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걸의 앨범 제목이 “Pink Ocean”인데, 16장의 커버 중 바다만큼은 아니어도 핑크 톤 커버가 제법 된다. 그런 봄의 한복판을 장식하는 신보들의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스위치베리, 갓세븐, 트리탑스, 박재범, 에이션, M.A.S 0094, 엠버, 오마이걸, 전효성, 블락비, 비투비, 디오션, 엔소닉, 소년공화국, 레이디스코드, 데이식스를 다룬다.
유제상: 여성 5인조 그룹 스위치베리의 데뷔 싱글. 이들을 보니 '복장은 교복으로, 노래는 트로트로'가 단순히 몇몇 팀들의 오판이 아니었구나 싶다. 그것은 현장의 선택, 그것은 제한된 상황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최선의 방책, 그것은... 그것은... 그만하자, 평자가 모르는 사정이란 게 있는 것이니.
햄촤: 노래와 가사,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퀄리티가 삼위일체로 합쳐져 듣는 이를 매우 곤란하게 만든다. 적어도 섹시해 보이고 싶은 건지 청순해 보이고 싶은 건지 콘셉트라도 확실히 정했으면 좋겠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의상 한 번 더 갈아입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이 노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무려 중국어 버전도 있다는 점.
김윤하: 한 단계 도약이 누구보다 목마른 그룹에게 '앨범이 좋다'는 칭찬이 얼마나 큰 힘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앨범은 정말이지 좋다. 살짝 허리를 굽히고 대세를 받아들여 추진력을 높인 타이틀 곡 'Fly'가 앨범 흐름상 가장 이질적인 편. 넘치는 야심을 첫 타자로 호쾌하게 날려버린 앨범은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갓세븐 특유의 여유 넘치는 비트와 무드 사이를 자유자재로 누빈다. 보다 고무적인 건 그 유연한 흐름 곳곳에 스며든 멤버들의 존재다. 힙합, 어번 댄스, 팝 등 어디 하나 모난 데 없이 매만져진 '갓세븐 사운드' 구석구석에, 주니어, 유겸, 마크, JB(Defsoul)의 이름이 돋보인다. 8곡을 꽉 채운 수록곡 가운데 드디어 도드라지기 시작한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의 보컬이 지닌 개성에 주목해 들어보는 것도 색다른 관전 포인트다.
블럭: 센터의 변화를 비롯한 멤버 간 비중의 변화는 반기는 편이다. 멤버들의 참여도가 높아진 것 역시 환영하는 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 했을 때의 결과다. 빠르게 간파당하는 레퍼런스와 평가하기 어려운 안무, 헐거운 서사는 그것이 갓세븐에게 변화를 가져다줬다고는 해도 결국 아쉬움이 많다. 무엇보다 이것이 연작이라는 게 이미 공표가 되었는데, 아무리 탄탄한 뒷받침이 후속편에서 구성된다 해도 전작을 보완할 수 있을지 의문일뿐더러 기대가 줄어들게 된다.
돌돌말링: 앨범 전반부의 가벼운 상승감이 올해의 펜톤 컬러로 산뜻하게 꾸민 커버와 잘 어울린다. 지난 앨범 "MAD"의 타이틀 '니가 하면' 등은 같은 회사 선배 그룹인 2PM과 너무 유사해 앞으로의 방향을 염려하게 했는데, 이제 구별점은 확실하게 찾은 것 같다. 아쉬운 점은 4번 트랙까지 비트 소스들이 너무 비슷비슷하다는 것이고, 4번 트랙 이후에는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그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 그렇지만 몸이 가벼운 소년들이 부르는 희망적인 노래는 보고 듣는 것 자체로 즐겁다. 팬클럽 IGOT7의 애칭이 '아가새'인 것을 생각하면 타이틀 'Fly'가 팬송인 것 같기도 하다.
유제상: 타이틀 'Fly' 포함 총 여덟 곡. 'Fly'는 상쾌한 부유감이 돋보이는 하우스 비트의 댄스곡. 사실 EP에 포함된 곡의 일부는 타이틀의 기조를 따르고 있으며, 일부는 이전과 같은 힙합향 곡들이다. 다만 수록곡 전반이 기이할 정도로 단조로워 이거 계속 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 1~4번 트랙은 피치나 템포만 빼면 첫 15초가 거의 동일하다. 이제 새로 아이돌 음반을 제작하는 군소 업체도 아니고 이거 JYP에서 나온 건데 왜 이런데...
