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1일~2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비투비, 스테파니, 규현, 유니크, 헤쎄(HEXE), 시아, 탑독, 사이다(SIDA), 다이아, 트와이스, 엠크라운, ATT의 신보를 다룬다.
블럭: 큐브 TV를 보며 비투비는 정말 정상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있는 그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약간은 무서울 정도로 개개인의 색이 뚜렷했고, 단합도 잘 되고 재능도 많았다. 하지만 비투비의 앨범이나 활동은 내가 본 그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이렇게 큰 격차가 그룹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훈훈하고 감성적인 옛 발라드 넘버가 멤버들의 재능을 펼쳐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알 수 있다. 과거지향적인 미니 앨범은 정규 앨범과 결을 함께하며 그 감성이 유지되지만, 조금씩 세련되게 비틀어도 좋았을 법한데 오히려 더욱 깊이 과거로 돌아간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그다음은 대체 어디로 갈지 궁금하기도 하다.
돌돌말링: 개인적인 취향인 줄은 알지만, 아이돌이 부르는 희망 노래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현실감을 고의로 거세한 판타지적 존재들이 화자란 점인데, 그 특유의 진공감이 평소 같으면 아무리 희망적인 가사여도 생각날 어쩔 수 없이 너절한 현실을, 아이돌이니까, 하며 신경 쓰지 않게 하는 것 같다. 뮤직비디오는 (스포 있음) 가난 때문에 뛰러 간 철거 현장 용역 알바에서 마찬가지로 가난한 어미를 만나 울고 마는 아들의 모습 등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다가, 갑자기 친구와 사이도 좋아지고 가족들에게도 잘하게 됐다는(?) 결론으로 급히 마무리한다. 이 역시 아이돌이라서 어둡게만 끝낼 수는 없기 때문이었겠지만. 임창정 st.의 뮤직비디오에도 멤버 전원 꽤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비투비는 어쩜 뭘 시켜도 다 잘하는지, 새삼 또 감탄했다.
조성민: 비투비는 이 앨범의 수록곡들보다 더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더 좋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 90년대에 반짝인기 얻다 만 가수들이 불렀을 법한 '가요 일반'으로만 가득한 앨범은 비투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발라드곡을 타이틀로 삼은 지난 정규 앨범으로 큰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무드를 유지하려고 했던 의도는 이해하지만, 모든 발라드가 이 팀의 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앨범이 증명한다. 비투비가 이미 'Wow'로 훌륭히 소화해낸 바 있었던 뉴잭스윙 장르인 '심장어택'조차도 특유의 발랄하고 경쾌하던 느낌이 많이 사라져 아쉽기만 하다. '나 빼고 다 늑대'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고 촌스러움만 더한 채 흘러가 버린다. 유닛 트랙을 제외하면 메인 보컬인 서은광의 존재감이 전반적으로 많이 약해졌는데, 이전에는 서은광의 보컬만 단독으로 나와 강조되는 파트가 많았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백코러스나 하모니와 섞여 나오게 해 의도적으로 비중을 줄인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다른 보컬 멤버들의 성장이 눈에 띄게 드러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겠다. 비투비는 언젠가부터 미니 앨범에서도 유닛 트랙을 꾸준히 챙겨 넣고 있는데, 피처링으로 참여한 지나의 존재감을 가까스로 버텨낸 'Neverland'나 팬송으로 보이는 '여기 있을게' 역시 딱히 이 앨범을 '캐리'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이 멤버들을 데리고 이런 앨범이 나왔는지 설명도, 설득도 되지 않는다. 큐브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미묘: 기존에 공개한 두 싱글에 비해 훨씬 이미지에 맞는 곡을 들고 나왔다. 버스(verse)의 멜로디와 가사의 결합이 조금 억지스럽지만, 강렬한 빌드업도, 위협적인 저음과 함께 두 번에 나눠서 치고 나가는 후렴도 모두 인상적이다. 스테파니가 어두운 것을 한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여전히 묘하게 어긋나는 지점들이 있어서, 슬슬 이것이 싫기보다 기묘함을 느끼게 한다. 곡에서 스테파니는 특유의 심지 굵은 목소리와 얇고 야비한 목소리를 함께 들려주는데, 전자와 후자가 기능적으로는 제자리고 각기 매력적이지만 사운드만은 어찌해도 묻어나질 않는 것이다. 뮤직비디오도 저예산이라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꾸 영상과 소리가 별개인 것만 같고, 마스터도 믹스의 밸런스를 해치면서까지 맥시마이징 돼 있다. 이 위화감의 복합체를, 차라리 더 '로파이'의 기조로 밀고 나갔다면 힙해지는 지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조금 더 두고 볼 일인 듯. 다만 축축함이 슬그머니 음산하게 흐르는 'Luv Me (feat. 나다)'와 음반 후반의 재편곡 트랙들도 이색적인 매력이 있어 들어보길 권한다.
