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노: ‘동방신기’하면 자연스레 기대하게 되는 몇 가지 것들이 있는데, 그러한 기대감은 첫 트랙 ‘평행선’의 인트로를 듣는 순간 보기 좋게 배신(?)당한다. 일종의 그룹 트레이드마크가 된, 다소 과할 정도로 화려한 사운드, 끝을 모르고 치솟는 고음,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듯한 퍼포먼스 등을 기대했다면 더더욱. 그러나 그것은 당황스럽기보다는 되레 기분 좋게 다가오는 종류의 배신감이다. 그들은 분명 아직도 그러한 것을 충분히 할 수 있고, 한다고 하면 ‘그 어려운 것을 또 해내고’ 말겠지만, 이번에는 부러 다른 길을 택했다. 우리가 늘 보고 들었던 것은, 빽빽하게 우거진 사운드와 치열하게 부딪히며 뚫고 나오는 보컬과 여러 무대장치 사이에서도 결코 ‘꿇리는’ 일 없던 초인간적인 퍼포먼스 같은 것들이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저 둘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소리와 무대가 남아있을 뿐이고, 동방신기는 그 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미끄러지듯 춤추고 노래한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것만을 취한, 미니멀한 사운드와 무대는 허전하긴커녕 그래서 그들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자칫 산란해지기 쉬운, 여러 가지 장르를 담은 열한 트랙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은 그야말로 물오른 탄탄하고 안정적인 수행력 덕이다. 그들 자체가 앨범의 일관성이고, 유기성이며, 중심이고 축인 셈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데뷔 15주년을 넘겼다는 ‘짬’과 멤버 모두 삼십 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 때문만도, ‘불과 얼음’에 비견되는 두 멤버의 온도 차 때문만도, 베테랑으로서의 여유와 그로 인해 가능한 ‘내려놓음’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그저, ‘동방신기라서’ 가능한 것이리라. 그리하여, 그 어려운 것을 동방신기가 또 해냈다.
심댱: SM이 OB를 보여주는 방식이 2018년이 되어 달라졌다. 보아의 ‘내가 돌아’를 기점으로, 캐치한 동작과 멜로디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동방신기의 이번 신보에서도 마찬가지다. 스윙 혹은 슈퍼주니어식에 가까운 ‘뽕 끼’로도 읽을 수 있는 ‘운명’에서는 한바탕 즐겁게 놀아보자는 포부가 읽힌다. 박자를 쪼개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안무는 동방신기에서 볼 수 있는 그대로지만 적어도 후렴구 부분에서의 ‘으른 으쓱 춤’이나 팔을 굽혀 움직이는 동작만큼은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좀 더 편히 즐겨보자는 기조는 앨범 전반에서도 이어진다. ‘평행선’의 미니멀한 구성과 부드러운 가성이라던가 ‘Wake Me Up’ 속 최강창민의 약간 짜증스러운 창법 등은 동방신기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퍼포먼스와 고음이 강조되는 스타일보다 훨씬 가볍다. 타이틀곡에 이어지는 ‘지나간다… (Broken)’에서는 인연에 초연한 자세가, ‘Only For You’에서는 풋풋한 설렘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그들에게서 풋풋함보다는 윤기 있는 관록이 더 돋보인다. ‘Dab’을 100% 채운다면 나올 수 있는 트랙 ‘Bounce’에 이어 ‘Wake Me Up’이 배치되는데, 장르가 달라도 앨범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고 매끄럽게 연결되는 점에서 그러하다. 거기에 토호신키의 발라드가 연상되는 ‘Sun & Rain’으로 닫아가는 잔잔한 마무리까지. 무겁지 않지만 잘 길든 앨범을 오랜만에 들어 행복하다.
조성민: 깔끔하게 잘 다듬어진 트랙 위로 군더더기 없는 두 사람의 보컬이 구두 소리가 나듯이 또박또박 흐른다. 악기가 최소한으로 쓰였다는 인상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허전하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고, 오히려 미니멀한 사운드로 적당히 비트감을 살려 댄스 팝의 특장점을 극대화시켰다. ‘이것이 박자다!’라고 외치는 묵직한 드럼 소리 대신, 공중에서 가볍게 터지는 신스음이 기분 좋게 몸을 흔들게 만든다. 한편 퍼포먼스에 특화된 팀답게 ‘Bounce’와 같은 트랙에서는 예의 그 카리스마를 발휘하는데, 비장하게 울리는 브라스조차도 무대에서 선보일 멤버들의 춤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반듯하게 정돈된 점이 흥미롭다. 가장 크다는 무대에선 모두 공연해본 팀다운 연출이랄까. 미니멀하고 모던하게 연출된 ‘평행선’과 ‘운명’의 뮤직비디오 또한 주목할 만 한데, 가장 아이돌적으로 표백된 세계를 설정해둔 화면이 군 복무라는 가장 현실적인 이벤트를 갓 마친 두 사람에게 꽤 잘 어울린다. 모노톤의 화면에 안무로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방식 또한 탁월한데, ‘흑’으로 톤다운 된 ‘운명’과 ‘백’으로 빛나는 ‘평행선’의 화면을 비교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일 듯하다. 누가 뭐래도, 대중과 꾸준히 호흡하고 그를 통해 발전하는 것은 아이돌 이전에 아티스트의 임무이자 숙명이며, 그런 점에서 동방신기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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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Draft : 동방신기 – New Chapter #1 : The Chance of Love (2018)”
슈주 같은 타이틀인데요. 저도 ‘내가 돌아’ 랑 엮고 싶은데 둘 다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평행선’ 은 뮤비가 예쁘고 편안하게 들었는데요. 각자 솔로곡인 5, 6번이 제일 좋더군요, 신기하게 이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