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마지막 열흘, 12월 하순에 발매된 아이돌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엠펙트, SF9, 진호&후이(펜타곤), 나다(와썹), 아시즈비(AxisB), 에이플(APL), 앤씨아&육성재(비투비), 빈챈현스(다이아), SMTOWN X Steve Barakatt, 디엘(D.el), BP라니아, L.U.B(다이아)의 새 음반을 다룬다.
유제상: 5인조 남성 그룹 엠펙트의 새 싱글. '혼자남은이유'는 근래에 듣기 드문 브릿팝 계열의 멜로디와 비트를 취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선가의 라디오헤드 같기도 하고 블러 같기도 하고 더 버브 같기도 한 곡의 구성이 자못 새삼스럽기도 하거니와, 거기에 힙합 비트를 덧붙이니 자연스럽게 풍기는 예스러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 유튜브에서 이들을 검색하면 나오는 것은 전작인 '그냥 너 (JUST YOU)'의 뮤직비디오뿐이고, 이 뮤직비디오 또한 쌩 벌판에서 춤을 추며 저예산의 티를 내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부디 새해에는 이들에게 풍족한 시간과 예산이 주어지길.
유제상: 싱글 발매일은 12월 22일, 리뷰는 2017년 1월. 유감스럽게도 1월이 되어 듣는 시즌송이다 보니 특별한 감흥 같은 것은 없고 뭐 그렇다. '너와 함께라면 (So Beautiful)'은 시즌송에 대한 전 회차의 감동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릴 만큼 평이한 곡인데, 이는 시즌송치고는 지나치게 늦은 발매 시기와도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다. 참고로 뮤직비디오는 복작거리는 분위기가 지나치게 남자 아이돌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전작인 '팡파레 (Fanfare)'의 씨시함을 감안해보면 여성스러움은 이들의 콘셉트인지도.
조성민: 제한된 시간의 한 곡 안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조급함이 느껴진다. 밴드 아이돌을 히트시켰던 이력도 어필해야겠고, 멤버들의 보컬도 보여줘야겠고, 겨울 시즌송의 차분함도, 보이그룹 특유의 에너지도 놓칠 수 없어서 그 모든 고민을 디지털 싱글이라는 좁디좁은 플랫폼에 껴 맞춰두었다. 잔뜩 힘을 줘서 빌드업 해나가던 도입부에 비해 후렴을 한 번 반복하고는 맥없이 끝나버리는 끝부분도 어쩐지 찝찝하다. 곡 자체는 이미 씨엔블루가 한 번 불렀을 법한데, 보컬 또한 데뷔 즈음의 씨엔블루 멤버들과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이 없어서 특별히 새로운 점을 찾기는 조금 힘들다. 직전에 나왔던 신인 그룹 엔플라잉이 어째서 화제를 만들지 못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유제상: 펜타곤의 얼굴마담인 진호와 후이가 참여한 시즌송. 앞서 리뷰한 SF9의 싱글처럼 매우 늦은 시기에 발매되긴 했지만 '겨울이 반가운 이유'의 완성도는 다른 곡과의 비교를 불허한다. 특히 후렴구의 도입부가 주는 세련됨이나, 2절이 끝나고 몰아치는 훵키함은 듣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든다. 언제고 팀의 이름으로 놀렸던 것 같은데, 나날이 나오는 결과물의 퀄리티를 생각하면 그런 과거가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싱글이다.