돌돌말링: 가을에는 규현을 듣겠어요. 계절을 충분히 의식한 앨범 제목이다. 활동곡은 저번에 이어 Kenzie의 곡. 뮤직비디오를 보면 유럽으로 장소를 옮겼는데, 전작의 광화문보다는 조금 먼 곳을 상정한 것이 Kenzie의 곡에는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본래 Kenzie 발라드의 강점은 지금, 바로 여기보다는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아름다워지는, 거의 판타지에 어울리는 분위기인데 (예: 보아 '공중정원,' 동방신기 'One' 등) '광화문에서'는 규현이 가진 우아한 로컬 발라드 느낌을 내려 했기에 약간 아쉬웠다. 이번엔 빼곡한 우리말 단어들 사이에 의도적으로 끼워 넣은 '밀리언'에서 규현과 Kenzie 두 느낌을 화해시켜보려는 노력이 짚인다. 그러나 정작 앨범의 킬링 트랙은 마지막에 자리한 규현의 자작곡 '안녕의 방식'인 것으로 봐서 굳이 Kenzie 곡을 타이틀로 고집할 이유는 없었을 것 같은데... 발성부터 발음까지 흠 잡을 데가 없는 철벽같은 보컬이라, 오히려 '안녕의 방식' 후렴 후반부의 "잘 있지 마요" 전에 조금 섞여들어 간 망설이는 숨소리에 가슴이 덜컹한다.
유제상: 으하. 두 가지 면에서 웃었는데 우선 곡명이 일본 추리소설 번역명인 듯한 '밀리언 조각'이었다는 것. '용의자는 셋, 범인은 하나, 증거물은 밀리언의 조각이 되어...' 같은 망상을 펼쳐보았다. 다음은 노래가 규현의 기존 히트곡(?)인 '광화문에서'와 거의 흡사하다는 것. 비슷한 시기, 같은 가수, 같은 작사·작곡가(두 곡 모두 Kenzie다). 작년이야 노래의 담백함이 평소 예능에서 보인 모습과 대비를 이루어 히트했다 쳐도, 이 전략을 굳이 두 번이나 쓸 필요가 있나 싶다.
조성민: 트랙 한가득 달려있는 영어 부제에 한 번 당황했고, 굳이 영어 부제를 붙인 이유를 모를정도로 철저히 정통(!) 한국 가요 정서를 담아내고 있는 트랙들에 두 번 당황했다. 전작에서도 그런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특히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이 앨범을 어떤 발라드 가수가 불러도 상관없을 것만 같은, 모종의 보편성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성시경, 박효신, 신혜성 등이 부를 이 앨범을 어렵지 않게 상상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이 앨범이 다른 가수의 앨범과 차별화될 부분은 결국 앨범을 이끌어가는 조규현의 보컬뿐일 테다. 그런데 그 조규현의 보컬이 그사이에 아이돌 보컬의 태를 많이 벗어나 여타 발라드 가수들의 평균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 이번 앨범에서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런 게 성장이라면, 굳이 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조성민: 팬송은 팬들과 공유되는 노래이기 때문에 부르기 쉽게 만드는 것이 미덕인데, 이 노래는 팬송치고는 부르기에도 듣기에도 꽤나 어렵다. 랩 파트를 빼고서도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노래인 데다가, 악기도 꽤 겹겹이 복잡하게 쌓여있어서 따라 부르기는커녕 듣기만 해도 어딘가 벅차다. 팬들에게 '선물'이 아니라 '과제'를 내준 느낌. 뭐, 뭐든지 쉬우면 재미없으니까, 팬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주고자 하는 의미는 있을 수도 있겠다.