조성민: 기대를 모았던 티저에 비해 김새는 본편. 아련하고 섬세하게 연출된 화면에 안무 동작만 잔뜩 있는 뮤직비디오는 후반부에 등장하려다 만 드라마 장면과 어울리지 못하고, 심지어 동작 자체가 전체 영상의 무드와 딱 맞는다는 인상도 없다. 갓세븐 멤버들은 춤을 굉장히 잘 추는 편인데, 음악도 퍼포먼스도 그러한 장점을 전혀 살려주지 못하고 있다. 'Girls girls girls'와 'A'에서 보여주던 활력도, '하지하지마'와 '니가 하면'의 강렬함도 보이지 않아, 이게 정말 갓세븐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 나머지 트랙들에서도 딱히 대안을 찾을 수 없어 더 난감하다. 실험이라기엔 너무 위험한 한 수.
유제상: 트리탑스가 근 1년 만에 새 싱글 '길고양이'로 돌아왔다. 그렇지. '못생겨서 미안해'가 작년 유월에 나왔으니까. '길고양이'의 뮤직비디오 속 시각 이미지는 제인 캠피언의 영화 〈피아노〉(1993)를 연상시키는데, 피아노 앞에 선 것은 트리탑스의 멤버 네 명이다. 가사는 더욱 사변적인 것으로 변했으며, 멜로디와 창법은 더욱 애처로워졌다. 멜로디가 진부하다는 점만 빼면 들을 만하다만, 이런 발라드 넘버에 그걸 빼면 뭐가 남겠나.
돌돌말링: 박재범 본인이 쓴 가사가 좋게 말하면 솔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정돈이 덜 되어 감상을 방해한다. 제목을 아예 '사실은'으로 뽑은 걸 보니 어느 정도 감안한 것 같기도 하지만. 뮤직비디오는 애니메이션으로 좋은 시도를 했지만, 내러티브에 등장하는 여성이란 '전여친'과 '전여친 없이 잘 지내는 나를 둘러싼 여자들', '폴댄서들' 등으로, 평면적이라 지루하기만 하다. 화자가 '찌질한 나'를 드러내는 것을 진솔한 매력으로 삼기 이전에, 등장인물들의 인격을 어떻게 표현할지 조금 더 고민하면 좋지 않을까. 멜로디와 보컬이 말끔하고 좋아서 더 아깝게 느껴진다.
유제상: 전작인 'Driving'도 그렇고 음원이든 프로모션이든 상당히 공이 들어간 것 같은데 별 반향이 없다니 안타깝다. '손이가요'는 굳이 따지자면 발랄한 빅뱅 풍이지만, 이들만의 시그니처가 없는 한계를 지닌다. 데뷔한지도 좀 되었고 멤버도 교체되었으니 이제 뭔가 재미를 보면 좋으련만.
조성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것 같다. 귀엽고 청량하고 경쾌한 것도 해야겠고,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것도 해야겠고, 힙합 아이돌이 대세니까 랩 파트도 좀 많아야 될 것 같고, 정말 많은 고민이 보이는 가운데, 결국 기본과 정석에 충실하는 미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라이브 무대에서 등장하는 삑사리들은 앞으로 연습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쳐도, 이미 음악 자체에서 '과욕'이 보이는 것은 이 팀의 다음 앨범을 낙천적으로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유제상: 'Feeling Good'의 보도자료에 '애시드 재즈를 기반으로 한...'이란 문구가 있어서 어디가!라고 생각했는데, 후렴구에 아주 미묘하게 그런 분위기를 내는 부분이 있다. EP라고는 해도 전작인 '나비, 꽃을 찾다'를 포함하니 실제로 곡은 얼마 안 된다. 이상한 점은 두 번째 트랙인 '15초 후'가 어느 면으로 보든 나은데 왜 'Feeling Good'을 타이틀로 삼았는가 하는 것이다. '15초 후'가 너무 씨엔블루 같아서?
