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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도 쓰지 않았지만

모두가 저마다의 비평을 한다. 전문 비평이란 것이 아예 필요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정말 소비만이 콘텐츠에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리액션일까?

이 글은 2018년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된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기획 박준우, 전대한)에 전시된 원고를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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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다. 행사의 이름처럼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마감까지 딱 하루가 남아있는 이 시점에, 떠오른 단상 몇 가지를 정리해 놓은 불릿포인트 문서 말고는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다.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하는 단톡방을 “MIT에서 불릿포인트만 넣으면 문장 써주는 봇 사오고 싶다”는 헛소리로 도배해 놨다. 전업 작가는 절대 못 하겠다고, 나 자신을 냉철하게 판단해본다.

그렇지만 전대한 씨로부터 이번 행사의 참여를 의뢰 받았을 때는 내심 기뻤다. 내가 쓴 글을 남들이 읽어주는 걸 좋아하는 ‘관종’ 천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행사가 열린다는 자체가 반가웠기 때문이다.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가 소개글에 말하듯, 지금 한국의 대중음악비평 판은 ‘폐허’다. 공터라고 부르기도 뭣한 상태다. 음악 잡지나 레코드판의 속지에 들어가던 음악비평은 미디엄이 사라지며 대부분이 인터넷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지금의 인터넷에서도 별것 아닌 비실비실한 존재로 남아있다. 모두가 저마다의 비평을 한다. 나도 아이돌로지와의 인연을 그런 식으로 시작했으니 그것을 낮잡아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만인 비평가’의 시대가 열려버렸기 때문에, 전문 비평이란 것이 아예 필요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음악을 자연 발생하는 현상처럼 대해도 될까? 세상의 흐름, 아니 좀 더 확실히 말하자면 소비의 흐름에 따라 씬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면 되는 것일까? 정말 소비만이 콘텐츠에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리액션일까?

내가 주로 다루는 아이돌 팝은 대중음악 장르 중에서도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인식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얼마나 잘 팔리는지 외에는 관심을 가져선 안 되는 것처럼 일컬어지곤 한다. 이른바 ‘진지하면 지는 것이다.’ 솔직히, 음악 비평조차 아이돌 팝을 이렇게 대해오지 않았나. 마치 자본주의 문법에 매몰된 생산 방식과 산업에는 깊이 평가할 만한 가치가 절대로 깃들 수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장르의 음악을 즐겨왔지만, ‘음덕’들 사이에서 내가 아이돌 팬이라는 것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았다. 음악 애호가들에게 아이돌 팝이란 진정한 음악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대중 음악 산업 자체를 점령한 아이돌 팝이 자기가 추구하는 장르 다양성을 해쳐서 싫다고 했고, 어떤 이는 외국 트렌드를 어설프게 카피하는 모양이 싫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라 나도 수긍했다. 그러나 그 뒤에 덧붙는 말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여자애들은 저런 걸 뭐 그리 좋다고 꺅꺅대면서 듣는지 모르겠다.” 나는 더욱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여자애들이 듣는 음악’이란 표현 뒤에는 어떤 인식이 있었을까. 가수의 외적 매력에만 치중한 음악, 메시지에 진정성이 없는 음악, ‘가창력’이 부족해 듣기에 불만족스러운 음악, 떼거리로 몰려나와서 춤추는 음악. 그래서 아이돌도, 그의 팬들도 그 비판점을 메꿔보려 수년간의 인정투쟁을 한 끝에, 아이돌로지 동료 필진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 아이돌은 이제 ‘인간병기’ 수준의 퍼포머들로 거듭났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여전히 아이돌을 싫어했다. 그 인식의 뒤편에서, 그들이 ‘여자애들이 듣는 음악’이란 것 자체를 흠 삼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은 제법 최근의 일이다.