미묘: 곡은 사운드와 작편곡 모두 무난한 곡에 가깝다. 후렴에서 조금만 더 세련된 질감을 구사할 수 있었다면 많이 좋아질 소지가 보인다. 멤버들의 음색은 평이한 듯하면서 대체로 상냥한 느낌의 매력이 있는데, 조금 더 세심하게 조절했더라면 좋았을 듯하다. 곡이 제법 요구하는 테크닉을 따라가는 것에도 다소 편차가 있고, 감정 표현의 정도나 아티큘레이션에서도 통제가 덜 된 듯해 아쉽다. 뮤직비디오는 2분 17초부터의 삽입 씬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블럭: 김준수에게 디스커버리가 과연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힐끗 접해온 분들이나 이유 없이 반감이 있는 이들에게는 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지금까지 꾸준히 정규 앨범을 발표하고 또 자신의 곡을 실어온 그가 이번에는 공연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EP를 발표했다. 심규선의 곡을 받은 점이나 치타, 기리보이, 비와이의 피처링 모두 이제는 수긍이 가는 행보다. 앨범의 악수(!) 중 하나인 '비단길' 역시 이제는 김준수의 앨범에 없으면 허전한 이상한 트랙이다. 그러나 거칠기만 했던 작사, 작곡의 결은 전보다 훨씬 매끄러워졌고, 이제는 정말 괜찮은 음악가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피처링이 받쳐주지 못해 아쉬운 상황이 생길 정도. 무엇보다 나는 서른의 김준수로부터 앞으로 더 오래, 멋지게 활동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봤다. 다 들어보기 귀찮다면 타이틀곡과 'OeO'를 들어보시길.
조성민: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는데, 이전보다 성숙해서 깊은 울림까지 더해진 김준수의 보컬은 무척 '고급스럽다'. 타이틀곡 '꼭 어제'에서는 그 특유의 고급스러운 보컬이 루씨아의 섬세한 멜로디와 겹쳐져 4분여의 완벽한 작품으로 거듭난다. 마치 현악기의 섬세한 비브라토와 목관악기의 밀도감, 그리고 금관악기의 예민한 고음부 표현을 더한 듯한 보컬이다. 춤에도 일가견이 있는 아이돌 보컬답게 자연스러운 리듬감으로 소화한 EDM 트랙 'OeO'와, 어느새 소년에서 어엿한 어른 남자로 성장했음을 유감없이 어필하고 있는 'Midnight Show'도 꽤나 추천할 만하지만, 역시 어쿠스틱 악기와 최고의 케미스트리를 보이는 '토끼와 거북이'가 '꼭 어제' 다음으로 들을 만한 트랙인 듯하다. 어쿠스틱 버전으로 재편곡한 전작 트랙들까지도 '재탕'의 느낌보다는 오히려 신곡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데, 특히 '꽃'은 재수록된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 트랙 면면을 들어보면 누구라도 전체 앨범의 완성도가 높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pick을 줄 수 없었던 이유에 해당하는 '비단길'에 대한 판단만은 유보하고 싶다.
돌돌말링: 키도와 곤이 떠나고 발매한 첫 미니앨범이다. 이벤트성으로 참여한 곡들 말고는 일년 만의 컴백이기도 하다. 대인원 그룹임에도 사람이 드나든 자리에 표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키도와 곤이 비중이 컸던 멤버들이기도 하고. 하지만 탑독 특유의 어지럽고 서두르는 듯하면서 짜임새 있어 듣기는 좋은 음악은 여전하다. 이국적인 멜로디 때문에 꼭 인도 DJ가 틀어주는 대학 파티 음악 같다. 이런 파티가 의외로 재밌다!
