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즈의 ‘Ah-Choo’를 놓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 중심에는 윤상이 있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싱어 송라이터이자 작곡가, 프로듀서인 그가 현재의 아이돌팝을 다루는 것에 대해 반가운 탄성과 아쉬운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윤상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필진 세 명, 김윤하, 미묘, 유제상이 모여 ‘윤상의 아이돌팝’을 주제로 대담을 나눠 보았다.
미묘 : 오늘의 주제는 ‘윤상의 아이돌팝’이다. 모두들 알고 있듯 몇 곡의 작업이 있었고, 최근 프로듀스 팀 ‘원피스(OnePiece)’를 결성하여 러블리즈의 곡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윤상이라서 아쉽다”와 “윤상이라서 좋다”로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윤상과 아이돌팝이라는 조합의 현주소와 미래를 짚어볼 수 있었으면 한다.
“윤상은 아이돌과 맞지 않는다.”
먼저 가장 근작인 러블리즈의 ‘Ah-Choo’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해보자. 유제상 씨는 퍼스트리슨 코멘트에서도 크게 아쉬움을 표한 바 있는데, “너무 윤상스럽다”, 즉 일종의 매너리즘을 지적하고자 한 것인가?
유제상 : 매너리즘이 가장 클 것이고, 그것이 아이돌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 같다. 만약 윤상 오타쿠가 있다면 “헤헤헤, 이 세라복을 입어보라구” 같은 크리피함이 있다.
미묘 : 윤상의 ‘우수에 찬 도시 남자’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소녀 팝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유제상 : 아니다. 설마 그런 감정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윤상 팬이 있을 리가. (웃음) 윤상을 이야기할 때 많이 놀라게 되는 점이 있다. 그의 커리어를 지켜본 우리 세대는 아직도 ‘이별의 그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Renacimento” (1996), “Cliché” (2000) 같은 앨범에선 이미 현대 아이돌 음악의 원형이 많이 보이는데도 말이다. 댄서블한 측면을 거세하고 보아도 ‘이사’ 등, 윤상 곡은 관조적인 느낌이 강하지 ‘센치한 차도남’과는 거리가 있다.
미묘 : 매너리즘이란 게 어느 정도는 작가로서의 스타일이기도 한 거니까. 유제상 씨가 가진 아쉬움의 가장 큰 부분은, 이후 자신이 더 움직여갔음에도 커리어 초반의 어떤 것들만을 가지고서 아이돌팝을 하고 있다는 의견 같다.
유제상 : 아무래도 상업성의 문제가 있지 않을까? 사실 윤상이 군대를 다녀오고 난 1996년을 기점으로 대중음악에서 윤상의 이름은 FM 음악으로 숨어버린다. 그러니 지금의 결과물들은 자신이 상업적으로 가장 빛날 때의 재현이 아닌가 싶다.
미묘 : 본인이 더 나아가고 싶어도 아이돌 프로덕션에서 막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데?
유제상 : ‘더 나아간’ 결과물을 레인보우블랙의 ‘Cha Cha’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성적이 워낙 안 좋았으니까.
김윤하 : 본인이 선택했다, 프로덕션이 막았다는 것보다는 서로의 니즈가 맞았던 결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묘 : 강수지를 연상시킨다든지, 윤상의 고급스럽거나 문과남 같은 이미지를 활용한다든지 하는 상업적 카드라면, 가장 선택하기 좋은 시기는 90년대 초반의 윤상이라고도 생각한다.
유제상 : 그런 것이라면 윤상의 마니아가 러블리즈도 좋아해야 한다는 등식이 성립되는데, 아무래도 수적으로 어렵겠다. 윤상의 이미지 활용은 차라리 아이유 쪽인 듯하고.
김윤하 : 윤상이라는 음악가가 이룬 성취에 비해 국내 대중에게 그렇게 ‘대중적’으로 파급력을 가진 뮤지션이냐 생각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딱히 그렇지 않다고 본다. 강수지도 사실 너무 지난 세기의 추억팔이가 되기 십상이라, 새롭게 데뷔하는 ‘새 시대의 걸그룹!’에 어울리는 프레임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나는 아주 좋아하지만.
미묘 : 하긴 실제로 지금 러블리즈가 끌어모으고 있는 것도 중고생 층이 꽤 되는 듯하다.
김윤하 : 초기엔 여성 팬이 많았는데, ‘안녕’ 활동으로 물갈이가 된 느낌이 있다.