조성민: 요즘 보기 드문 담백한 보컬과 산뜻한 봄 노래가 잘 어우러져 기분 좋은 봄바람처럼 불어온다. 뻔하게 다가올 수도 있었던 밴드 음악이지만, MSG 안 들어간 자연식처럼 편하게 다가오는 것이 꽤나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은 분명 보컬의 '하드캐리' 덕분인 듯하다. 스쿨밴드 콘셉트를 가져간다는 점은 데이식스와도 비슷하지만, 이쪽이 좀 더 청량한 소년 같달까. 데뷔 싱글 '나비, 꽃을 찾다' 때부터 주목하고 있었는데, 좋은 방향성을 잡은 것 같아 앞으로도 계속 기대하고 싶다.
미묘: f(x)에서의 역할이나 'Shake That Brass'의 유쾌한 캐릭터에선 듣기 어려웠던 엠버의 조금 공격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반갑다. 곡은 가사의 언어만이 아니라 정서와 사운드 모두 케이팝이라기엔 미국 팝에 가까운데, 케이팝식의 열창에 다소 부적합한 엠버의 음색을 어떻게든 '보완'하고자 하기보다 신스로 덮쳐버리기도 하는 선택이 결국 음악적으로 기능한다. 커밍아웃송인지 여부, 엠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이를 논하는 게 정당한지 여부를 떠나, 이 곡이 젠더 정체성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만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뮤직비디오에 (손쉽게) 남+남 커플이나 여+여 커플을 등장시키기보다, 그저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고독을 통해 성소수자를 표현한다는 것이 신선하고 용기 있다. 덧붙이자면 디지털 싱글의 음원과 뮤직비디오 크레딧이 아티스트의 SNS에 있고 음원 플랫폼에는 없다는 것이 이 곡의 '현대성'을 다시 느끼게 한다.
돌돌말링: 이제 SM station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결과물들의 사운드 퀄리티에는 SM에서 내놓는 정규 앨범들과 같은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소속 가수들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는 소품 연작 이상의 의미는 찾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단, 엠버의 'Borders' 같은 곡은 사회문화적인 시사점이 있어서, 그런 것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동안도 건강한 자기 고집이나 소수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자주 노출해온 엠버라, 타자이지만 의연한 노래 속의 화자가 본인의 생각일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어쩌면 SM Station 같은 기획이어서 나올 수 있는 곡일 수도 있겠다.
유제상: 엠버가 혼자 나오면 어떤 노래를 부를까란 상상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싱글. 좋은 점도 나쁜 점도 그렇다. 여기서 좋은 점이란 좋은 시스템에서 나오는 안정감이고, 나쁜 점이란 좋은 점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뜻한다. 흡사 미국 대학생이 공들여 케이팝을 모사한 것 같은 뮤직비디오까지 포함해서. 이 뮤직비디오는 미국 대중문화를 모사한 SM 뮤직비디오를 모사한 미국 대중문화 같다. 어찌 이런 일이...
김윤하: '소녀'가 가진 이미지를 조각조각 잘라내 마음대로 이어 붙이며 즐겨온 지난 2년이었다. 그 소녀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오마이걸 역시 그 유행의 흐름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고, 그녀들이 탐험을 시작한 지점은 그 수 많은 가능성 가운데에서도 가장 미묘하고 오묘한 구석이었다. 데뷔곡 'Cupid' 이래 'Liar Liar'의 '스러져버리는' 종결부만큼이나 모험심 강하고, 'B612'의 가사처럼 "그런 느낌이 드는" 지점을 밟아온 소녀들의 여행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대중이 눈을 돌려주는 건 숨이 턱까지 닿은 뒤 당도한 결승점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선공개 곡이었던 '한 발짝 두 발짝'과 세련된 팝 넘버 'Knock Knock'만은 놓치지 말길.
