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빛나는 아이돌, 그 뒤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부지런히 움직여온 또 다른 주인공들이 있다. 그들은 한창 K-POP 열풍이 불던 시기에도 있었고, ‘한류’라는 말이 고유명사로 쓰이기 한참 전에도 역시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아이돌 메이커〉는 조금 더 자세하게, 다른 시각과 온도로 아이돌 산업에 들어와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기획된 책이다. 7회에 걸쳐 책 내용 일부를 발췌해 게재한다. 인터뷰 전문은 〈아이돌메이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운동선수 혹은 예술가
“캠코더로 스케이트 보드 타는 모습을 찍기 시작했죠.”
박희아 : 일전에 하신 인터뷰에서도 몇 차례 언급하셨지만, 김성욱 감독님 이력은 굉장히 특이해요.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였다가 영상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신기한데, 거기다 감각적인 걸로 정평이 난 팀을 책임지고 계신 것이 흥미롭고요. 또 최근에 GDW를 포함해 룸펜스(Lumpens), 디지페디(DIGIPEDI) 등 몇몇 뮤직비디오 팀들이 각광받고 있잖아요. 이중 유일하게 ‘전공자’가 아니시기도 하고. 남현우 촬영감독님은 김 감독님에 대해 “타고 났다”면서 무척 칭찬하시던데요.
김성욱 : 아예 관련이 없는 인생을 산 건 아니에요. 원래 아버님께서는 사진관도 운영하시고, 잘 알려진 대기업의 전속 사진사로 일하셨어요. 그리고 어머님이 농구선수셨거든요. 다 물려받은 것 같죠. 그러다 IMF로 경제난이 찾아오면서 저희 가족에게도 어려운 순간이 닥쳤어요. 제가 그때 보드를 만났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상황이 나빠지면서 안 좋은 길로 빠질 수도 있었을 텐데, 보드 덕분에 별 일이 없었던 거죠. 그럴 때 보면 헝그리 정신이라는 게 어느 정도 필요하긴 한 것 같아요. 자신을 갈고 닦는 일에 도움이 돼요.
# 뮤직비디오 촬영
“뮤직비디오는 음악이 오면 거기에 맞는 텐션이 생각이 나요.”
박희아 : 아이돌 뮤직비디오와 다른 필르밍의 차이가 컸나요.
김성욱 : 아이돌 작품을 했을 때는 두려운 것보다 신세계를 경험하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운동하다 그런 순간이 있거든요. 앞에 점프대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걸 뛰면 내 기분이 좋을 것 같단 말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뛰기 전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죠. 그거랑 똑같았어요. 저는 눈앞에 닥친 상황을 운동 경험에 빗대서 생각하는 편이에요. 처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도 ‘이 상황은 내가 어느 대회에 나갔을 때 그 순간이네. 그래, 그때 나 잘 뛰었었어!’ 이런 식으로 이겨냈어요.
박희아 : 레드벨벳 <행복> 뮤직비디오는 GDW 역사에서 빼놓을 수가 없죠. 이 뮤직비디오로 GDW를 알게 된 분들이 많아요.
김성욱 : 진짜 많죠.
박희아 : 독특하면서도 상당히 패셔너블한 지점들이 눈에 많이 띄었고, 그런 요소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장악한 게 매력 아니었나 싶어요. 또 SM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서는 새 걸 그룹의 데뷔곡이었으니 신경을 더 썼을 테고요. GDW의 트렌디함이 SM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도전을 완벽히 서포트 해준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김성욱 : 그 당시 저희 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계셨던 최서연 실장님과 함께 패션 관련 이미지를 많이 봤어요. 사무실 유리창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이 모아놓고 3일 내내 계속 그 사진들만 보고 있었죠. 노래도 계속 듣고. 저희 입장에서는 이제 데뷔하는 그룹이었으니까 기존 걸 그룹들과 완전히 확 다르게 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SM엔터테인먼트 민희진 이사님이 원하시는 것도 ‘Something New’, 즉 ‘뭔가 새로운 것’이었고.(중략)
박희아 : 그렇다면 뮤직비디오 의뢰가 들어왔을 때 작업 여부를 선택하시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이건 정말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특별한 요소들 같은 거요.
김성욱 : 가장 중요한 건 저희 색깔과 잘 맞는 음악을 고르는 거고요. 사실 2015년까지는 음악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여러 가지 장르에 도전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경험이 쌓이다보니까 저희 스타일과 어떤 음악, 어떤 아티스트가 맞는지 점점 느껴지더라고요. 작업 과정에서 직접 아티스트와 소통하며 공동 작업 형태로 가는 게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최대한 GDW, 또 저 자신과 잘 맞는 음악, 아티스트에 집중하려고 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서로 스케줄이 맞는지 체크하는 것도 꼭 필요하고요.
# 아이돌 MV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것을 느낀 계기가 됐죠.”
박희아 : 태민 씨가 지닌 캐릭터도 굉장히 독특하잖아요. 샤이니 중에서도, 또 가요계를 통틀어 갖고 있는 이미지도 유니크하고요. GDW가 제작한 <괴도(DANGER)> 뮤직비디오에는 태민 씨가 아이돌로서 지닌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제한된 색채, 심플한 컷 구성 등으로 표현돼 있어요.