카탈로그 속 ‘기념사진’
미묘 : 내가 흙탕물을 끼얹었지만, 유제상 씨는 윤상의 아이돌팝이 초기 윤상에 천착하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김윤하 씨의 의견이 궁금하다.
김윤하 : 내 경우에는, 이것이 윤상이라는 뮤지션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레이어 가운데 하나고, 내가 그 레이어에 어쩔 수 없이 걸려드는 취향을 타고난 가녀린 한 마리 유충이기 때문에 좋아할 수밖에 없긴 하다. (웃음)
유제상 씨와 나의 생각의 차이는 아마도 윤상의 지금까지의 음악적 활동을 성장의 서사로 보느냐 아니면 카탈로그 추가의 방식으로 보느냐의 차이가 있지 않나 싶다. 윤상의 작업 방식은 각 결과물에 있어서 꽤 분리되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솔직히 ‘이별의 그늘’ – 강수지 – 노댄스 – 모텟 – “송북” (2008) 정도로만 늘어놓고 봐도, 이것은 한 사람이 했다기에는 너무 이질적인 행보다. 그래서 러블리즈에 한정해 보자면, 러블리즈와 소속사가 요구하는, 혹은 지향하는 바가 오랜 시간 다락방에 묵혀 놓았던 윤상의 케케한 소녀 감성을 다시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하고 보는 편이다.
미묘 : 흥미로운 이야기다.
김윤하 : 그래서 강수지 시절에 비해 더 추억 어린 애수가 짙게 느껴지지 않나 싶기도 하다. 20대의 윤상이 쓰고 그리던 소녀나 순수한 사랑의 정서와, 40대의 윤상이 그리는 같은 풍경이 주는 괴리감이나 추억의 정서 같은 것들이, 윤상이라는 뮤지션의 다양한 모습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 강하게 어필하는 게 아닐까 싶다. 10대 팬들은 의외로 윤상과는 별 관계없이 예쁜 파스텔 톤의 소녀 취향이기 때문에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개인적인 소회인데, 어떻게들 생각하는가?
유제상 : 10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역시 달콤한 노래는 윤상이야!’ 같은 반응도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Ah-Choo’만 놓고 보면 ‘윤상이 변했다’ 또는 ‘윤상이 변하지 못했다’ 같은 것보다 수용자인 나 자신이 변했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예전에는 좋게 들렸을 일련의 구성이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널 보는데 왜 재채기가 나오나 생각해 버리고.
김윤하 : 사랑과 재채기는…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유제상 : (웃음) 그러니 상업적 프로덕션의 선택적 결과물이라 가정한다면 어차피 나는 그 타깃이 아닌 걸지도 모르겠다.
김윤하 : 어떤 느낌일지 알 것도 같다. 내가 ‘Ah-Choo’에서 느낀 당황스러움이나 어색함은 유제상 씨와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윤상이 누구와의, 심지어 러블리즈와의 작업에서도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식대로 밀고 나가버리는 면모가 무척 좋았다. 그래서 상업적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응원을 해왔고, 카탈로그 측면에서 사실 그렇게 위화감을 느낀 작업은 없었다.
반면 ‘Ah-Choo’는 처음 들었을 때 윤상이 만든 아이돌팝 가운데 가장 저항감이 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타협하려고 매 순간 고민하고 있다는 인상이 너무 짙게 느껴져서, 초반에 그게 좀 물음표였다. “아니 여기서요? 여기서 끊어가세요? 여기서 B 파트가 이런 C 파트로 갑니까? 이런 브리지, 이렇게 거칠게 막 들어가도 되나요?” 같은. (웃음)
미묘 : 나도 브리지에서 날아다니는 베이스를 이큐 깎아서 부드럽게, 들릴락 말락 하게 만들어 놓은 걸 들으며 고민이 많았다. 질감 살렸으면 ‘Candy Jelly Love’보다도 더 살벌하고 파워풀했을 텐데.
김윤하 : 그런데 그 베이스, 후반부에 갑자기 자기 주장하지 않나? 이어폰으로 듣고 있노라면 갑자기 내적 댄스… (웃음) 그래서 어떤 게 진짜 윤상인지 더 혼란스럽기도 하다.