블럭: 오마이걸은 'Cupid' 이후 꾸준히 좋은 곡, 좋은 안무, 좋은 콘셉트를 선보였다.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Closer' 때 센터에 있던 유아를 사이드로 배치했지만 대신 다른 멤버가 빛날 수 있게 되었고, 전체적인 흐름이나 수록곡의 퀄리티 역시 오마이걸이 잘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다. 유일하게 의문이 드는 점이라면 신발 디자인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SM의 공식을 많이 참고한 듯하며, 완전히 새로운 노선의 선두주자라고 느끼기는 힘들어졌지만, 이들이 가진 미적 센스나 감각만큼은 쭉 유지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돌돌말링: '한 발짝 두 발짝'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오마이걸의 새 EP.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는 기존의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타이틀곡 'Liar Liar'는 데뷔곡 'Cupid'처럼 굴리는 스네어 사운드로 가득하지만 그때 같은 치어리딩 느낌보다는 낯선 세계를 모험하는 듯한, 월드뮤직 같은 느낌이 난다. 멜로디 때문일까? 1번 트랙 '한 발짝 두 발짝'을 준 B1A4의 진영은 이제 어엿한 기성 작곡가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때로 B1A4를 인디 아이돌 같이 보이게 만들었던, 예의 유난하지 않고 예쁜 느낌이 한국형 걸그룹에 잘 어울린다. 네오시부야케이 느낌이 나는 'Knock Knock'을 강추한다.
유제상: 'Liar Liar'를 들으면서 느끼는 건데, 오마이걸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들을 때마다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건 결과물이 조악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멜로디가 밝든 어둡든 의도된 불안감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잔혹동화류의 서로 배치된 정서가 동시에 전해진다. 요는 이전 싱글까지는 뭘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콘셉트를 잡았다는 거. 곡이든 곡의 프로모션이든 방향성이 확실히 섰다.
조성민: 취향의 문제인 듯도 한데, 이 앨범만이 가진 독보적인 특징 같은 것이 딱히 와 닿지가 않는다. 레드벨벳이나 CLC 등에게서 느꼈던 것과 크게 다른 것을 느끼기가 힘들고, 5인조와 8인조의 차이점을 제외하면 더더욱 그렇다. 멤버들의 개성을 살려주지 못하는 보컬 파트 배치나, 여타 동급 걸그룹들과 큰 차별점을 만들지 못하는 비주얼 콘셉트 등을 보자면, 과연 소구점이 어디에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햄촤: 데뷔곡부터 쭉 꼼꼼한 기획 아래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오마이걸의 신보. 타이틀곡 'Liar Liar'는 비유하자면 '감미로운 자명종 소리' 또는 '달콤한 사이렌'같은 모순된 감정을 주는 곡이다. 쉬지 않고 롤러코스터처럼 1, 2절을 몰아치더니 브리지라 생각했던 부분에서 갑작스레 끝나는 구성 덕분에 머릿속에서 후렴구가 반복되어 울려 퍼지는데 그게 싫지 않다. 짝사랑에 잠 못 이루는 소녀의 심정을 몽환적 스릴러로 표현한 뮤직비디오, 노래만큼이나 바쁜 안무의 동선 등 시각적 이미지 또한 충실한 잘 만들어진 하나의 패키지. 수록곡들 또한 그룹의 이미지에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으니 참으로 알찬 앨범이다.
김윤하: 모호한 국적과 시대 사이 언젠가의 디바를 소환하려 애쓰는 '나를 찾아줘'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활력과 생기 넘치는 시대의 아이콘은 시대와 상관없이 환영받는 존재이니 말이다. 전효성 특유의 애끓는 듯한 호흡과 발성을 십분 활용해 "놓칠 것 같아", "갇히기 싫어" 같은 가사를 반복하게 구성한 후렴구도 노림수를 자극하며 곡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전반적으로 레트로(하다고 쓰고 나쁘지 않을 정도로 촌스럽다 읽을 법)한 무드를 살린 수록곡의 면면 역시 전효성의 타고난 이미지와 함께 피부처럼 밀착한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앨범이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이 스타일과 이미지가, 적어도 지금 시대와 적절히 호응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유제상: 타이틀 '나를 찾아줘'는 아마 시크릿 계열 전곡을 통틀어 가장 대중적인 곡이 아닐까 싶다. 일단 평자 취향은 아니었지만 이런 흥겨운 곡은 늘 수요가 있으니 어디든 들을 수 있을지도. 이하는 개인적인 의문에 관한 내용이다; 저, 스웨거 광고에서는 역대급 섹시 모션을 취해주셨으면서 이번 EP 안무는 왜 이리 절제되어 있는 겁니까??
