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빛나는 아이돌, 그 뒤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부지런히 움직여온 또 다른 주인공들이 있다. 그들은 한창 K-POP 열풍이 불던 시기에도 있었고, ‘한류’라는 말이 고유명사로 쓰이기 한참 전에도 역시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아이돌 메이커〉는 조금 더 자세하게, 다른 시각과 온도로 아이돌 산업에 들어와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기획된 책이다. 7회에 걸쳐 책 내용 일부를 발췌해 게재한다. 인터뷰 전문은 〈아이돌메이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시, 가사, 드라마
“꾸준히 시를 썼던 게 가사를 쓰는데도 은연중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박희아 : 태연 씨 ‘I’가 2016년에도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기쁘셨을 것 같아요. 가사가 따뜻하면서도 거기에 당찬 느낌이 살아 있어서 참 좋았어요.
마플라이 : 태연 씨 가사는 작업하면서도 잘 될 것 같았어요. 일단은 곡이 너무 좋았고, 태연 씨가 워낙 노래를 잘하시니까. 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었죠. 하하. 사람은 누구나 힘든 시기가 있잖아요. 안 그런 사람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자전적 가사는 그런 면에 있어서 공감을 끌어내기가 쉬우니까요. 사실 그 가사를 쓰면서 저도 지금까지 수고했던 스스로를 위로하는 느낌으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요즘 들어 더 느끼는 건데, 따뜻하고 당찬 느낌의 가사가 제 색깔인 것 같아요. 아무리 센 분위기의 가사를 쓰려고 해도 잘 안 되더라고요. 이런 가사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그래서 굳이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박희아 : 작사가 외에 다른 일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마플라이 : 드라마 작가를 준비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다 글을 쓰는 일이기는 한데,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부터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박희아 : 잘 아시다시피, 작사나 작곡은 주변 도움을 받아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나쁘게 말하면 도제 시스템인 거고요. 좋게 말하면 개개인이 제자를 육성하는 시스템인 거죠.
마플라이 : 도제 시스템이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사가 일을 하는 데에 암묵적인 룰이라는 게 있어요. 또 일을 하는 방식 같은 걸 혼자서 배우긴 어렵거든요. 그리고 요즘에는 도제 시스템보다는 하나의 팀이란 개념이 맞는 것 같아요. 팀도 있고, 작곡가 그룹도 있고, 아이코닉이나 줌바스처럼 작가들을 위한 회사도 생겼고요. 그렇게 육성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아요. 가요계에서는 아무래도 인맥이 중요하다보니, 혼자 시작하는 건 힘든 일이죠. 일단 기획사들로부터 작사 의뢰조차 받을 수 없으니까요. 연결고리가 필요한 것 아닐까 싶어요.
# @STUDIO
“한 단어라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요.”
박희아 : 작업실에서 가사를 쓸 때는 혼자서 많은 것들을 상상해보고 조율하시는 거죠. 그 후에 글자로 옮기시는 거잖아요. 반대로 스튜디오에 가면 아티스트들에게 먼저 시선이 갈 거고, 녹음 과정에서 일종의 피드백이 오고 가는 거고요.
마플라이 : 네. 그런 부분에서 엄정화 선배님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1년 전에 의뢰를 받았고, 6개월 전쯤에 녹음을 했어요. 당시 녹음실에 가서도 제가 긴장을 너무 많이 했었거든요. 그분이 워낙 대선배님이셨기 때문에…. 그런데 선배님께서 까마득한 후배 작사가인데도 편하게 대해주셨고, 덕분에 녹음도 편하게 마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겸손한 태도로 스태프들을 대하시는 태도가 진짜로 인상적이었어요. 존경하게 됐죠.
박희아 : 엄정화 씨도 사실 90년대 아이돌이라고 볼 수 있는 분인데요. 물론 콘셉트가 전형 적인 아이돌 콘셉트는 아니었지만, 인기나 이런 부분에서요.
마플라이 : 맞아요. 그렇게 보면 1세대 아이돌 같은 분이 아닐까요? 그런 분이 아직까지도 녹음실에 한 번 들어가면 안 나오시더라고요. 굉장한 열정을 봤어요. 저런 근성과 열정이 저 사람을 저 자리에 있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중략)
# 아이돌과의 작업
“잘 맞는 아티스트가 있는 것 같아요.”
박희아 : 소녀시대, 태티서, 규현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과 여러 번 함께 작업 하셨어요. 어떻게 함께 하게 되신 건가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마플라이 :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데, 제 데뷔곡이 소녀시대의 ‘낭만길’이었어요. 그때는 마플라이 대신 수미라는 예명을 썼을 때였거든요. 마플라이란 이름으로 다시 나오니까 새로운 사람인 줄 알더라고요. 심지어 외국인인 줄 아는 분도 있었어요. 하하. 어쨌든 데뷔가 소녀시대였으니까 자연스럽게 SM엔터테인먼트에서 작사 의뢰를 받게 되었고요. 이후에는 태티서, 동방신기, 태연 씨와 규현 씨 곡도 하게 되었죠. 하다 보니 작사가와 잘 맞는 아티스트가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게 걸 그룹이고요.
박희아 : 작사를 하면서 가리는 장르 같은 건 없으시나요?
마플라이 : 장르를 딱히 가리진 않아요. 좋아하는 장르는 있지만, 의뢰는 다양하게 들어오니 가릴 수 없죠. 그런데 걸 그룹과 많이 했어요. 작사가마다 잘 맞는 장르나 가수가 특별하게 있는 것 같아요. 예전 선배님들을 보면, 양재선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성시경 씨와 오래 작업하셨잖아요. 저에게는 걸 그룹들이 그런 경우죠.
# 지금 이 순간
“누구에게나 지금 이 시간, 당장 이 순간은 딱 한 번 밖에 없잖아요.”
박희아 : 작사하면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위안이 됐던 곡을 하나 꼽아주 시겠어요? 주변에 기운 없는 분에게 추천할게요.
마플라이 : 여자친구의 ‘찰칵’이라는 곡이에요. 거기 들어있는 가사 중에 “먼 훗날 이 사진을 보며 / 빙그레 또 웃을 수 있게 / 더 행복할래 / 아무도 나를 대신 할 수 없어.” 평범해 보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참 좋아해요. 누구에게나 지금 이 시간, 당장 이 순간은 딱 한 번 밖에 없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온 가사인데요. 매 순간, 나의 모든 일상이 사진으로 찍혀서 남는다면 어떨까요? 먼 훗날에도 지금 이 순간 찍힌 내 모습을 보며 또 다시 활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썼어요. 매일이 선물인 것처럼 사는 거죠. 만약 지금 내가 찡그리고 있다면 훗날 지금 그 사진을 보고 또 다시 찡그려야 할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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