미묘 : 베이스가 혼자 부르르 떨리고 하는 것도 그렇고, 에너지가 많은 베이스를 눌러놨던 게 다른 파트가 잦아들면서 좀 더 들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김윤하 : 한편 앨범 대부분의 곡들을 프로듀싱했던 러블리즈 이전 작업들과 비교해, 타이틀곡 한 곡만 담당하게 된 이번 앨범의 차이점이라는 생각도 살짝 했다.
‘길은 계속된다’
미묘 : 두 사람이 윤상의 행보를 ‘카탈로그 vs 성장’으로 해석했는데, 나는 몇 년 전부터의 윤상, 정확히는 ‘아이돌 작곡가 윤상’은 지금 다시 성장 도상에 있지 않나 하는 느낌으로 본다. ‘Cha Cha’ 얘기도 나왔지만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 경우도 그렇다. 나는 오리지널을 정말 좋아하지만, 이민수가 리터치한 버전과는 차이가 확연하다. 지금의 대중가요로서의 설득력은 이민수 버전에 확실히 더 있다고 본다. 윤상은 ‘현재 시장에의 적응’ 같은 일종의 세공을 지속하는 도중이라고 생각한다.
유제상 : 본인의 주특기를 갈고 닦아 현재 시장의 입맛에 최대한 맞춰보겠다는?
미묘 : 그런 느낌으로 보인다. ‘Cha Cha’에서는 박창학의 관조적 가사를 레인보우 식의 주책미 넘치는 훅으로 교체해 본다든지 하는 식이다.
김윤하 :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면이 가장 적극적으로 부각된 게 러블리즈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이전에 없이 자신이 프로듀서로서 전면에 나서 홍보를 하거나, 자신의 초기 혹은 한 시절의 카탈로그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전제로 놓고 시작하는 측면 등이 진검승부를 시작한 것처럼 느껴진다.
유제상 : 그게 내 입장에서 보면 East4A든 프랙탈이든 어차피 메인스트림의 뮤지션도 아니었고, 결국 비슷한 결과물의 양산이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지누처럼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같은 협업을 보여준 것도 아니어서.
김윤하 : 그 곡은 신의 한 수였다.
미묘 : 정말 잘 달라붙은 곡이었다.
김윤하 : ‘Cha Cha’가 성공했다면 지금과는 또 달랐을 거라 생각한다.
유제상 : 사실 내가 취하는 스탠스의 상당 부분은 윤상은 아이돌에 안 맞는다는 지속적인 어떤 감정에 의지한 것이었으니, 사실 ‘Cha Cha’가 통하지 않는다면 이제는 어찌해도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나 스스로 기대를 접어버린 것에 가깝다. 전체적으로 보아 어찌 되었든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없었지만 ‘Cha Cha’는 개중에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묘 : 나는 ‘Cha Cha’가 정말 좋았다. 음악 자체는 완전 윤상 취향이었고. ‘바로 이거야!’ 싶은 곡이 아직 없는 것만은 나도 조금 공감한다.
김윤하 : 여기서 김윤하가 ‘안녕’을 좋아한다… 물론 그 노래가 씬 전체를 바꾸거나 윤상의 커리어에 지진을 일으킬 곡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약간 퇴행적인 의미에서의 선호다.
“윤상과 동급이거나 능가해야 한다.”
유제상 : 나의 입장에서는 아이돌 윤상 곡의 호불호라기보다, 기존의 레퍼런스, 즉 윤상 개인이 만든 것들에 너무 만족해버려서 이후의 것들은 이와 동급이거나 이를 능가할 필요가 있다는 관점이다. 어쨌든 개인적인 것이긴 하지만.
김윤하 : 이 분야에서 아직 ‘이거다’하는 한 방이 없었던 게 유제상 씨에게 가장 큰 아쉬움인지도 모르겠다.
유제상 : 바로 그거다. 댄서블한 윤상이라면 ‘근심가 (La Marcha Mix)’, 애시드한 윤상이라면 ‘Back to the Real Life’, 이런 식으로 훌륭한 레퍼런스가 구축돼 있으니 말이다.
미묘 : 그런데 그거야말로 아이돌 음악에 필요한 어떤 브루털한 맛 같은 것이 없어서 정말 부적절하진 않은가 생각도 든다. 수록곡으로서야 훌륭하겠으나, 기획자 입장에선 기껏 윤상에게 곡을 받았는데 수록곡으로 그치면 아쉬울 테고.