유제상: 탑독은 언제 봐도 멤버가 참 많다. 10인조라니... 뭐? 데뷔할 땐 13인조였다고? 그나마 몇 명 빠진 거였어? 사실 커리어가 20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룹이지만 '아라리오', '들어와', '아마데우스' 이후로는 갑자기 기운이 쭉 빠진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에너지 넘치는 곡을 다시 들고나오니 반갑다. 특유의 난삽하고 껄렁거리는 분위기도 잘 살아있고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 싶다. 'The Beat'와 'O.A.S.I.S'의 더블 타이틀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 곡 다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훵키한 'O.A.S.I.S'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미묘: 편곡 요소는 무난한 편이다. 다만 평면적으로 연출되고 믹스된 보컬이 마치 이벤트송을 듣는 기분을 준다. 그것은 멜로디 자체에 '자리'가 없어서이기도 할 터이다. 쏟아내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양 잔뜩 채워져 있으면서 그나마도 라인의 변폭이 심하다.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도 좋겠지만 과욕을 부리다 에너지가 줄줄 새어나가는 곡이 되었다. 가요 작곡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질감마저 느껴지는데, 경력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혹시 초기 습작은 아닌지 싶기도.
유제상: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동명의 BJ가 나오는 팀 이름 작명의 안이함, 노래방 반주를 연상시키는 조악한 음원, 평자에게 맡겨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가사의 심심함 등을 탓하고 글을 마무리하려 했다. 직캠을 보기 전까지는! 직캠이 정말... 와우...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굳이 비교하자면 빅토리아 시크릿의 동네 버전 같은... 사실 화끈한 축제 무대를 보여주는 마이너한 그룹은 이들 말고도 여럿 있다. 다만 이들의 무대 매너는 (비록 화면으로 접한 것이지만) 뭔가 달랐다. 예를 들면 이런 것? ☞ https://www.youtube.com/watch?v=LK8JND-nTe4
미묘: 풀렝스 앨범으로 데뷔하면서 뮤직비디오를 3편이나 제작한 뒤에, 4번째 뮤직비디오는 인트로가 1분 34초에 달하는데, 해당 싱글이 기존 발매곡이라니 조금은 맥이 빠진다. 모바일 앱 같은 그래픽, 1인칭 카메라 시점, 몇 장면의 치졸한 연출 등도 썩 만족감을 안기진 않는다. 곡 자체도 크게 말을 보탤 거리가 없지만, 후렴을 두 부분으로 나눠서 전반은 프리코러스로 기능시키고 후반은 드라이브를 걸어주는 기법만큼은 매끈하게 이뤄졌다. 떠들썩한 분위기를 살리는 곡이라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지만, 티아라를 더 저연령층으로 바꿔놓은 스탠스와는 그럴싸하게 들어맞는 편이라 할 수 있다. 신사동 호랭이가 동요적 모티프를 사용하는 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지만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겠지.
유제상: 리더의 이름 때문에 디시인사이드에서는 다른 의미로 유명해진 그룹 다이아의 두 번째 싱글. 5분 52초에 육박하는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공격적인 전략을 구가하고 있는데, 그 덕에 곡이 심심하더라도 '뭔가 상당히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사실 노래로만 보면 바로 전 곡인 '왠지'가 낫지만(심지어 이쪽도 썩 즐거운 곡은 아니었지만) 어느 쪽이든 구성원의 매력을 배가시켜준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미묘: 잘 정돈된 '설익음'에서 원더걸스를 처음 보았던 때를 떠올린다. 'Ooh-Ahh하게'도 그렇지만, 무작정 앞으로 달려나가기만 하는, 몹시 서두르는 듯한 생동감 있는 공기가 수록곡에 가득하다. 멤버들의 캐릭터가 매우 선명하고 하나같이 매력적인 점 역시 놀랍다. 9인조, 외국인 멤버, 리얼리티, "나를/Ooh-Ahh/하게 만들어줘"의 중의법 등, 많은 것들이 '왜 이제 와서?'라는 의문을 갖게 하는데, 보는 순간 그 모든 것에 설득력 있는 이유들이 제시된다. JYP의 아이돌 기획이 진화하고 있는 시점이 아닐까.