돌돌말링: 이 싱글이 너무 맘에 들어서 퍼스트리슨 마감에 지각한 주제에 나다 믹스테입을 정주행했다. 나다 뿐만 아니라 와썹의 작업물들은 대체로 '힙합을 사랑하지만, 예산은 부족한' 모습인 경우가 많았다. (e.g. 뮤직비디오의 때깔, 사운드 믹싱 등…) 이번 싱글도 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나, 빈 부분을 유머와 나다 개인의 스웨그로 채워버린다는 점에서 오히려 멋진 곡이다. 사실, 힙합에 그것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가사 속에서 여와 남을 호명하는 방식이 꽤 재미있는데, 'Good Man Bad Man 상관없어 빨랑 여잔 많으니까 남동생 오빠만' 하고 부르다 중반에 가면 '언니 팬이에요 인사를 건네 근데 남자들은 오질 않아 겁내 하긴 이렇게 노니까 다 도망갔네' 하며 너스레를 떤다. 와썹과 언프리티 랩스타를 거치며 얻은 여성팬들의 존재를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여남을 가리지 않고 'Good Man Bad Man 상관없다고 여자도 괜찮으니 모여 서래마을로' 불러모으는 모습에 어쩐지 그의 스웩 아래 모두가 흥청망청 대통합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유제상: '언프리티 랩스타'의 세 번째 시즌에 등장하며 인지도 상승이 기대되었으나 프로그램이 문자 그대로 폭망하면서 무위에 그친 와썹(Wa$$up)의 나다가 전혀 뜻밖의 싱글로 돌아왔다. 먼저 휴대폰의 조작 잘못으로 기존 음악 리스트를 모두 날려 먹고 '서래마을'만 반복해서 들었다든지(만원 전철이었다) 하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음을 밝혀둔다. 곡을 들었을 때의 감상은 '잘하는 것은 알겠으나 콘셉트가 흥미롭지 않다' 또는 '잘하는 것을 지나치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로 요약될 수 있겠다. 래퍼니까 당연히 가사도 자신이 썼을 것이고, 속사포 같은 랩이 전매특허라는 것도 잘 알겠지만, 일단 듣는 이가 매력을 느껴야 할 것 아닌가. 뭔가 엇나간 키치 덩어리인 뮤직비디오도 마이너스.
햄촤: 제목과 달리 가사를 제대로 읽어봐도 딱히 서래마을과 큰 상관이 있는 건 아니었고, 그냥 나다가 사는 동네가 서래마을이라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점이 이 노래에 임팩트를 더해주는데, 노래 전체가 딱히 맥락이 있어도 없어도 큰 상관이 없는 나다의 스웨그(Swag) 자체로만 이루어진 곡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굳이 내용을 살피면 '언프리티 랩스타' 출연 이후 유명세를 탄 자신의 일상을 군더더기 없이 써내려간 가사인데 보는 눈이 많아졌지만, 타인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포부가 느껴져 요즘 같은 시기엔 감동적일 정도. 여태까지 이름을 몰랐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멋진 래퍼를 알게 되었다. '언프리티 랩스타 3'을 뒤늦게라도 챙겨봐야 하나.
유제상: 아시즈비가 싱글을 내는 것을 보니 이번 회차가 비수기이긴 한가 보다. 'Be My Love'와 '머무르다'의 두 곡이 실린 싱글. 특히 타이틀인 'Be My Love'는 그럭저럭 말쑥하게 뽑힌 편이다. 다만 역시 유튜브에서 이들의 곡을 찾으면 정체불명의 직캠이 평자를 반겨주는 것이, 이들이 생계형 아이돌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해준다. 만약 아시즈비의 텀블벅이 있다면 가난한 평자의 살림에 아주 소액이라도 지원해주고 싶다. 물론 이 싱글이 그 이상의 감정을 끌어낼 정도는 아니다.
유제상: 4인조 남성 그룹 에이플의 새 싱글. 무려 10개월 만의 신보다. '화 좀 내지마'는 듣자마자 깜짝 놀랄 정도의 2000년대 초반 분위기를 뿜어내는데, 중간에 지코식의 헐떡거리는 랩이 없었다면 이 노래가 당시 나온 것이라 해도 철석같이 믿어버릴 정도. 사실 평자는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지 음악을 만드는 것에는 별다른 지식이 없지만, 이렇게 한 달에 30~40개 정도의 앨범을 강제로 듣다 보면 무엇이 레트로한 것이고 무엇이 그냥 촌스러운 것인지를 구분해낼 수 있게 된다. 같은 상황을 접하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구분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유제상: 별 리뷰할 생각이 없었건만 앤씨아와 육성재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하니 그 결과물이 어떨지 궁금해서 잡아든 싱글. 노래는 딱 기대한 만큼으로, 애시드한 분위기가 듣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드는 세련된 싱글이다. 다만 육성재의 보컬은 지나치게 고음 위주로 흐르고(멜로디 전반이 앤씨아의 톤에 맞춰져 있다), 둘이 시너지 나는 부분은 별로 없는 점이 마이너스. 특히 뮤직비디오는 시종일관 떼껄룩들이 뭉개고 노는 것으로 차 있는데, 둘이 거짓 연인 놀이를 하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공책 커버도 아니고 너무하다 싶다. 둘 다 바쁘기 때문이라고 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만도...
