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걸의 '비밀정원' – 조용히 생동하는 서정성 | Idology.kr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 조용히 생동하는 서정성

이미지 ⓒ WM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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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8년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된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기획 박준우, 전대한)에 전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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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씬에는 최근 몇 년간 서정성을 콘셉트로 하는 걸그룹이 늘었다. 당장 떠오르는 곡만 해도 아련한 멜로디와 가사에 강한 기타 리프와 드럼을 매칭한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 e.one이 쓴 유려한 마이너곡 우주소녀의 ‘비밀이야’와 에이프릴의 ‘봄의 나라 이야기’, 세련된 스타일을 잘 만드는 모노트리 작품인 이달의 소녀 1/3의 ‘알 수 없는 비밀’ 등이 떠오른다.

오늘 다룰 오마이걸의 ‘비밀정원’을 대표하는 정서 역시 서정성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앞서 언급한 곡들과는 분명 다른 지점이 있다. 이 남다른 점은 오마이걸을 오마이걸답게 만들며 씬에서 독특한 위치를 굳히게끔 한다. 이 곡으로는 데뷔 후 첫 음악방송 1위를 하기도 했다. 오마이걸에게도, 중소형 기획사인 이들의 소속사 WM 엔터테인먼트에게도 ‘비밀정원’은 꽤 소중한 곡일 것이다.

곡의 구조를 보면, 이전까지 오마이걸이 발표했던 노래들과 비교했을 때 꽤 고전적인 가요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렴 전체를 과감하게 챈트로 채워버린 데뷔곡 ‘Cupid’나, 브리지를 아카펠라로 처리하고 서서히 빌드업 해서 후부에 와서야 고음을 넣는 ‘Closer’, 댄스 브레이크에 아예 이질적인 튠을 넣어버린 ‘Windy Day’ 등, 이제까지 오마이걸은 중소 기획사 걸그룹 넘버로서는 상당히 실험적인 곡을 내놓아왔다. (여타 곡들과 유기 관계로 보았을 때 ‘내 얘길 들어봐’의 리메이크는 시즌 한정 예외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밀정원’은 기본 멜로디를 크게 변형하지 않으며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프리코러스-코러스, 연속성을 해치지 않는 무난한 브리지, 단순한 EDM 리듬, 그리고 마지막 후렴 뒤에 깔리는 메인 보컬 승희의 고음부 애드립 등, 한국 가요의 문법에 이보다 더 충실할 수 없는 곡이다. 그러나 정서적으로는 지금까지 오마이걸이 쌓아온 세련을 이어간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서지음의 가사다.

오마이걸 말고도 다수의 케이팝 아이돌과 작업을 하고 있는 서지음은, 이들의 두 번째 싱글이었던 ‘Closer’부터 함께하며 오마이걸의 현재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Closer’의 별자리나 ‘Windy Day’의 들판과 바람 등, 자연물에 감정을 빗댄 아름다운 노랫말은 기성 성인 가요의 안티테제로 등장해 이제까지 현대적인 이미지를 주로 다뤄온 아이돌팝 장르 속에서 유독 빛난다. 한국 유스 컬처 전체를 놓고 보자면, 2000년대 중반부터 민트페이퍼에서 모던함과 생태 감수성을 함께 프로모트 했던 것이 2010년대 후반이 되어서 아이돌로 대표되는 대중가요 씬에 등장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비밀정원’은 가까운 이에게만 허락하는 개인적인 마음을 정원이라는 공간적 개념에, 그리고 앞으로 자라날 꿈이나 가능성을 (아마도) 씨앗에 비유하고 있다. 비유보다는 직설이 많은 요즘 케이팝 씬에서는 이조차 꽤 고전적인 표현법에 속한다. 그런 가사이기에 음악의 통속적 구조와 겉돌지 않고 잘 맞아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곡이 오마이걸의 전작들과 다른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서지음은 ‘비밀정원’의 화자에게 여태까지 곡 중 가장 선명한 목소리를 부여한다. 신비롭거나 사랑의 감정으로 혼란스러웠던 이전까지의 화자들과 비교했을 때, ‘비밀정원’의 화자는 스스로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며, 개인의 숙고와 꿈의 세계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초대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자신을 중심으로 사고할 줄 아는 인물이다. 이 심지 있는 메시지가 이 곡을 유연하지만 강하게 만든다.

이러한 곡을, 가사를 본뜬 안무와 적절한 창법으로 구사한 것은 오마이걸의 공이라 하겠다. 긴 꿈이나 아침햇살 등을 나열하며 부드럽게 시작되는 도입부를 지나, 본인의 안무처럼 음정이 정확하고 탄력적인 창법이 특징인 유아가 본격적으로 청자를 초대하면, 겹겹이 웅장하게 쌓아 올린 스트링이 후렴의 픽업부터 문을 열며 효정이 곡의 핵심 메시지를 전한다.

내 안에 소중한 혼자만의 장소가 있어
아직은 별거 아닌 풍경이지만

깨끗한 톤에 아주 약간의 비성이 곁들여진 효정 특유의 음색은, 그냥 긍정이 아니라 희망으로 꿈을 확신하는 외유내강형 긍정을 전하기에 딱이다. 이 부분에 더 이상의 적임자는 없을 것이다.

함께 나눈 순간들
이 가능성들을 꼭 다시 기억해줘

다시 효정이 등장해 브리지의 마지막 음을 가성으로 처리해 귀를 집중시킨다.

마지막 후렴의 전반부는 대부분의 악기 트랙이 퇴장하며 나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뀌어, 이번에는 화자에서 청자의 ‘비밀정원’을 언급한다.