블럭: 물론 단점도 있다. 멤버들의 색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고음역에 해당하는 곡을 부르다 보니 여러모로 힘들어지는 부분이 가장 아쉽다. 음원만으로 접했을 때는 수록곡 대부분이 매끄럽고 트와이스라는 그룹의 방향이 어느 정도 잡히기는 하나, 후반부 곡들이 결정적인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여타 걸그룹과 차별화를 두면서 힘을 발산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음원 외의 경로로 그룹을 접했을 때 느껴지는 매력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만든 좋은 조건을 뚫고 나온다. 무엇보다 초반에 각 멤버의 색이 최소한이라도 잡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대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의 선방 정도는 된 것 같다.
돌돌말링: 드디어 JYP에서도 대인원 걸그룹을 내놓았다! 〈식스틴〉을 시청하지는 않았는데, 방영 과정과 데뷔 직후 SNS에서 터지던 반응에 얼굴과 이름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JYP의 경탄을 자아내는 미소녀 풀은 어디까지인가...) 데뷔곡 'OOH-AHH하게'는 노래 앞에 나오는 "JYP~"는 없지만 (블랙아이드필승의 노래라고) JYP에서 나올 법한 섹시한 말장난 가사를 깔고 들어간다. 전주부터 나오는 F#maj-Dmaj의 의외성이 후렴으로까지 이어질 때 '어?' 하고 돌아보게 되는 산뜻함이 있다. 원더걸스의 'Irony'나 미쓰에이의 'Bad Girl Good Girl'을 떠올려보면, 트와이스는 지금까지 JYP가 프로듀싱한 걸그룹들 가운데엔 가장 상큼하고 가벼운 느낌으로 데뷔하는 셈이다.
유제상: 데뷔 전부터 요란한 그룹 트와이스의 첫 EP. 사실 타이틀곡 'OOH-AHH하게'만 놓고 보면 대실망으로, 상상 이상의 SM스러움(그중에서도 레드벨벳스러움)이 당혹감을 안겨준다. 다만 EP 안엔 여섯 곡이 꽉 차 있고, 갓세븐이 1년여 만에 훌륭하게 자리 잡은 것을 생각하면 트와이스 또한 당연히 멜로디가 즐거운 곡을 내줄 것으로 본다. 사실 한동안 JYP의 걸그룹은 뭔가 핀트가 어긋난 거 같아 이게 평자랑 안 맞는 건지, 웰메이드 지향의 잔향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조성민: 원더걸스와 미쓰에이의 데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트와이스의 데뷔도 무척 크게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몇몇은 나와 같은 이유로 약간의 실망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트와이스의 데뷔는 아무래도 미쓰에이보다는 원더걸스를 조금 더 닮아있는 것 같은데, 발군의 재능은 없어도 트레이닝 받은 내용에 충실한 보컬과 댄스, 그리고 그 점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는 무대는 데뷔 때부터 끼가 넘쳤던 미쓰에이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겠다. 이미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의 재능을 지켜본 대중들이 이제 그 이상의 색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는 와중에, 9명의 멤버들이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긴커녕 마치 한 명인 듯 똑같은 창법과 음색으로 노래를 하고 있다는 점도 꽤나 '묘하다'. 어쨌든 이전의 그룹들은 어떻게든 그 안에서 개성을 드러내려고 애썼고, 그것이 비주얼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는데, 트와이스는 어째서인지 곡 안에서 멤버를 구별해내기가 어렵다. 의도적으로 흘리는 듯한 발음도 신경 쓰이지만, 그 흘리는 방법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점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여러모로 의아한 구석이 많은 팀인데, 다음 앨범에서 과연 어떤 방향이 잡힐지가 궁금해진다.