조성민: 적당히 레이드 백 된 두 사람의 보컬이 차분하게 1, 2절을 각각 채우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칸막이라도 친 듯 철저하게 구획된 각자의 파트 안에서도 놀라울 만큼 연애 감정선 상의 텐션을 끌어내는데, 그래서인지 2절이 끝나면서 비로소 슬며시 섞여드는 두 사람의 하모니가 더욱 시너지를 발휘한다. 한겨울에 받은, 예쁜 포장에 잘 담긴 봄 선물.
햄촤: 벌써부터 봄 타령이라니 새로운 전략인가. 가사를 읽어보니 겨울에 외로운 솔로들의 애인 타령에 가까운 노래. 결국, 겨울에 어울리는 노래이지만 최근 몇 년간 유행했던 봄 시즌 남-녀 보컬 유닛의 말랑거리는 발라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적용한 일종의 틈새를 노린 전략이라고 봐야겠다. 노래는 큰 욕심 없이 깔끔하게 해야 할 역할만 하고 끝난다는 장점이 있지만 1, 2절로 나뉜 육성재와 앤씨아의 파트가 같은 노래라기보단 각자의 솔로를 번갈아가며 이어 붙였다는 인상이 든다. 아마 둘의 음색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사에서도 좀 더 서로의 푸념을 주고받듯 디테일한 남녀의 입장 차이를 담아냈더라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유제상: 다이아의 느닷없는 팀별 디지털 싱글 내기 프로젝트. "First Miracle Diaid I"에는 예빈, 채연, 희현, 유니스가 참여했다. '너는 달 지구'는 기존 비슷한 장르의 결과물을 철저히 피하기 위한 방법들로 가득 차 있는데, 읊조리는 랩으로 시작해 흐느끼는 노래를 거쳐 다시 건조한 랩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나름 흥미진진하다. 다만 비슷한 목표 의식으로 만든 곡, 예를 들면 블랙핑크의 '휘파람' 같은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시작부터 휘파람 소리가 나와서 평자가 세뇌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도. 결과를 이야기하자면 프로젝트 자체가 흥미로운 시도로, 다이아를 만드는 이들이 차별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유제상: 평자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비웃듯 등장한 SM 엔터테인먼트의 새 싱글. 이번의 참여 인원은 놀랍게도 캐나다의 유명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스티브 바라캇이다. 뜬금없다면 뜬금없을 수도 있겠으나 뉴에이지스러운 곡에 가사를 덧입힌 결과물은 혐오스러운 혼종인 '넬라 판타지아'를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수도 없이 많으니 뭐 이쪽이 굳이 특이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작곡은 데이비드 사이먼과 리키 해인리 둘이 맡았고 바라캇은 피아노 연주를 맡았는데, 곡은 그냥 자주 듣던 바라캇의 그것이다. 특히 후렴구의 "작은 꽃이 피어나~" 부분은 언제고 들어본 것만 같은 느낌을 더욱 증대시켜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말쑥한 결과물이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 있는 싱글이지만, 길이 기억에 남을 무언가를 들려준 것 같지는 않다. 꽤 오랜 슬럼프를 겪고 있다는 바라캇의 커리어가 이를 통해 반등했으면 좋겠다는 해괴한?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햄촤: 모르긴 해도 디시인사이드 보이스리플 갤러리 내지는 유튜브의 케이팝 커버 전문 계정에만 가더라도 이보다는 훨씬 나은 퀄리티의 노래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가창력의 문제라기보단 곡의 사운드와 녹음의 질 등 총체적으로 장점을 찾기엔 장벽이 너무 많은 곡. 하다못해 장르적 정체성이라도 확실히 해주었으면 하는데 트롯트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듯도 하고... 그럼에도 후렴구만큼은 작정하고 만든 펀치라인인지, 처음 듣는 곡임에도 멜로디의 익숙함에 절로 유행도 다 지난 유행어 '핫해 핫해'를 따라부르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질지 모르니 다들 주의하시길.