네 안에 열렸던 문 틈으로 본적이 있어

그룹 내에서 가장 팝적인 보컬을 가진 승희가 이 부분을 여리게 커버한다. 여태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 다가온, 결코 우악스럽게 침범하지 않는 화자에, 이제는 듣는 사람이 마음을 열 차례이다. 청자의 마음속 비밀스러운 공간, 혹은 그 안에 심었을 꿈의 씨앗을 다루며 “너의 비밀정원”이라는 호명으로 곡을 마무리한다. 전체 멜로디가 끝나고 나서 에코처럼 스쳐 가는 “무럭무럭 어서어서 자라나줘”라는 마지막 한 줄로, 화자는 청자와 비밀스러운 마음의 공명 끝에 건네는 응원을 전한다.

오마이걸의 같은 기획사 ‘선배’ 그룹인 B1A4는 셀프 프로듀싱의 비중이 굉장히 높았기 때문에, 이 그룹으로 회사 자체의 A&R 역량을 알기는 힘들었다. 오마이걸을 통해 비로소 회사의 총괄 프로듀서인 이원민의 능력을 볼 수 있는 바, ‘비밀정원’으로 사운드 면에서는 일정 부분 타협했으나, 가사에 힘을 줘 이제까지 지속해온 세련미를 잃지 않았다고 평할 수 있겠다. 이 회사의 신인 그룹인 온앤오프도 청량하며 트렌디한 음악을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WM 엔터테인먼트라는 중소 기획사에 일관적인 퀄리티의 괜찮은 음악을 기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2016년에 있었던 오마이걸의 첫 단독 콘서트를 다녀온 지인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와 함께 온 여아 팬들이 꽤 많더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같은 회사의 B1A4가 그랬듯 밝고 청량한 음악을 하는 그룹이라 그랬는지, 콘서트와 맞물려 활동한 ‘내 얘길 들어봐’가 거의 아동복이나 다름없는 의상으로 무대에 서서 아동들에게 그들을 위한 콘텐츠라 혼동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많은 여성 아동과 청소년이 아이돌을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그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걸그룹의 존재가 바짝 마른 체형을 선망하게 하는 등 팬층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그래서 바라기로는, 제작하는 입장에서 걸그룹에 지속적으로 현실 여성다운 목소리를 부여해주었으면 한다. ‘비밀정원’ 같은 곡으로 걸그룹에게도 ‘큐트에서 섹시로, 소녀에서 여자로’ 같은 얄팍한 성장 서사가 아닌 진솔한 인간의 성장과 변화라는 서사 부여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으니, 이 다음 곡들에서는 더욱 또렷하고 총명하게 살아나가는 여성상을 제시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다 보면 무대에 오르는 의상이나 체형 같은 비주얼 등도 자연스럽게 좋은 영향을 받아 변하지 않을까. 최근 활동하는 다른 걸그룹을 보면 곡의 메시지보다 비주얼 아트 등 외적인 요소가 먼저 변하고 있기도 하나, 가사부터 변해가는 오마이걸 같은 방식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오마이걸
비밀정원
WM 엔터테인먼트
2018년 1월 9일

  


시의성이 이렇게 중요하다. 독자가 예상 가능하듯, 나는 이 글을 올해 초에 썼다. 4월 2일 발매된 오마이걸 반하나의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상기했듯 나는 아동층에게 사랑 받는 오마이걸이라는 콘텐츠에 긍정적으로 주목하고 있었던 입장이다. 이번 발매반 역시, 아동층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라면 성인의 시선으로 굳이 유치하다 평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만일 해당 콘텐츠가 정말로 유아용이라면, 성인이 그 콘셉트와 노래를 소화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뽀미 언니’ 같은 아이돌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문제가 되는 지점은 ‘유아용처럼 꾸며 놓고는 성적 대상화 안무(일명 ‘판치라’)를 가미했다’는 것이다. 이전에 아이돌로지에서 일본 아이돌 카고 아이 이슈를 다루며 언급했던 케이스와 콘셉트, 의상, 안무 등의 면에서 패턴이 거의 동일하다. (당시 카고 아이는 해당 콘셉트에서 큰 수치심을 느꼈다고 기록한 바 있다.) 외피는 아동 콘텐츠의 옷을 입혀 어린이들을 해당 장면에 노출되게끔 유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죄질이 나쁘다. 비밀정원에 심어 놓은 “멋지고 놀라운 것”이 판치라 바나나 따위였다니. 용서가 안 된다. WM, 너 때문에 아름다운 비밀정원의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 책임져.

랜디

Author:

K-Pop enthusiast. I mean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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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세 부분 가사는 정말 잘 썼어요. 바나나의 문제는 의상과 안무에도 있지만 우선적으로 노래에 있는 거죠. 앨범 전체가 회사 내부 제작이던데 기획 과정이 궁금하기도 하구요. 아동층을 대상으로 한 컨텐츠라 하더라도 오히려 그쪽에서 질환명 관련해서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더라구요.

  • 장지호

    글 잘 읽었습니다. 충격적인 반하나 유닛 얘기가 없어 의아했는데 마지막에 덧붙여 주셨군요.. 이쯤되면 이원민 대표의 머릿속이 궁금해집니다..

  • 1

    노래가 노무좋습니다 우연히들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저처럼 우연히 듣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곡입니다 진짜 너무너무 좋습니다 평소
    일본노래 한국노래 다좋아해서 다듣는데 이노래는 진짜 너무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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