조성민: 타이틀곡 '나를 찾아줘'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내내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르겠다. 이효리부터 현아까지, 모든 솔로 여가수들이 보여줬던 화려한 퍼포먼스 연출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단지 전효성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저 뮤직비디오 세트장만 번쩍번쩍 빛난다. 시크릿과 같은 해에 데뷔한 그 어떤 다른 걸그룹 멤버가 이 노래를 불러도 이거보단 나았을 것 같다. 어색한 춤 동작은 보기 민망할 정도고, 보컬은 좁은 음역대 안에서만 움직이는 멜로디라인 안에서 어떤 포인트도 만들지 못하고 그저 흘러가버린다. 댄스곡을 이렇게 재미 없고 심심하게 부르는 건 처음 듣는 것 같다. 이 뮤직비디오에 쓰인 이 모든 '예쁨'들이 이렇게 소비되는 게 아까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 연출력의 낭비다.
블럭: '몇 년 후에'는 대중적인 노선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최근 음악 시장의 흐름을 잘 따르고 있다. 사실 어느 정도 정형화된 공식에 가깝기 때문에(심지어 후반부 피오의 파트까지) 크게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블락비가 이러한 곡을 했다는 점과 곡 자체의 완성도, 자연스러운 소화는 놀라우면서도 이들의 내공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타이틀곡은 여전히 블락비만 할 수 있는 '그 느낌'을 기대하고 있다.
미묘: 보통 아이돌 음반에서 발라드가 따로 노는 경우는 많았지만, 댄스곡이 생색내기처럼 들리는 건 또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만큼 음반의 초반부를 채운 '발라드성' 트랙들이 유난히 설득력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발라드가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형식이긴 하나 누구든 그것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형식은 아니기에 비투비의 행보에 완전히 의구심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들이 발라드 기조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심지어 '봄날의 기억'에서 후렴 이후가 변화하는 것처럼 꽤나 참신하고 고급스러운 시도도 눈에 띈다. 청소년 선도 R&B 느낌이 나기 쉬울 '그려본다'가 미세하게 화성을 만져 분위기의 균형을 잡는 것을 보면, 뭘 하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는 안심이 든다. 비투비의 발라드 세계 탐험을 응원한다.
햄촤: 매번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오가는 비투비의 행보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기 위한 모색'이라기 보단 '무엇을 입어도 괜찮을 거란 옷발에 대한 자신감'처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보이그룹이란 무엇인가'하는 주제에 대한 탐구과정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이번엔 계절감 가득한 발라드 '봄날의 기억'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소프트한 곡들로 앨범이 채워져 있는데 역시나 맞춰 입은 듯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 특히나 수록곡 '그려본다'는 그 옛날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연상되는 발라드인데, 'WOW'에 이어 21세기 케이팝에서 느끼는 20세기 팝의 정취라니 반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미묘: 이름은 왜 바꾼 걸까 했는데, '디오션'이 된 이후로 음악에 들어간 기합이 다르다. 오밀조밀함 속에 동물적인 질감과 짜릿함이 깃드는 디스코를 제대로 구사하면서 그 매력의 배합 역시 잘 해냈다. 후렴의 보컬이 뒤쪽으로 공기처럼 깔리는 게 약점이라고 생각했더니 이조차 느물스러운 공기를 배가하고, 랩이 조금 뻔한가 싶지만 캐릭터 연기가 받쳐줘서 상쇄한다. 마지막에 베이스가 전면으로 튀어나오면서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도 상당히 효과적이다. 브리지의 마무리만 좀 더 짜릿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미묘: 후렴이 곡의 전부가 아니란 걸 보여주는 예가 여기 있다. 후렴만 떼어놓고 본다면, 히트곡으로서 충분한지에 의문을 가질 순 있겠으나 참조와 시도 사이에서 괜찮은 지점을 짚어내는 편이다. 멜로디컬한 프리코러스는 정형을 따르다 보니 안정적이다. 이 곡이 망가지는 것은 버스(verse) 탓이 가장 크다. 탐탐 위주의 역동적인 비트, 그리고 아마 인더스트리얼을 참조한 사운드로 잡아놨는데, 비워낸 공간에 비해 보컬과 랩의 믹스가 너무 얇아서 귀를 잡아주지 못한다. 매우 생경하게 이어붙인 브리지마저 마무리를 잘못해 맥이 풀리고 만다. 각 파트를 나눠서 보면 욕심이 없는 트래킹 같지는 않은데, 이를 이어붙이고 보컬을 얹는 과정에선 이렇게까지 욕심이 없어도 되나 싶다.