처음으로 아이돌로지의 신보 단평 코너인 ‘퍼스트 리슨’에 참여하게 됐을 때다. 편집장은 단평이니 부담 없이 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더욱 부담이 됐다(!). 트윗으로는 그렇게 쉽게 풀려나오던 생각이 근육이 경직된 것처럼 꽉 틀어 막혀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한 줄이라도 쓰자며 모니터 앞을 지켰지만,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워드로부터 도피하며 보내야 했다. 본래 처음 해보는 일이 뭐든 낯설긴 하지만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독자들이 내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시 정답이 있는데 내가 그걸 모른 체 영 딴소리를 하는 건 아닌지, 그런 나의 오답을 누가 알아보고 우스워 하지는 않을지 불안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나에게 작품을 평론하는 권위가 있어 보일지, 누군가의 눈엔 가치 없는 것에 당의칠을 하는 걸로 보이지는 않을지 우려했던 것도 같다.

CCL | Steve A Johnson
CCL | Steve A Johnson

어찌어찌하여 첫 주 마감을 끝내고, 그 다음 회차, 그 다음 회차를 차곡차곡 쌓아 나가며 나에게도 점차 자기 확신이란 것이 쌓였다. 리서치 목적으로 음원사이트 댓글란을 찾아보면, 숱한 남성 팬들은 뭐가 됐든 자신의 분석에 그렇게 자신 있어 할 수가 없더라. (심지어 영 헛다리 짚는 소릴 하더라도.) 나에겐 그게 나빠 보였다기 보다는 새삼스러웠다. 저분들은 저렇게 틀렸는데도 떳떳한데, 왜 제법 타당한 분석을 하던 나는 글로 내 생각을 드러내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지금은 대강 결론 내리길, 나란 사람은 자기 검열이 심하고 보수적이라 내 앞에 롤모델이 넉넉하게 있지 않은 이상 선뜻 나서기를 어려워하는데, 당시 (실은 지금도) 한국에는 아이돌 팝 평론도, 그리고 여성 평론가 자체도 드물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세간의 시선이 ‘여자애들이나 듣는 음악’을 홀대한 지 꽤 긴 시간이 흘렀다. 1세대 아이돌이 데뷔 20주년을 축하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아이돌 가요가 어떻게든 대중에게 의미 있는 기억을 새기고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어린 여자애들의 문화’를 무시하다가 이것을 아카이빙 해야 할 수많은 기회를 놓쳤다. 지난 몇 년 간 젊은 평론가들이 주류 매체에서 아이돌을 다루려는 노력을 했지만, 아직도 유튜브의 리액션 채널이나 팬덤 생리를 연구하는 블로그 등 개인적인 채널을 제외하면 아이돌팝, 일명 케이팝을 깊이 있게 평론하는 텍스트는 부족하다. 케이팝은 이제 하다 하다 빌보드 메인 차트에까지 등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이돌 팬이 많은 트위터 세상을 여행하다 보면 나보다 젊은 사람들의 신선한 통찰에 감탄할 때가 많다. 나는 이 많은 사람들을 포텐셜 평론가로 보는데,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다. 위에 ‘폐허’라는 표현까지 쓰며 대중음악비평의 힘없음을 이야기했지만, 작품의 배경과 의미를 분석해내고 창작자에게 그 작품의 해석을 정돈된 말로 피드백 한다는 점에서, 비평의 언어란 근본적으로 분명 어느 정도의 권위를 갖는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젊은 여성 평론가가 나오기를 희망한다. 팬덤의 다수가 여성인 장르, 여성 팬층의 사랑과 지지로 운영됨에도 그것을 모른 척하는 장르, 이런 것을 읽어내고 정돈된 권위의 언어로 표현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거창한 이야기를 해놓기는 했지만 실은 별것 아닌 이야기이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마추어 평론가이고, ‘저 정도면 나도 쓰겠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길 바라며 그때그때 주어진 마감을 칠 뿐이다. (펑크도 많이 낸다.) 과거의 나를 한 줄도 쓰지 못하도록 짓눌렀던 그것은 내가 여성으로서의 나의 목소리에 적당한 자신감과 권위를 찾자 사라졌다. 나보다 젊은 분들 중에는 그나마의 고민도 오래 하지 않을, 더 또렷한 분이 많이 있을 거라 확신한다.