유제상 : 그 점이 평가를 어렵게 하는 부분인데, 그런 곡들이야말로 결국 윤상이 아니면 누구도 재현 불가능한 곡이나 분위기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많이들 윤상의 페르소나를 강수지로 지칭하는데, 사실 윤상, 신해철, 신승훈 등 그 시절의 가수들은 그다지 페르소나가 필요 없는 사람들이다. 다만 동시대의 누구보다도 프로듀서 및 작곡가의 이미지가 강했고 그런 면에서 윤상이 현시대에 활약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이 상업적으로 옳은 선택인가라고 한다면, ‘한 방’에 해당하는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결과물의 질만 놓고 보았을 때는 ‘Ah-Choo’가 베스트라고 보는데, 베스트가 이 정도라면 기대수준에 비해선 실망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비판적으로 나오게 된 과정이다.
“윤상을 모르면 납득 못한다.”
미묘 : 잠시 얘기를 돌려보면, 서울비츠 같은 영어권 사이트에 올라온 리뷰가 흥미로웠다. 음반에 담긴 상호 이질적인 요소들을 ‘아무 개연성 없이 지나치게 달기만 하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 우리에겐 다양한 윤상 시그니처들인 것이다. 결국 윤상을 모르기 때문에 납득 못하는 앨범이라는 건데, 바꿔 말하면 윤상을 아는 대중에게는 러블리즈가 윤상에 의존해 어필하는 부분이 있기는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윤상의 음악적 퀄리티나 성격 자체보다는 윤상이 갖는 어떤 기호적 의미가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김윤하 : 사실 국내에서도 윤상과 러블리즈로 만들어낼 수 있는 수많은 가지의 담론이 하나로 묶이지 않는데, 러블리즈 아이돌 음악 작곡가로서의 윤상에게 브레이크가 오지 않는 이유 중에 그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야기를 국내로 한정하자면 윤상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제작자들은 아마도 바로 그 기호적 의미에 한번 운명을 걸어보는 사람들일 것이다.
유제상 : 하지만 해외에서의 반응은 단정 짓기 어려운데, 〈쇼미더머니〉를 보고서 지누션을 듣게 되는 패턴도 능히 가능하다. 우리가 일본 음악 찾아 들을 때도 그런 식으로 코넬리우스를 듣는다든지 하지 않았나?
미묘 : 아무튼 이번 앨범은 ‘윤상으로 밀자’, 혹은 ‘윤상+아이돌’이란 로망을 실현시키자는 느낌이었다. 인트로도 일부러 모텟을 연상시킬 만한 곡을 쓴다든지.
유제상 : 하긴 이렇게까지 윤상을 전면으로 내세운 적이 있었나 싶기는 하다.
김윤하 : 이 정도는 없었다. 러블리즈를 하면서 좀 마음 먹은 느낌이다.
미묘 : 그런데 우리 아까 윤상의 ‘대중적 파급력’에 대한 회의감을 표하지 않았나?
https://www.youtube.com/embed/XCfTIhQt_2g
“그는 ‘그런’ 활동을 해오지 않았다.”
김윤하 : 만일 2015년 아이돌팝에서 윤상이 상업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카드냐고 누가 묻는다면 난 좀 정색할 것 같은 부분이 있다. 윤상이 어떤 시대에서건 ‘대중적인’ 색채를 자의적으로 입었던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속이야 모르지만, 있어도 가리고, 없는 듯 있는 듯 계속 ‘카탈로그’를 늘려나가는 학자 혹은 연구가적인 느낌으로 20년 넘게 해온 사람이다. ‘이별의 그늘’이나 강수지 같은 ‘골든 에라’도 있었지만, 지금껏 ‘그런’ 의도로 음악 활동을 해오지 않은 사람에게 ‘그런 결과물을 내지 않았다’는 걸로 뭐라고 한다면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미묘 : 윤상 원리주의… ‘수니파’!
김윤하 : 그에 발맞춘 대상을 보는 기분이 ‘Ah-Choo’에서 내가 느낀 어색함이었던 것 같다. 비교하자면 ‘안녕’은 균형이 얼추 맞아떨어진 곡이라고 본다. 그 부분이, 윤상이 자신의 ‘카탈로그’ 안에서 유일하게 ‘대중적이지 않을까?’하고 약간의 성과가 있는 것을 꺼낸 결과가 아닐까 싶다. 멤버들도 소화를 잘한 편이었고.
