭발시키는 카타르시스를 보여줬다면, 알의 음악은 억눌린 감정을 고스란히 머금고 내달리는 식이다. 같은 정서를 반대 방향으로 발현시키는 두 양식은 마치 ‘한’과 ‘한-풀이’의 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타이틀곡 ‘Feeling’과 후속곡 ‘경고’에서 가장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두 곡을 모두 작곡한 엔디 리(ND Lee, 본명 이창현)는 한국의 댄스 음악 역사에서 주요하게 언급할 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메탈 밴드 다운타운의 드러머 출신인 그는 세기 말부터 EZ2DJ, DJMAX 등 리듬 게임 음악 작곡가로 활발히 활동했고, 이 과정에서 게임 음악으로 작업했던 곡(‘Lovely Day’)을 가요로 전환해 장나라 ‘나도 여자랍니다’ 같은 히트곡을 탄생시키기도 했으며, 차후에는 작곡팀 스윗튠의 일원으로서 인피니트 ‘남자가 사랑할 때’, 카라 ‘숙녀가 못 돼’와 같은 케이팝 곡을 작업하기도 했다. (추가 검증이 필요한 정보이지만, 그의 나무위키 페이지와 알 “Feeling” 벅스 뮤직 댓글란의 제보에 따르면 그가 바로 스윗튠 사단의 스승이라고 한다.) 리듬 게임 음악과 케이팝을 가로지르며 특유의 빡빡한 질감을 보여주었던 스윗튠, 탁(TAK)과 같은 한국의 댄스 음악 프로듀서들의 본류에 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그의 곡에서 나타났던 로킹한 고양감은 향후 스윗튠은 물론(“N년 전 이달 : 3월” 中 나인뮤지스 “Sweet Rendezvous” 평 참조), “밴드가 연주하는 정통파 팝의 언어”(미묘의 “Kenzie 12주년 : (1) 켄지 연대기 (상)”에서 발췌)를 추구한 켄지에게로도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룹의 이른 해체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알의 “Feeling”은 한국어와 한국 정서에 맞게 팝과 제이팝의 문법을 훌륭하게 차용/변용해낸 한국적 댄스 음악의 한 표본이자, 한국 댄스 가요 역사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엔디 리의 대표작으로서 재조명받아 마땅하다. 한국적 댄스 가요의 가능성에 호기심 혹은 의구심을 품을 이들에게 이 앨범의 일청을 권한다.

8년 전 9월

Warning
메이크어스 엔터테인먼트
2018년 9월 4일

예미: 당신이 아는 선미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그 기점으로 “WARNING” EP를 돌아보려고 한다. 본작은 선미 본인이 전 곡의 프로듀싱과 송라이팅을 도맡은 첫 작품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음악을 통해 선미라는 캐릭터를 밀도 있게 구축해냈다. 앨범의 주제 ‘경고’는 선미 특유의 다면성을 풀어내는 데에 무척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타이틀곡 ‘사이렌’이 유로 디스코를 통해 경계심을 카리스마로 승화시킨다면, 아날로그적 서정성이 돋보이는 내밀한 수록곡들은 이 경계심에서 기인한 긴장감을 입은 채 갈구를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선미의 음악적 취향이 흥미롭다. 앨범 내내 이어지는, 때로는 차분하고 때로는 드라마틱한 멜로디 전개가 원더걸스 시절부터 예견된 재능이라면, 유로 디스코와 시티팝 등 고전적 질감의 음악이 현대적인 화자의 감수성으로 재해석되는 모습에서는 이후 선미의 디스코그래피를 내다보게 된다. 이렇게 음악을 통해 표현된 경계심의 표면과 이면은 무대 위 선미의 다채로운 표정 속 여러 낙차와 맞물리며 선미라는 캐릭터의 다면성을 완성해내는 동시에 청자와의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온 세상을 경계하면서도 애정과 교류를 갈망하는 그 마음은 혼란스럽고, 그 혼란이 감당이 안 될 때면 자신이 무력해지지 않나. 스스로가 감당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그 다채로운 얼굴로 지금까지 계속 해왔다는 점이, 선미를 바라보며 얻은 가장 큰 위로였다.

마노: “‘나는 결국 나’라는 묵직한 경고를 이토록 위험하게, 우아하게, 날카롭게 연출해낸 여성 아티스트가 과연 몇이나 있었던가.” (“1st Listen : 2018년 9월 초순 ①” 中)

미묘: “확고한 비전으로 구축된 캐릭터가 음악으로 구체화하여 생생하게 살아나는 음반. ‘ㅇㅇ만의’ 같은 빈말들이 지겹게 넘쳐나는 케이팝 세계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실체가 있는 유니크함이다. 그런 작품의 테마가 자신을 함부로 정의하지 말라는 메시지라는 것도 즐거운 아이러니.” (“1st Listen : 2018년 9월 초순 ①” 中)

심댱: “활동곡을 꽃에 비유하면서 이번은 ‘피 흘리는 꽃’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그는 ‘환상 속에 나는 없다’고 단언하기도 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저 곱구나’라며 타자화하는 상대를 노려보기도 한다. 비틀리면서도 똑바른, 선미의 굴곡이 이 스토리를 기획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1st Listen : 2018년 9월 초순 ①” 中)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