‘폐허’는 달리 말하면 가능성의 홈그라운드이기도 하다. 더 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이곳에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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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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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By 랜디

K-Pop enthusiast. I mean it.

10 replies on “한 줄도 쓰지 않았지만”

아이돌 음악을 비평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여성 비평가들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결론으로 가는 것은 어딘가 쌩뚱맞은.

아이돌음악 비평을 말하다가 여성평론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남성 팬들은 뭐가 됐든 자신의 분석에 그렇게 자신 있어 할 수가 없더라. 심지어 영 헛다리 짚는 소릴 하더라도”

이건 성별이랑 관련없는 문제인데
여성들의 더 많은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말한 거 아님?
주디스 버틀러가 말했듯 성염색체 하나 빼고 뭐가 다르다고 글쓰는데 여성, 남성 나누는지 모르겠음. 구태의연한 음악산업계는 그렇다치더라도 페미니즘적인 글쓰는 사람들도 그렇던데

안녕하세요, 글쓴이입니다! 인용하신 부분은 큰 경향성을 보여드리기 위해 일반화라는 방법론을 쓴 문장이 맞습니다. 음원사이트 댓글에서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예시를 굳이 주석으로 달지는 않았습니다.
댓글에 언급하신 부분은 저도 늘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unswer님이 말씀처럼 성염색체 하나 빼고 뭐가 다르다고요. 그렇죠? 그런데 대체 무엇 때문에 현실적으로 평론가 인구의 성비는 그렇게 불균형할까요? 꼭 평론이라는 권위의 언어는 남성이 발화해야만 자연스러운 것처럼, 남성 평론가가 압도적으로 많은 걸까요? 그리고 unswer님 말씀처럼 단지 성염색체 하나 다른 거니, 성비가 좀 불균형하더라도 남성 평론가들이 여성 소비자의 시선을 제대로 파악하고 여성 창작자의 경험에 공감하며 평론을 생산한다면 문제가 안 될텐데, 왜 남성 평론가들은 그걸 어려워할까요? 평론 문단의 이런 문제는 그냥 여성 평론가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여성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이 늘어나면서 해결될 문제인데, 무엇이 이 여성들의 평론 문단 진입을 막고 있는 걸까요?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런 물음이 꾸준히 연구돼야 합니다. 너무 어렵게 느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여성비평가들이 별로 없다는건
음악에대해 느낀점을 한줄 이상 쓸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걸 반증하는 거 아닌가요.

보세요 한줄이죠?
비판을 하실거면 내용을 담아주세요

20년이면 한 사람이 성인이 될만한 시간이므로, 아이돌 문화도 충분히 성숙한 장르로 인정받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역사가 없다고 하시는 분들은 케이팝이라는 이름 아래에 시행되는 수많은 산업들과 시상식들을 떠올려주시기를. 한국에 그 정도로 풍부한 미디어를 소유한 장르가 많지 않음을 모두 알고 계시면서? 기껏해야 수능 정도 있겠네요). 저 또한 앞으로 음악, 판타지와 과학 소설, 그리고 넓게는 공학과 의학에서도 더 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 어떤 문화도 ‘여자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수식어로 비하당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21세기잖아요. 문화 소비자로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더 즐겁기도 하고요^^ 랜디님이 지속적으로 건필하시기를 바랍니다.

칼럼 잘 읽었습니다. 환절기에 건강하세요:)

일부 여자들은 성비가 낮은 부분에 대해 자꾸 불만을 가지는데 대체 왜 가지는지 모르겠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문제 아닌가? 이런 부분때문에 페미니스트가 참 싫다. 대중들이 평론가의 평론을 지켜볼때 평론가의 성별을 체크하며 이 평론은 여자가 썼으니깐 넘어가야지 이런식으로 차별대우받는것도 아닌데.

글 다시 읽어보니깐 헛다리 짚은거 같은데 삭제가 안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