유제상 : 나는 관점이 조금 다르다. 어찌 되었건 윤상은 군 입대 전까지는 인기가수였고, 〈파일럿〉 OST는 드라마 자체도 웰메이드 지향이었지만 상업적으로 대성하기도 했다. 윤상이 현자가 아니고서야 20여 년의 세월을 버티게 해준 것 중에는 상업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Ah-Choo’는 아이돌과의 결합에서 극한치를 보여줬다는 것이 특이하지만, 방향성 자체가 아주 다른 별스러운 결과물은 아니지 싶기는 하다.
미묘 : 난 이 부분에선 확실히, ‘아티스트 윤상’과 ‘가요 작곡가 윤상’을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아티스트 윤상이 대중성을 외면하고 자기만의 음악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반면 타인에게 곡을 제공하는 작곡가 윤상은 팔려야 하는 직업이라 자신의 미학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건 굉장한 줄타기다.
유제상 : 양자의 구분이 의미가 있나 싶다. 작곡가로서 20대의 윤상은 굉장했을 것이다. 뭘 써도 다 탑텐에 들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세월이 흐르며 개인적으로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미묘 : 어느 쪽으로든 아티스트 윤상은 작업을 지속했고, 작곡가 윤상은 한동안 쉬다가 아이돌을 통해 복귀했다. 어쩌면 ‘시대에 뒤처졌나’ 하는 불안도 있었을 것이다. 이민수가 곡에 메스를 대게 한다든지, 작곡 팀을 결성한다든지 하는 것도 ‘가요 작곡가 윤상’으로서 대중성을 확충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김윤하 : 그런 변화에 ‘아브라카다브라’로 지누가 끼친 영향도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유제상 : 듣자니 궁금한 게, 윤상, 지누와 비슷한 상황의 다른 작곡가는 없나?
김윤하 : 딱히 지누 정도로 활약한, 90년대와 이어져 있는 아이돌 작곡가는 없는 것 같다. 한편 윤상의 얼리어답터적인 면모도, 조금 늦긴 했지만 이 판에 굳이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 ‘이렇게 새롭고 재미있는 게 있는데 안 해볼 수는 없지!’ 같은. 모에화 죄송하다. (웃음)
아무튼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2015년 아이돌팝에서의 윤상의 효용성은 ‘윤상이니까’, 이거 하나로 끝나지 않나 생각한다. 윤상이라는 뮤지션이 가진 장점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큰 부분은 그것이다.
‘윤상이니까’
유제상 : 그렇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남은 게 그것뿐이라는 시각도 가능하다. 자주 썼듯이 가요계에 한 일 년여 간 〈토토가〉라는 역병이 돌아서, 이번 “Lovelyz8” 앨범도 그런 의미에서의 상업적 성과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좀 들기도 한다.
미묘 : 갈수록 윤상은 이름만 빌려주면 된다는 분위기가 돼가는데…
유제상 : 그런 식으로 이미지가 소모돼버릴 수 있다는 거다.
미묘 : 나는 그래서 본인이 이름만 빌려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취향을 꺾을 수도 있는 형태로 발을 성큼 내민 작업이었다고 보고, 그 점을 긍정적으로 봤다. 다만 그 내용은 윤상의 팬으로서 만족스럽지만은 않지만.
유제상 : 사실 팬이란 게 다 비슷한 존재들이라, 내 입장에선 “우리 윤상 저런 애들이랑 엮지 마, 옛날 좋은 노래 만든 업적 망치지 마!”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유치해도 어쩔 수 없다.
미묘 : 물론 ‘저런 애들’이라는 건 러블리즈가 아니라 예능 등의 이야기리라 믿는다.
유제상 : 사실 콜라보에서의 윤상은 노댄스 시절도 그랬듯 결과가 좋지만은 않았다. 그때도 팬들이 분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왜 신해철과…”라는 게 요지였다. 물론 신해철 팬들도 분노했다.
김윤하 : 그래서 한편 나는 ‘가늘고 길게’주의자의 입장에서, 한때 황금기를 지나온 뮤지션이 무언가에 계속해서 도전하는 그 모습이 더 좋기도 하더라. 90년대 음악가들을 대부분 좋아하고 ‘매너리즘’이란 단어가 주는 슬픔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윤상이기 때문에’ 소구되고 가능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유제상 : 그렇다.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선호도의 차이니까. 다만 나는 고전주의적인 사람이라 이상적인 윤상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면 ‘후속편들’에 대한 지속적인 아쉬움을 느끼는 것 같다.