김성욱 : 처음 제가 생각했던 건, ‘태민이 여태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그려내자.’는 거였어요. 퍼포먼스나 비주얼도 중요하지만, 그 친구를 보고 있으면 내면에서부터 풍기는 색다른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죠. 그래서 섹시함과 강함, 그 두 가지 키워드가 공존할 수 있도록 포커스를 맞춘 작업이에요. 제가 아이돌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한 게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정말 열심히 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한데요. 일단 실력이 굉장히 좋아요.(중략)
박희아 : 보이 그룹 중에는 방탄소년단과 가장 많이 작업을 하셨죠. 룸펜스 최용석 감독님과 함께 작업한 작품도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듣자마자 ‘팀의 색깔이 정말 다른데 같이 했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김성욱 : 〈SAVE ME〉는 저희가 기획, 촬영, 연출 초중반부까지 맡고, 후반은 룸펜스 감독님이 해주셨어요. 두 팀이 워낙 친해요. 아기가 동갑이기도 하고요.
박희아 : 방탄소년단의 <쩔어>라는 작품은 멤버 한 명씩 모두 뚜렷한 의상 및 공간 콘셉트를 갖고 있었는데요. 따라서 원 테이크처럼 보이게 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김성욱 : 맞아요. 당시 의상 같은 경우에는 그쪽 담당자 분들이 갖고 있던 콘셉트가 있었고, 저희가 맡은 건 주어진 이미지들을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할지에 관한 거였어요. 미술적인 부분들을 어떻게 표현할 건지, 거기에 어떤 상징 요소들을 넣을 건지, 어떤 타이밍에 컷을 넘길 것인지 등등….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임팩트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컷이 넘어가는 순간이거든요? 하지만 <쩔어> 같은 경우에는 컷 개념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 뮤직비디오에 어떤 식으로 재미를 줄지 고민을 많이 했죠. (중략) 어쨌든 저에게는 이게 도전이었어요. 처음으로 방탄소년단을 제대로 맡아서 찍은 뮤직비디오이기도 했고요. 와, 근데 이 친구들 춤 정말 열심히 추더라고요.
박희아 : 함께 일하면서 방시혁 PD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을 텐데, 개인적으로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궁금해요.
김성욱 : 방시혁 PD님은 제가 만나 뵀던 분들 중에서도 아티스트나 감독을 진심으로 리스펙트 해주시는 분들 중 한 분이에요. 방탄소년단 아이들도 그 모습을 닮은 것 같아요.
# 강자가 되는 법
“조용히 강해지면 돼요. 그러면 알아서 바뀌어요.”
박희아 : GDW 팀원들을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김성욱 : 제가 싫어하는 게 밤샘 촬영이거든요. 저는 사실 괜찮아요. 감독이고, 일단 잘 만들면 누가 만들었냐 했을 때 김성욱이란 이름이 나오니까요. 그런데 저희 팀들은 뒤에 다 숨겨져 있잖아요. 실제로 현장에서도 저희가 분위기 가장 좋은 팀 중 하나일 거예요. 힘들어도 다들 웃으려고 하고요. 안될 것 같을 때, 아니다 싶을 때 과감하게 내려놓는 것도 있고요. 음, 어쩌다 이 이야기가 나왔지. 하하.
박희아 : 어쨌든 그 부분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감독님도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뒤에서 작업하는 스태프들에 대한 존중이 잘 안 되는 면이 있으니까요.
김성욱 : 이런 단어를 쓰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간혹 미개하다는 생각을 해요. 매너 없고, 존중이란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심지어는 그런 사람도 있어요. 저희 막내 프로듀서에게 주차 좀 하라고 차키를 던지고 가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 거 보면 화가 정말 많이 나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스스로 자기 능력을 증명해보이면 되니까요. 우리 팀이 강력해질수록 사람들이 바뀌더라고요. 상대가 강해지면 태도가 바뀌는 사람들을 종종 봤어요. 강해지겠다고 제가 일부러 소리 지르면서 일 한다는 뜻은 아니고요. 조용히 강해지면 돼요. 그러면 알아서 바뀌어요. 그게 가장 강한 퍼포먼스라고 생각해요. 절대로 속상한 것, 자존심 상하는 것을 티 내지 말라고 했어요. 나중에 알아서 너에게 허리를 굽힐 거라고.
박희아 : 정말 밤샘 촬영은 전혀 안 하시나요?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온 거라, 솔직히 믿기지가 않아요.
김성욱 : 이제는 정말, 일절 안 해요. 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아요, 정말로. 저도 예전 같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제는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고, 가족들을 돌봐야 할 시간이 있는데 그러면…. 계속 되풀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뭐든, 일단은 저희부터 조금씩 노력하고 있어요.
박희아 : 10년이 넘어간 디렉터의 무게가 느껴지는 말이네요.
김성욱 : 드디어 10년이 넘어가니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생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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