돌돌말링: 새로이 개편된 라니아의 EP. 원년 멤버였던 이나가 돌아왔고 나머지는 모두 신멤버들이다. 한국 가요 가상 첫 흑인 아이돌이라고 주목받았던 알렉스는 사실 지금의 라인업이 되기 전 라니아의 싱글 'Demonstrate'에 참여한 바 있으나, 얼굴 한 번 비추지 못하고 활동이 끝났으니 이번이 정식 참여라고 봐야 할 듯. 그나마도 무대에서도 자기 파트에만 등장하는 등 객원 멤버가 아니냐는 질문이 그치지 않는다. 해외 케이팝 팬들이 많이 참여하는 유튜브의 댓글난에는 이미 '한국어 파트도 없는데 과연 케이팝 아이돌로 봐야 하느냐', 'BP 라니아가 알렉스를 쿨해보이기 위한 도구 정도로만 취급한다' 등 논란이 있다. 외국인 멤버, 특히 비-동북아시아 출신 아이돌이 매스컴에 자주 노출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입장에서도 꽤 중요한 일이니 DR뮤직에서는 이 부분을 재고해보았으면. '맨스플레인'을 다룬 흥미로운 가사는 저번 회차의 K.A.R.D의 'Oh NaNa'를 쓴 낯선의 작품. 이제 막 데뷔한 터라 일대일 비교를 하긴 어렵겠지만, 주이 등의 걸출한 멤버가 있었던 저번 기수보다 노래와 안무의 소화력 등은 다소 부족하다.
햄촤: 그룹명에 '흑진주(Black Pearl)'을 뜻하는 'BP'라는 글자가 새로 붙었다. 데뷔 이후 멤버 교체가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로 이미지 쇄신에 공을 들인 듯하다. 'Start A Fire'는 취향을 저격하는 힙합 비트로 시작해 힘 있는 보컬이 시종일관 이어진다. 시류에 거스르듯 '가르치지 말어', '다그치지 말어'라는 구절이 반복되면서 흥을 고조시키고, 마침내 중후반 알렉산드라의 랩이 터져 나오는 순간 '이거다!'하고 내적 박수갈채가 터져 나온다. 영어로만 이루어진 랩 파트는 심지어 꽤 길기까지 한데, 곡예를 펼치듯 유연한 래핑은 그를 영입한 것이 단순한 화제성을 위한 이벤트가 아님을 확실히 각인시킨다. 후렴구의 반복이 아주 약간 곡을 늘어지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룹 내부적으로도 색깔을 다시 잡아간다는 측면으로서도 긍정적인 듯하며 2NE1과 포미닛 이후 빈 듯한 케이팝 씬 내부 그 어딘가의 영역에서 맞는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들게 하는 곡이다.
유제상: 이쪽은 제니, 은진, 은채로 구성된 "First Miracle Diaid Ⅱ". 빈챈현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팀원들이 모두 작사, 작곡에 참여하였다. 결과물은 '너는 달 지구'의 안티테제 같은 것으로, 딱 들어본 멜로디에 들어본 비트, 그리고 여자 아이돌에게 프리스타일 랩을 해보라고 시키면 열에 아홉은 할 것 같은 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너는 달 지구'에 비해서 재미는 덜하지만, 친숙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올봄에 나온다는 평자의 책에도 대중문화의 '독특함' 못지않게 '익숙함'을 호명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만 이쪽은 멤버들의 개입이 셌던 탓인지 흡사 오디션 프로그램의 곡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게 반드시 마이너스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 아이돌로지 10주년 : 현 필진의 Essential K-pop 플레이리스트 - 2024-05-13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前 필진) - 2024-04-29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미묘) - 2024-04-15