유제상: 그룹 이름, 곡명, 가사, 모든 것들이 설명을 보아도 의문투성이다. 음원으로만 평가하자면 기운이 없음을 지적하고 싶은데, 가사대로라면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패기를 보여줘야 마땅하건만 유독 보컬의 목소리가 끼니를 굶은 것처럼 배고프다. 설마 진짜로...?
조성민: 회사의 야심을 멤버들이 못 따라가고 있다. 사실 멤버들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의 기획을 해주는 것도 '기획력'의 일부인데, 이 점을 간과한 경우를 꽤 자주 본다. 치수를 재보지 않고 가져온 옷은 아무리 명품이어봤자 몸에 안 맞고 인상에 안 어울리면 '땡'이다. 뭘 되게 많이 해보려고 했는데, 궁극적으로 뭘 하려고 했던 건지는 조금 애매하고, 설상가상 눈치 없는 멤버들의 실력은 그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못해서 보는 내가 다 미안해진다. 사장님 나빠요.
미묘: 그야, 이쪽이 이 곡에 더 어울린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같은 곡을 이미 발매했던 지지베스트는 걸그룹 동아리 같은 느낌도 있었으니. 그러나 특색 있었던 바로 그 점을 섹시 지향 그룹으로 대체하면서, 그저 흔한 (그러나 퀄리티는 모자란) 섹시 걸그룹 곡이 되고 말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 정도가 되면 이 음반이 발매되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조성민: 그래도 기본적인 트레이닝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데뷔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무리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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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plies on “1st Listen : 2015년 10월 중순”
저기….분명 단평을 하시는 거지 실없는 농담따먹기 하시라는 기사는 아닌줄로 압니다만….아무리 유머라도 좀 과하신거 아닌지.
별민님 리뷰를 보면서 노래와 음반, 가수들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것도 드러나고, 확실히 음악을 귀담아 듣고 단평을 쓰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그룹’과 ‘좋아하지 않는 그룹’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팬이라고 해서 리뷰를 쓰지 못한다거나 비평을 쓰면 안 되는 이유는 없지요. 그래도 단평에서 ‘팬심’을 기반으로 평가를 하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저번 인피니트 Reality의 리뷰 ‘마냥 유쾌하고 ~ 색칠하고 있다.’는 팬으로서 느낀 멤버들의 관찰 결과를 드러내는 것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인피니트H 예뻐 리뷰도요.)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고쳐서 조금 더 균형적인 시선으로 리뷰를 쓰신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만 이렇게 느끼는 거고 예민한 걸 수도 있어 표현하기에 조심스러움이 많네요. 그래도 계속 보면서 이런 부분은 고쳐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의견을 남깁니다.
* 더불어 말하자면 단평에서 팬심을 드러내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너무 귀담아 듣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애초에 아이돌 팬심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이트이고, 많은 팬들이 모여있기에 그런 ‘주관’을 배제해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제가 과한 욕심을 부린 걸 수도 있고.. 또 어찌 보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걸 수도 있으니까요. 별민님들과 아이돌로지 많은 분들의 비평을 보면서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조심스레 덧글 남깁니다. 늘 좋은 단평들 고맙습니다 :)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저 역시 좋아하는 팀의 리뷰를 남길 때는 혹여라도 편향된 시각이 드러날까봐 조금 더 숙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스스로도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느끼고 있고, 그렇기에 독자분들께서도 저 뿐만 아니라 다른 필진분들의 의견까지 고루 수렴해주시길 바라고 있기도 합니다. 팬으로서, 팬이기 때문에 더 자세히 분석할 수 있는 점에 대해서는 마땅히 그렇게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노래들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자세히 듣고 분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은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충분히 신경 쓰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단평의 내용이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항상 좋은 글 갑사합니다. 혹시 이번 아이유 앨범에 관한 논란-수록곡 ‘zeze’ 에 대해 칼럼을 작성해주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