햄촤: 곡과 의상, 뮤직비디오에서 잘 나가는 보이그룹의 요소들을 다양하게 벤치마킹해왔다는 느낌이 진하게 풍기지만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아서 왕 전설의 엑스칼리버를 차용한 제목에 내심 설레었는데 고작 "네 입술은 Excalibur"라는 비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침통한 심정이다. 댄스버전 뮤직비디오는 모 회사의 스타일을 의식한 듯 2.35:1(아마도)의 와이드 비율로 찍혔는데, 덕분에 멤버들의 얼굴도 안무도 제대로 보기 힘든 결과물이 나와 버렸다. 멤버들의 개성을 더 뚜렷이 보여줄 수 있는 곡과 콘셉트의 연구가 시급해 보인다.
조성민: 'Get Down'은 그동안 소년공화국이 보여줬던 것 중 가장 강렬하고 '쎈' 노래다. 문제는 이 노래가 정말 '세려고 작정한 노래'라서, '강약중강약'이 없고 '강강강강'만 하다가 끝난다는 점이다. 정돈되지 않은 퍼포먼스는 곳곳에서 의욕만 불태우다가 흐지부지 되고, 곡 내내 나오는 고음의 떼창은 곡의 흐름을 무척 산만하게 만들고 있다. 강렬함의 근원이 되는 에너지는 사실 연출보다는 퍼포머의 애티튜드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햄촤: 타이틀곡 'Get Down'의 뮤직비디오가 무려 19금이며 꽤나 잔혹한 수위의 표현이 있다. 무언가 '센 걸' 보여주고 싶은 전략인 것까진 알겠으나, 맥락을 파악하기 힘든 고어 표현이 과연 곡의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의문이 드는데, 무엇보다 뮤직비디오의 수위에 비해 노래 자체가 그다지 세게 다가오질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다소 지루한 앨범 청취 중 멤버 원준의 솔로곡 '널 위했던 노래'는 귀가 확 열릴 정도로 시원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이었다.
블럭: 레이디스코드의 EP 자체도 정말 좋았지만, 리믹스 EP 역시 좋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 곡 자체가 가진 느낌에서 출발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보컬 라인 자체가 가진 감성을 있는 그대로 노출해버린다는 점에서 리믹스는 대체로 원곡보다 좀 더 감정적인 측면에 접근한다. 무엇보다 적재(정재원)의 편곡은 자연스럽게 장르를 변경하면서도 곡이 가진 흐름을 더욱 진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유제상: 바로 전작 "MYST3RY"와 대척점에 있는 어쿠어스틱 리믹스 EP. 한달 텀을 두고 발매되어 좀 이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MYST3RY"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이번 EP도 즐겁게 들을 수 있다. 물론 이 즐거움은 곡 외적인 것으로, "MYST3Re:"의 우울한 분위기가 수록곡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타이틀은 'Chaconne (Arieta Mix)'인데, 소품 같은 곡이 더욱 소품처럼 변모해 오히려 좋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쯤 캐스커가 갔으면 하는 어떤 지점에 위치한 아련한 EP.
미묘: JYP식 아이돌 록이 가능한지를 (성공적으로) 타진하는 듯하던 전작에 이어, 이제는 자신감을 덧대 안정적인 음반을 만들어낸다. '(본격) 발라드가 아니니까 가능했겠지?'란 질문에 대답하는 듯한 '놓아 놓아 놓아'를 비롯해, 전보다 공격적으로 밀고 나가면서 자신을 추스리는 것이 보기 좋다. 팝적인 싱그러움 역시 여전하다. 다만 그런 공격성이나, 능구렁이 같은 리듬 체인지와 쭉 뻗은 후렴이 매혹적인 'First Time'에 비해서는, 전작이 보여줬던 짜릿함은 조금 덜해진 듯해 아쉽기도 하다. 백업 보컬과 피아노 오스티나토 등의 60년대 향취, 몇 가지 뉴웨이브 사운드의 시그니처 등, 데이식스가 아이돌과 록을 결합하는 방법론에는 유난히 결이 두드러지는 요소들이 있다. 그것들이 전작에선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강렬하게 찔러줬다면, 이제는 두어 곡마다 꼭 등장해선 좀 뻔하고 '스타일'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단계에 접어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해낼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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