‘후속편’의 페이지들
김윤하 : 당시 음악가들 중 이렇게 다양한 카탈로그를 지닌 사람이 좀처럼 없기도 하고. 이것이 맞는 옷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작업까지 미뤄두겠다.
미묘 : 내 경우엔 좋아한 90년대 작가들 중 윤상 하나 남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제발 이상한 데 빠지지 마시고 부디 곱게…’라는 심정이기도 하다.
유제상 : 어찌 되었건 예능도 나오고, 할 건 다 하신다. 그렇게 보면 지금의 결과물도 그렇게 어색하진 않은지도 모르겠다.
김윤하 : 설득당하셨다! (웃음) 나는 오히려 윤상을 신성시하지 않는 입장에서, ‘좋아 보여, 잘 지내나 봐’ 같은 시선으로 보게 되는 편인 듯하다.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러블리즈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 ‘윤상 페이지’이기도 하고.
유제상 : 오늘 대화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윤상도 어느 한 지점이 아닌가 하는 게 새삼스레 느껴진다. 사실 유학 이후 음반을 통해서 기존 팬들도 제법 떨어져 나갔으니.
미묘 : 그럼 슬슬 마무리 차원에서 아이돌 작곡가 윤상에게 바라는 점을 한마디씩 해보면 좋겠다. ‘이별의 그늘’을 BGM으로 영상편지처럼. (웃음)
김윤하 : ‘〈토토즐〉을 보던 그 꼬마가…’ (웃음) 윤상은 ‘뭔가 이룩해야 하는’ 지점은 이미 지난 아티스트라고 본다. 계속해서 지금처럼 꾸준히 이것저것 하면서 오랫동안 버텨줬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물론 이왕 들어온 이상 시원한 한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사실 뒤늦게 막차 탄 입장에서 무작정 들이대거나 조를 수는 없는 입장 같다. 또 그러기엔 지금 아이돌팝 시장 자체가 너무 변화가 빠르고 ‘혼파망’인 상황이라서. 다양한 색깔을 더해주는 측면에서 조금 더 분발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글조글 모여있는 아이돌팝 장터에서 노점상 하시다가 이제 막 점포 하나 번듯하게 낸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제 막 시그니처 1호 제품이 나온?
아무튼 난 ‘지금 시대의 아이돌팝에 윤상이 어떤 효용성을 가지느냐’에 대해서는 제로 베이스로 놓고 시작하고 싶다. ‘윤상의 러블리즈라서’가 아니라 ‘러블리즈가 취향인데 어라 윤상이네?’ 정도의 포지션으로 쭉 이어가는 게 모두를 위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따지고 보면 아이돌 초보”
미묘 : 아마 대동소이한 감상이겠지만, 아이돌 시장에서 승부하기엔 너무 ‘고운’ 음악인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개선의 실험을 하고 있는 와중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래서 그 ‘고움’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삼는 지점이 있는 러블리즈는 플랫폼으로서 꽤 좋은 곳이라고도 본다. 김윤하 씨가 ‘1호’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2호에서는 좀 다른 면에서 윤상의 브루털 팝을 만난다든지, 타협 없는 고움을 만난다든지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김윤하 : 그렇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이돌 초보 윤상이다.
유제상 : 나는 역시 그가 아이돌 판에서 할 거 다 해보았고, 그만하면 나오면 좋겠다는 기조가 변하진 않았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윤상 브랜드 전반이 하나의 상징은 될 수 있되, 곡이든 자신의 노래든 심지어는 예능의 모습이든 수량에 비해 성과가 분명 나오지 않고 있다. 고착화된 이미지에서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변화를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고, 다음 곡도 어떤 방식으로든 나오겠지. 그러나 카라의 ‘제트코스터 러브’로 BJJ가 맞은 것 같은 아이돌 아티스트로서의 정점을 맞이하기는 결국 어렵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미묘 :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결국 우리 셋 다 윤상 팬인지라 결국 ‘좋은 작업’을 기다리는 것만은 매한가지인 듯하다. 알아서 잘하시겠지 뭐. (웃음) 심도 깊은 관점과 즐거운 대화에 감사드린다. 정리해서 올릴 때는 “김윤하, 윤상 수니파 선언”이라고 헤드라인을 뽑겠다.
김윤하 : “순니”라고라도 해달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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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대담] 윤상, 아이돌팝의 길은 계속된다”
이미 90년대말 이소은씨 1집 앨범부터 아이돌 음악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